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제게 대학생 후배가 메일을 보내왔습니다. 이 전에도 여러 인터뷰도 있었지만 이 학생은 좀더 구체적인 질문을 해주었다는 점에서 매우 인상적이더군요. 대답하는 입장에서도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줬습니다.
상대 학생에게 답을 주었고 덧붙여 개인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조건으로 우리가 주고 받은 메일을 제 블로그에 공개할 수 있도록 양해를 받았습니다.
일부 오탈자와 첨자가 있습니다. ^^
------------------------------->
안녕하십니까. 저는 **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 다니는 이**이라고 합니다. 먼저 기자님께서 쓰신 미디어 2.0 - 미디어 플랫폼의 진화- 라는 책을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겉으로 급격히 드러나고 있지는 않지만 인터넷이라는 공간 속에서 급격히 변화하고 있는 저널리즘의 모습이 언젠가는 기존의 언론마저도 완전히 변화시키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정보통신 분야의 저널리스트를 꿈꾸고 있는 학생입니다. 그렇기에 관련분야의 지식을 탐구하고 있기는 하지만 어떤 것을 해야하는지 조금 난감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던 중에 기자님께서 지으신 책을 읽고 이렇게 연락을 드립니다.
자신이 어떤 분야에 있어서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미 그 분야에서 성공한 인물들을 많이 인터뷰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직접 듣는 지식과 정보는 다른 것과 비할 수 없는 가치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괜찮으시다면 인터뷰를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가능하신 시간을 알려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제가 생각한 인터뷰의 질문 목록은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 좋은 하루 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
안녕하세요.
일단 저는 기자가 아니구요. ^^ 어쨌든 반갑습니다. 졸작인 제 책을 읽고 연락을 주신 점 감사드립니다.
일단 제게는 후배가 되겠네요. 학교는 다르지만 과가 같으니 말이죠. ^^
제가 성공했다는 판단은 이르고 오히려 잘못된 판단일 수 있지만, 인생의 선배로서 조력자로서 조언해줄 수는 있는 노릇이겠죠. 그런 의미로 아래 질문주신 내용에 대해 답을 달았습니다.
혹시 허락하신다면 일부 개인정보를 지운 뒤 제 블로그에도 포스팅할 계획인데 허락 여부를 알려주세요. ^^
Q1. 일반적인 저널리스트와 정보통신분야의 전문 저널리스트와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이 있을까요?
일반적인 저널리스트와 정보통신분야의 전문 저널리스트와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물어보셨는데요. 일단 차이가 있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저널리스트는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소양(끊임없는 의제 제시, 바른 글 쓰기, 품격있는 글 쓰기, 공격적인 취재와 사실확인, 대안에 대한 심사숙고 등)을 제외하고 분야에 맞는 글쓰기를 위해 다음의 부분에서 약간 다르겠죠.
다른 점이라면, 기본적으로 용어 파악부터가 다릅니다. 업계가 사용하는 약자(줄임말)도 많이 쓰이고 매달 새로운 기술이 쏟아져 나오고 있으니 최소한 트렌드(또는 용어)라도 꿰고 있어야 글이 나오겠죠.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정보통신분야의 주요 이슈는 기술입니다.
반면 또 한 축으로는 문화가 있습니다. 기술과 문화를 한 눈으로 바라보고 연관성과 비례를 따져볼 수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정보통신 분야의 정보 습득은 꾸준해야 하고 자기 시각으로 이런 기술 동향과 역사를 누적시킬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Q2. 전에 지디넷 편집장을 하신 것으로 알고 있고, 현재는 전자신문 칼럼니스트로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정보통신 관련 언론은 일반적인 언론에 비해서 어떠한 점이 다르다고 생각하십니까?
다 옛 이야기지요. ^^ 요즘은 전자신문 칼럼니스트로 활동한 지도 꽤 되었군요. 시간적인 여유가 그리 많이 나진 않네요. 어쨌든 질문 주신 내용은 위의 질문에 대한 답변과 다르지 않습니다.
단지 '정보통신 분야'가 주된 관심사인 것이죠. 전문 미디어는 항상 자신의 분야에 대한 프리즘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매체가 정치 사회 분야가 주된 관심사이지만 현대 이후의 전문 미디어들은 특정 분야에 대한 시각으로 사회와 역사를 투영합니다.
예를 들어 이라크 전쟁이 터졌을 때 다른 언론에서는 정치 사회, 국제적인 이슈로 다뤘지만 지디넷을 비롯한 정보통신 분야 언론들은 '살람팍스 블로그'라는 사례를 발굴해 내었습니다. 같은 사안을 대하면서도 전문 매체 독자들이 원하는 방식의 기사를 공급해주는 것. 이것이 바로 전문 분야 칼럼니스트인 것입니다.
Q3. 보통의 기사는 중학생이 읽을 수 있을 정도의 가독성을 고려하여 작성하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정보통신 분야의 기사는 그 기준이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달리 말하면 쉽게 쓰면 신제품에 대한 프로모션이 될 수도 있고, 그렇다고 분석과 비판에 비중을 두면 일반인들이 읽기에 어려운 글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분야의 좋은 기사의 요건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산업사회가 '평균 지향'의 사회라는 것은 잘 이해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또한 대중 매체란 것이 일방향 매체라는 것도 잘 아실 것입니다. 이를 합쳐서 나온 말이 평균 수준(또는 그 이하)의 이해도를 가진 독자를 가정해야 한다는 말이었죠. 이 원리 때문에 '중학생 정도의 수준'이라는 이상한 기준이 생긴 것입니다.
