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네르바 소동과 인터넷 문화

Ring Idea 2009/04/21 10:02 Posted by 그만

아고라 경제 논객 미네르바가 무죄라는 1심 판결이 났다.

구속적부심에서 구속 결정을 내렸던 법원의 태도나 인터넷 여론에 대한 강경한 입장을 일관되게 취하고 있는 검찰의 의지를 봤을 때 '깜짝 놀랄만한 사건'인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 소식을 접하고 바로 이야기를 할 수 없었던 것은 결국 검찰이 또 항소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항소가 있으면 다시 2심을 기다려야 하고 2심에서 조차 무죄가 나온다면 아마도 검찰은 대법원에 상고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미네르바가 정말 깨끗한 투사인가 하는 점이다. 그는 '노인네'라고 자신을 속였으며 '유사 공문 형식을 전파'해 사람들을 헷갈리게 만들었다. 그의 의도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IMF 외환 위기 시절의 고통을 또다시 겪지 말아야 한다는 의협심의 발로였음에도 그의 잘못한 점은 잘못한 것이다.

다만 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범법행위냐에 대한 문제로 넘어오면 이야기가 전혀 달라진다. 미네르바 박씨는 이런 거짓말로 인해 비난받을 소지가 있어 보이지만, 검찰의 구형 처럼 징역형을 받을만한 일을 한 것이 아니라는 점은 많은 누리꾼들의 시각이다. 반면 보수 언론은 미네르바가 끼친 영향력에 우려를 표시하며 거짓으로 꾸며진 영향력에 대해 단죄하길 바라는 시각이다.

오늘 동아일보의 사설이 가장 엽기적이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인터넷에서 벌어지는 반사회적 행위의 규제 방법과 한계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1990년대에 만든 전기통신법은 새로운 기술의 발전에 따른 인터넷의 역기능을 충분히 예상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 미네르바 사건이나 광우병 촛불시위 사태는 인터넷의 부정적 측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그런데도 전기통신법은 허위 사실을 인터넷에 유포하더라도 공익을 해할 목적이 있어야만 처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사설]1심 무죄라고 ‘미네르바 현상’ 바람직한 건 아니다 [동아일보]

월간지를 통해 미네르바 장사를 하다가 오보 소동으로 된통 당한 언론사가 해야 할 말인지, 창피함은 알고나 있는지 궁금할 정도다. 언론의 오보가 그동안 미네르바 사건과 얽히면서 얼마나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는지를 짐작이라도 한다면 자중했어야 하지 않을까.

인터넷에서 환영 일색인 미네르바 사건과 현상이 반드시 옳다고만 볼 수도 없다. 어쩌면 누리꾼들의 억압된 컴플렉스의 분출 통로로 미네르바가 역할을 하고 있었고 그런 미네르바를 통해 사회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하는 자유를 누리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검찰이 미네르바를 구속하면서부터 사태는 꼬여만 간 것이다. 누리꾼은 자신들의 처지를 미네르바에 투영하기 시작했고 논란은 확산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 모든 소동은 검찰의 실책 때문이다. 큰 물고기는 놔두고 양동이에 담긴 피래미를 잡으려 그물을 던지는 겪이다. 인터넷 여론은 기복이 심해서 어제 영웅이 오늘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어찌 보면 미네르바의 소동은 좀더 적극적인 대처와 소통을 통해 자연스럽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유도할 수 있는 사회적인 성장을 검찰이 성급하게 가로막은 것일지도 모른다.

누리꾼들의 쏠림현상과 일시적인 주목, 다양한 이유로 인한 사소하지만 강렬한 논란은 인터넷에서 다반사다. 언론은 이런 특성을 오해해서 '영향력'이라는 모호한 잣대와 '좌파'니 '우파'니 하는 색깔을 뒤집어 씌우면서 '진영 논리'에 빠져 버렸다. 요즘들어 누리꾼과 인터넷에 호통치고 있는 언론을 보면 소통에 참여하지 못하는 언론의 열폭(열등감 폭발)이라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시각적인 편견을 없애기 위해 눈을 가린 법원을 상징하는 저울을 든 '정의의 여신상'이 떠오른다. 과연 무엇이 정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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