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자경단, 어디까지가 정의일까 이글에서 그만은 이렇게 설명했다.
모종의 잘못을 한 특정인이나 특정 대상에 대해 사이버상에서 신원을 밝혀내고 모욕과 집단적인 언어 폭력을 무자비하게 행사하는 모습으로 연상되는 사이버 자경단은 이제 거의 '개똥녀 사건'의 아류작 처럼 들린다.
하지만 같은 사건이라도 사람들은 비슷하지만 다른 식으로 반응하게 마련이고 나중에 이어지는 후속 처리나 상황 역시 다른 식의 풀이가 이어진다. 자경단이란 처음부터 비이성적이고 폭력적인 성향을 갖지 않는다.
처음에는 '불의'와 '비상식', 또는 '비윤리' 등 사소하거나 감춰져 있는 진실에 대해 '분노'와 '비판', 그리고 '비난'을 퍼부음으로써 사회 정의를 지키고자 하는 목적을 달성하고자 한다. 하지만 나중에 그 정도가 지나치게 되면 근거 없는 폭력과 강압과 강제가 난무하게 되고 이것은 결국 파괴적인 면을 부각하는 '사이버 반달리즘(파괴주의)'의 영역에 속하게 된다.
아예 처음부터 비이성적이고 비상식적이며 근거도 희박하거나 없는 상태에서 특정인을 궁지로 몰아 넣는 '마녀 사냥'과는 질적인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둘다 '확신범'이라는 점은 같지만 처음 참여자의 참여 근거가 최소한의 보편적 상식이라는 점에서 마녀사냥과 구별해 사이버 자경단이란 이름을 붙이는 것이다.
어쩌면 사람들에게 이번 '루저녀' 사건은 '개똥녀' 사건 처럼 비쳐질 수도 있겠다. 진행상황은 비슷해보이기도 하고 사람들의 대응방식이나 의식의 흐름 역시 비슷한 양상을 보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사이버 자경단을 언급하면서 사실 옆으로 비껴놓았던 사건 하나가 있었다. '된장녀' 사례였다. 이 사례를 분명히 사이버 자경단의 사례 속에 포함시키기 힘든 차이가 있었다. 바로 미디어의 적극적인 초기 개입이 그것이다.
된장녀를 기억하는가. 이 단어 역시 인터넷 신조어로 위키백과의 한 표제어로 당당하게 올라와 있는 말이다. 여기서 어원을 보면 이렇다.
된장녀 논란의 본격적 시작은 2005년 경향신문의 주간지 주간경향에 스타벅스 커피 전문점에 빠진 2,30대 여성들에 대한 특집 기사가 실리고 나서부터이다. 초기 된장녀 논쟁에는 수입을 상회하는 명품 선호 여성들에게 국한되어 이 용어가 사용되었지만, 점차 여성이라는 이유로 보호받고 배려받아야 한다는 입장을 악용해 남성들에게 과도하게 의지하며 살려고 하는 여성을 지칭하는 통칭명으로 용례가 확장되었다.여기서부터 묘한 느낌이 들기 시작할 것이다. 일단 대상에 대한 무작위성과 과도한 일반화, 무리한 세대간 구분 등이 그것이다. 트렌드 기사들이 종종 X세대니 Y세대니, 요즘들어서는 88만원 세대니 하면서 동시대를 살아왔던 많은 사람들을 세대로 묶어 몰개성화하는 것까지는 그렇다 쳐도 특성을 특성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비난하기 위해 범주화'하는 우를 발휘하게 된다는 점이 문제라는 것이다.
이는 사람들의 이중성과 맞닿아 있다. 남자라면 군대를 가기 싫어하지만 가고 나면(제대하고 나면) 군대의 추억으로 산다. 군대를 편하게 갈 수 있다면 어떤 식으로든 그렇게 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남들이 실제로 그렇게 편하게 다녀왔다면 곱게 보이지 않는다. 면제는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권력층 자제들의 군대 면제율과 군복무에 대한 일반인의 이중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자조적인 말로 '신의 아들'이니 '장군의 아들'이니 하면서 부러워 하는 대상을 비난한다.
군삼녀를 기억하는가.
한 방송에서 길거리 인터뷰 중 등장한 젊은 여성이 남성들의 군복무에 대해 '2년은 너무 잛고요. 3년이면 좋을 것 같아요'라고 말하고 '나라 지키려고 군대가는 건데 18개월 해서 뭘 배우겠어요'라고 하는 장면이 나오면서 남성들의 분노를 자극한 사건이었다.
이런 원초적인 컴플렉스를 자극하는 말은 외모는 물론 신체 조건, 지적 능력, 부의 수준, 출신 지역, 종교, 학벌과 대인관계 범위까지 다양하게 포진돼 있다.
서울대 중심의 학벌 위주 사회를 비판하면서도 너도나도 내 자식은 반드시 서울대를 집어 넣어야 직성이 풀리고야 말고 반이든 어디든 경쟁자를 짓밟아서라도 1등이면 세상의 모든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학벌 만능 사회는 또 어떠한가.
