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우리나라에서 초고속인터넷이 상업 서비스를 시작한 지 10년을 맞았다. 인터넷이란 시스템 연결망이 처음 태어난 지는 40년이 되었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우리 생활 반경 안에 PC, 인터넷, 오피스 프로그램을 가르쳐 준다는 학원이 즐비했던 것을 기억하면 실소가 나올 정도다. 지금 그런 거 배우는 사람이 이상해 보인다.
저장장치가 뭐고 CPU의 속도는 얼마고 램은 어떻고 이런 이야기는 여전히 컴퓨터 마니아들이 지식을 자랑하며 떠들어대지만 누구도 이런 복잡한 용어를 일부러 기억하지 않는다. 인터넷은 생활이기 때문이다.
작년 말 전세계 인터넷 사용인구는 10억 명을 돌파했고 우리나라의 인터넷 사용인구는 2730만 명으로 전세계 국가 가운데 10위를 차지했다. 실질적으로 우리나라에서 10대~30대 사이의 인터넷 인구는 99.8%로 일부러, 또는 어쩔 수 없이 인터넷을 접속하지 않거나 못하는 사람을 빼고는 인터넷은 생활의 일부가 된 것이다.
인터넷에 이렇게 '접속'하려는 욕구가 넘쳐나는 이유는 사람들마다 다르겠지만 적어도 '자유로움' 때문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다. 뉴스도 자유롭게 이용하고, 남들 눈치 보지 않고 내가 궁금한 내용을 적극적으로 찾아볼 수도 있으며 질문과 답변을 하면서 지식을 쌓아갈 수도 있다. 자신이 내뱉고 싶은 목소리도 마음껏 소리 지를 수 있고 심지어 자신이 누군지조차 알리지 않고 남들에게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최소한 시스템상으로는 평등하게 주어진다.
시스템의 평등이 자유의 평등이었을까
마치 하버마스가 말하던 '공론장'이 인터넷으로 구체화된 듯 싶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으로 뛰어들고 수많은 게시판에 글을 올리고 그림을 올리고 동영상을 올렸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올려진 글에 반응하고 다른 사람에게 그 내용을 옮겨주었다. 네트워크에서 순식간에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생각, 또는 완전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음을 확신했다.
매스미디어는 정해진 소수의 전달 메시지가 어떻게 수용되고 있는지 정확하게 측정할 수 없었지만 인터넷은 매스미디어를 비웃으며 정보 수용자에게 선택권을 쥐어주었다. 생산자와 수용자가 열린 마당에서 말하고 듣는 역할을 뒤바꿔가며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상황으로 전개된다. 이것이 우리는 민주주의라고 믿었고 이것이 열린 플랫폼이라고 여겨졌다.
하지만 대문이 열려 있다는 것은, 우리 가족과 친지와 이웃들이 마음 놓고 들를 수 있는 공간이 됐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도둑이나 파괴자, 깡패 같은 나쁜 패거리들이 들락날락할 수 있는 위험한 공간이 됐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너무 사소한 것에 들뜨고 지나치게 지엽적인 문제에 매달리는 사회 현상이 보이기 시작한다. 우리는 최근까지 한 연예인의 자살에 수천 건의 콘텐츠가 인터넷에서 남발되는 사례를 목격하였다. 전직 코미디언이 영화를 만들어 개봉했는데 이를 두고 충무로 영화계와 인터넷 논객, 그리고 관람객들이 무의미한 충돌을 만들어냈다. 한 과학자의 잘못된 거짓말로 세상은 다시 떠들썩해졌으며 아무도 진실이 무엇인지 알아내지 못한 채 인터넷은 불타오르다 차가워지기를 반복했다. 이외에도 인터넷과 게임에 매달려 현실 세계와 등을 지는 중독자들은 양산되었고 개똥녀처럼 사이버 자경단 현상이 비일비재해졌다.
자유는 규제를, 규제는 통제를, 통제는 자유를 부른다
그래서 우리는 자구책을 마련해 입장하는 사람들 가운데 특별한 목적, 예를 들면 인터넷 뱅킹 같은 민감한 정보가 유통되는 곳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에게 따로 인증을 받으라고 요구했다. 선거철에는 상대방 후보에 대한 흑색선전을 남발하고 거짓 정보가 유통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인터넷 사용에 제재를 가하기도 한다.
현실세계와 마찬가지로 사람으로서 남에게 대해야 할 최소한의 예의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모두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수준이었다. 적어도 어쩔 수 없는 조치라고 생각했으며 이는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많은 나라에서 정밀하지 못한 개인정보 관리 체계와 민감한 금융거래 정보, 의료 정보 등에 대해서는 국가가 나서서 이들 정보에 대한 관리 책임을 무겁게 지우고 있는 추세다.
