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A는 늦은 시간까지 게임에 몰입하는 편이다. 학업 스트레스에 성적 부진에 따른 학교 선생님과 부모와의 갈등도 게임으로 도피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밤 12시가 되었다. 한참 목표한 아이템을 획득하기 위해 몬스터 사냥을 하고 있는 와중에 '청소년보호법에 근거 해 이용이 차단됩니다'라는 메시지가 뜬다.
이 청소년 A의 선택은 무엇일까.
1. 게임을 멈추고 얌전히 자리에 눕는다.
2. 부모님 인증 번호나 지인의 주민등록번호를 도용해 게임을 지속한다.
웬만한 초등학생 정도라면 이 정도의 본인확인 절차 정도는 순식간에 무력화시킬 지식과 기능을 갖고 있다.
여성가족부가 최근 산업계와 법률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명 '신데렐라법', '셧다운제' 등으로 불리는 청소년 보호법 개정안 통과를 밀어부치고 있다. 이 법은 과연 누구를 위한 법일까. 보호하려는 청소년을 보호하지도 못하고 애꿎은 부모들과 인터넷 산업계만 피해를 보게 생겼다.
실제로 한국입법학회가 지난 3월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청소년 94.4%는 이런 규제를 피하는 방법이 많기 때문에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비웃음을 보이고 있다.
청소년들은 부모로부터 주민등록번호와 휴대폰번호 등은 손쉽게 얻을 수 있다. 부모가 자녀들에게 이런 정보를 숨길 수 있는 방법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우리네 정서상 가족끼리 숨기는 게 더 이상할 따름이다. 더구나 부모의 개인정보도 등록시켜 자녀의 게임 이용을 차단하거나 시간을 제한하도록 하는 기능을 부여하겠다는 발상도 어처구니 없다. 청소년이 부모를 통제할 판이다.
전세계적으로 사업자가 해킹 등의 위험에 자유로울 수 없으므로 관리해야 할 개인정보를 최소한으로 제한해야 한다는 흐름에도 정면으로 배치된다.
게임 업체들은 그야말로 철퇴를 맞은 셈이다. '셧다운제'의 적용을 위해서는 개인정보 저장을 위해 서버를 늘려야 하고, 실명확인, 보안강화 등 추가 부담비용이 불가피하다. 이제 우리나라의 혁신적인 포털 서비스가 나오지 않듯 우리나라에는 이런 겹겹이 쌓인 규제를 뚫고 게임 벤처가 나올 환경은 애초에 물건넜다는 업계의 한숨도 일리가 있다.
더 심각한 것은 '게임물' 서비스를 하고 있는 규제대상자를 '부가통신사업자'로 규정하는 바람에 우리나라에서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모든 언론, 통신, 포털 사업자 모두가 이 법의 적용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다른 모든 규제에서 보듯 이 법 역시 인터넷이 전세계 국경을 넘나드는 서비스라는 점에서 해외 사업자의 서비스에는 이 조항들을 강제하지 못한다. 당장 모바일 게임 처럼 역차별 논란이 불거질 것이 뻔하다.
물론 그러면 청소년의 게임 중독을 이렇게 방치해야 하느냐 하는 반론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기술적으로도 접속시간이 오래 될수록 획득 가능한 점수나 아이템 획득률을 낮추는 등의 방법을 게임업체가 자율적으로 취할 수 있음에도 일부러 외면한 측면도 강하다. 업계는 이렇게까지 심각한 규제가 나오기 전에 자율적인 대안을 모색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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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에 7일 기고한 글입니다.
그냥 나라가 좀 이상하다는 생각...
2011/04/15 17:20
2011/04/15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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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의 한국 인터넷 규제 기사
Tracked from 링블로그-그만의 아이디어 삭제얼마 전이었다.tnm의 영문 블로그 미디어인 나누미(nanoomi.net)를 통해 취재 요청이 왔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의 기자였고, 한국이 좋아서 한국 특파원으로 자청해온 기자의 한국 인터넷 전반에 대한 취재였다.몇 명의 tnm 파트너가 참여했다. 간담회 형식으로 인터넷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한국만의 특색 있고 경쟁력 있는 부분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게임 이야기가 나왔다. 하지만 주지하다시피 한국의 게임은 이상한 상황에 놓여져...
2011/04/18 16: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