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과의 동침]이란 표현은 몇 가지 구체적인 뜻을 내포하고 있다.
1. 특별한 목적 달성을 위한 임시적인 제휴와 협력.
2. 또 다른 적을 상대하기 위한 단기적 협력과 이용.
3. 강한 적을 우군으로 만들어 적이 없는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전략.
등이 그것이다.
1번의 경우 MS와 애플 사이의 '맥용 오피스 출시'를 들 수 있다. 이 독특한 모습은 MS의 오피스 시장 확대와 애플의 애플리케이션 호환성 확보라는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만일 애플의 맥이 시장에서 점차 사라질 위기라거나 MS 오피스가 시장을 독점하지 못하고 몇 개의 대안 SW와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었다면 이러한 형태의 제휴는 만들어지기 힘들다.
SK컴즈(네이트+라이코스)와 싸이월드, 그리고 이글루스, 이투스, 엠파스, 코난테크놀로지의 다방면의 인수합병은 빅3로 자리매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거래였다. 엠파스와 코난테크놀로지와의 관계를 제외하고는 서로에게 모두 위협이 되던 존재였다. 삼성전자와 애플 사이의 관계 역시 이런 경우다. 단숨에 MP3 플레이어 시장을 잠식한 아이팟은 삼성전자의 후원없이는 힘들었다. 삼성전자 역시 MP3 플레이어 시장에서의 고전에 자존심 상해 하고 있지만 애플이 이 분야에서 잘 나갈수록 수익은 늘어나게 돼 있다.
이 가운데 2번 '또 다른 적을 상대하기 위한 단기적 협력과 이용'은 '적으로써 적을 제압한다'는 의미의 고사 성어인 이이제이(以夷制夷)에 해당된다. 최근 SKT의 LGT에 대한 협력이 예가 될 수 있겠다. LG텔레콤은 최근 SK텔레콤의 휴대전화 무선 인터넷 플랫폼인 ‘T팩’을 공동 사용키로 하고 해외 진출을 위해 서로 협력키로 했다. 견제하려는 대상은 당연히 KTF다. 3G 시장과 결합 서비스 허용으로 막강해지고 있는 KT 그룹의 유무선 통합 사업 추진은 SKT의 독주를 막을 수 있는 대안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또 다른 사례로는 다음과 엠파스의 동영상 분야 검색 서비스 제휴다. 다음으로서는 TV팟으로 들어오는 유입 경로를 넓히는 효과를 얻었고 엠파스는 검색 품질과 동영상 인덱싱에 대한 대규모 DB를 확보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지만 결국 노리는 것은 1등 네이버 견제다. 게다가 1등 네이버가 그동안 다음이 텃밭을 다져놓은 카페와 동영상 UGC 영역을 노리고 있지 않은가. 어쩌면 검색 광고 시장에서 다음의 구글과의 협력도, 또는 네이버와 오버추어의 끈끈한 관계 역시 상대방을 제압하기 위한 제휴 협력이다. 모두 분리해 놓고 보면 각자 서로 다 경쟁자들일뿐이다. 야후 메신저와 MSN 메신저의 연동도 역시 AOL 메신저를 상대하기 위한 연합이다. IBM과 썬, 오라클이 오픈소스와 리눅스에 적극 지원하며 나서는 것 역시 MS를 견제하기 위함이다. 최근 신문사들이 각종 신디케이션 모델을 앞세우고 있는 것 역시 포털 진영을 노린 전략이다.
3번에 해당하는 사례로는 소니와 삼성의 제휴 모델을 들 수 있다. LCD 분야의 제휴로 인해 S-LCD를 만들었으며 양사는 같은 부품을 공동 개발 납품받고 있으며 제품은 따로 만들어 경쟁한다. 시장에서는 경쟁하지만 부품 조달 시장에서는 친구다. 아예 합치는 경우도 있다. 어도비가 매크로미디어를 인수한 경우다. 놀랍게도 어도비와 매크로미디어는 그래픽 시장 전반에 걸쳐 서로의 시장을 넘보던 엄청난 경쟁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기술을 합쳐 최근 CS3를 최초의 통합 제품으로 내놓았다. 도대체가 이젠 경쟁자 찾기가 더 힘들어졌다.
비슷한 경우는 오토데스크가 싹쓸이하고 있는 3D 소프트웨어 시장. 오토데스크는 이미 오토CAD를 비롯해 3ds 맥스를 갖고 있었으며 앨리어스의 마야와 3D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해왔다. 하지만 오토데스크는 지난해 앨리어스를 아예 인수해버렸다. 경쟁자는 보이지 않는다.
KT의 IPTV 분야에서 KTH를 놔두고 NHN과 협력하기로 한 것이나 CJ홈쇼핑이 계열사인 엠플을 제끼고 옥션과 제휴한 것은 각 분야 경쟁력을 합쳐 새로운 분야에서의 시장 주도권을 놓치 않으려는 모습도 역시 적과의 동침에 해당된다.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 그리고 영원한 1등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