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세원 해프닝과 언론인 사건 개입

Ring Idea 2009/03/22 02:59 Posted by 그만
혹시 이 기사 기억하십니까?

"문건 명단 다 까져 그 사람들 난리 났다"
"기자회견 하지 말고 숨어... 보호해주겠다"
 [오마이뉴스 김환]

오마이뉴스의 특종(?) 보도로 세간의 관심사인 장자연 자살 사건과 관련된 유 대표, 그리고 유 대표를 만나러 간 서세원씨. 서세원씨는 기자 회견 하지 말라고 충고했다는 내용으로 각종 포털의 메인면을 장식하며 떠들썩 했죠.

사실상 내용 자체를 들여다봐도 '조각모음'이긴 하지만 발언 자체가 매우 미묘하고 다음 날 예정돼 있던 유 대표의 기자회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내용이었다는 점에서 연이은 후속 보도에 서세원씨의 개입이 마치 대단한 의혹 처럼 불거지게 됩니다.

그런데 뜬금없이 <시사IN> 기자가 이런 글을 올립니다.

서세원이 병원에 간 까닭은? [시사IN 주진우 기자]

맥이 확 풀려버리죠.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그치진 않습니다. 이미 쉬어버린 떡밥 같긴 한데 좀 생각해볼 것이 있어서 건져 올려봅니다.

오마이뉴스는 이 글 안에 등장하는 시사IN 주 기자의 독점 인터뷰 사실과 서세원씨가 발언한 내용들을 소개하며 한껏 억누른 상태의 불편한 심기를 드러냅니다.

"서세원씨, <시사인> 단독인터뷰 주선하러 유씨 병실에 갔다" [오마이뉴스 김환]

이런 점을 다 고려해도 서씨와 주 기자의 해명에 고개가 갸우뚱한 대목도 있다. 예를 들어 서씨의 측근은 병원에 가서 기도만 해줬을 뿐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0903181557561116). 그러나 당시 자리에 있던 주 기자의 글에는 서씨가 유씨를 적극 설득했다는 내용이 구체적인 멘트와 함께 들어있다.

서씨는 유씨에게 기도를 해줬다고 했지만, 이날 서씨와 동행했던 한 인사는 "유씨가 '나는 불교신도'라면서 기도를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어찌됐든 바로 옆에서 들은 시사IN 기자의 글이 훨씬 사실에 가까울 것이란 점은 오마이뉴스 기자도 인정하고 있습니다.

<사진은 권력이다> 블로거 썬도그님은 "진실도 빽이 있어야 얻어낼 수 있다고 증명한 시사인"이란 글로 다른 기자들을 결과적으로 물먹이며 서세원을 앞세워 단독 인터뷰를 얻어낸 시사IN 기자의 행동에 문제 제기를 합니다.

<호모 미디어쿠스> 블로거 Percy님의 경우도 "시사IN, 서세원 동행취재의 정당성은?"이란 글로 썬도그님과 비슷한 관점의 문제를 지적합니다.

하지만 오히려 다른 기자들은 시사IN 기자의 서세원을 앞세운 행위에 그다지 큰 문제를 삼지 않습니다. 이는 불법만 아니라면 각종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취재를 해온 기자들에게 이런 식의 지인을 통한 취재원 접근이 그리 어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이번 해프닝이 기자들을 불편하게 한 것은 기자회견 전에 등장한 서세원과 시사인 기자로 인해 기자회견 내용이 건조하고 단촐해져버렸다는 점이죠. 유 대표의 기자회견에 서세원씨와 시사인 기자가 뜬금없이 나타나 영향을 끼쳤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칼럼]서세원, 유장호 그리고 ‘물먹기’ 란 칼럼을 보면,

여기에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이번 사건은 한 여배우가 죽었고, 연예인 성상납 비리로 인해 연예계는 물론 온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상황이다. 유대표는 그 사건의 핵심 인물 중 한 사람이다. 그런데 기자회견 전에 기자가 그를 만나 ‘기자회견은 이렇게 저렇게 하라’라고 말을 했다고 한다. 이것이 과연 올바른가하는 것이다.

