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이었지요.
양재에서 강남역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시간은 퇴근 시간 무렵이 넘어서 약 7시 정도 되었던 것 같네요.
여성 두 분이 "잠깐만요. 뭐 좀 물어볼께요"라며 저를 불러 세웁니다.
멈춰섰죠.
"혹시 양재 시민의 숲으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나요? 양재역은 여기서 먼 가요?"
"버스를 타고 가셔야겠는데요. 날씨도 추운데 걸어가면 시간이 좀 걸릴 거에요"
여기까지는 평범하죠? ^^
근데 문득 두 여성분 중 한 분이 "저기요, 혹시 컴퓨터 쪽 일 하시나봐요"라고 묻더군요.
"네... 그런데요"
이제 슬슬 느낌이 오기 시작하는거죠. ^^
"매우 총명한 기를 가지고 계시네요."
"눈이 참 맑으세요"
"머리를 많이 쓰시나봐요"
"저까지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네요"
"혹시 조상중에 일찍 돌아가신 분들이 계신가봐요"
"조상들이 참 많이 도와주고 계시네요."
"조상에 대해서 크게 생각하고 계시지 않으니 조상들이 조금 서운해 하시네요"
"종교가 있으신가요? 저희는 절에 다녀요"
"기를 배우는 사람들이죠"
"혹시 저희 같은 사람들을 만나신 적이 있으신가요?"
일단 혼자 걸어가는 사람, 그리고 직장인이나 학생처럼 보이는 사람. 특히 미혼 처럼 보이는 사람이 대상입니다. 네, 이들은 한참 동안 "도를 아십니까"로 유명한 분들이죠.
요즘 이런 분들이 강남쪽에 자주 출몰하시는군요. 이건 강남역 근처에 '도장'이 생겼다는 의미죠.
이런 분들은 항상 두 분이 쌍을 이루십니다. 대부분 말을 거시는 분은 수련(?)을 좀더 하신 분이구요. 따라다니는 분은 "추임새(?)"를 넣는 역할을 하죠.
자, 이런 이야기가 있은 후 2가지 시나리오로 일이 진행됩니다.
1. 관심을 보일 경우 도장으로 안내
예를 들어 "그러게요" "맞아요. 어떻게 아셨어요?" "그런가요? 그럼 어떻게 하죠?" 등의 호기심을 보이면 이야기가 길어집니다.
보통은 겨울보다는 봄이나 가을이 가장 적기(?)인데요. 요즘같아서는 설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모객하기 좋은 때이기도 하죠. 다들 앞날에 대한 기대와 불안이 교차하는 시기이니까요.
이야기를 좀 길게 하다보면 마치 점장이 처럼 "거봐요" "~이렇죠?" 등으로 정보를 묻다가 대충 모호하게 상황을 때려 맞추는 시늉을 합니다.
"올해 말쯤에 운이 다할 수 있겠네요. 그동안 그나마 조상들이 돌봐주셨는데 이제 조상님들이 약간 서운해하시면서 떠날 준비를 하시나봐요. 그래서 가끔씩 물건 잃어버리거나 뭔가 해야 하는 일을 깜빡할 때가 많으신거에요. 회사나 학교에서 대인관계도 의지와 상관없이 이상하게 꼬일 때도 있죠. 아마 정도가 더 심해지실거에요."
결론은 "조상님을 달래주셔야 해요. 덕을 보여주셔야 하는 거죠. 어떠세요. 지금 길거리에서 더 설명드리기 힘드니까. 도장에서 몸도 녹이시고 차나 한 잔 하면서 이야기를 더 해보시는 건 어떨까요?"라며 도장으로 안내합니다.
"지금 바빠요" 등으로 빠져나가려 하면 휴대폰 전화번호를 적으며 시간 약속을 받아두는 경우도 있지요.
2. 관심을 보이는 듯 하다가 그냥 뿌리치고 가려 하면 금전 요구
그런데 처음부터 그냥 뿌리치고 가버리면 문제가 안 되는데 그만 처럼(?) 거절하는 방법이 익숙치 않은 사람들은 조금 들어주다가 슬슬 자리를 피하려고 하죠.
