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수행해야 하는 프로젝트입니다. 피곤하고 자꾸 숨고 싶지만 프로젝트를 통해 하나하나 수행해오고 있습니다.
이 글을 읽기 전에 주의 사항 한 가지 :
다중인격장애가 올 수 있습니다... 쿨럭.--;
어렸을 때였죠. 그만은 초등학교 때 남들 앞에 서면 얼어붙고 말도 더듬고 얼굴 벌개지고 그런 소년이었습니다. 남과 대화하는 법보다는 스스로 대화하는 법에 익숙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혼자 집을 보면서 장난감들을 대화시키거나 싸우게 하면서 놀았습니다. 어려서부터 혼자 놀기의 진수를 느꼈더랬죠.
그렇다고 친구와 잘 못 지내고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내성적이었으나 다행히 자폐 단계까지 진행되지 않았죠.
연말 초등학교 가정통신문(맞나요? 기억이 가물가물~)를 집에 가져갈 때마다 '착하고 성실하나 내성적인 성격임'이라는 짧은 선생님의 지적을 보면서 이거 좀 문제 되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걸 좀 고쳐보기로 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요.
1. 질문하기.
제일 난관은 남들의 시선을 느끼는 것을 참는 연습이었습니다. 누군가 나를 주목하면 어쩔줄 몰라하는 스스로를 자제시키려면 그런 상황을 자연스럽게 그리고 자주 노출시켜주어야 했죠. 그래서 시작한 것이 '질문하기'입니다. 수업중 질문할 꺼리를 미리 만들어 놓고 계속 연습하고 혼자서 이 질문으로 상처받지 않기 위해 '핵심에 대한 질문'을 만들려고 노력했습니다.
질문을 하면 남들이 나를 봅니다. 질문 받은 사람은 당연히 선생님. 그리고 선생님의 시선을 따라 내게 주목되고 다시 선생님으로 흩어지는 시선을 느끼고 그것에 무감각해지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 질문을 하면 친구들이 바보같다고 생각하겠지?'라는 생각이 들어도 준비해 간 질문을 반드시, 수업이 끝나고 어수선해도 하고야 맙니다.
지금도 사람들을 만나면 질문부터 합니다. 다행히 상대방이 그 질문에 낚여서 이야기를 잘 엮어주면 좋고 아니라면 다시 내성적인 성격의 그만은 힘들어집니다.
단점은, 수업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준비해간 질문만 생각하게 된다는 거..--;
2. 손 들고 나서기.
이거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사람에게 가장 힘든 일중 하나입니다. 지금도 역시 그렇습니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남들과 묻혀서 손을 들고 나설 수 있는 상황부터 참여합니다.
'지우개 털어올 사람' 하면 손 들고, '이거 맞춰볼 사람' 하면 손 듭니다. 이 정도라면 견딜만 합니다.
제일 힘든 것은 '노래 부를 사람', '교지 편집위원 할 사람', '방송반 할 사람' 처럼 능력이 필요한 경우입니다. 물론 지금도 이런 상황에서 선뜻 나서지는 못하지만 어중간하게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으면 나섭니다. 처음에는 결국 실패할 것이라는 두려움에 떨지만 나중에 되돌아보면 참여했다는 것만으로도 스스로 대견하게 느껴집니다.
고등학교 때 KBS TV였나요? 비바 청춘이라는 프로그램 출연자를 뽑을 때 생각 없이 나서서 오디션을 보고 어이없게도 붙어서 생각지 못한 TV 출연을 했던 적도 있었죠. 담임 선생님이 어이없어 하더군요. 아무리봐도 내성적인 제가 무대 위에 올라가 남 앞에서 공연을 한다는 것이 황당하셨겠죠. 까짓거 떨어지면 어떻습니까. 얼굴 한 번 빨개지면 되죠.
기자 때도 누가 뭐 시키거나 부탁하면 알았다고 하고 억지로라도 합니다. TV, 라디오 출연, 인터뷰 응대도 지금 되돌아보면 바보같고 쪽팔리지만 요청이 왔을 때 거절하지 않아서 하게 된 경우입니다.
물론 나중에 집에 가서 쪽팔려 죽고 싶다는 생각을 참아야 하는 단점이 있습니다.
3. 청중 앞에서 발표하기.
소극적인데다 내성적인 성격으로 남 앞에서 그것도 자신의 생각을 말한다는 것은 엄청난 노동입니다.
