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모르겠다. 너무 복잡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여당의 미디어 관련법 변칙 강행 처리는, 마치 공기 처럼 흔한 '미디어'의 복잡한 구조를 사람들로 하여금 공부하게 하고 무엇이 옳은 언론의 길인지에 대해 한번쯤은 고민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그런데 이렇게 복잡한 미디어법을 놓고 전공자나 관련자들조차 정치인들이 짜 놓은 사고틀에 갇히는 현상을 보면 매우 안타깝다. '미디어 산업 중흥'이라는 산업적 논리를 여당에서 꺼냈고 '민주주의 후퇴' 등의 사회적 논리를 야당과 시민사회가 주장하면서 미디어법 논의는 노를 저어 산으로 올라가는 어이 없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미디어법 관련 논란의 본질은 몇 가지 질문에 답을 하면서 풀면 의외로 자신의 입장을 손쉽게 얻을 수 있다.
먼저, 현재 미디어법 개정이 반드시 필요한가. 그것도 다른 민생법안이나 시급한 경제현안보다 더 중차대한 일인가 하는 점이다.
다음으로 미디어법이 개정되면 대기업과 언론사는 방송진출을 통해 현재 방송의 독과점을 해소할 수 있는가. 실제 그럴 능력이 되고 그럴만한 투자 가치가 있는가.
또한, 미디어법이 개정되어 신문과 대기업의 새로운 방송진출이 이루어지면 실제로 일자리가 늘어나는가. 언론사간 인수합병이 손쉬워지는 상황에서 구조조정보다 투자가 활성화될 여지가 있는가.
마지막으로 소위 '조중동'과 '삼성'은 방송업에 진출하여 성공시킬 것이고 여론 독과점이 심화될 것인가.
그런데, 이런 논의는 사실상 정치권과 서울을 기반으로 한 중앙 언론들이 제기하는 거시적이고 구조적 문제이지 현업의 눈높이는 아니다. 더구나 학자와 시민단체, 그리고 블로거들 역시 이런 거시적이고 구조적인 문제에 고착되어 정치권의 논란에 한데 뒤엉켜 있을 뿐 어느 부분 하나 진전시키지 않고(못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 역시 인정해야 할 사실이다.
미디어법 때문에 지방지가 위기라는 현업 지방지 기자의 하소연
지난 11일 <PD 저널에 실린 글에 이어 13일 몇 가지 사진과 추가 글이 담긴 블로그 글이 하나 올라왔다. 지역 신문 현직 기자의 시선으로 본 미디어법 강행 처리 후폭풍이 결국 지역지의 붕괴를 가져올 것이란 불길함을 담은 글이다.
서울일간지의 공습, 지역신문의 운명은?[김주완 김훤주의 지역에서 본 세상]
이 글에서 지역지 종사자로서 느끼는 위기감과 절박함이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대개 지역신문의 인력은 100~150명이다. 그런데 서울지가 지역신문을 함께 발행하면 10~20명, 많아도 30명이면 가능하다. 1면부터 4, 5면 정도만 지역기사로 채우고 나머지는 전국공통의 본지 기사로 만들면 되기 때문이다. 편집이나 인쇄, 배포는 기존 조직을 활용하면 된다.
20여 명의 인력으로 지역신문을 제작, 운영할 수 있다면 100% 흑자를 낼 수밖에 없다.
어쩌면 지방 언론사 현업에 있는 사람이 아닌 일반 독자라면 이게 왜 문제인지 발견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 글은 서울일간지들이 지방 자회사를 만들거나 지방네트워크를 강화하여 지방의 광고 시장마저 가져가 지역 토착 신문들의 존립 기반이 무너질 것이란 우려를 담고 있지만 정작 왜 지방지들이 살아 남아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해답을 주고 있진 않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지방의 정서를 담고 중앙에 편중돼 있는 관심사를 분산시켜 여론의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지방 언론사들의 생존이 필요하다고 반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반대로 서울일간지들이 지방 자회사를 설립하거나 지방네트워크를 강화하는 것이 현재 지방지의 역할을 대체하지 못할 것이란 우려는 사실 뚜렷한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는 정권에 의한 언론 통폐합의 기억을 갖고 있을 뿐 시장이 자율적으로 지방지의 경쟁력을 높여주었던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정작 지금 지방지 설립과 운영에 대한 규제가 거의 전무한 상황임에도 지방지들끼리의 경쟁은 나날이 치열해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중앙지 시장을 위협할 정도는 아니어도 스스로 안정적이고 성장성이 담보된 경영성과를 내지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월간 <신문과방송> 2009년 4월호에 강준만 교수가 기고한 글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언제고 이 글을 보면서 몇 마디 해야겠다고 생각하다 때를 놓쳤는데 앞의 블로그 글과 병행하여 읽으면서 좀더 본질에 들어가 볼 필요가 있겠다 싶어 소개하는 것이다.
