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 전환(또는 목표 변화, Goal Change)
조직 스폰지(또는 스폰지화, 조직 내 병목)
구도 평형(또는 상대 평균)
밑도 끝도, 그렇다고 정밀한 근거나 출처도 불분명 하지만 그만이 대화할 때 종종 쓰는 말이다.
이른 바 말장난용 용어다. 어디서 비슷한 이론이나 유추해볼만 근거가 있으면 독자 여러분이 알려주시면 더 고맙겠다. ^^; 어설프더라도 가볍게 읽어주시길.
사람들의 목표 수행하는 행동은 일관적이지 않다.
목적전환론을 사용할 때는 사용자들의 행동패턴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다.
좀 똑똑하다 싶은 기획자나 개발자들은 서비스나 제품을 만들 때 치밀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같은 걸 갖고 있는 거 같다.
예를 들어 사용자의 니즈(필요)에 의해 서비스가 나오고 사용자들의 니즈를 충족시키면 그 서비스는 성공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사람들은 자기가 목적한 대로 일관성을 갖고 행동하거나 생각하지 않는다.
포털 사이트에 메일을 체크하러 들어갔다가 뉴스를 보는 행위. 블로그를 검색하다가 눈에 띄는 제품을 우연히 발견하고 그 제품명으로 상품 검색을 하는 행위. 뉴스를 보고 있다가 우연찮게 주변에 있는 카툰을 보고 카툰을 보다가 댓글을 보고 댓글을 보다가 링크를 따라가서 토론방에서 추천을 누르는 행위 따위가 그 예다.
인터넷은 열려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목적한 행위만 하고 사용을 중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용자들의 이런 인지적 순간 착각, 이용 목적의 자연스런 전환, 행동의 복잡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사람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남들의 이런 목적전환을 목격하면 언뜻 이해하기 힘들지만 우린 종종 대화하다가 딴 길로 새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우연은 여전히 우리 생을 괴롭게도, 한편으로는 재미있게도 만든다.
조직 중간 관리자의 역할은 스폰지다.
조직 스폰지(또는 스폰지화, 조직 내 병목)론은 정말 거의 모든 조직을 설명하기 쉬운 말이다. 그래서 남의 조직이든 우리 조직이든 이 용어를 들어 이야기하면 많이 수긍한다.
조직 내 중간 관리자들 사이에서는 의사결정의 병목 현상이라거나 커뮤니케이션 포화, 의사결정의 지연 등이 어디가나 존재한다.
예를 들어 회장이 혁신안을 지시하면 중간 관리자가 이를 자기 편한대로 만들거나 축소하거나 왜곡해서 결국은 엉뚱한 결과로 만들 때가 있다. 아예 실행하지 않는 경우도 태반이다. 반대로 하급 직원들의 조직 내 혁신안을 올리면 중간 관리자는 의사결정자에게 자신이 유리한 방향으로만 이 혁신안을 왜곡시키거나 아예 임의로 차단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엄청난 흡수력을 보이는 조직내 스폰지에 깜짝 깜짝 놀라는 때가 한 두번이 아닐 것이다. ^^
즉 수직적인 구조의 조직에서 흔하게 발생하는 '혁신의 실종'이 바로 이 스폰지가 혁신안을 흡수해버렸기 때문이다. 가끔 이 스폰지를 쥐어짜는 일도 발생한다. 전사 목표가 정해졌다거나 조직이 위기 상황에 대처해야 하는 위급한 상황에서는 이 스폰지도 뭔가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쥐어짜면 흡수한 그대로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찔끔 한 두 방울 떨어지듯이 나오기도 한다.
좋은 의미의 스폰지는 의사 결정자와 하급 실행자 사이의 완중재 역할과 함께 게이트키핑 역할을 하는 경우다.
정작 대칭점에 있어야 할 대상들이 바뀔 때가 있다.
구도 평형, 또는 상대 평균은 인지적 평형 이론을 약간 차용한 것일 수도 있겠다. 쉽게 말하면 '제멋대로 편 나누기'가 비슷한 표현이지 않을까 싶다.
