학창시절이었습니다.
매일 아침 가장 이른 시간에 학교에 나가 맨 앞자리를 차지했죠. 수업시간에 너무 졸린 것은 결국 정신자세라는 스스로의 판단에서였습니다. 뒤에 앉아 있으면 주변에 졸거나 자는 친구들로 인해 잠은 전염되고 마치 폭탄 맞은 참호 처럼 그렇게 교실은 앞자리 몇 줄을 빼놓고 모두 엎어져 자고 있었죠.
중학교 고등학교 모두를 남자학교만 나와서 거칠었던 학교 생활이었는데 고등학교 초까지 앞자리를 차지하던 그만은 슬슬 뒤로 밀려 납니다. 자고 싶었고 땡땡이를 치고 싶었고 지구과학시간에 수학공부를 해야 했고 영어 책 사이에 어제 그리다 만 만화 스캐치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뒤로 뒤로 맨 끝짜리, 구석으로 가보니 칠판을 보기보다 고개를 떨구고 딴 짓을 하기 일쑤였죠.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나고 전 칠판을 보면서 이상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곤 나중에 한쪽 눈을 가려가며 칠판을 볼 때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시력이 1.2였다가 무려 0.3으로 곤두박질 친 것입니다. 불과 7개월만의 일이었죠. 누구도 그 원인을 알지 못했고 한 밤중에 흔들리는 낡은 형광등 조명을 켜고 책을 봤기 때문이라고 추정할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안경잡이 20년 생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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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 처음에는 잠자리테 안경이었죠. 광대뼈 있는 데까지 내려온 거대한 안경. 그리고 조금씩 안경 알은 작아지고 한때 뿔테, 금테, 은테, 무테 등이 유행을 타며 안경잡이들의 주머니를 털어갑니다. 이상하게 당시 돌아이(전영록) 영화를 바라보며 잠자리 안경에 동질감을 느끼던 때였습니다.
안경 알은 또 어떻구요. 처음에는 유리, 코팅유리, 플라스틱, 코팅 플라스틱, 압축 유리, 2중 압축 코팅 유리, 색이 변하는 렌즈까지 마치 DSLR 카메라의 렌즈 고르듯 5만원 내외에서 십수만원의 안경알을 바꿔낍니다.
안경잡이는 참 서럽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더듬이질을 해야 하고 수영장에 가서 안경 떨어질까봐 고무줄로 단단히 조여 맵니다. 안구건조증 때문에 렌즈도 제대로 착용하지 못하는 상태라면 더 짜증이 나죠. 썬글라스 한 번 멋지게 써보는 일이 여간 번거로운 것이 아닙니다. 썬글라스 렌즈를 내 눈에 맞게 도수를 맞춰야 하니까 말이죠. 군생활에서 가장 곤란했던 것이 방독면 착용 역시 안경잡이들에게는 안경잡이라서 서러웠던 일일 겁니다.
안경을 술 먹다가 우연찮게 떨어뜨리기라도 하면 당황합니다. 더구나 누군가 그 옆을 지나가다 안경을 밟기라도 하면 하늘과 땅은 흔들리는데 내 눈은 세상과 초점을 맞출 수 없는 난감한 상황이 벌어지니까요. 택시를 타고 가다가도 여기가 어딘지 모르는 눈만 껌뻑이는 반 장님 상태였던 경험은 안경잡이들에게 또 다른 당혹스런 기억일겁니다.
안경이 코에 잘 걸리면 잘 걸려서 자국이 깊게 패이는 것을 감수해야 합니다. 코가 날렵하고 작은 사람이라면 코끝에 안경을 걸쳐놓아 노인네 마냥 영 폼이 안 납니다.
안경에 이물질이라도 묻거나 운동하다 땀방울이 몇 줄이라도 흘러 땀자국이라도 날라치면 얼마나 짜증이 나는지요. 이럴 때 마침 안경닦이 수건도 없고 주위에 면 소재 천도 없으면 팬티라도 잡아 당겨 안경 알을 닦아내고 싶죠.
2007/04/01 술이 내 눈알을 부쉈어요...---------------------------------->
지난 주 월요일.
강남에 있는 CGV 건물에 있는 아이메디라는 안과에 찾아갔습니다. 눈을 검사하기 위해서였죠. 아내의 회사와 마케팅 제휴로 아내의 회사 직원을 위한 할인 행사가 있고 가족까지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말에 예약을 하고 찾아간 것이죠. 별로 따지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당장 해치우지 않으면 다시 수술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를 두고 또 몇 년을 보내야 할 것만 같아서였죠.