유장호 대표가 기자회견장에서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한다면, 그 자리에 있던 기자들이 확인 질문을 던지면 그만이다. 내용이 장황하고, 주관적이라고 해도 그것이 유 대표가 애초에 밝히려던 내용의 핵심은 아닐까. 기자와 서세원이 연예기획사 직원도 아닐텐데, 왜 이 부분에 신경을 쓴 것일까. 그리고 이날 서세원에게는 네티즌들의 곱지 않은 시선이 쏟아졌다.

....

18일 오후 유 대표는 기자회견을 열었고, 채 5분도 되지 않아 준비된 문건을 읽고 자리를 떠났다. 질문은 받지 않았다. 장황한 표현도, 10개가 넘었다는 문답 내용도 없었다.

기자 회견에 대해 감놔라 대추놔라 했던 시사인 기자의 발언도 문제고 그 때문에 다른 기자들이 결국 진실되고 좀더 정제되지 않은 '날 것'인 채의 유 대표 기자 회견을 놓쳤다는 아쉬움이 배어 있는 것이죠.

<송원섭의 피라피드> 블로거 송원섭 기자 역시 서세원의 병원행, 한편의 코미디 특종 글을 통해 시사인 기자의 '사건 개입'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정황을 볼 때 서세원씨가 '내가 유씨를 만나게 해 주겠다'고 나섰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병실 안으로 들어가 '단독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유씨가 18일 기자회견을 자청해 놓은 상태였다는 점이죠. 그리고 이 기자가 소속된 매체는 주간지입니다. 일간지나 인터넷 매체처럼 대응할 수 없습니다. 18일 기자회견을 해 버리면 특종이 날아가는 셈이죠.

그럼 왜 이들이 '기자회견을 취소하고 잠적하라'고 계속 설득했는지 알 수 있게 됩니다. 네. 바로 특종의 보존 때문이죠. 유씨가 기자회견을 해 버리면 특종 기사의 가치는 뚝 떨어져 버립니다. 하지만 유씨가 고집을 꺾지 않고 기자회견을 강행함에 따라 이 '특종 작전'은 무산됩니다.

....
이 기사에 따르면, 유장호씨의 18일 기자회견이 알맹이 없이 5분 만에 의견 발표만으로 끝난 것은 이 기자의 업적인 모양입니다(그런데 이런 걸 이렇게 자랑해도 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 기사에 따르면 '특종'은 무산된 것이 아니랍니다. 유씨가 4시간 동안 토로한 내용은 앞으로 시사인을 통해 독점 공개될 예정이라는군요.

다른 기자들이 물을 먹어서 기분이 나쁜가보다 하고 넘길 수도 있겠지만 이같은 내용의 문제 제기는 저널리즘에서 심각하게 다뤄지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기자는 관찰자인가 아니면 사건의 개입이 가능한 참여자인가에 대한 겁니다.

이 사진을 기억하십니까?



1994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보도사진으로 다큐멘터리 사진가인 케빈 카터의 사진입니다. 많이들 아시다시피 케빈은 수단의 아요드 식량센터에 보급을 타러 가던 어느 소녀가 걷다가 지쳐 쓰러졌는데 마침 그 뒤로 독수리 한 마리가 소녀를 응시하는 장면을 찍습니다. 기아에 대한 처참한 실상이 이 사진 안에 담겨져 있다는 점에서 수작이었죠.

그런데 이 촬영 이후 케빈은 독수리를 쫓아내고 소녀를 구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사진을 찍기 전에 독수리를 쫓아냈어야 한다고 문제를 제기했죠. 케빈은 이후 여론에 못이겨 자살했다고 합니다.(자살한 원인에 대해 너무 단정짓는 것 같아 이 문장을 취소합니다)

기자는 사건에 개입하는 것과 별도로 아예 사건의 중심이 되는 경우도 있죠. 꽤 오래 전에 이런 글을 썼죠.