예를 들어 성현아가 타짜의 정마담 역을 둘러싼 프로덕션의 횡포에 대해 말했는데 강성연이 툭 튀어나오고 사람들은 이 사건을 성현아와 강성연의 감정 싸움으로만 기억한다. 또 그렇게 몰아가야 마음이 편하다. 개인과 조직의 대결은 구도상 어색해 보이나 보다.
종종 일반화의 오류에서도 가끔 보이는 경우도 있는데, 촛불집회 시위자들을 '개혁' 또는 '진보'로 규정짓고 촛불집회를 반대하면 '보수'나 '우익'이 되는 상황이 그런 경우다. 촛불집회의 발단은 소고기 문제였고 미국 소고기 수입 문제에 대한 반대 집회가 '촛불집회'라는 단어로 규정되고 이 집회 참가자들은 다시 대척점을 대통령이나 정부로 놓았다. 하지만 이 국면이 진행될수록 '진보'와 '보수'의 대결 양상으로 논란이 압축되어 표현되는 것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기계적 중립성이나 객관성에 길들여진 기성 언론에서 종종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이렇게 몰아가는 경향이 있다.
문제의 원인을 딴 곳에서 찾는 경우도 있다. 복잡한 원인으로 발생되는 한가지 사건, 예를 들어 음반 판매량이 줄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불법 다운로드, 또는 P2P 서비스가 문제라는 식의 논의 진행 과정에서도 나타난다. 이게 다 00 때문이야 라는 식의 원인과 결과에 대한 지나친 단순화 과정도 마찬가지다.
개인 블로거들이 기성 언론 기자나 기사를 비평하는 경우에도 종종 이런 구도 평형을 적용해 미디어 1.0과 미디어 2.0, 또는 올드 미디어와 1인 미디어의 대결이란 식으로 사건 자체를 일반화하려는 시도도 여기에 해당되지 않을까 싶다.
하여튼, 말은 만들기 나름이다. ^^;
조직 스폰지(또는 스폰지화, 조직 내 병목)
구도 평형(또는 상대 평균)
밑도 끝도, 그렇다고 정밀한 근거나 출처도 불분명 하지만 그만이 대화할 때 종종 쓰는 말이다.
이른 바 말장난용 용어다. 어디서 비슷한 이론이나 유추해볼만 근거가 있으면 독자 여러분이 알려주시면 더 고맙겠다. ^^; 어설프더라도 가볍게 읽어주시길.
사람들의 목표 수행하는 행동은 일관적이지 않다.
목적전환론을 사용할 때는 사용자들의 행동패턴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다.
좀 똑똑하다 싶은 기획자나 개발자들은 서비스나 제품을 만들 때 치밀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같은 걸 갖고 있는 거 같다.
예를 들어 사용자의 니즈(필요)에 의해 서비스가 나오고 사용자들의 니즈를 충족시키면 그 서비스는 성공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사람들은 자기가 목적한 대로 일관성을 갖고 행동하거나 생각하지 않는다.
포털 사이트에 메일을 체크하러 들어갔다가 뉴스를 보는 행위. 블로그를 검색하다가 눈에 띄는 제품을 우연히 발견하고 그 제품명으로 상품 검색을 하는 행위. 뉴스를 보고 있다가 우연찮게 주변에 있는 카툰을 보고 카툰을 보다가 댓글을 보고 댓글을 보다가 링크를 따라가서 토론방에서 추천을 누르는 행위 따위가 그 예다.
인터넷은 열려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목적한 행위만 하고 사용을 중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용자들의 이런 인지적 순간 착각, 이용 목적의 자연스런 전환, 행동의 복잡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사람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남들의 이런 목적전환을 목격하면 언뜻 이해하기 힘들지만 우린 종종 대화하다가 딴 길로 새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우연은 여전히 우리 생을 괴롭게도, 한편으로는 재미있게도 만든다.
조직 중간 관리자의 역할은 스폰지다.