전국지의 지방지 계열화, 신문사 간의 인수・합병 등을 허용하는 정책....지역언론 간의 통폐합...우리는 이 두 제안 모두 현실성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전국지의 지방지 계열화와 지방신문사 간의 인수・합병 등은 당사자들 모두가 원치 않기 때문이다. 폐업과 실업이라는 결과가 뒤따르는 것도 아니다. 무보수라도 그냥 버티겠다는 기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간 비교적 현실적인 대안으로 거론된 건 기자 최저임금제의 법제화였지만, 이는 위헌 소지가 많아 대안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한지 오래다. 어떻게 할 것인가? 그냥 그리드락에 갇혀 지내야만 하는가?
지방신문의 ‘그리드락’_강준만 <신문과방송> 2009년 4월호[PDF]
여기서 강준만 교수가 소개하는 '그리드락'이란 <소유의 역습, 그리드락>을 쓴 미국 컬럼비아대 법대 교수 마이클 헬러가 말하는 현대 경제사회의 모순 상황을 설명하는 단어다. 즉, 사거리에서 차들이 꼬리물기를 하다가 자신은 물론 남들도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을 그리드락이라 표현한 것이다. 너무 많고 세분화된 소유권으로 인해 오히려 가치 생산 활동을 제약받는 상황(저작권 때문에 UGC나 2차 저작물 생산이 위축되는 등의)을 설명하고 있다.
조금 어려운 용어를 들이밀자면 '자유시장의 역설', 또는 '시장의 실패', '공유재의 비극' 등의 현상이 이런 그리드락으로 인해 복잡하게 전개된다는 것이다.
지방지 시장의 그리드락, 원래부터 문제가 많았다
강준만 교수는 '도대체가 경쟁력도 없는 지방 신문사가 서로 살아남아야 한다는데 딱히 반박할 수 없는 분위기'를 우회적으로 걱정한다. 그러면서도 내심 '경쟁력을 갖춘 신문사의 대형화가 과연 우리 사회 전체 언론의 자유를 신장시킬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 역시 깔려 있다. 이것은 강 교수만의 걱정이 아니다. 내가 지금껏 만나본 많은 학자들이 중소신문사는 물론 지방지를 살려야 한다면서 경쟁력이 있는 신문사가 살아남을 것이라다는 모순된 주장을 하고 있다.
이쯤에서 지방지 시장까지 중앙지들이 넘보는 것은 '공정경쟁'에 위배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신문사 복수소유 금지 규정 등은 헌법재판소로부터 헌법불합치 판결이 나서 이미 무효화되었으며 지금 논란중인 방송법 개정안 무효화 이슈와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정서적으로나 이론적으로 반박할 명분은 충분해 보이지만 현실 시장과는 동떨어져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앞에서 블로그 글에서 미디어법 개정으로 인해 지역 언론이 큰 피해를 볼 것이라고 걱정하는 김주완 기자의 우려는 결국 '현업의 걱정'이라고 봐야 한다. 시장의 논리라면 100~150명이 만드는 신문을 20명도 안 되는 사람들이 만들어 내고 전국지와 함께 배달하여 광고주에게 좀더 규모의 경제를 실현시켜줄 수 있다면 결국 명분이 어찌되었든 시장이 재편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더구나 이런 문제점을 완충시켜줄 수 있는 소비자, 곧 독자들이 지방지를 선택할 이유가 별로 없다면 아주 심각하다.
정말로 김주완 기자가 <PD저널>에 쓴 기고문에서 지적하듯 "서울 중심구조 속에서도 그나마 남아 있던 게 지방자치단체의 공고와 축제·행사 광고, 그리고 향토기업의 광고였다. 그런 광고가 서울로 가지 못했던 것은 광고단가의 문제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명분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역주민이 낸 세금으로 차마 서울지에 광고를 낼 순 없었던 것"이라면 광고주들은 적어도 효과는 둘째치고라도 '명분'도 있고 '규모'와 '실리'가 있는 중앙지의 지방판에 관심을 둘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없는 것일까? 이렇게 다 앉아서 지방지들은 당해야만 하는 것일까? 사실 지방지 종사자라면 지금 상황을 좀더 냉철하게 볼 필요가 있다. 기업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경영상태인지, 그리고 경쟁상황에서 내가 최소한 도퇴되지 않을만큼의 차별화된 경쟁력 요소를 갖추고 있는지 되돌아보아야 한다.
