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것과의 결별 - 10점
구본형 지음, 윤광준 사진/을유문화사

이 책, 10여 년 전에 읽고 다시 읽었다. 그때는 사회가 외환 위기로 절망적인 시기였고 나 역시 사회 초년병이 겪을 수밖에 없는 고초를 겪고 있었다. 지금 다시 읽고 있는 이 때는 사회가 다시 미국발 금융 위기로 휘청거리고 많이들 힘들어 할 때다. 나는 이미 직장 생활 12년 차이고 10여년 전보다 더 성숙하고 뭔가 일을 하고 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역시 사회 초년병 시절 겪었던 그 혼돈을 다시 겪고 있다. 10년마다 찾아오는 사춘기랄까.

어쩌면 10년 전 이 책에서 구본형이 말하려던 것과 다시 10년 후에 개정판에서 그가 다시 말하고 싶었던 것은 우리가 10년을 함께 나이 먹어가면서 언제든 내 멘토가 되어주겠다는 약속 처럼 보인다.

이 책 과감하게 별 다섯개 준다. 기분이다. 별 하나 더 있으면 추가해주고 싶을 정도다. 물론 내 기준이다.

링블로그에서 이미 그를 소개한 바 있다. 짧은 기사로.

'책으로 읽는 잔소리' 어떤가, 땡기지 않나?

덧, 솔직한 심정으로는 이 책보다 이 인터뷰 꼭지 하나가 더 내 생각과 가깝다. 산업사회에서 충성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기사 하나 첨부한다.
[책] 산업사회 생존법, 골든 임플로이

내 일방적인 해석이지만 저자 구본형과 나의 인연은 분명 존재하는 것 같다. 난 10여 년 전에 이 책을 읽고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뭐든 해야 한다'는 강박증을 선물 받았다. 당시 나의 선택은 아주머니들이나 한다고 여겨지던 생명보험회사 보험 설계사였다. 자격증 시험도 봤고 붙었으며 생명보험 회사에서 짧은 시간 '인생'을 경험했었다.

2007/11/21 그만은 IMF 수혜자? 피해자?

그런데 그도 열 살 더 먹어서 자기가 쓴 책을 다시 개정해서 출판사를 달리 해 발간했고 그 책은 우리 집에 있었다. 그냥 나는 이 책이 수개월 동안 책꽂이에 꽂혀 있는지조차 몰랐다. 문득 펼쳐 든 지하철 무료 잡지에서 본 그의 기사[직장생활이 세컨드 라이프의 시작이다 일하는 베짱이, 변화경영 구본형 소장]를 뚫어져라 보았고 당시 읽고 있던 책이 별로 맘에 들지 않았다.

그가 쓴 책을 읽어보려고 구본형 소장을 검색했다. 그리고 우리 집에 <익숙한 것과의 결별> 개정판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읽고나서 그에게 편지를 쓰려고 한다. 저자에게 편지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도 처음이다. 10년 전 20대 때 읽은 느낌과 이렇게 다를 수 있다니.... 이 시대 우리 나라의 몇 안 되는 '자기 계발서의 고전'답다.  ^^

"만나뵙고 싶습니다. 30대 후반으로 40대를 바라보는 나이에 10년 만에 이 책을 다시 보게 되어 너무 기쁩니다. 저와 같은 행운이 또 있을까요. 저는 이 책을 10년 전에도 읽었고 지금도 읽었고 10년 후에 다시 읽어볼 작정입니다. 그리고 구본형 소장님의 10년전과, 지금과, 10년 후를 보게 되겠죠. 제 멘토가 되어주세요."

이 책에서 예전에 읽었을 때 공감을 느끼고 집중했던 문구는 이런 것이었다. "뭔가 시작하라" "편견에서 해방되어라" 20대의 절박함이 책에 몰입되면서 이런 문구들만 눈에 보였던듯 싶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문구가 보인다.

그러나 점진주의는 개혁과 혁명의 적이다. 개혁은 단절을 요구한다. 개혁은 창조적 파괴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이것은 현재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 백지 위에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새롭게 그리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다시 하기'인 셈이다. 이 것은 처음 출발부터가 점진주의적 가정 위에 서  있지 않다. 그러므로 점진주의적 방법론을 택할 수 없다. 우리는 여기서 개혁과 개선의 보완적 성격을 깊이 이해해야만 한다. 이 두 가지는 모두 우리의 진보를 가능하게 만들었던 유효한 방법론이다. 그리고 상호 보완적이다. 그러나 혼용되어서는 효과를 볼 수 없는 상극의 성질을 갖고 있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개정판 구본형, 82p
이 처럼 책 제목을 잘 대별하는 문구가 있을까 싶다. 그리고 지금 30대 후반에 머물러 있는 나와 40대에 혼란스러움을 겪고 있는 베테랑들에게 이보다 더 자극적인 말이 있겠는가. 10년 20년을 쌓아 왔는데 그냥 외부 환경에 의해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자신의 모든 것을, 그리고 그 환경과 모든 관계를 다시 백지 위에 그려야 하는 상황을 받아들이라는 강요다.