문제는 다음부터다. 이제는 '어느 정도가 적절한가'에 대한 논쟁이 불붙기 시작했다. 이른 바 모두가 수용되는 세상에서 일부를 막는 조치로 실명제나 선거법, 명예훼손 관련 법이 기능을 했는데 오히려 이러한 '가로막기'가 지나쳐서 개인의 의견 표시와 사상의 자유까지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 대선 때 있었던 수많은 선거법 위반 사례들이 인터넷에서 불거졌으며 광우병 소고기 수입 반대 촛불은 인터넷을 비롯해 오프라인에까지 번져 작년 봄을 뜨겁게 불태웠다. 인터넷에서 큰 진실을 말하기 위해 작은 거짓말을 했다고 믿는 경제 논객 미네르바 구속 사태는 인터넷에서 어떤 글을 어느 정도의 수준으로 올려야 할지, 그리고 그것이 일개 시민과 전문가라 불리는 제도권 인사들의 발언의 무게가 얼마나 질적인 차이를 보이는지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었다.
세상은 원래 복잡하다는 걸 깨닫기까지
복잡계 이론을 이야기하면서 이 혼란스러운 글을 마쳐야겠다.
지난 100여 년 동안 전세계가 농경사회를 벗어나 산업사회를 거치며 기능의 전문화는 당연시되었다. 기능의 전문화는 곧 이를 뒷받침해주는 지식의 전문화로 이어졌다. 인문과 과학, 경제, 의학과 사회과학,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고 가장 잘 아는 분야를 집중적으로 파고들면서 스스로를 전문가라 불렀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이 전문가들을 따랐다. 다른 모든 기회를 외면하면서.
그러나 지식사회로 세상이 다시 질적인 변화를 겪으면서 다시 한 번 자연과 인간의 불가해성에 대한 깨달음이 대두되기 시작한다. 바로 복잡계 이론의 출현이다. 복잡계 이론에서 주요하게 다뤄지는 부분이 바로 '혼돈의 가장자리'라는 개념이다.
인터넷이 만들어졌을 때만해도 많은 것이 예측 가능했고 사람들의 참여의 프로세스는 정해져 있었다. 하지만 이후 폭발적인 참여 이후에는 다양한 상황으로의 변이가 일어나고 질적 변화와 양적 변화가 급박하게 벌어졌다. 인터넷 안에서 자발적인 자정 움직임과 외부의 규제 움직임이 긴장관계를 형성하면서 균형을 아슬아슬하게 유지하게 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 것이다.
이런 긴장관계와 아슬아슬한 균형 상태는 세상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세력과 더 이상 혼란스러워하지 않는 세력간의 싸움이기도 하다. 다른 쪽에서는 열린 공간에서의 자유로움을 만끽하려는 세력과 열린 공간에서 좀더 깨끗하다고 여겨지는 곳을 마지막 보루로 확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세력간의 상호 견제 역시 당연한 결과인 셈이다.
인터넷 세상은 혼돈 속에서 질서를 찾으려 하지만 늘 질서를 거부하고 혼돈 속으로 빠져들고 싶어하는 (생산적이기도 한)자기 파괴 본능을 지녔다. 에리히 프롬이 말한 것 처럼 자기 파괴 본능으로 인해 불안한 쾌락을 얻으려 하는 존재는 의식을 가진 인간 뿐이다. 이게 바로 정보화 시대, 인터넷 광장이 본질적으로 혼란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열려 있는 이유다. 말하고 싶은 자유를 얻기 위해 불편한 이야기를 들을 준비를 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
** 덧1, 사람을 보지 못하고 신호등만 보다가 사고 낸다. 세상은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을 만든 사람들이 다시 시스템에게 저항하며 살고 있는 곳이 아니던가.
** 이 글은 LG CNS 사외보에 5, 6월호에 실릴 글입니다. 일부 편집에 의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정보화 시대에 대한 철학적, 사회적, 기술적, 법률적 시각으로 풀이하기 위한 기획 중 '사회적 시각'으로 본 인터넷입니다.
혼란을 혼란으로 보지 않고 자연스럽게 보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 대단한 사람들이 정돈해둔 상태로 세상이 돌아가지 않는 것은 분명하겠죠? 결국 혼돈 속에는 인간의 '욕망'이 숨겨져 있다고 봅니다.
누구나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는 의미를 주었던 인터넷이 지금은 누구나 미디어가 될 수 있다는 의미를 던져주면서 권력자들과 식자들의 대대적인 반동이 시작되고 있는 셈이죠.
자고로 권력은 소수가 쥐고 있어야 사회가 안정적으로 보입니다. 권력분산은 필연적인 혼란을 불러오죠. 그 혼란이 불편한 사람들이 여전히 주류로 기능하고 있는데 이 주류를 많은 사람들이 진짜 주류라고 착각하고 살고 있죠. 안정적이고 싶은 욕구 때문이겠죠.
** 덧2, 주말 동안 여행을 다녀왔는데요. 인터넷에서는 배우 설경구씨와 송윤아씨의 결혼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은 가운데 설씨의 전처 언니라는 분이 아고라에 글을 올려놓았나 봅니다. 청원도 등록돼 있고... 연예인의 사생활, 사소한 이슈의 과장, 타인에 대한 배려, 인터넷 자경단, 흑백 진영논리 등의 복잡한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네요. 사람들 참.. 일부러 복잡하게 사는 거 맞나 봅니다.
저도 그렇구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