왜 이 이야기를 하느냐면 겉으로는 서로 울고불고 땅을 치면서 이놈의 나라에서 마이너 언론이 얼마나 힘든줄 아냐면서 읍소하는 수많은 신문사들이 이상하게 간판을 쉽게 내리지는 않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중앙지는 고작해야 11개, 경제지 6, 7개를 합치면 20개도 안 된다. 하지만 우리나라 전국 일간종이신문의 수는 2008년 말 기준 무려 275개다. 이는 2002년 125였던 것에 비하면 2배가 넘게 더 생긴 것이다. 기타 일간지(331개)와 주간지(2,788)까지 그 수는 산업계 동향과는 달리 크게 줄지 않았으며 오히려 지난 10년 동안 엄청나게 불어났다. 인터넷 신문은 2008년 말 현재 무려 1,282개에 이른다. 이미 우리나라 언론 산업은 과포화 상태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자료 : 정기간행물 등록현황[e-나라지표]
우리나라 언론시장이 '대마불사'라 하여 큰 기업일수록 죽지 않는다는 대기업보다 더 생존력이 길다. 알고보면 '대소불문 불사산업(좀비)'임이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시장이 이들의 퇴출을 도와주기는 커녕 언론사들을 근근히 먹여 살리고 있는 것이다. 부채가 넘쳐서 이미 부도 상황을 맞았던 수많은 언론사들이 기업이나 기타 금융자본으로부터 긴급수혈이나 자금회수 유예로 살아남아 있다. 그리고 그 상황을 자랑스럽게 떠벌리는 (후진적인)기자들도 아직 많다.
중앙지도 이럴진대 하물며 지방지야 월급 없는 계약직, 2, 3개 매체와 계약한 기획(광고성 기사 전문)기자들이 넘쳐나는 상황을 어찌 막을 수 있겠는가(물론 지방정론지까지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시장이 부실 기업을 퇴출시키지도 못하는 구조인데다 시장 참여자는 갈수록 많아지고 경쟁만 치열해지고 나눠먹을 파이 자체가 줄고 있으니 그야말로 진퇴양난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지방 이슈의 발굴과 심층 취재,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네트워크 구축이 관건
그런데 약간 발상을 달리해보면 일단 규모의 시장을 갖추고 시장을 확대하려는 전략을 갖고 있는 중앙지에 맞서 지방지는 반대로 자신들의 시장을 좀더 세밀화하고 타 지방 신문과의 인수합병이나 교차소유, 지분 공유 등의 방법을 통해 네트워크를 강화시키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
제 2의 통신사에 공동지분참여(또는 설립)를 통해 전국뉴스 풀을 늘리거나 지역지 기사풀 제도를 도입해 공동 뉴스 생산 비용 절감과 지역 심층 취재 영역을 개척하는 것도 방법이다. 블로그와 지역 시민들과의 소통과 각종 행사 개최 및 후원을 통한 존재감 확보 역시 멈추지 말고 꾸준히 진행해야 한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지방지들끼리의 합종연횡이 서로에게 절실하다는 공통인식 속에 단단한 결속력을 가져야 함은 당연한 전제조건이다.
말뿐이라고? 이미 그렇게 하고 있는 곳도 있다. 김주완 기자가 사례로 든 '인천경향신문' '중앙일보 천안·아산'보다 좀더 적절한 예는 <내일신문>이 아닐까 한다. 독자주주와 사원주주제도 등을 과감하게 동원하고 지역 네트워크를 탄탄하게 다져가면서 자리를 잡아 나갔다. <내일신문>은 종이신문이 암울하다고 하소연하고 중앙지들이 정치인들을 붙잡고 특혜를 요구할 때 과감한 발상의 전환으로 오히려 지금은 해외 네트워크를 강화하려는 계획까지 추진하고 있다.
정치인들 데려다 놓고 민주주의니 언론의 산업화니 떠들어대도 정작 중요한 것은 언론사 종사자들의 처지다. 지금 신문사는 물론 방송사와 포털 틍 인터넷 미디어를 비롯해 모든 미디어 산업 종사자들이 좌고우면할 상황이 아니다.
더 거대한 쓰나미가 미디어 산업의 뿌리를 뽑을 기세로 달려오고 있다. 블로그와 마이크로블로깅을 앞세운 시민 저널리즘과 일상을 기반으로 한 미디어 플랫폼이 그 쓰나미의 정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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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링블로그의 미디어 관련 글 :
2009/07/29 국민이 오해하는 언론법?
2009/07/27 미디어법, 미래를 대비한 법이어야 한다
2009/07/24 미디어법의 비즈니스적 허구성 [동상이몽]
2009/07/07 언론사가 직면하게 될 또다른 미디어 변화
2009/06/17 단일 소비 시장 & 전체 소비 시장
2009/06/04 잡지가 인터넷으로 이사하는 방법
2009/05/07 백악관, 신문 도울 방법? 잘 모르겠는데요.
2009/03/24 신문에 2조원을 쏟아붓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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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w~ Alleh!!!
Tracked from IPR Professionalism 삭제니네 지금 촛불든다 파업한다 난리지?70%가 넘는 사람들이 반대한다고? 일주일 뒤에는 어떤 모습일까?누구는 출근하고 누구는 장사하고.오늘 있었던 부조리는 욕나오는 안주거리 하나로 치부되겠지. 오늘부터 딱 1년만 지나봐.오늘 일어난 일이 왜 못났는지는 점차 소멸되고.오늘 행해진 행태가 왜 잘났는지만 설치고 있을꺼야. 10년 후의 오늘의 모습은
2009/12/08 1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