조직 스폰지(또는 스폰지화, 조직 내 병목)론은 정말 거의 모든 조직을 설명하기 쉬운 말이다. 그래서 남의 조직이든 우리 조직이든 이 용어를 들어 이야기하면 많이 수긍한다.
조직 내 중간 관리자들 사이에서는 의사결정의 병목 현상이라거나 커뮤니케이션 포화, 의사결정의 지연 등이 어디가나 존재한다.
예를 들어 회장이 혁신안을 지시하면 중간 관리자가 이를 자기 편한대로 만들거나 축소하거나 왜곡해서 결국은 엉뚱한 결과로 만들 때가 있다. 아예 실행하지 않는 경우도 태반이다. 반대로 하급 직원들의 조직 내 혁신안을 올리면 중간 관리자는 의사결정자에게 자신이 유리한 방향으로만 이 혁신안을 왜곡시키거나 아예 임의로 차단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엄청난 흡수력을 보이는 조직내 스폰지에 깜짝 깜짝 놀라는 때가 한 두번이 아닐 것이다. ^^
즉 수직적인 구조의 조직에서 흔하게 발생하는 '혁신의 실종'이 바로 이 스폰지가 혁신안을 흡수해버렸기 때문이다. 가끔 이 스폰지를 쥐어짜는 일도 발생한다. 전사 목표가 정해졌다거나 조직이 위기 상황에 대처해야 하는 위급한 상황에서는 이 스폰지도 뭔가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쥐어짜면 흡수한 그대로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찔끔 한 두 방울 떨어지듯이 나오기도 한다.
좋은 의미의 스폰지는 의사 결정자와 하급 실행자 사이의 완중재 역할과 함께 게이트키핑 역할을 하는 경우다.
정작 대칭점에 있어야 할 대상들이 바뀔 때가 있다.
구도 평형, 또는 상대 평균은 인지적 평형 이론을 약간 차용한 것일 수도 있겠다. 쉽게 말하면 '제멋대로 편 나누기'가 비슷한 표현이지 않을까 싶다.
예를 들어 성현아가 타짜의 정마담 역을 둘러싼 프로덕션의 횡포에 대해 말했는데 강성연이 툭 튀어나오고 사람들은 이 사건을 성현아와 강성연의 감정 싸움으로만 기억한다. 또 그렇게 몰아가야 마음이 편하다. 개인과 조직의 대결은 구도상 어색해 보이나 보다.
종종 일반화의 오류에서도 가끔 보이는 경우도 있는데, 촛불집회 시위자들을 '개혁' 또는 '진보'로 규정짓고 촛불집회를 반대하면 '보수'나 '우익'이 되는 상황이 그런 경우다. 촛불집회의 발단은 소고기 문제였고 미국 소고기 수입 문제에 대한 반대 집회가 '촛불집회'라는 단어로 규정되고 이 집회 참가자들은 다시 대척점을 대통령이나 정부로 놓았다. 하지만 이 국면이 진행될수록 '진보'와 '보수'의 대결 양상으로 논란이 압축되어 표현되는 것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기계적 중립성이나 객관성에 길들여진 기성 언론에서 종종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이렇게 몰아가는 경향이 있다.
문제의 원인을 딴 곳에서 찾는 경우도 있다. 복잡한 원인으로 발생되는 한가지 사건, 예를 들어 음반 판매량이 줄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불법 다운로드, 또는 P2P 서비스가 문제라는 식의 논의 진행 과정에서도 나타난다. 이게 다 00 때문이야 라는 식의 원인과 결과에 대한 지나친 단순화 과정도 마찬가지다.
개인 블로거들이 기성 언론 기자나 기사를 비평하는 경우에도 종종 이런 구도 평형을 적용해 미디어 1.0과 미디어 2.0, 또는 올드 미디어와 1인 미디어의 대결이란 식으로 사건 자체를 일반화하려는 시도도 여기에 해당되지 않을까 싶다.
하여튼, 말은 만들기 나름이다. ^^;
2008/08/21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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