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보면 참 냉혹한 이야기다. 취업 시즌이란 말 자체가 이젠 희미해지지만 여전히 대학 졸업을 앞둔 즈음에 등장하는 '취업' 관련 이야기는 넘쳐나게 마련이다.

이전 글에서 KBS 차정인 기자의 뉴스풀이라는 코너를 소개하면서 [뉴스풀이 특강] 청년 실업 백만 시대, ‘1%만 아는 취업 비법!’ 을 추천했다.

여기에 등장하는 사람은 '이우곤 취업 컨설턴트, 취업전망대 대표, 건국대학교 겸임교수'되시겠다. 이 분의 강의 내용이 그다지 틀린 것도 없고 아마도 많은 취업 준비생들에게 큰 도움을 주었을 것을 감안한다면 딴죽을 함부로 걸어선 안 될 것도 같다.

하지만, 여전히 수많은 취업 컨설턴트와 취업 도우미, 회사 선배들이 수십년 째 되뇌이고 있는 산업사회 논리가 이제는 좀 지겨워져서 한 마디 적고 가야겠다.

강의 내용 가운데 기업들이 사람을 판단할 때 요즘엔 '역량평가'를 한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빠른 속도로 그냥 노트 필기 하듯 적었다.

역량 평가

인성 평가 포인트

1. 기업이 생각하는 착한 인성
착한 거 필요없다. 팀웍이 좋다.
일 못하는 사람이 제일 나쁜 애다.

2. 도전정신
왜 학교 이름이 중요한가.
국어 영어 잘하는 애가 수학을 못해서 반에서 5등이야.
공부 못하는 애들이 하기 싫은 거 하는 애들.
안 하면 안 되는 상황에서 공부 잘하는 애는 어쨌든 한다.

도전정신이란?
안 해 본 것을 해본 적 있느냐.
하기 싫은 것을 해본 적 있느냐.

3. 희생 정신
조직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정신.

결론!
취업은 1승의 게임이다.


현실이 그렇다. 이우곤 대표가 말하는 거 하나도 틀린 것이 없다. 하지만 불편한 진실일 수도 있고 여전히 현실 상황에 대한 유착 상황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어서 씁쓸한 것이다.

자신이 냉철하고 분석적이고 조직사회에 생존하는 법을 알고 있다고 하는 사람들은 이우곤 대표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할 것이다. 하지만  이 내용은 전체적이고 장기적으로 보면 젊은이들에게 할 말은 아닌 것 같다.

차라리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뤄라'고 말하는 신해철의 고대 강의가 훨씬 가슴에 와닿는다.

1번의 상황을 보자. 기업은 착한 인성을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일 못하는 인간이 제일 나쁜 사람이란다. 정말 그런가. 그래서 이렇게 기업들은 내부 조직관리에 구멍이 숭숭 뚫리고 상호 신뢰가 무너지고 결국 인적 관리 비용을 매년 증가시킬 수밖에 없는가. 남의 성과를 자신의 성과로 만드는 인간이 능력있는 인간이라고 평가받고 자신의 성과를 빼앗긴 사람들은 그래서 능력 없는 사람으로 평가받아도 싸단 말인가.

산업사회의 유산, 신입 공채 제도
이쯤되면 너무 감성적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감성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조직의 건강성이 문제다. 효율성과 업무능력을 위주로 사람을 뽑은 기업들이 이 사회에 끼치고 있는 해악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조직의 비인간적인 상황과 성과 위주의 직원 관리로 인해 누수되는 업무 충성도와 조직 협력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우리에겐 무엇이 더 필요한가. 여전히 일 잘하고 못된 인간을 뽑을 것인가. 일 잘 못하고 도덕적인 인간을 뽑을 것인가. 우리의 착각이 지금 어떤 상황을 만들고 있는지 체감하고 있는가.

어쩌면 2번에 대한 설명이 이 글을 쓰게 만든 원인이었다.

이 대표는 왜 학교 이름이 중요한가를 설명한다. 내용은 보다시피 '공부 잘하는 애들은 하기 싫은 일도 어쨌든 해낸다'가 핵심이다. 반대로 말하면 공부 못하는 애들은 일단 하기 싫은 일은 안 한다가 되겠다. 그래서 결국 등수로 결정나는 인간성 말살의 교육을 옹호한다.

그렇게 똑똑하고 어쨌든 해내는 천재 아닌 천재들이 만들어 놓은 상황이 지금의 경제 위기다. 지금 사회를 망가뜨려도 제대로 망가뜨려준 수재들의 작품이 지금 상황이다. 이들 수재는 어찌됐든 생존할 것이고 다시 양극화를 심화해서라도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려 할 것이다. 그것이 '일 잘하는 수재'들의 특징이니까.

얼마 전, 내게 선배가 이런 말을 했다. 어쩌면 그 선배는 평생 그 질문을 내게 할지 모르겠다.

"네가 사람 뽑는 입장이 되어봐. 같은 조건이라면 서울대 애들 뽑지 않겠어?"

'같은 조건이라면'이 걸리고 '서울대'가 걸린다.

대답은 "난 안 그래요. 서울대건 아니건 상관없어요. 나와 궁합이 맞는 사람이길 바랄뿐이죠."

이미 나는 서울대 출신을 비롯해 이른 바 SKY 출신, MBA 출신들과 같이 이야기하고 일해 본 적이 있다. 그들과 경쟁을 해야 할 때도 있었고 그들에게서 배워야 할 때도 있었으며 후배들일 경우는 그들을 가르쳐야 할 때도 있었다. 경험으로 봤을 때 '성공적'이라고 할만한 사람과 '실패작'이라고 할 만한 사람들이 그 잘난 출신들과 그렇지 않은 부류와 비교했을 때 그다지 체감되지 않았다. 그들과 일했던 시절을 회상하며 출신성분을 들먹이며 '역시'나 '어쩐지' 따위의 말을 내뱉는 경우가 내겐 없었다.