'서울대 정도는 나와줘야 지식 수준이 맞지 않겠어요?'라고 누군가 발언한다면 당연히 비난받겠지만 어쩌면 이 말을 한 당사자는 진짜로 서울대 이상의 학력을 요구하고 있을지 모른다. 우리 사회의 잘 나간다는 직장에서 사람들을 뽑는 기준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키 작은 사람을 패배자로 여기는 루저녀와 쌍으로 등장하는 돈이 없으면 사랑도 할 수 없다는 발언 역시 어떠한가.
우리 자식은 부잣집, 돈 많은 집 재벌가로 보내면서 사모님 소리 듣게 하고 싶지만 남이 먼저 꿰찬 재벌가 아내 자리에는 뒷담화가 넘실대지 않는가. 개그 콘서트의 행복전도사가 우스개 소리로 말하듯 '표정들이 왜 그래요. 마치 매월 월급 받으면서 그마저도 꼬박꼬박 카드사에 갖다 바치는 사람 처럼'라는 말에 우린 씁쓸하게 '아닌 듯' 웃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미디어 흥행 공식, 대중의 컴플렉스를 자극하라.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런 단상들 너머에 매스미디어가 노리는 '흥행 공식'이 자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IMF 이후에 먹고 사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느낌과 아무도 우리를 보호해주지 못할 것이란 불안감이 만들어 낸 절박함을 미디어는 또 어떻게 자극했는가. 10억이란 막연한 돈에 대한 동경과 '부자 아빠'여야 한다는 저열하고 맹목적인 자본주의 사고의 끝에 우리는 남을 배려하지 않고 남의 컴플렉스를 후벼파는 '독한' 설정으로 연신 소수의 승리자와 절대다수의 패배자들을 양산하고 있지 않은가.
이를 미디어들이 이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당하고, 거부하면서 끌려다닌다. 미디어 흥행 공식은 그렇게 대중의 컴플렉스를 자극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정체 불명의 엄친아(엄마 친구 아들)를 등장시켜 컴플렉스를 적당히 자극시킨다. 엄친아들 사이에 멋지고 별볼일 없는 돈키호테를 등장시켜 멋진 여인들을 낚아 채는 장면은 통쾌하지만 사람들에게 '허구는 허구일 뿐'이라는 감동만 선사할 뿐이다.
미디어는 끊임 없이 우월한 자들을 등장시켜 대중에게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여유를 주는 듯이 보이지만 이미 우월한 자들은 일반 우리 서민들과는 동떨어져버렸다. 그들은 화려한 박제가 되어 쇼윈도 안에 있는 듯이 보이지만 사실 그 안에서 서민들의 동굴을 관람하고 있을 뿐이다.
명예와 부는 '남의 것'이 되어버린 지 오래고 이미 '저 멀리 있는 자들에게만 전승되어 오는 그 무엇'으로 전설처럼 대중과 괴리되고 이런 모습은 다시 대중들의 컴플렉스를 자극하게 한다.
더 기가 막힌 것은 미디어가 우리의 이중적인 사고를 자극한다는 것이다. 이미 우리는 서민이라는 준거집단과 소속집단이 있지만 마음 속 집단은 저 멀리 성에 살고 있는 '있는 자'들의 세계로 향해 있다. 준거집단과 소속집단의 괴리로부터 비롯 된 말이 '세금 폭탄'이 아닌가. 가진 자 1%를 걱정하는 99%의 엄청난 분노들 말이다. 마치 자신의 일이라도 된 것인 양 말이다.
다시 돌아가서 '개똥녀 사건' 사례는 사이버 자경단에 의한 다양한 사회적 의식의 분기점을 살펴볼 수 있다. 반면 '된장녀', '군삼녀', '루저녀' 등의 모습은 미디어가 인위적, 또는 일부러 자극적인 타이밍을 잡아 밀어부친 조작된 이미지에 불과하다. 이것은 대중의 컴플렉스를 적당히 자극시켜 분노하고 폭발하게 하여 주목을 통해 장사를 해먹으려는 저급한 대중 상업매체의 속성에 기여하는 재료에 불과하다.
딱히 사회적인 의미를 부여하기에도 민망한 '헤프닝'에 불과하지만 어쩌겠는가. 사람들은 분노하고 있는 것을.
다만 분노하기 전에 과연 이게 우리가 정녕 지금 분노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는 되돌아보았으면 한다.
난 180cm가 안 된다. 그게 뭐? 그리고 철 없는 젊은 여인이 루저라고 말했다고 하는데 근데 그게 뭐? 철부지 말 한 마디에 이렇게까지 흥분할 필요가 있을까? 이건 네트워크 사회가 만들어준 '사소함의 과잉'에 불과하다.(이성적으로는 이런데... 심정적으로는 이상하게 나도 울컥하긴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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