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엄이 시작된 지난 10년은 산업사회를 정리하는 기간이었다면 향후 10년은 산업사회 이후의 새로운 사회를 준비하는 기간이 될 것이다."
굳이 정보사회라는 용어를 꺼내지 않아도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다양한 형태로 변이될 것이라고 봅니다. 며칠 전 회사에서 향후 미래에 대한 작은 워크숍이 있었는데요. 제가 발표한 내용 가운데 두 장을 꺼내어 소개합니다.
우리의 피부에도 와닿듯이 환경은 계속 변하고 있는데 어떤 식으로 변하고 있는 것일까요? 시장 환경은 물론 인간의 물질적, 정신적, 사회적 환경 자체가 새로운 차원으로 변하고 있다는 거창한 이야기를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이 종말을 맞이 해야 새로운 차원의 문이 열리듯이 시장 역시 기존의 강한 세력이나 환경이 유지되고 있는 이상 새로운 차원의 문은 열리지 않습니다.
전기차 실용화가 이미 40년이 넘었음에도 석유 체제의 산업 구조로 인해 전기 산업은 지지부진했다는 점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새로운 차원의 문이 열리고 있는 지금은 몇 가지 종말을 가늠하는 현상이 보입니다. 바로 산업사회의 가치가 종말을 맞게 되는 것이며 대량 표준화, 매스미디어가 종말을 맞게 되는 것입니다. 획일적이고 보편적인 가치가 공격을 받고 인간의 능력으로 모든 지식을 수용할 수 없음을 깨달으면서 암기력을 천재의 기준으로 삼았던 전통적인 가치 역시 흔들리고 있는 것이지요.
무엇보다도 산업사회가 만들어 둔 '대량 생산을 위한 획일화되고 표준화된 시스템'의 대명사인 '컨베이어벨트 시스템'은 이제 인간들에게 더이상의 감동을 주지 못합니다. 자기 자리에서 제 역할이나 잘 하라는 국가와 사회의 명령은 지극히 일방적이었으며 폭력적이었습니다.
지금은 그런 명령으로 인해 개인들이 얼마나 짓밟히고 있는지를 시민들이 깨닫고 있는 상황에 국가 권력의 마지막 수단인 '법'으로 산업사회의 마지막 가치를 근근히 지키고 있는 상황이라고 봐야겠죠.
새로운 리더십은 아마도 '컨베이어벨트'의 거부로부터 시작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는 사회적인 변화 흐름의 중요한 논점이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인터넷, 특히 인터넷 미디어 시장은 올해 어떤 키워드를 중심으로 움직이게 될까요? 많은 분들이 많은 전망을 내놓겠지만 제가 이 시장에서 바라보는 핵심적인 흐름은 다음의 다섯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인터넷 미디어 시장이라 함은 포털을 비롯해 기존의 온라인으로 진출했거나 진출하려는 모든 매체사, 그리고 블로그와 소셜 미디어 플랫폼 회사들까지 포괄하는 개념입니다.
◆ Globalization : 의미 있는 규모화를 위한 국내외 미디어의 생존법
세계화는 곧 지역화를 의미합니다. 산업사회에서 세계화가 주목받았던 이유는 내수 시장의 포화상태임을 역으로 반증한다고 봐야 합니다. 따라서 이러한 세계화 추세가 신자유주의의 무한경쟁 시대를 열었던 것이고 이 끔직한 세계화는 전쟁과 기아, 빈부격차를 낳기도 하였지요.
하지만 반대로 신자유주의는 기본적인 자본주의의 확산과 민주주의의 확산이나 관심 확대로 이어진 측면도 있어서 역사를 완전히 부정하기도 힘든 측면이 있습니다.
어쨌든 이런 세계화의 추세는 드디어 마지막 영역, 문화산업보다도 더 세계화에 뒤쳐져 있는 미디어 매체 영역에서 언어장벽 해소를 위한 다양한 움직임과 함께 주목받기 시작할 것입니다. 트위터 바람과 페이스북의 바람이 그것을 이야기해주고 있으며 국내 네이버의 해외 진출 역시 이런 관점에서 움직여야 할 것입니다.
세계화의 다른 말은 지역화입니다. 해당 국가에 토착화되고 지역화 되지 않는다면 플랫폼의 세계화는 요원한 길이 될 것입니다. 아이폰이나 노키아 안드로이드 등 모바일 영역에서의 세계화 역시 우리가 편입되거나 우리가 세계로 뻗어나가면서 세계 단일 시장의 흐름은 당분간 유지된다고 봐야 하겠습니다.
◆ Open Standard : 개방형 플랫폼 활성화 및 매시업 플랫폼의 진화
지난 2년 동안 지도 플랫폼을 열어놓거나 몇명 오픈소스 프로젝트와 오픈 플랫폼의 진행을 지켜보면서 한쪽에서는 "우리나라에서는 오픈 플랫폼을 좋아하지 않는다. 시장이 전혀 반응하지 않는다."라는 자괴감 섞인 푸념을 들어왔습니다. 기가막히게도 이 오픈 플랫폼은 상호 호환성을 담보로 특정한 세력이나 영역에서의 표준화가 일정부분 진행되었어야 했습니다.
