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은 왜 편협해지나

Column Ring 2009/08/18 13:36 Posted by 그만
지난 연말부터 '펀드런'이라는 용어를 접하게 되었다. 경제용어들이 의외로 재미있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펀드런이란 펀드 수익률이 급락하면서 펀드 가입자들이 인출하기 위해 객장으로 뛰어가는 현상을 보면서 만든 것으로 펀드런 현상은 펀드가 부실해질 때는 물론 요즘처럼 펀드 수익률이 급락했다가 원위치로 회복했을 때 한 번 더 일어난다. 원금을 회복하면서 안정적인 투자처로 재산을 분산하거나 교체하기 위함이다.

문제는 펀드 가입자들이 이렇게 몰려다니다보니 공격적이고 장기적 펀드 운영보다는 기계적이고 안정적인 펀드 상품이 양산되고 돈이 몰리는 곳만 돈이 몰리고 돈이 몰리지 않는 곳은 투기 상황이 벌어질 정도로 투자금이 부실해지는 현상이 발생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악순환이다.

누구나 즐거운 게임이 아니라 누구든 괴로워지는 게이머가 되어 남을 더 괴롭혀야 자기가 덜 괴로운 상황이 되는 것이다.

'레밍스 효과'라는 용어도 있다. 사람들이 집단군중심리에 의해 주식시장이 오른다 싶으면 주식시장으로 쏠리고 특정 종목이 수익률이 좋다고 소문이 나면 다시 그쪽으로 돈이 몰리는 현상이다. 이렇게 유동자금이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모습을 제 3자의 시각으로 보면 레밍스라는 군집생활을 하는 작은 동물들이 떼지어 다니는 모양이 떠오르는 것이다.

누군가를 앞세워 떼지어 몰려다니면서 나타나는 부작용은 역시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기업 자금 흐름에 장애를 준다. 더구나 이렇게 소문과 뉴스에 몰려다니는 사람들을 겨냥해 과대 과장 공시를 한다거나 허위 공시를 통해 주가를 일부러 띄우기도 하고 역정보를 통해 주가를 일부러 낮추는 사기극이 빈번히 일어난다. 이게 과연 누구 잘못인가.

레밍스 처럼 누군가를 쫓아 몰려다니는 쏠림 현상

온라인은 '편향적'이고 '편협'하며 '사소'한 것에 지나치게 몰입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모습을 우리는 직접 눈으로 목격하고 자신도 그러한 부작용의 희생자 내지는 가해자가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다보니 온라인에서 보여주는 '집단지성'에 대한 믿음보다는 이슈 쏠림현상에 의한 부작용이 더욱 부각되어 느껴진다.

이런 부작용의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인가.

미디어 플랫폼의 근본적인 특성 차이다. <미디어 2.0 : 미디어 플랫폼의 진화>라는 책에서도 주장했듯이 정보를 수용하는 양태가 오프라인에서는 밀어내는 정보에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인다. 반대로 온라인에서는 쌓아둔 정보를 능동적으로 찾아내 자기 확신을 강화한다.

손쉽게 생각해보면, 황우석 사태, 디워 논란, 신정아 논란, 광우병 사태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이 모든 사건에서 우리는 미디어의 아젠다세팅(의제설정)에 기꺼이 동의했지만 그 진행 상황에 동의하진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할 수 있다.

사람들은 황우석 사태 때 놀라운 지식의 공유와 함께 넘쳐나는 의견과 맞닥뜨렸고 일부는 한쪽으로 치우쳐서 상대방을 공격하고 나머지는 이 공방 사이에서 쌓여가는 정보를 소비하기에 이르른다. 행동하는 사용자들은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었고 이들은 적극적으로 쌓여 있는 정보를 찾아 재생산하고 다시 이를 자신의 의견을 공고히 하는 근거로 삼게 된다.

광우병 사태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단순히 '논란'에 그치지 않고 거리로 나와 행동을 보여준다. 이 때 오프라인에 나와 '시위'를 한다는 행동은 상당한 '자신감'과 '자기 확신'이 필요한 행동이다. 하지만 과연 그 전부터 이들에게 '광우병은 무서운 병이다'라는 인식이 있었을까? 아니다. 이들은 대부분 미디어의 아젠다세팅과 함께 정부의 정보 제공에 초기에 노출되었고 중간에 다양한 의견 제시를 관망했다.

