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뿌리깊은 나무

Ring Idea 2007/03/12 01:03 Posted by 그만
뿌리깊은 나무 1
이정명 지음/밀리언하우스
훈민정음의 창제 당시의 상황을 재구성한 팩션.

놀랍도록 방대한 지식이 그 속에 녹아들어 있으며 천한 신분에 하급관리인 겸사복 강채윤을 통해 복잡하고 어려운 지식을 쉽게 알려주는 노력도 눈에 띈다.

어처구니 없게 지금도 각종 서적과 지식인 속에 남겨져 있는 '창살 모방설'에 대한 오해를 말끔히 씻어주는 소설이긴 하지만 '팔사파 문자 모방설'에 대해 직설적인 설득이 들어있다는 점에서 의아스럽기도 하다.

각종 당시의 실존 인물들에 대한 세밀한 배치가 꼼꼼하게 이어지며 궁궐내 살인사건에 마치 CSI 처럼 시체 해부와 각종 생물학적 특징을 통한 추리 또한 일품이다.

서체에서 글쓴이의 성품까지 추리해내는 논리적 연결성은 독자로 하여금 사실성을 느끼게 한다. 소설 속의 사건들은 독자들의 궁금증과 함께 지적인 호기심에 대한 친절한 해설로 이어진다.

그만이 이 소설 속에서 찾아낸 가치는 또 하나 있다.

바로 경학자들이 지키려는 기존의 질서와 사대모화주의의 견고함과 그를 깨뜨리려는 새로운 지식 전파 도구(한글)의 팽팽한 대립. 마치 현재 정보의 집중을 당연하게 여기고 그 정보를 자격을 갖춘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일방적으로 알려주는데 그치고 있는 올드 미디어의 역할이 바로 당시 경학자들의 모습과 닮았다.

경학자의 대부로 알려진 대제학 최만리는 훈민정음 창제와 반포에 대해 적극적으로 만류하면서 지식을 깨우친 무지한 백성들이 기존 학자들과 우주의 심묘한 뜻을 논하는 상황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나타낸다. 현재 인터넷을 통한 '무지한 네티즌과 독자'들이 정치와 사회와 교육에 대해 중구난방 논하는 것을 걱정하는 언론인들과 정치인들의 모습과 닮았다.

하지만 세종과 집현전 학사들은 생각이 다르다.

땅을 일구는 농사꾼들이 스스로 그 농법을 배우고 익힌 뒤 그것을 다시 글로 남겨 후대에 전해주며 서로 논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꾸는 것이다. 대장장이들은 칼 만드는 법을 스스로 깨우칠 것이며 장사치들은 상술에 대한 지식을 나누게 될 것이었다.
 
네티즌들끼리 토론하고 논의하고 블로거는 전문적인 식견을 인터넷을 통해 남기고 끼 있는 자는 스스로 남들에게 자신의 재주를 뽐낼 수 있는 세상에 대해 놀라워하고 있다.

인쇄술, 그리고 문자 발명, 이제는 인터넷이란 도구가 인간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으며 이는 기존 질서를 무너뜨릴만한 파괴력을 갖고 있음을 이 소설을 통해 느낄 수 있다.

원고지와 한자만을 고집하던 이들이 컴퓨터와 한글세대를 바라보며 '끌끌' 혀를 차는 모습에 대한 설명을 이 소설이 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만이 보는 소설로서의 가치는 별 다섯. 읽어볼만 하며 한국식 팩션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는 평가가 그리 허무맹랑해보이진 않는다. 단, 역사적 사실이 아닌 것을 소설로 엮으면서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사실성 논란은 '소설'이란 장르로 용서받을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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