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노골적이고 자극적인 제목을 붙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끝나지 않는 개똥녀 사례'라고 이름붙일 수도 있고 언론에서 흔히 전가의 보도로 사용되는 마녀사냥이란 단어를 끌어와 '온라인 마녀사냥 끝나지 않는다'라고 이름 붙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게 생각보다 복잡하기 때문에 '자경단'이란 이름을 붙인다.
그런데 '마녀사냥'이 아니라 왜 '사이버 자경단(또는 인터넷 자경주의)[위키백과]'이란 이름을 붙이는가. 용어에 대한 이해부터 하고 넘어가자.
모종의 잘못을 한 특정인이나 특정 대상에 대해 사이버상에서 신원을 밝혀내고 모욕과 집단적인 언어 폭력을 무자비하게 행사하는 모습으로 연상되는 사이버 자경단은 이제 거의 '개똥녀 사건'의 아류작 처럼 들린다.
하지만 같은 사건이라도 사람들은 비슷하지만 다른 식으로 반응하게 마련이고 나중에 이어지는 후속 처리나 상황 역시 다른 식의 풀이가 이어진다. 자경단이란 처음부터 비이성적이고 폭력적인 성향을 갖지 않는다.
처음에는 '불의'와 '비상식', 또는 '비윤리' 등 사소하거나 감춰져 있는 진실에 대해 '분노'와 '비판', 그리고 '비난'을 퍼부음으로써 사회 정의를 지키고자 하는 목적을 달성하고자 한다. 하지만 나중에 그 정도가 지나치게 되면 근거 없는 폭력과 강압과 강제가 난무하게 되고 이것은 결국 파괴적인 면을 부각하는 '사이버 반달리즘(파괴주의)'의 영역에 속하게 된다.
아예 처음부터 비이성적이고 비상식적이며 근거도 희박하거나 없는 상태에서 특정인을 궁지로 몰아 넣는 '마녀 사냥'과는 질적인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둘다 '확신범'이라는 점은 같지만 처음 참여자의 참여 근거가 최소한의 보편적 상식이라는 점에서 마녀사냥과 구별해 사이버 자경단이란 이름을 붙이는 것이다.
사이버 자경단, 마녀사냥이나 사이버 파괴자와 달라
사이버 자경단 사례로 개똥녀 사건을 들 수 있었던 것은 개똥녀의 행위는 상식선에서 비난 받아 마땅한 행위였기 때문이었다. 누구에게나 초기의 '비난'과 '비판'은 정의감의 기준으로 봐도 공평하거나 공정해 보인다. 개똥녀의 행위가 누가 봐도 그다지 아름답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거기까지가 우리네 정서에서는 남을 비난할 때의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쩜 저렇게 뻔뻔할까. 쯧쯧' 하고 멈추는 사람이 더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인터넷은 네트워크의 특성상 무작위성에 근거하고 나의 일부분만 활동하거나 발언하게 되는 다중인격적인 면을 갖고 있다. 따라서 사건의 초기에 말리는 사람보다 함께 손가락질하고 비난하고 거기에 앞장서서 특정인이 누구인지 호기심에서 밝혀내고 이를 공명심으로 다시 공개하는 상황으로 번진다. 여기서부터 이전과 전혀 다른 사건으로 발전된다.
여기서부터 프라이버시 침해와 넘치는 언어 폭력, 심지어 전화와 주변인을 함께 괴롭히는 파괴적인 모습까지 발전하게 된다. 반대로 한 축은 어느 정도 선에서 사건이 관심의 영역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것이 본질이다. 사건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된 적정한 수준에서의 '흥분'이 누그러뜨려지면서 침묵하는 사람은 더 많아진다.
온건한 이들의 침묵은 눈에 보이지 않고 강경한 이들의 과격 행동만이 남고 이 과격 행동은 '상식'을 넘어 비이성적인 면을 갖추게 된다. 이 때가 바로 언론이 네티즌을 반격하는 지점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오프라인의 작은 사건이 사회적인 문제로 발전하면서 그 문제의식에 동참했던 네티즌을 결국에는 떼어내고 언론 자신만 마치 중도를 지켜내고 정의의 편에 있었다는 식의 보도가 사건의 종결 이후에 쏟아진다는 점이다. 언론들은 마치 관조하면서 사건의 흐름에는 관여하지 않았다는 식의 뉘앙스를 풍긴다.