그런데도 그냥 합니다. 사실은 의뢰가 들어올 때 '빼지 말자'는 자기 암시로 인해 바로 후회해도 약속 때문에라도 준비하고 남 앞에 서야 하는 상황을 스스로 만드는 것이죠.
남 앞에 나서기 10분 전 극도의 긴장감이 엄습해옵니다. 막 도망가고 싶고 5분 전에 갔다 왔던 화장실도 다시 가고 싶죠. 그러나 어차피 내게 주어진 시간이고 신경 쓰지 않고 진행합니다. 이 훈련은 아직도 진행중입니다. 물론 한 두번 정도 그런 자리가 있겠지만 그리고 나서 당분간 그런 자리 만들지는 않을 생각입니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엄청 힘들거든요. 그래도 남 앞에 몇 번 서게 되면 대충 요령도 체득하게 되고 더 잘해야 겠다는 생각보다 실수하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물론 발표를 듣는 분들은 아무것도 건질 것이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하.. 그래도 내성적인 저를 인간으로 만들기 위해 보시했다고 생각해주기를 바랄 뿐이죠.
4. 이기적으로 생각하기.
내성적인 사람들의 특징 가운데 하나죠. 남의 눈을 의식합니다. 더 심한 경우는 남의 생각을 지레짐작해서 남에게 나쁜 평가 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그럴만한 꼬투리를 잡히지 않기 위해 자기 안으로 숨는 경우입니다.
제가 또 그렇습니다. 이 블로그를 '그만의 아이디어'라고 매우 이기적으로 잡은 것 자체가 제 내성적인 성격 개조를 위한 프로젝트의 일환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네, 전 그렇게 이기적입니다.--;)
남을 배려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 생각을 반듯하고 분명하게 말하고 표현하는 것은 내성적인 사람에게 매우 위험한 일이죠. 남이 무어라 말하든 내 생각을 먼저 말하고 남이 뭐라든 내가 맞다고 스스로 자위하는 것입니다.
물론 실제로 공격적이면서 이기적인 사람을 당해낼 수는 없습니다. 더구나 나중에 자기 합리화에 빠져 허우적 거릴 때도 있죠.
5. 모르는 사람 만나 대화하기.
제 인생의 가장 놀라운 기적 가운데 하나가 '사람 만나는 직업'을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하하.. 이런 엽기적인.. 아무리 내성적인 성격 개조하려고 이런 일까지!--; 물론 의도한 것은 아닙니다만 어쩌다보니 그런 직업부터 사회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나서 다시 내성적인 성격과 어울릴만한 컴퓨터 잡지 기자를 시작합니다. 인터뷰 한 번 하지 않아도 책을 만들 수 있는 구조입니다. 몇 달 동안 은둔의 시간을 갖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정말 이래선 안 되겠다 싶었죠. 그래서 다시 취재 현장으로, 인터뷰 현장으로 나갑니다. 억지로라도 사람을 만납니다.
일단 어떻게든 통화를 하든 만나든 날짜를 구체적으로 못박아서 약속을 잡으면 당일 만나기 싫어져도 일 때문에라도 꼭 만나러 나가야 하는 상황을 또 만드는 것입니다.
물론 뜬금없이 만나는 것은 여전히 힘들지만 '일을 핑계로' 사람과 만나면 어떻게든 말하고 대화하고 교류하게 됩니다. 상황 속에 밀어 넣는 것이죠. 정말 만나기 싫은 사람이라도 일로써 만날 약속을 잡고 만납니다. 하늘이 제 내성적인 성격을 고쳐주려고 지금껏 수천 명과 악수하고 명함을 주고 받게 했나 봅니다.
물론 너무 많은 사람들을 억지로라도 만나면 인간 관계 자체가 옅어질 수 있습니다. 얼굴 따로 이름 따로 기억하게 되는 분리기억장애도 겪습니다.
혹시 내성적이신가요? 여전히 저도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고민이 많지만 내키는대로 또는 작정하고 성격을 고쳐보려 해보세요. 완전히는 아니어도 조금씩 바뀌는 내 모습을 발견합니다. 그렇게 작은 자신감부터 시작해보는 겁니다. 저와 함께 평생 지속될 성격 개조 프로젝트를 구상해보실라우?^^ (그냥 내성적인 게 좋으신 분은 해당 없습니다.. 절대 강요 아닙니다)
이 글은 문득 노운님께서 '내성적인 거 맞냐?'고 물어봐서 대답 겸 적은 글입니다. (블로깅 이렇게도 하는구나~야!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