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게시물 임시차단 조치란 것이 있다.
이미 이 임시차단 조치를 당해본 이용자라면 이 제도가 어떤 것인지 잘 알 것이다. 현행 정보통신망법(42조)은 포털로 하여금 “게시글의 권리침해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거나 다툼이 예상될 때 접근을 임시차단하는 조처를 30일 안에서 내릴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어느 날 자신의 블로그나 카페에 들어가보니 글이 차단돼 있을 수 있다. 100만 건이 넘는 포털들의 임시차단 조치 가운데 재게시가 결정된 사례는 거의 없으니 이 임시차단 조치는 확실히 강력한 통제 수단이다.
이 입법의 취지는 분명 사회적 약자와 무분별한 비난과 비방으로부터 개인의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실제로 인터넷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신상털기 등의 행위로 인해 개인이 돌이킬 수 없는 명예훼손을 당하는 사례가 빈발했던 상황도 감안되었다. 또한 인터넷에 저작권이 엄연히 있는 저작물을 올려 놓는 행위로 인해 피해를 받고 있는 저작권자들 역시 보호 대상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법으로 인한 임시차단 조치는 제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을까. 그리고 그 임시차단조치가 민주사회가 지켜야 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수단으로 사용되는 일은 없을까.
최근 한 기업의 제품을 비방한 글이 올라왔다. 이 기업은 이 글이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고 지나치게 편향적이라며 본인과 해당 포털에 확인을 요구하는 메일을 보냈다. 그러자 해당 포털은 이 글을 임시조치하였다. 해당 기업은 삭제조치를 요구한 사실이 없다며 포털이 임의대로 "다툼이 예상된다"는 이유로 해당 블로거의 글을 임시차단해버려 오히려 문제가 더 크게 확산된 상황에 황당해 했다.
한 종교단체와 이 종교단체에서 빠져나와 지속적으로 이 종교단체의 비리를 고발하는 형식의 글을 빈번하게 올리는 누리꾼은 수십 건의 '임시차단' 조치에 이미 익숙해진 상황이다. 그래도 여기저기 글을 퍼나르고 있다.
얼마 전에는 리비아 교민 구출 당시의 상황에 대해 대한항공이 항공료 미지급분에 대해 정부와 함께 고민에 빠져 있다는 보도 내용을 두고 대한항공의 처사에 대해 비판한 글 역시 임시차단조치 당했다. 이 블로거는 이 글에서 "한진그룹은 일본대지진 피해 복구 성금으로 7억 원을 보내면서 일본 피해는 자랑하면서 돕고, 자국민에게는 더 비싼 항공료를 요구하는 대한항공이 과연 한국 대표 항공사기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라고 주장했다.
5살짜리 아이가 손담비의 노래를 따라 부르는 장면을 동영상으로 찍어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다가 (사)음악저작권협회의 요청으로 게시 중단 조치를 당한 사건도 유명하다. 동영상을 올린 당사자는 게시 중단 조치의 부당함을 주장하며 음저협과 네이버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출처] 공정 이용(fair use)|작성자 작은새
요즘엔 그나마 누가 게시 중단 조치를 신청했는지를 알려주지만 어떤 문장이 어떤 이유로 문제가 되는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1편의 글에서 한 두 문장이 문제일텐데 그 문장 때문에 글 전체가 보여지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중단하기 전에 소명할 기회나 사실을 확인하고 수정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
인터넷에 올려진 글이 누구에게나 아름답고 유익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누구에게는 뼈아픈 비판이 될 수도 있고 정치인이나 공무원 처럼 늘상 국민들과 대화를 해야 하는 입장에선 듣기 민망한 욕설이 포함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제품을 판매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소비자 불만이 그대로 노출되는 상황을 반기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우리가 이렇게 귀를 닫는 조치를 한다고 세상 사람들이 아름다운 어휘를 사용하고 아무것도 비난하지 않는 사회가 될까. 그렇게 거룩하고 긍정적인 이야기만 넘쳐나는 세상이 과연 솔직한 세상일까.
사실이든 아니든 듣기 싫은 게시글을 남들도 보지 못하게 방법을 찾아낸 곳은 '권력자'들이다. 기업과 정치인과 조직적 세력을 갖춘 곳은 수시로 포털에 게시물 중단 조치를 무차별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가운데 정작 이 법이 보호하고자 하는 개인들을 보호할 장치는 어디에도 없다.
정작 자신의 게시글이 도용당하고 무차별 펌질을 당하는 상황에서 자신의 글임을 알려도 개인의 저작권 분쟁에 끼여들기 싫어하는 포털은 수수방관만 하고 있다. 더구나 자신의 글임을 증명하라며 복잡한 요구를 하고 있다. 선량한 다수의 시민을 돕겠다는 법은 도대체 누구의 권리를 지켜주고 있는 것인가.
요즘 눈에 띄는 뉴스에는 '인터넷 강국'의 모습이 아니라 '인터넷 통제국가'의 모습이 비쳐진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오늘부터 실시간인터넷 방송의 음란물, 선정정보 등 유해정보에 대해 집중 모니터링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통제는 아니라고 말하지만 사실상 '압박'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또한 음란물 등은 비교적 명확하겠지만 '유해정보'에 대해 손을 대겠다는 내용까지 들어가 있다. 과연 우리 사회에서 '유해정보'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가능한지 의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을 조롱하는 뜻을 담은 트위터 계정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와 사이버경찰청에 의해 국내에서는 접속이 불가능해졌다. 물론 이 소식을 알아낸 누리꾼들은 몇 가지 URL 조합으로 해당 계정에 접근할 수 있다고 알리기도 했고 이내 이 우회로(?) 역시 막았다. 이 계정은 계정 자체만 욕설이 담겨져 있지 내용은 투표를 독려하는 등의 과격하지도, 음란하거나 유해한 정보를 담고 있지도 않아 논란이 예상된다.
국경없는 기자회(RSF)가 지난 3월 12일 발표한 세계 '인터넷의 적' 목록에 따르면 한국은 러시아, 리비아, 튀니지 등과 함께 인터넷 감시대상국 반열에 올랐다.
언론인권센터, 진보네트워크, 참여연대 등 세 단체는 지난 해 9월 보통신심의규정 개정안에 대한 의견서에서 “과도한 욕설 등 저속한 언어 등을 사용하여 혐오감 또는 불쾌감을 주는 내용”에 대해 저속한 표현도 표현으로 보호돼야 하고, 혐오, 불쾌감을 주는 것은 주관적인 판단이기 때문에 명확성 원칙에 반한다고 지적했다.
전반적으로 통제와 규제 위주의 인터넷 정책이 우려스럽다. 특히 임시차단 조치의 경우 그 제도의 실효성이 의심되는 상황이다. 불가피한 상황에서라도 게시글을 올린 이용자에게 최소한의 소명 기간을 주고 잘못된 내용은 자율적으로 수정토록 유도하는 방법을 구상해야 한다.
무작정 게시글을 지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언론사에게 반론권을 요청하듯이 게시 중단을 요청하는 곳의 주장을 병행해서 보여주는 식의 절충안이 있을 수도 있다.
대부분의 자신의 주장을 담은 게시글을 작성한 이용자들은 자신의 확신을 담은 글이 남에 의해 이유도 불분명하게 차단 당하는 상황에서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고 자기 검열에 빠져버리고 있다.
임시차단 조치, 과연 누구를 보호하고 있는가.
---------------------------------->
이 글은 다음 이용자 위원회 칼럼용으로 쓰여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