아니다. 단연코 주류 언론은 사이버 자경단의 활동에 씨앗이 되거나 최소한 집단 린치의 행위자였음을 기억해야 한다. 비겁하게 나중에 빠져나가는 행위는 배신이다. 그럴려면 초기부터 다루지 말았어야 하지 않겠는가.
사이버 문화 해석에 대한 새로운 분기점, 개똥녀 사건
더불어 개똥녀 사건과 다른 유사 사례를 살펴보자. 어느 지점까지가 나의 참여 수준이었으며 언제 많은 사람들이 발을 빼내기 시작했는지, 그리고 그 참여자의 성향이 언제부터 온건주의가 배제되면서 강경주의자로 교체되기 시작했는지 유추해보자.
아마도 여러분도 '네티즌'을 제 3자나 타인으로만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다. 다만 사건의 흐름 속에 등장하는 네티즌의 범주에 들었던 사람들이 실제로 교체되고 있다는 것을 제 3자인 척 하는 언론과 우리만 모를 뿐이다. 우린 클릭 한 번, 검색 한 번, 추천 한 번만으로도 사건의 확대에 기여를 한 참여자라는 것을 잊지 말기 바란다.
지하철에서 벌어진 이 사건은 '사이버 수사대'라는 말까지 유행시키며 단 몇 장의 사진으로 많은 사람들은 현장의 모습과 사진을 찍은 촬영자의 몇 가지 단서만으로 특정인을 유추하기에 이른다. 놀라울 정도의 '집단 추리'의 촘촘함은 그녀를 비롯해 그녀의 부모와 친척까지 찾아내 공개하기에 이른다. 심지어 원본 사진에 찍혀 있던 개와 그녀의 옷차림, 시계만 보고도 특정인을 골라낼 수 있었다. 이 문제는 주류 미디어에게도 소개되고 급기야 개똥녀는 다니던 학교까지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이 사건은 미국 블로거 돈 박에 의해 미국에까지 알려졌으며 이어 상황에 대한 논란거리와 화제성은 이미 미국 내에서도 심각하게 받아들여지면서 초대형 블로그인 보잉보잉에까지 소개된다.
(재미 교포 돈 박의 블로그에 올랐던 글은 Don Park’s Daily Habit – Korean Netizens Attack Dog-Shit-Girl 라는 제목이었으나 어쩐 일인지 그의 블로그에서 이 글을 찾을 수 없다.)
미국의 주류미디어인 워싱턴포스트 에서도 Subway Fracas Escalates Into Test Of the Internet's Power to Shame라는 글을 통해 이 소식을 전했다. 미국의 주류 미디어가 이 사건을 인터넷의 무자비함을 강조하기 위한 사건으로 개똥녀 사건의 정황을 몰아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 언론들도 처음에는 별것 아닌 것 처럼 사건을 화제성으로만 보도하다가 나중에 되어서야 호들갑을 떨며 제어되지 않는 '네티즌의 힘'에 대한 우려를 전달하기 시작했다.
얼마 전에는 이런 개똥녀 사건에서 영감을 받은 법대 교수가 사이버 규제 쪽에 무게를 심어주는 <Future of reputation>라는 책을 쓰기도 했다. 한국에서 번역되어 나온 책은 <인터넷 세상과 평판의 미래>라는 제목을 걸고 있다.
혹시 2006년 '캐나다 강사' 사건은 기억하는가. 캐나다 교포인 한 여성이 국내에서 영어 강사로 일을 하던 중 학생들이 모 음란물에 등장하는 여인과 동일인물이라고 인터넷에 제보하고 급기야 이 여성의 신원은 만천하에 드러나게 된다. 그녀는 사건 직후 한국에서 하던 모든 일을 접고 캐나다로 되돌아가게 되었다. 물론 이 사건 역시 주류 미디어가 연일 보도해줘서 더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된 사건이었다.
다시 최근으로 돌아오자.