그럴 때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그냥 가지 마시구요. 좀더 들어보시죠. 지금 조상님들이 화가 많이 나 계세요. 그렇게 가신다면 어쩔 수 없지만 이렇게 만난 것도 수십억겁의 인연 중 하나인데 그냥 스쳐지나가기에는 아깝잖아요. 저희들은 절에 다녀요. 00에도 있구요."
"이 근처에도 수련장이 있죠. 저희들이 이렇게 사람들의 기를 느끼면서 말씀드리는 것은 다 이유가 있는데요. 아무래도 기가 총명하신 분임에도 조상님의 은덕에 보답하지 못하셔서 위태로운 기운에 빠져 있는 분들을 보면 그냥 지나칠 수 없거든요."
"저희들이 그 은덕을 대신 해드릴 수도 있어요. 고아원이나 양로원에서 저희들이 남들을 대신해서 봉사도 하고 그러거든요. 저희가 대신이라도 조상님께 은덕을 보답할테니 양말값이라도 주시면 괜찮을 거 같은데 어떠세요? 금액이 크고 작고는 문제가 안 돼요. 어떠세요. 양말값이나 털장값이라도 보시할 수 있는 정도면 괜찮을 거 같은데요"
결국 돈을 달라고 하는거죠. 1천원이라도 내밀게 되면 "아니 부모님께 천원짜리 드리고 싶으세요? 조상님들도 마찬가지에요. 수십명의 조상님이 돌봐주시고 계신데 서운하시겠어요" 등으로 주머니에 있는 돈의 절반 이상을 내놓을 것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가급적 자리를 빨리 피하시는 것이 상책
여러분의 마음이지만 호기심에 도장(또는 수련장, 절?)에 동행하시거나 전화번호를 남기시는 등의 행동을 하시면 몇 가지 일을 겪게 됩니다.
일단, 일반 가정집이나 오피스텔, 또는 허름한 사무실에 들어가게 될 겁니다.
들어가면 친절하게 맞아주시는 분도 있고 아마 여러분 처럼 호기심에 여기저기 밥상이나 책상을 마주하고 열심히 설명을 들으시는 분들이 있으실거에요. 어느 곳은 아예 일정한 수(대여섯 명 이상)가 넘으면 집단으로 강의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때 강의는 몇 가지 무서운 예언부터 시작합니다.
"천지개벽이라고 들어보셨죠?"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는 의미인데 왜 놀랄 때 사람들이 경천동지한다고 하잖아요. 다 뜻이 통하는 말입니다. 개신교쪽에서는 휴거라고도 하고 마야 문명은 인류 멸망을 이야기하죠. 또는 불교에서는 윤회가 멈추는 시기가 온다고도 해요."
"지구의 축이 황도면에서 66.5도 기울어 있는 것을 아시죠? 이게 90도로 서는 시기가 곧 와요"
"지구의 축이 90도로 서고 지구의 90%의 생명이 사라지게 됩니다."
"지구의 멸망이 오더라도 남는 분들이 있어요. 지리산에서 수행중이신 분들이죠. 이 분들이 전세계 살아남은 분들을 다스리는 세상이 올거에요"
등등의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이 외에도 예수와 부처, 마호메트, 단군이 모두 한 뿌리라고도 하고 팔괘니 108번뇌니 휴거니, 천문학적인 변화니 하면서 과학과 종교, 민속신앙에서 그리스 전설까지 동원하면서 "모든 세상의 이치는 통한다"는 식의 이야기를 합니다.
그 중심에 윤회와 귀신, 그리고 조상님의 은덕과 후손의 보답에 대한 이야기로 막 빠지죠.
목적은 "제사를 지내야 하니 돈을 내라"?
이런 설명이 대략 끝날 즈음 대뜸 이렇게 물어봅니다.
"제사를 지내야 해요. 날짜를 따로 정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당장 조상님을 달래야 해요. 아니면 이 이야기를 조상님과 함께 듣고도 아무런 변화도 없으면 조상님들이 화를 내실 수 있어요."