평균 인재, 평균보다 높거나 낮은 인재. 사람을 평균으로 나눌 수 있는가.
여기서 나의 짧은 경험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게 의식적으로 출신성분에 대한 정보를 배제하려는 신념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내가 별볼일 없는 출신이라서 일 수도 있겠지만 그냥 그렇게 사람들이 분류되는 것이 싫을 뿐이다. 출신으로 '차별'하지 말자는 것 뿐이다. 실제로 여전히 나는 내 주변인들의 출신성분을 물어보지 않는다. 특히 후배의 경우 몇년 차인지 정도만 묻는다. 객관적인 일 처리 능력이 나와의 궁합, 또는 조직과의 궁합과는 별개라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면 편해진다. 서울대와 아닌 사람들, SKY와 아닌 사람들, 똑똑한 사람과 아닌 사람들이 아닌, 그 사람 자체를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도전 정신에 대해서는 일부 공감한다. 그 도전 정신이 학생 때의 도전정신이 직장생활에도 상속된다는 생각은 그다지 동의하기 힘들지만 대체로 공격할만한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산업사회가 우리에게 물려준 '효율성', '객관주의', '표준화', '대량화', '몰인간성', '기계적 중립성' 등이 우리를 얼마나 피곤하게 만드는가. 우리는 생존을 위해 취업을 선택하고 꿈을 향한 창업이나 자기 성취, 자기 만족을 저급한 욕망이라고 스스로 억누른다. 그리고는 어느 기업에서 어떤 부품으로 쓰일까를 고민해야 한다.

관련한 이야기가 있어서 공감을 표하고 왔다.

이러한 권력의 이동 속에 미래의 회사가 필요로 하는 미래형 인재의 조건은 무엇일까요?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뛰어나고 창의적이며, 유연한 사고를 가진 사람 ...  그리고 변화하는 환경 속에 역동적으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요? 

여기에 많은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감각적인 직관이나 예술, 작지만 전문가적인 식견을 가진 능력을 탁월한 비즈니스로 승화시킬 수 있는 인재와 같이 다양하면서도 다른 사람들과 차별화될 수 있는 재능을 갖춘 사람일 것입니다.
미래의 회사는 어떻게 변할 것인가 ...[하이컨셉 & 하이터치]
요즘 읽고 있는 책에서도 한 구절 가져온다.

미래학자적 사고를 연습하려면 우선 변하지 않는 것도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대개 컴퓨터는 변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자신이 하는 일은 구식이고 전통방식이며 별반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변화란 그저 다른 사람들과 다른 산업에서만 일어나는 이야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중대한 변화와 좋은 기회를 놓치기 일쑤다. 우리가 공부했듯 초콜릿에도 변화가 일어나는 마당에 나 자신에게도 당연히 변화는 일어난다.

미래를 읽는 기술 Future Inc. - 8점
에릭 갈랜드 지음, 손민중 옮김/한국경제신문

사람들은 세상의 변화를 갈구하나 자신의 변화를 거부한다. 세상이 자기를 중심으로 변화되길 바라는 것이다.

취업은 정말 1승의 게임일까? 1승 후 다시 그 승리를 포기하고 재도전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과연 '취업은 1승의 게임'이라는 말을 쉽게 할 수 있을까?

** 덧, 예전에 이런 문제로 투덜거렸더니 선배가 메가톤급 답변 하나 쏘아붙여주셨다. "억울하면 성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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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블로그 주인장 그만입니다. 그만에 대한 설명은 http://ringblog.net/notice/1237 공지글을 참고하세요. 제 글은 CC가 적용된 글로 출처를 표기하시고 원문을 훼손하지 않은 상태로 퍼가셔도 됩니다. 다만 글은 이후에 계속 수정될 수 있습니다.
2009/03/16 09:53 2009/03/16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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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책] 산업사회 생존법, 골든 임플로이

    Tracked from 링블로그-그만의 아이디어  삭제

    골든 임플로이 - 후루카와 히로노리 지음, 김성은 옮김/은행나무이런 책은 참 읽었다고 하기도 뭐하고 남에게 권하기도 뭐하다. 그렇다고 딱히 아주 나쁜 책은 또 아니다. 그래서 이런 식의 책은 읽어도 대부분 리뷰를 남기지 않는다.하지만 일단 이 책을 읽으면서, 그리고 읽고 나서의 느낌을 간직하기 위해, 그리고 이런 종류의 책(뭐가 되기 위한 000가지 방법 따위)은 누구에게 필요한가에 대한 생각 때문에 남긴다.이 책의 효용성은 목차다. 일단 출판사가...

    2009/03/17 13:22
  2. 한화 신입사원들이 전하는 따끈따끈한 취업성공기 제 4탄!

    Tracked from 한화데이즈  삭제

    안녕하세요!! 주말을 쉬고 다시 컴빽한 한화 홍보팀 박혜원입니당^^ 제가 한화신입사원 취업성공기 3부작을 연재하면서,인기가 많으면 연장해 시리즈를 올리겠다고 공언했었습니다. 아!! 그런데 반응이 이리 싱거울 수가!! 혹여나, 행여나 주말엔 대박이 터질까 고대했지만 총 3부작에 댓글은 고작 2개가 달렸네요. ㅠ.ㅠ 하지만 한화데이즈(@hanwhadays) 및 제 개인(@spaceman80) 트위터를 통해 여러가지 의견을 주셨습니다. 내용을 정리하자면..

    2010/04/22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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