미국 교포로 살아오던 한 청년이 국내 그룹가수 활동을 하다가 느닷없이 수년 전 자신이 온라인에 남겨둔 몇 마디 말로 인해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게 된다. 2PM의 박재범 사건은 논란의 발단과 결과까지 단 4일이 걸렸을 뿐이고 이로 인해 다시 온라인은 제어되지 않는 '네티즌의 힘'에 대해 경계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그런데 이 사건은 또 어떠한가. 이른 바 '로우킥' 사건이다. 인터넷 동영상으로부터 발단이 된 이 사건 역시 공분을 일으키게 되고 결국 사법 당국은 이 사건 속 주인공들을 실제 사법 처리하기에 이른다. 동영상이 유포된 것은 요즘이었지만 발생은 3년 전이었다. 동영상이 유포된 지 한 달도 안 돼서 경찰은 고등학생 3명을 입건했다고 밝혔다. 역시 이 사건 속 주인공은 이미 누구인지 인터넷에서 신원이 밝혀진 상황이었다.
우리나라만 이럴까?
중국판 개똥녀 사건도 요즘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한 여성이 마오쩌둥 조각상에 올라가 기념 사진을 찍는 장면을 다른 사람이 찍어 이를 인터넷에 유포한 일이 있었다. 중국의 네티즌들 역시 이 여성의 신상을 캐내는 한편 끊임없이 욕을 해댔다.
중국판 개똥녀 사건 사례는 대학생 동아리의 산행에서 있었던 쓰레기 무단 투기 사건도 있고 자신의 아내와 ‘푸른 수염’이란 닉네임을 쓰는 한 대학생의 혼외관계를 공개하면서 시작된 '푸른 수염' 사건도 있다.
네티즌의 극히 일부의 지나친 행동을 일반화시킬 필요는 없어
일본의 흥미로운 소식을 종종 들려주는 붉은매의 일본 엿보기 블로그에 7일 올라온 日 '인터넷 탐정'들의 응징과 마녀사냥 역시 사실은 '사이버 자경단 사건', 또는 '개똥녀 사건'으로 분류하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 처음 지점은 '선의'나 '정의감'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다만 사생활 유포 등의 범죄로까지 이어지고 극단적인 비난을 일삼는 지점은 이미 '선의'가 배제되어 '악의'가 더 크게 작용되기 때문에 문제가 심각해지는 것이다.
자경단의 함정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조금은 복잡해 보였던 글을 정리해야겠다. 자경단은 결국 '사적으로 공적인 제재를 가하는 이들'을 말한다. 대부분 집단화되어 있고 군집 속의 익명을 이용하여 힘을 발휘하고자 한다. 초기에는 '선의'로 제재 활동에 들어서지만 나중에 '악의'를 품어 공적인 제재의 수위를 넘어 사적이고 감정적인 제재까지 합리화하는 데까지 발전하게 되면 그 때 그것을 '폭력'이라 부를 수 있다.
이쯤 되면 또 다른 범죄이기 때문에 역시 비난이나 제재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이미 그 정도 수준에 다다르는 순간 적절한 공적인 제재 수준에 다다랐다고 생각하는 많은 이들은 점차 무관심층이나 방관자, 관람자로 빠져 있게 된다.
언론이나 학자들 일부는 마지막 지점에 와 있는 이성을 잃은 자경단원 몇 명을 보고 '네티즌'이란 이름의 수천만명의 사람들로 일반화시키고 모욕하고 있는 셈이다. 하긴 자신도 네티즌이면서 다른 네티즌의 수준을 논하는 이율배반형 네티즌 역시 많은 것은 사실이나, 역시 그들도 네티즌의 부분 집합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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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링블로그-그만의 아이디어 삭제시의 적절했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하루 앞서 노출되어 화제를 비껴나버렸다고 해야 할까. 사이버 자경단, 어디까지가 정의일까 이글에서 그만은 이렇게 설명했다. 모종의 잘못을 한 특정인이나 특정 대상에 대해 사이버상에서 신원을 밝혀내고 모욕과 집단적인 언어 폭력을 무자비하게 행사하는 모습으로 연상되는 사이버 자경단은 이제 거의 '개똥녀 사건'의 아류작 처럼 들린다. 하지만 같은 사건이라도 사람들은 비슷하지만 다른 식으로 반응하게 마련이고 나중에 이어...
2009/11/12 2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