라며 제사를 지낼 것을 권하죠.
제사를 지내려면 돈이 들겠죠? 최종 목적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보통은 50만원에서 100만원 사이의 금액을 내고 따로 제사를 지내라고 합니다.
당연히 우리는 돈이 없다고 하겠죠? 그러면 통장에 잔고가 있지 않느냐, 카드로 현금서비스를 받으면 되지 않느냐 등으로 돈을 뽑아 오도록 유도를 합니다.
"절친한 친구나 가족, 형제, 부모님들이 있으시잖아요. 그분들께 나중에 잘 되면 그 배로 갚아주시고 지금 전화해서 단돈 2, 30만원이라도 빌려서 제사를 지내세요. 그 정도도 빌려주지 못할 사람이면 사실 상종을 말아야 하는 거죠. 친구나 자식, 형제의 운명이 달린 일인데..."
어떻게든 돈을 마련하라고 합니다.
소액이라도 돈을 내면 그 다음부터는 성스런(?) 제사를 지낼 수 있습니다. 보통은 설명하는 곳 외에 따로 제단(?)이 마련돼 있는 방이 있습니다. 향도 피워져 있고 촛불과 함께 엄숙한 분위기의 곳이죠.
하얀 한복을 입히고 그 안에서 절을 시키고 명상을 시킵니다. 주문을 외우는 경우도 있구요. 어느 곳은 종이를 태우거나 종을 치는 등의 의식을 치릅니다.
만일 이 모든 것이 이상하게 느껴진다면 맨 앞의 상황으로 가서 내가 혼자 길을 걷고 있는데 2명중 한 명이 '도나 기에 대해 하세요' '길 좀 물을께요' '눈이 총명하시군요' 등의 뜬금 없는 이야기를 하면 야박스럽지만 훽하고 지나쳐 가면 됩니다.
어떻게 이렇게 잘 아냐구요? ㅋㅋ.. 개인적으로 호기심에 못 이겨서 한 세 번 정도 따라 간 적이 있었습니다. 한 번은 신림역 근처, 한 번은 행당동에서, 마지막 한 번은 신촌 근처에서 이 사람들은 과연 무엇 때문에 이러나 하는 호기심에 따라가서 설명도 듣고 제사도 지내고 절도 하고 그랬거든요. 얼마를 냈냐구요? 한 번은 1만원, 다른 두 번은 2만원씩 냈습니다. 그냥 혼자서 이런 글을 쓰기 위해서 취재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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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저깨비의 생각
Tracked from zizukabi's me2DAY 삭제도를 아십니까? 돈은 있으시고요? ㅡ.ㅡa;;;
2009/01/15 03:04 -
0611. 길거리 도인의 폐해
Tracked from 한님은 잡학편식(雜學偏識) 삭제오늘도 교보문고에서 영풍문고로 가는 길에 두 팀을 만났는데, 예전이랑 좀 다르더군요. 전에는 주로 지나가는 앞이나 옆에서 말을 걸었는데, 오늘은 두 번 모두 뒤쪽에서 팔을 홱 낚아챘습...
2009/01/15 10:54 -
않드로이드의 생각
Tracked from side4u's me2DAY 삭제따라간 적은 없지만 집에 찾아온 분들 문전박대 한 적은 많네요. 무서워요;ㅁ;
2009/01/15 11:25 -
도를 아십니까? ... " 아! 네~~ 저도 회원입니다. "
Tracked from 에세이, 그게 별거야 !! - by ZOOTY 삭제도를 아십니까? 호기심에 따라가면 라는 글을 읽고 저 역시 너무나 호기심이 강한 사람이라 관련 경험담을 적어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먼저 이 글의 목적은 좋은 방법이 아닐지는 모르지만 그들을 회피하는 방법을 알려드리기 위합니다. 정답이 아닐수도 있겠지만요 ... 때는 제가 고등학교 때 독서실을 다닐 무렵이였습니다. 우연이 1층에서 친구가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보고 호기심에 이야기를 같이 들었습니다. 무슨 이야기였냐 하면 우주에 관련된 이야기였..
2009/01/18 02: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