하지만 잘 보시면 기존 언론들도 국제 분쟁을 이야기할 때 밑도 끝도 없이 현재 상황만을 기술한다거나 특정 분야에 대해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어휘를 구사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결국 용어란 역사와 정서와 누구나 많이 들어봤을 만한 상식를 담고 있고 있기 때문이겠죠.
어쨌거나 전문 매체도 뭔가 독자의 수준을 상정할 필요가 있는데요. 적어도 정보통신분야에 대한 관심도가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고등학교 수준 이상의 독자로 상정할 것인가, 아니면 기존 매체와 더불어 중학교 정도의 수준으로 풀이할 것이냐를 고민하면 됩니다.
그런데 잘 보시면 우리나라 중학생들은 이미 정보통신 분야에서는 기성세대보다 우월한 학습능력과 신조어 개발 능력을 갖고 있으니 오히려 기자들이 따라가야 할 판인 것이죠.
따라서 질문 주신 내용에 대한 딱히 정답은 없습니다만, 그 수준은 그 분야의 글을 다양하고 깊이 있게 접하다보면 자신만의 수준이 나오게 될 것으로 봅니다. 처음부터 지나치게 수준을 '설정'하고 갈 필요는 없습니다.
어휘와 글쓰기 수준은 사회상의 반영일 뿐입니다. 언론학 교과서는 수십년 전의 작위적인 상황을 상정해 놓고 적혀 있었다는 것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더 쉽게 이해될 수 있겠군요. 언론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에 비해 짧습니다.
Q4. 또한 정보통신 분야의 발달과 변화에 있어서 해외의 비중이 더 크다보니, 해외의 행사나 동향을 전달하는 기사가 많은 것 같은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솔직히 이 부분에 대해서는 가장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해외 소식을 소개하더라도 뭔가 해석이 덧붙여졌으면 좋겠는데 그동안의 외신 처리 관행을 보면 외신의 해석 자체를 번역하는 수준 정도에 그치고 있다는 점을 저도 계속 문제삼아 왔습니다.
이 부분은 지속적으로 개선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다만, 이런 해석력 부재에 대해서는 블로거들의 색다르고 광범위한 해석, 또는 특이한 분석이 기자들에게 좋은 자극이 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기자나 저널리스트라면 이러한 광범위한 해석 소스에서 원하는 것을 취사선택할 수 있는 시각을 기르는 것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또 하나는 트렌드와 관련된 이야기인데요. 해외 트렌드가 우리나라 트렌드와 공통된 것도 있고 적용 방식이 다른 것도 있고 시기적인 차이도 있고 문화적인 특이성까지 감안되면 다양한 해석을 내놓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는 통찰력과 관련된 이야기라 일정한 기간 이상의 전문 분야 종사 경험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웹 2.0이 대세일 것인지 단순히 유행으로 그칠 것인지에 대해 초기에 많은 기자들의 토론이 있었습니다. 현재는 웹 2.0이 소멸한 것인지 일상화된 것인지를 두고 또 논란이 이어지고 있죠.
이런 논란 속에서 트렌드세터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기르려면 토론에 적극 임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봅니다. 관찰자에서 참여자로서의 노력이 전문 분야 저널리스트에게 필요한 셈이죠.
Q4. 저도 기술 분야에 있어서 계속 알아가려고 하지만, 제가 공학이나 기술 쪽의 지식이 부족하다보니 그 구조와 개념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정보통신 분야의 전문 저널리스트가 되기 위해서는 기술 분야의 전문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Q5. 비슷한 의미의 질문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정보통신 분야의 저널리스트는 저널리즘을 공부한 공학도에 가까울지, 아니면 정보통신의 지식을 갖춘 저널리즘 전공자에 가까울지 궁금합니다.
두 질문이 유사해서 같이 답을 드립니다. 일단 전문가와 전문기자는 완전히 별개입니다. 제가 늘 주장하는 것은 저널리스트 자체가 그 분야 전문가일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다만, 그 분야의 전문 커뮤니케이터(또는 메신저) 역할이면 됩니다. 그것이 전문 분야 저널리스트이지요. 정치인들이 선거에 떨어지고 나서 언론사에 취직해 정치 뉴스를 맡는다고 상상해 보세요.^^
의학 전문 기자 등이 언론사로부터 각광을 받았는데요. 원래 전문 분야 저널리스트는 키워지고 성장하는 것이지 전문가가 갑자기 전문 분야 저널리스트로 변신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다만, 전문가이면서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복 받은 사람이겠죠. ^^
따라서 일반적으로 스스로 전문 분야 저널리스트가 되기 위해서 자격증을 따는 것보다 통찰력과 이해력을 키우는 것에 주력하는 것이 더 낫습니다.
마지막으로 후배님에게 드릴 말씀은 "선배의 인생을 복기하지 마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저는 제가 살아온 세월이 있구요. 여건이 있었구요. 상황이 있었습니다. 앞으로 후배님이 살아가야 할 세월과 상황과는 사뭇 다를 수 있다는 말입니다. 제 의견은 아주 가볍게 참고만 하세요.
감사합니다.
2009년 2월
------------------------->
아래에 있는 '선배의 인생을 복기하지 마라'는 이야기와 관련해서 지난해 10월 MS 대학생 MSP 워크숍 때 대학생 상대로 했던 강연 내용이 기억나서 그 슬라이드 내용을 공개합니다.
이 슬라이드 내용 가운데 이 내용을 말씀드리는 것이었죠. ^^
정말 할 말은 많지만 후배가 보기에 선배의 잔소리, 또는 선배가 보기에는 까마득한 후배의 헛소리로 들릴까봐... 조심스럽게 마무리하겠습니다. 멋진 IT 전문 칼럼니스트의 탄생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