이러한 표준화 논의를 배제한 채 각 사업주체들이 자기들 멋대로 만들어 놓고 자신들의 플랫폼을 외부 개발자들이 쓰지 않는다고 하소연하는 꼴입니다. 그렇다고 어떤 것을 표준으로 만들고 지키고 따를 것이냐 하는 문제는 상당히 지난하고 정치적으로도 피곤한 문제인 것도 사실입니다.
결국 오픈 스탠다드, 시장이 선택하는 사실상의 표준을 따르거나 개방된 구조에서 자연스런 흐름으로 개방형 표준을 차차 만들어가는 데까지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아마도 2010년은 이러한 흐름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고 주목받는 계기가 만들어 질 것입니다. 새롭고 다양한 개방형 플랫폼의 시대가 개화되는 시점이란 점을 감안하면 그동안 시간이 필요했단 것을 인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개방형 표준화의 주도권을 누가 잡느냐는 사실 제 관심 영역 밖입니다. 이 플랫폼과 표준의 영역은 이미 독과점 형태를 띄고 있으며 상당부분 시장 지배자들에게 종속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떠오르겠지만 오늘은 구체적인 언급은 피하겠습니다.
◆ Cost Cut : 성장성 정체에 따른 비용절감 압박 전방위 확산
아마도 올해는 인터넷 미디어 시장에 있어서 가장 잔인하면서도 가장 기회가 많은 해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바로 대대적인 구조조정과 퇴출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지요.
설명을 하기 전에 인상적인 차트를 하나 소개하지요.
CHART OF THE DAY: The End Of Newspapers
미국 신문 시장의 고용 변화 추이 그래프입니다. 정권이나 정치적, 사회적인 탄압에 의한 것이 아닌 시장에 의한 자연스런 퇴출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신문산업의 빙하기가 닥쳤다고 봐야 합니다. 매스미디어는 산업사회가 만든 스타라는 점을 기억해두시기 바랍니다.
물론 정보 수용자들의 24시간을 나눠먹어야 하는 '미디어 패러독스'에 의한 이직이나 전직 기회가 늘고 있기 때문에 신문산업의 몰락이 이어지는 것이지, 미디어나 저널리즘, 또는 뉴스산업이 몰락하고 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을 통한 또 다른 차원의 소식 전달 매체들이 생겨나고 있을 따름이지요. 산업사회의 종말과 함께 매스미디어 종사자들은 또 다른 차원으로 이동해가고 있는 것입니다.
굳이 미국의 예를 들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국내에서는 이미 신문 종사자들의 이직 러시는 벌써부터 있어왔구요. 신문산업은 겉으로야 괜찮다고 손사래를 치지만 전반적으로 환경이 열악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로 인한 신규 산업으로의 진출은 더디고 힘에 부치겠죠. 그렇다고 기자들이나 글쓰는 사람들, 또는 소식 전달하는 사람들이 줄고 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거든요.
이미 우리나라 인터넷신문을 비롯한 언론인 수는 꾸준히 늘고 있으며 매체수는 당분간 폭증할 것으로 봅니다. 딱히 이런 흐름의 범주에 블로그를 포함시키냐 마느냐를 고민할 필요가 없겠죠. 블로그는 새로운 차원의 매체로 자리를 잡은 상태니까요.
문제는 이러한 현상의 원인은 곧 '비용절감'이라는 경영상의 요구 때문이라는 점인데요. 신문이나 방송, 또는 케이블, 잡지 등 미디어 산업 전반에 걸쳐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한 비용 절감 추세가 포털이나 IPTV, DMB 등 뉴미디어에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점입니다. 콘텐츠 생산과 편집 유통에 있어서 절대 강자인 포털 역시 비용 절감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과연 어디서 어떻게 줄이게 될지 조금은 걱정이 되는군요. 비용 절감과 비용 효율화에 대한 화두로 인해 대행업과 파견 등 미디어 종사자들의 근무 환경은 점점 열악해질 것으로 봅니다.
또한 대형 미디어 업체들이 비용 절감 속에서도 새로운 뉴미디어 진출을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 때문에 고용 시장은 전혀 예측하기 힘든 상황으로 발전할 것 같습니다. 방송 영상이 당장 눈에 띄지만 결국은 다시 인터넷 플랫폼과 기술력에 의존하는 상황으로 인해 미디어 종사자들에게 멀티형 콘텐츠 제작에 대한 요구가 다시 증가할 것입니다.
◆ Community : 소셜미디어 부각을 통한 온/오프 커뮤니티의 재발견
2005년에서 2009년까지는 웹 2.0을 비롯한 플랫폼 쪽의 개방화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2010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소셜미디어의 사회적 가치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질 것입니다. 이는 곧 커뮤니티의 부활을 의미한다고 저는 해석하고 있습니다.