오프라인 미디어는 객관성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고 온라인은 자기 확신을 위한 정보를 찾게 해준다

하지만 사람들은 관망하는데서 그치지 않았다. 저마다 적극적인 의사표시를 하고 남들에게 자기 확신을 줄수 있을 정도의 엄청난 양의 정보들을 쌓았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을 공고하게 받쳐줄 근거와 지식과 정보를 획득하는 데 전혀 힘이 들지 않았다. 그저 온라인에서 찾아서 읽고 남들과 공유하고 자신의 의견을 첨부하면 되었다. 네트워크 효과는 극대화되었고 사람들은 '자기 확신'에 가득 찼으며 이는 오프라인 행동으로 이어진다.

그럼 이렇게 쏠림 현상을 놔두어야만 할까? 사람들은 남들의 주장에는 귀 기울이려 하지 않고 디지털로 기록된 발언과 글과 영상에서 꼬투리를 잡아 맹공격하는 자료로 삼는 것을 놔둬야 할까. 이쯤에서 민주주의와 사회를 좀먹는 패거리 의식, 엘리트주의가 싹트기 시작한다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무슨 말만 하면 욕먹는 모 논객이 '지적 수준'이나 '자격' 등의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하는 것도 봐주어야 한다. 불편하지만 남들의 잘못된 것처럼 보이는 행동을 봐주어야 내 행동도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딜레마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왜 나는 상대를 봐주는데 상대는 나를 봐주지 않는가. 정보의 불평등을 야기하는 권력의 불평등에 대한 견제가 없다. 온라인은 끊임없이 논란과 논쟁을 산더미 처럼 쏟아내지만 정작 '실질 권력'은 이런 정보를 획득하지 않는다.

오프라인과 온라인 미디어의 영향력 차이는 여기에서 확연하게 차이가 나기 시작한다. 영향력 크기의 차이라기보다 영향력의 온도 차이라고 불러야 하겠다.

오프라인 미디어는 정보 수용에 있어서 수동적인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객관적이라는 환상을 심어준다. 이것은 오프라인 미디어가 역사적으로 만들어 놓은 객관성과 종합성의 결과물이다. 반면 온라인 미디어는 생산자와 수용자가 구분되지도 않고 서로의 영향력의 저울이 수평으로 맞춰질 리 없는 상태다. 사람들은 자신을 중심으로 객관성을 확보하고 자신의 의견에 확신을 심어줄 정보를 능동적으로 재조합하거나 자신의 의견과 같은 성향을 보이는 매체나 타 이용자(또는 블로거)에게 동감을 표시하며 네트워크 효과를 배가시킨다.

정보의 흐름 자체가 플랫폼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으므로 미디어 플랫폼의 진화에 따라 여론과 사회적 논란의 진행 상황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고통스러워진다. 너무나 편협한 시각(적어도 내가 보기에)을 봐야 하기 때문이고 자신의 의견에 반대되는 의견에 적극적으로, 또는 묵시적으로 무시하거나 공개적으로 반대의사를 표시하며 공방을 펼쳐야 하기 때문이다.

극단적 진영논리가 판치는 온라인, 잠시 쉬어가는 여유도 필요하다

사회적 아이러니는 양 극단은 서로 어느 정도 정비된 이론적, 논리적 무장을 한 상태라는 점이다. 따라서 서로 상대방에게 논리적 설득을 하기보다 상대방의 잘못된 점만을 물고 늘어지고 이런 모습이 다시 '편협함'으로 비쳐져 꼬투리 잡히는 양상을 보인다. 이래가지고서는 토론이란 것 자체가 의미가 없을 수 있다. 서로에게 인정할만한 논리가 있어도 상대방이기 때문에 절대 인정해주지 않는 진영 논리에 빠져 버렸기 때문이다.

내가 온라인의 집단지성을 신봉하면서도 자칫 진영논리에 빠져 허우적 거릴까봐 쉬엄쉬엄 가는 이유는 이런 미디어 플랫폼의 변화에 이은 사회적 갈등구조 고착화를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펀드런 현상에 뛰어들기보다 관찰하고 레밍스 처럼 몰려다니는데 동참하기보다 관망하며 자기 주장을 확대 재생산하기보다 남의 의견을 경청하고 다방면의 책을 탐독해야 '정보 몰입'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잠시 멈춰서 모니터를 벗어난 세상을 주목해봐야 한다. 모니터 속 세상에서 내가 칼을 들고 다니며 남들 위에 군림할 수 있을지 몰라도 모니터 밖 세상에서는 이웃과 서로 어깨동무하고 술 한잔 걸치고 싶은 친구들이 근처에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온라인에서 자아 증폭 현상으로 인해 서로 다른 의견을 갖고 부딪히더라도 오프라인 세상에서 그는 의외로 정감 넘치는 이웃이고 친구일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에는 '가학 충동'에서 약간이나마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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