2008/01/26 기자가 뉴스 주인공이 되는 세상


죽어가는 어린이를 카메라에 담아 전쟁과 기아의 참혹한 상황에 대한 기록을 남기는 것이 기자 정신이겠지만 그 아이를 얼싸안고 물이라도 한 모금 마시게 해주는 것이 인간된 도리는 아닐까요?

눈 앞에서 대통령 후보가 연설할 때 연단이 무너져 많은 사람들이 다치는 사고가 벌어졌습니다. 기자라면 연신 셔터를 누르면서 현장 기록을 해야 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중요한 장면을 놓치더라도 일단 다친 사람부터 구해내는 것이 나을까요.


원칙적으로 기자는 관찰자여야 합니다. 웬만해서는 사건에 개입되면 안 되죠. 탐구하는 정신으로 그 현장에 가는 것이지 그 현장의 상황을 바꿔 놓거나 현장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 그 곳에 있는 것이 아니죠. 물론 급박한 상황에서는 좀더 인간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 옳은 것이겠지만 원칙은 '관찰자'로 만족해야 합니다.

다시 앞의 서세원씨 해프닝의 경우 시사인 기자의 현장 취재는 매우 능수능란했으며 우연이든 의도된 것이든 취채 능력 면에서 칭찬 받아 마땅합니다. 물먹은 기자들의 시기에 그다지 영향을 받을 필요도 없습니다. 나중에 기자들끼리 물먹고 물먹인 이야기가 추억이 되는 동네니까요.

하지만 기자로서 사건에 개입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행동입니다. 물론 서세원씨의 조언이 더 컸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글에 드러난 정황상 기자회견에 대한 '조언'을 해가면서 상호 거리를 좁혀갔을 것으로 봅니다. 결과적으로 유 대표는 영향을 받았고 이 사건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유 대표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기자회견이 아닌 <시사IN> 지면에서 봐야 할 처지가 됐습니다.

물론 보통 기자로서 누군가를 인터뷰를 하게 되면 이런저런 사적인 이야기부터 상호 충고나 조언을 해주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나중에는 친해져서 형님동생이 되는 경우도 생기고 어깨동무하며 술친구가 되기도 하죠. 상황도 이해되고 정황도 이해되지만 그다지 칭찬할만한 '사건 개입'은 아니었다고 봅니다. 특종을 욕심내고 있다는 의도가 그 사건 개입에 숨어 있기 때문일 겁니다.

**덧, 주진우 기자의 인터뷰가 있군요. 첨부합니다. 이 인터뷰를 보고나서도 영향이 없었다고 단정짓기 힘들어서 이 글을 그대로 유지합니다.

 [인터뷰] 故장자연 전 매니저 인터뷰한 주진우 <시사IN> 기자 [PD저널]

-블로그 글을 보면 병실에 들어섰을 때 유 씨가 기자회견문을 작성하고 있었다는 말이 나온다. 그리고 기자회견 내용에 대해 조언하는 부분도 나온다. 유 씨가 18일 기자회견을 짧게 끝내도록 하는 데 영향을 끼친 것 아닌가?
기자회견문이 너무 길었다. 내가 보다가 너무 어렵고 복잡하다는 얘기는 했다. 그러나 나도 처음 보는 사람이고 그 사람이 나를 믿고 있는 사람도 아닌데, 내가 뭐라고 말 한다고 그 말을 듣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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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블로그 주인장 그만입니다. 그만에 대한 설명은 http://ringblog.net/notice/1237 공지글을 참고하세요. 제 글은 CC가 적용된 글로 출처를 표기하시고 원문을 훼손하지 않은 상태로 퍼가셔도 됩니다. 다만 글은 이후에 계속 수정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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