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 아니게 낯 간지러운 제목이지만 그냥 '이 사람'이 궁금했습니다.
어느 책에서 이 사람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는 여느 아이와 마찬가지였죠. 늘 '왜?' '이게 뭐야?'로 어머니를 귀찮게 했으니까요.
그의 아버지는 그가 두 살 때 사망하고 그는 열 살 때 영어와 연극 교수였던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미국으로 이주합니다. 열 살 소년이 막상 미국에 건너 올 때 할줄 아는 영어는 'Shoe(신발)' 한 마디였다네요.
"오늘 식탁에 좋은 음식이 차려져 있으면 맛있게 먹어라. 언제 또 먹을 수 있을지 모르니까."라는 말을 들을 만큼 결코 부유하지 않은 이민자 가정에서 자랐지만, 어머니에 의해 교육은 인생에 도전할 기회를 주며 아무도 빼앗아 갈 수 없는 것이라고 믿게 됩니다.
이민 초기엔 미국 화폐에 그려진 대통령의 얼굴들을 구분 못할 만큼 미국 생활에 익숙지 않았으나 산수 시험에선 늘 1등이었으며 단 3년 만에 이민자들을 위한 영어 반을 마치고 최우등생이 됩니다. 그래도 학생회장으로 당선되고 학교 테니스 선수로 활약하는 등 결코 공부벌레로만 머물지는 않았죠.
1994년, 그는 취미로 시작한 일을 친구와 함께 사업체를 차려 본격적으로 나서게 됩니다.
스탠포드 학생들을 위한 시스템이었던 이 서비스는 그의 학생 워크스테이션 컴퓨터인 '아케보노'와 그의 친구가 만든 검색 엔진인 '코니시키'에서 출발합니다.
하와이 출신의 전설적인 일본 스모 선수의 이름이었죠. 어쩌면 유색인종으로서의 자부심, 세계적인 아시아인이라는 자긍심 같은 것을 가슴에 품었겠죠. 1995년 학교 컴퓨터는 이 서비스에 대한 접속 폭주로 마비가 됩니다.
이 서비스가 사업화되어 처음으로 안착한 곳이 바로 실리콘 밸리의 넷스케이프 컴퓨터였죠.
짐작을 하셨겠지만 제가 다니고 있는 회사 '야후!'를 설립한 제리 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요즘 이런 저런 이야기로 시끄럽습니다. 정말 오만가지 상념으로 잠을 못 이룰 것만 같네요.
그는 지금의 구글이 그러고 있듯 기업공개 초기 대박 신화를 이어나가던 1999년쯤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나는 하루에 한 번 정도 우리 회사 주식 동향을 본다. 그러나 증시 마감 때에는 막상 내가 몇 주를 가지고 있는지조차 모른다. 이게 뭐 대수인가? 내가 주식을 많이 갖고 있으면 돈을 많이 번 것이고 그러면 다시 또 세금을 많이 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젊기 때문에 돈이 필요 없다. 결국 모두 종이 위에 쓰여진 것들이 아닌가?"
지금도 이런 식으로 말을 할런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나라에서 초기 기업공개로 대박 신화를 일구어냈던 닷컴 1세대들 다수가 횡령 사기 등으로 옥고를 치루거나 사내외 정치 싸움으로 자리를 옮겨다니는 것을 현장에서 지켜봐왔고 그의 현재를 보고 있는 그만에게 매우 명쾌하게 들립니다.
마음 고생이 심할 그에게 저 멀리 지사의 말단 사원이 응원을 보냅니다. 홧팅~!