아이메디 안과에서 무려 20여 가지의 검사를 받았습니다. 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동공을 확대시켜 눈 안쪽의 검사를 하는 단계에 이르러서는 먼 곳은 보이는데 가까운 곳에 초점을 맞출 수 없는 본격적인 '노안' 체험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이틀을 고생했습니다. 세상이 이렇게 밝을 수가 없네요. ㅎㅎ.. 눈이 너무 부시더군요.
그리고 금요일 드디어 수술을 위해 오후 5시 안과 병원에 찾아갔습니다. 금요일이라 수술환자가 많이 밀려 있었고 대략 7시쯤 되어서야 수술방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제가 선택한 수술은 라식. 구체적으로는 마이크로 라식+웨이브프론트 수술이라고 하는데요. 구체적인 설명은 생략하고 대략 뭔 수술이냐 하면요. 절편을 만들어 살짝 들어낸 다음 그 안쪽을 레이저로 움푹하게 절삭하고 다시 절편을 덮는 방식이죠. 말이 그렇지 제가 제 눈 일부를 도려내고 레이저로 조사하는 것을 볼 수는 없죠. 의사 선생님이 하라는대로 초점만 맞추고 있으면 마취도 했다가 소독액도 뿌렸다가 절편을 잘라내고 덮고 합니다. 왼쪽과 오른쪽 모두 합쳐서 겨우 10분의 시간이 지나니 빵빠레와 함께 박수 소리가 들리네요.
수술이 끝났습니다.
Source : http://www.drkagan.com/lasik.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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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둥절한 느낌으로 눈을 껌뻑이는데... 안경을 찾아 더듬거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느끼는 첫 번째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생겼습니다. 아니, 사실은 제가 무리한 것이었죠. 토요일 경남 진주에서 8시간짜리 하루종일 강의가 하나 있었거든요.
라식은 사후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고 첫 4시간 동안은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 당부와 함께 다음 날에는 보통 100% 병원에서 진료를 받아야 하는데 사정 상 못 받게 되었으니 진주에 가서라도 혹시 이상이 있으면 안과 병원에 반드시 가보라고 신신당부를 하더군요.
라식수술 첫 날은 4시간 동안 일단 눈을 감고 잤다가 깼다가를 반복했습니다. 항생제와 소염제를 번갈아 넣어가며 수시로 인공눈물도 넣었죠.
다음 날 토요일 오전 일찍 세수도 안 한 얼굴로 김포공항에서 사천공항(처음 가봤습니다!)으로 비행기를 타고 내려갔습니다. 눈에 대한 긴장감이 최고조였던 때였습니다. 계속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불안해서요.
진주에 내려서부터 강의가 끝날 때까지 정말 오랜 시간 동안 눈을 부릅떴다가 껌뻑거렸다가 인공눈물을 넣었다가 하며 번잡스럽게 하루를 마쳤습니다. 서울로 올라올 때는 진주에서 남부터미널까지 오는 우등 고속버스를 탔습니다. 역시 오는 내내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길거리를 보니 신호등과 각종 불빛 들이 번져 보이네요. 약간 당황했다고 할까요. 처음에는 원래 그렇다는 설명을 들었음에도 이렇게 불빛 번짐현상이 계속되면 어떨까 걱정이 안 될 수 없잖아요. ^^
그리고 오늘 오전에 잠시 안과에 상태를 보러 들렀습니다. 절편이 매우 안정감 있게 붙어 있고 감염도 안 보인다고 하네요. 다행스럽게도 말이죠. 그리고 불빛 번짐 현상도 많이 줄었고 어제, 그제보다 항생제나 소염제를 넣을 때 따가왔던 느낌도 많이 없어졌습니다. 다만 아직 시력이 안정적이지 않아서 가까운 곳에 초점을 맞추기 힘든 원시 현상이 남아 있는데요. 곧 없어질 것 같습니다. 난시는 아예 사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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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과의 이별은 이렇게 순식간의 결단과 잠깐의 불편함을 거쳐 완성되었습니다.
지인이 이러더군요. "뭘 라식이에요. 좀 있으면 노안이 올텐데"
큭!
그래서 대답했죠. "노안이 오기 전에 밝은 세상을 안경 없이 보고 싶어서..."
안경과의 이별은 없을줄만 알았어요. 근데 참 허망하게도 순식간에 깔끔하게 이별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들려주고 싶은 탄성 한 마디.
"아, 왜 그동안 망설였을까... 노을진 저 지평선과 저 산의 능선을 안경없이 내 두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을 왜 일찍 깨닫지 못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