최근 활발한 교류를 하고 있는 트위터는 새로운 흐름에 관심이 많은 사회적 영향력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커뮤니케이션 도구로 사용되고 있으며 점차 사회적인 영향력을 가진 커뮤니티들이 온라인에 둥지를 틀거나 블로그를 직접 운영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는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아우르는 매머드급 여론 주도층의 등장을 의미하며 이는 세력간 다툼을 준비하기 위한 규모의 경쟁에 치달을 것입니다. 올해는 특히나 서울시장 등 지방 선거가 있으며 축구나 동계올림픽, 아시안게임 등 대형 이벤트들이 세력간 규합을 원할히 해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다른 측면으로 미디어들이 이제는 일방향 메시지 전달(매스미디어)이나 단순한 메시지 유통(포털)에만 초점을 맞췄던 것을 자신들을 중심으로 한 커뮤니티 활성화에 본격적으로 나설 것이기 때문에 커뮤니티의 부활이란 말을 쓴 것입니다.
커뮤니티는 충성도가 높은 고객이라는 점, 활동성이 높고 사회적이고 인간적인 관계로 이어져 있다는 점, 그리고 한번 둥지를 틀면 다른 곳으로 이전하기 어렵고 팬으로서 입소문을 내주는 전도사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기업이든 인터넷 매체든 이러한 커뮤니티 형성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특정 관심사나 특정인을 지지하는 등의 정치사회적인 활동을 비롯해 최근 아이폰 열풍 처럼 자신이 신뢰하고 자신이 확신하는 바를 온라인으로 강하게 주장하려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지고 이에 대한 반발 역시 커지면서 온라인은 그야 말로 소셜미디어를 두고 치열한 이슈 주도권 경쟁이 벌어질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커뮤니티 형성은 자연발생적이며 다음 아고라 청원 처럼 분산되고 비상설화된 커뮤니티에도 관심이 집중될 것입니다.
◆ Reengineering : 사이트 중심에서 캐릭터 중심 네트워크 구조로 재설계 바람
이 말은 오래 전부터 제가 떠들던 말입니다. 인터넷이 재설계되고 있다는 느낌 때문입니다.
기존의 인터넷이 사이트, 즉 URL 중심이었으며 사람들이 방문해서 활동해야 하는 공공재 영역이고 광장이었다면 지금의 인터넷은 개인중심적이며 개인을 중심으로 상호 연결되어 있는 상태를 보여주는 것으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특정 생산자가 만들어둔 지식과 정보를 찾아다녀야 했다면 새로운 차원의 인터넷은 개인에게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고 정보가 저절로 취합되는 형태로 발전할 것입니다. 지난 10년 동안의 인터넷은 어쩌면 산업사회의 끝자락을 반영한 채로 발전하고 있었습니다. 이전의 인터넷이 사람들을 마을 회관에 모이게 하는 작용을 했다면 이후의 인터넷은 그 사람이 있는 곳에 마을회관의 모습을 볼 수 있는 CCTV 화면을 보여주는 모니터를 설치해주는 모양새가 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적극적인 관여보다는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관여로 인해 시간과 관심, 주의에 대한 여유를 확보하고 더 많은 정보를 훑어보기를 원할 것입니다. 물론 특정한 시점이나 특정한 요구가 생기게 되면 동시다발적으로, 또는 집중화된 검색과 컨텐츠 생산, 메시징,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자신의 관심사를 표출하게 될 것입니다. 이는 메일로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던 시절을 지나 행동하는 네티즌과 반응하는 네티즌, 그리고 관람하는 네티즌의 영역 구분을 모호하게 만들 것입니다.
이런 추세로 인해 페이스북이 메인 페이지에 뉴스를 배치하지 않아도 더 많은 커뮤니케이션이 일어나고, 구글(한국 빼고)이 메인 페이지에 억지로 편집된 화면을 배치하지 않아도 세계 최대의 방문자를 갖출 수 있었고, 야후닷컴이 편집된 화면을 최소화하고 개인화 모듈(개인 애플리케이션, PA)을 배치하며, 트위터의 사이트 방문자가 고작 30%에 나머지는 API 연동을 통한 사용이 늘고 있으며, 유튜브가 메인페이지에 방문자를 감지하고 알아서 컨텐츠를 배치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특정한 사이트로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보통 PV로 측정되는)이 가치 척도가 아니라 개인(또는 다중적인 캐릭터 하나하나)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차원의 인터넷 구조로 변화되고 있음을 인지해야 합니다. 모바일 인터넷이 본격적으로 펼쳐지면 이 이야기의 뜻이 좀더 분명해질 것으로 봅니다.
2008/04/30 페이지 뷰를 안락사시켜라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 아마도 지금 당장 피부로 와닿지 않는 분들이 더 많을 것입니다. 그런 분들은 '현실은 달라'와 같은 이야기를 하겠죠. 대답은 이겁니다. '명퇴 5년 남겨두신 분이라면 관심 끄고 사셔도 됩니다. 단 5년 이상 앞으로 이 바닥에 더 있으려면 신경 곤두세워서 살아남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