덧, 회장님보다 우리식대로 형님으로 불러도 되나요? ㅋㅋ 2MB에게 노홍철도 형님이라 했다는데..^^'
어느 책에서 이 사람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밤을 잊은 그대에게'. 많은 사람들이 밤새워 여기저기 쏘다니느라 수면장애까지 걸렸다고 호소하는, 리넨 티셔츠에 카키색 바지, 피자와 타코 벨을 즐겨 먹고 4달러 하는 월남 국수를 좋아하며 아직도 3등석으로 비행기 여행을 즐기는 젊은 친구 때문이라고.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친근한 젊은이 같은.....- 이윤선 <제5의 문명 발상지 실리콘밸리> 자유지성사, 20001968년에 태어난 이 사람. 2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여느 아이와 마찬가지였죠. 늘 '왜?' '이게 뭐야?'로 어머니를 귀찮게 했으니까요.
그의 아버지는 그가 두 살 때 사망하고 그는 열 살 때 영어와 연극 교수였던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미국으로 이주합니다. 열 살 소년이 막상 미국에 건너 올 때 할줄 아는 영어는 'Shoe(신발)' 한 마디였다네요.
"오늘 식탁에 좋은 음식이 차려져 있으면 맛있게 먹어라. 언제 또 먹을 수 있을지 모르니까."라는 말을 들을 만큼 결코 부유하지 않은 이민자 가정에서 자랐지만, 어머니에 의해 교육은 인생에 도전할 기회를 주며 아무도 빼앗아 갈 수 없는 것이라고 믿게 됩니다.
이민 초기엔 미국 화폐에 그려진 대통령의 얼굴들을 구분 못할 만큼 미국 생활에 익숙지 않았으나 산수 시험에선 늘 1등이었으며 단 3년 만에 이민자들을 위한 영어 반을 마치고 최우등생이 됩니다. 그래도 학생회장으로 당선되고 학교 테니스 선수로 활약하는 등 결코 공부벌레로만 머물지는 않았죠.
1994년, 그는 취미로 시작한 일을 친구와 함께 사업체를 차려 본격적으로 나서게 됩니다.
스탠포드 학생들을 위한 시스템이었던 이 서비스는 그의 학생 워크스테이션 컴퓨터인 '아케보노'와 그의 친구가 만든 검색 엔진인 '코니시키'에서 출발합니다.
하와이 출신의 전설적인 일본 스모 선수의 이름이었죠. 어쩌면 유색인종으로서의 자부심, 세계적인 아시아인이라는 자긍심 같은 것을 가슴에 품었겠죠. 1995년 학교 컴퓨터는 이 서비스에 대한 접속 폭주로 마비가 됩니다.
이 서비스가 사업화되어 처음으로 안착한 곳이 바로 실리콘 밸리의 넷스케이프 컴퓨터였죠.
짐작을 하셨겠지만 제가 다니고 있는 회사 '야후!'를 설립한 제리 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요즘 이런 저런 이야기로 시끄럽습니다. 정말 오만가지 상념으로 잠을 못 이룰 것만 같네요.
그는 지금의 구글이 그러고 있듯 기업공개 초기 대박 신화를 이어나가던 1999년쯤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나는 하루에 한 번 정도 우리 회사 주식 동향을 본다. 그러나 증시 마감 때에는 막상 내가 몇 주를 가지고 있는지조차 모른다. 이게 뭐 대수인가? 내가 주식을 많이 갖고 있으면 돈을 많이 번 것이고 그러면 다시 또 세금을 많이 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젊기 때문에 돈이 필요 없다. 결국 모두 종이 위에 쓰여진 것들이 아닌가?"
지금도 이런 식으로 말을 할런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나라에서 초기 기업공개로 대박 신화를 일구어냈던 닷컴 1세대들 다수가 횡령 사기 등으로 옥고를 치루거나 사내외 정치 싸움으로 자리를 옮겨다니는 것을 현장에서 지켜봐왔고 그의 현재를 보고 있는 그만에게 매우 명쾌하게 들립니다.
마음 고생이 심할 그에게 저 멀리 지사의 말단 사원이 응원을 보냅니다. 홧팅~!
덧, 회장님보다 우리식대로 형님으로 불러도 되나요? ㅋㅋ 2MB에게 노홍철도 형님이라 했다는데..^^'
2008/02/13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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