10여 년 전 첫 직장으로 보험회사에 들어갈 때, 그리고 다시 잡지 기자를 시작할 때, 쉽고 편하고 익숙했던 종이 잡지를 떠나 다시 외국계 온라인 매체로 옮기고 다시 7년차도 더 된 시점에 편집장을 하던 나는 특채가 아닌 공채로 시험을 치르고 국내 신문사닷컴에 대리로 입사했다. 그리고 10년 차 기자 생활을 접고 포털 비즈니스 파트로 이직해온 나로서도 이 책이 주는 '변화는 단절이라는 확신'을 신앙처럼 갖고 있다. 나는 어제와 다른 사람이고 매일 나아지고 있다는 확신이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에 지난 설날 때부터 담배를 그냥 끊었다. 예전에는 끊어야 하는 이유를 찾고 금연에 대한 공황을 이기기 위해 껌과 패치에 의존하려 했지만 지금은 그냥 자연스럽게 '안 피운다'. 끊은 것이 아니라 그냥 어느 순간부터 '안 피운다'. 17년을 피워온 담배인데 그냥 그렇게 원래부터 안 피웠던 것처럼 안 피운다. 단절이다. 점진적으로 담배를 줄이겠다는 말이 왜 무의미한 소리였는지 알겠다.

한 달 전부터는 9년 전 결혼 이후 불규칙했던 아침식사를 꾸준히 하고 있다. 비록 김밥이지만 아침은 꼭 먹겠다는 각오가 아니라 아침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어떤 식으로든 아침에 김밥이나 샌드위치를 넣어준다. 그리고나니 점심을 적게 먹고 저녁에 뭔가 내일 아침까지 버텨야 한다는 생각에 과식하게 되는 폭식증도 없어졌다. 그냥 없어진 것이다. 줄어든 것이 아니라.

변화란 과거와의 단절이다. 연민의 끈 같은 것은 생각나지도 않아야 한다.

물론 그것이 힘들 것이란 것은 세상 누구나 알고 있다. 다만 변화를 생각하고 실행하지 않는 자와 변화에 대한 생각때문에 허송세월하면서 주저하는 자와 변화하고 싶다는 욕망에 이끌려 변화하는 자 가운데 누가 행복한 지도 우린 알고 있다. 심지어 그가 망해먹더라도 그가 욕망에 충실해 사는 것이 그다지 괴롭지 않은 선택이란 것도 우린 알고 있다. 그걸 이 책의 저자는 확인시켜주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매우 설득력 있게.

스스로를 컨트롤해야 한다는 따위의 지나치게 세속적이고 구체적인 자기 계발서들로부터 실망을 했다면 마지막 희망을 갖고 이 책을 펼쳐 보기 바란다. 내가 왜 변해야 하는지를 알려주진 못하겠지만 변하고 싶을 때 왜 변해야 하는지를 알려줄 것이다. 뭔가 자신에 대한 결심을 갖게 만드는 책이 인생을 바꾸는 책이 아니고 무엇이랴. 이 책을 10년에 걸쳐 두 번 읽었다는 것이 삼국지를 25년에 걸쳐 20번 읽은 것만큼이나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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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16 13:58 2009/04/16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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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책] 익숙한 것과의 결별

    Tracked from 레인블루 :: 책과 영화 이야기  삭제

    익숙한 것과의 결별 구본형 지음/생각의나무독자들 사이에서 얼마정도는 유명한 저자인 구본형님을 만난것은 어느면에서 행운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이책에 대해서 알게된것은 블로그를 떠돌다 책에 대한 코멘트를 접해서 리스트에 넣어두긴 했었는데, 어느분의 후기를 읽고나서 바로 주문해버렸습니다. 이런 류의 자기계발서를 평소에 읽지 않는 분이라면 분명 강한 자극과 함께 실천방법까지 제시해주는 이책의 매력을 충분히 느낄수 있을거라 생각됩니다. 이책은 IMF...

    2009/04/17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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