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 기자에 대한 환상

Ring Idea 2007/05/11 11:19 Posted by 그만

어제는 IT전문 일간지 출신 선배를 만났습니다.

그는 이미 나이 50에 가까운 분입니다. 한 때 잘 나갔던 시기인 지난 10여년을 기자로 생활했으며 이후 예기치 못한 퇴직 후 3년 가까이 은둔하며 지내고 있었습니다.

이분과의 인연은 그만이 잡지 다니던 시절이었으니 약 8년 정도 되는 거 같습니다.

이분은 지난 세월에 대한 후회와 회한, 그리고 미래에 대한 확고한 신념 등에 대해 그만에게 완곡하지만 강한 어조로 말을 이어갔습니다.

이분은 어쩌면 그만에게도 미래가 될 수도 있는 모습이기 때문에 그동안 사적인 만남을 이어왔었습니다.

하지만, 이분은 몇가지 실망스런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자기 중심적 평가 기준
기자 생활로 굳어진 '사람에 대한 평가, 사안에 대한 본질 파악'에 대해 지나친 자신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늘 누구와 만날 때는 비즈니스용이냐 아니냐를 따졌으며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기대를 갖고 있으며 자신을 높이 평가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그 정도 나이가 되셨으면 주위분들은 소위 여기저기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상태였으니 퇴직 후 일자리를 넌지시 부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누구도 그를 받아주지 않았으며 그와 함께 일하는 것에 대해 적극적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분의 해석은 이겁니다.

"내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난 이 분야 최고 권위자다"
"그들에게 큰 실망을 했다. 결국 나를 이용해먹으려고만 한다."
"내가 원한다면 어떤 자리든 들어갈 수 있지만 굳이 내가 그럴 필요가 없지 않느냐"

어찌보면 안쓰러울 정도의 자기 도취에 빠져있다는 점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군요.

이어지는 대화에서 다시 복귀하기 위한 전략에 대해 털어놓습니다. 물론 약간의 비즈니스용으로 그만에게 부탁을 하고 싶었던 부분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속내를 아예 드러내놓지 않습니다. 그만은 그 선배에게는 비즈니스용으로 '현재는' 쓸모있는 사람인지 모르겠지만 그만이 일하고 있는 환경만을 보고 계신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습니다.

오프라인에 대한 여전한 환상
이분은 책을 오래 전부터 준비해오셨습니다.

그만이 소개해준 한 두곳의 출판 담당자도 만나봤죠. 하지만 번번이 잘 안 되더군요. 아이템이 문제였습니다. 출판 기획 쪽에서는 '실패한 사례'는 금기사항이거든요. 그런데 굳이 자신이 알고 있는 분야에 대한 집착이 있었던 것입니다. 미래 이야기는 없이 과거 자신이 일하던 시절의 시장 분위기만을 기억해 그 시절 사람들을 만나고 다녀서 책으로 엮겠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출판 기획자들은 난색을 표합니다. 과거 사례가 아닌 현재와 미래를 이야기할 수는 없느냐는 질문과 함께 한 때 유행하던 시절의 디바이스에 대한 과거사 이야기 말고 다른 쪽의 아이템을 생각할 생각은 없느냐는 권유도 있었지만 역시 이분은 "그 기획자들이 안목이 없네"라고 연락을 끊으시더군요.

"내가 아는 친구가 출판사 사장이야, 내가 원하면 언제든 만들 수 있지"라는 말까지 덧붙이며..

이 책은 왜 필요할까요?

정형화된 사회 패턴에 대한 환상
그분에게는 '복귀식'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대단한 돈을 벌겠다도 아니고.. '출판 기념회' 등을 빌미로 예전에 알고 지내던 업계 사람 고위 언론계 인사들과의 관계 회복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분의 소망은 '잡지 출간'이었습니다. 요즘들어 '잡지 창간'에 대한 자문이 몇 군데서 오고 있습니다. 그들의 공통점은 '역시 종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죠.

어쨌든 이분도 관계 회복 뒤에는 '품질 높은 글로벌 성향의 전문 잡지'에 대한 콘셉을 이야기하셨습니다.

잔인한 그만, 역시 그간의 경험으로 왜 한국에서 글로벌 미디어가 나올 수 없는지에 대해 설파했습니다. 물론 그만도 한국에서 글로벌 미디어가 탄생되거나 글로벌 미디어의 한국 진출에 대해 매우 관심이 많지만 누구의 힘이나 재능으로도 안 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품질 높은 글로벌 뉴스 콘텐츠에 대한 환상
외인 지분 제한, 방통 융합 관련 제도 정비 미비, 온라인 언론 관련 부실한 체제, 외국인 발행인 금지, 신문방송 겸업 금지 등 갖가지 투자 제한 제도가 뿌리깊게 자리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글로벌 미디어 진출은 매우 '찌질한 수준'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죠.

또한 우리나라에서 일하는 글로벌 미디어 네트워크 편입 가능성은 또 다른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이런 예를 들었습니다.

"'제주도에서 감귤 농사가 잘 되고 있다, 안 되고 있다'를 뉴스로 쓰면 어디까지 보도가 나갈까요?"

물론 외국인들 우리나라에 관심이 많습니다. 하지만 관심이 전부입니다. 그것이 유의미한 콘텐츠로서의 가치를 하려면 지속 가능한 영문 매체로서의 힘이 발휘되어야 하는데 외국인들이 딱 알고 싶은만큼의 이슈는 이미 글로벌 홍보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국내서 대여섯명의 '전문 기자'를 꾸려서 외신 담당자들과 함께 국외로 우리나라 소식을 전하겠다? 그 대여섯명이 만들어낼 수 있는 콘텐츠가 과연 글로벌 미디어사들이 원하는만큼의 뉴스가치를 지속적으로 가질 수 있을까요?

물론 이같은 구상이 현실화되면 국내 중앙 언론사들보다 힘이 큰 글로벌 미디어들이 생겨나겠죠. 하지만 요원해보입니다.

그만의 미래?
이분은 '그 시절 그 힘'에 대한 기억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 있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분 스스로 개혁성향이라고 말은 하지만 그분이 말하는 현실적 환경, 즉 '기자실 출입', '권력자와의 만남', '품질 높은 콘텐츠', '기업들이 두려워하는 기자', '큰물에서 놀아봐야 한다' 등의 가치는 여전했습니다.

이분에 대해 반대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그만이나 지금 많은 기자들의 미래일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어제 집으로 돌아오는 길 너무 많은 상념에 젖어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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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블로그 주인장 그만입니다. 그만에 대한 설명은 http://ringblog.net/notice/1237 공지글을 참고하세요. 제 글은 CC가 적용된 글로 출처를 표기하시고 원문을 훼손하지 않은 상태로 퍼가셔도 됩니다. 다만 글은 이후에 계속 수정될 수 있습니다.
2007/05/11 11:19 2007/05/11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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