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비자금 조성과 전방위 뇌물살포 등에 대한 이야기가 연일 쏟아져 나오고 있는 가운데 중앙일보의 태도가 매우 주목된다.

중앙일보는 아니나 다를까, 삼성의 해명이 나오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삼성측 주장을 비중있게 실으면서 김용철 변호사의 개인적인 성품이나 자질, 과거 전력을 문제 삼으며 '공방'이라는 말로 이 사건의 본질을 흐려놓고 있다.

세 군데 직장 옮긴 김용철 변호사 왜 떠날 때마다 …[중앙일보] 2007.11.07

세상을 보는 창이 하나나 둘 정도라면 아마도 중앙일보 독자는 김용철 변호사에 대한 반감을 키우기 충분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중앙일보의 적극적인 삼성 봐주기 기사는 이미 오랜 전통(?)이라고 봐야 한다. 삼성과 그룹분리를 이뤄냈지만 재벌신문 이미지를 씻기 위한 노력은 보이지 않으며 삼성과의 연관성을 은근히 강조하는 듯한 태도도 여전하다.

고 이병철 삼성 회장은 정치인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이후 중앙일보를 창간하면서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 내용은 1986년 출판된 이병철 회장 전기인 <호암자전>에 실린 이야기다.

“나는 4·19와 5·16을 거치며 단 한번 정치가가 되려 생각한 적이 있다. …기업활동에서 얻은 수익으로 세금을 납부해 정부운영과 국가방위를 뒷받침하는 경제인의 막중한 사명과 사회적 공헌은 전적으로 무시되고 부정축재자라는 죄인의 오명까지 쓰게 됐다. 이같은 경제인의 힘의 미약함과 한계를 통감한 것도 정치가가 되려고 한 동기였다. 그러나 1년여를 숙려한 끝에 정치가로 가는 길은 단념했다. 그런 올바른 정치를 권장하고 나쁜 정치를 못하도록 하며 정치보다 더 강한 힘으로 사회의 조화와 안정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를 생각한 끝에 종합매스컴의 창설을 결심했다.”
그의 정치인이 되지 못한 꿈은 정치인들을 쥐고 흔들 수 있는 힘을 지닌 언론사 소유라는 것으로 대리 만족을 느껴야 했다. 이후 삼성이 만든 또 다른 언론사 '동양방송'과 '중앙일보'는 충실한 그룹 기관지 역할을 자임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바로 그 유명한 1966년 사카린 밀수사건이다.

이 때 중앙일보와 동양방송은 연일 삼성측 입장만 되풀이 보도하며 본질을 흐리려는 노력에 경주하게 된다.

이런 내용은 이미 언론계에서는 수치스런 역사로 기록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한겨레의 다음 보도를 참고하자. 2001년에 있었던 보도내용이다.
[언론권력] 중앙일보 '삼성' 감싸기
http://www.hani.co.kr/section-005000000/2001/005000000200104021902088.html

삼성과 중앙일보와의 이같은 '원죄'는 역사를 통해 빈번하게 발생한다. 지난 번 MBC 이상호 기자의 X-파일 사건 때도 마찬가지였다.

삼성 X-파일의 본질인 삼성의 언론과 정치권, 검찰 등의 전방위 로비에 대한 이야기는 급속도로 변질되면서 이상호 기자가 취재원을 통해 얻은 테이프가 전량 검찰에 의해 압수되면서 어이없게도 이상호 기자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기소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이에 대한 지대한 역할을 한 곳 역시 중앙일보였다.

위키백과에 기록된 이상호 엑스파일 참고

하지만 일단 삼성과 중앙일보는 여타 반 삼성 분위기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8천억원의 사회 공헌 기금을 조성하기로 했다는 발표로 이어지고 이러한 대국민 기만행위는 역시나 중앙일보가 앞장서 보도한다.

그렇다면 중앙일보 기자들이나 삼성 직원들은 왜 이렇게 사회적으로 명암이 분명한 사건에 있어서도 뚜렷한 입장 표명을 침묵으로 일관하거나 엉뚱한 사안으로 눈을 돌려 보도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남았다.

이에 대한 좋은 언론계 자료가 있다.

영국의 미디어 학자인 허버트 갠즈는 1980년 "무엇을 뉴스로 결정하나(Deciding What's News, 1980)"이란 책을 통해 기자들은 왜 자신들의 양심을 지키지 못한 채 편집 정책에 동조할 수밖에 없는가에 대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저널리즘이란 무엇인가> 참고

1. 제도적 권위와 제재(Institutional Authority and Sanctions)
발행인은 통상 신문을 소유하고 있으며 순전히 사업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자신의 피고용인에게서 순종을 기대할 권리가 있다. 발행인은 피고용인의 일탈을 이유로 해고나 강등을 할 힘이 있다...(중략)...제재를 원용하는 것보다는 제재에 대한 두려움이 기자들이 순종하는 한 이유가 된다...(중략)...부장들은 편집방향에 어긋나는 기사를 무시할 수 있고, 이것이 불가능할 경우 기사를 '안전한' 기자에게 맡길 수 있다.

2. 감사하는 마음과 상급자 존중(Fellings of Obligation and Esteem for Superiors)
기자들은 자신을 고용한 회사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 기자들은 기사에 관한 가르침을 주었거나, 보호막이 되어 주었거나, 온정주의적인 호의를 베풀어준 편집국(보도국) 간부들에 대해 존경심 경탄 고마움 등을 느낄 수도 있다.

3. 지위 상승 열망(Mobility Aspirations)
모든 젊은 기자들은 지위 상승의 희망을 갖고 있다. 그들은 편집정책을 위반하는 것이 목표 달성에 심각한 장애가 될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었다. 실제로도 몇몇 기자들은 승진을 위한 좋은 방법은 1면에 큰 기사를 싣는 것이라고 얘기했다. 이것은 자동적으로 편집정책에 위반되는 기사를 쓰지 않음을 의미한다.

4. 편집정책 반대 집단의 부재(Absence of Conflicting Group Allegiance)
기자들을 위한 가장 큰 정식 조직은 '미국신문조합(ANG)'이다. 이 조합은 편집정책과 같은 내부 문제에 대해 가능하면 개입하지 않았다. 조합은 편집국(보도국)과는 무관한 조합이나 정치적 이해관계를 강조했다. 일단의 기자들이 편집정책에 관해 집단적인 반대에 나섰다는 증거는 없다.

5. 기자 직업의 즐거움(The Pleasant Nature of the Activity)
ㄱ. 편집국에는 집단적 소속감이 있다 : 기자는 편집자에 비하면 낮은 지위를 갖고 있지만 근로자로 취급당하지 않는다. 기자는 오히려 편집국 간부들과 함께 일하는 '공동 작업자(co-worker)'이다. 편집국 기자들은 그들이 좋아하는 '기사를 수집하는' 업무를 놓고 서로 마음이 맞는 상태에서 협력한다.
ㄴ. 기자 업무 수행은 흥미롭다.
ㄷ. 비금전적인 특권이 있다.

6. 뉴스는 가치가 된다(News Becomes a Value)
기자들은 24시간마다 소위 '뉴스'를 생산하는 게 그들의 일이라고 말한다. 뉴스는 중요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도 생산돼야 한다. 뉴스 생산은 계속적인 과업이다. 기사를 중심적 가치로 중시하다 보니 편집방향과 충돌이 일어나는 경우 객관적 보도에 대한 관심을 보류한다. ..(중략)...그들은 사호 구조를 분석하는 것 때문에 보상받는 게 아니라 뉴스를 얻는 것 때문에 보상받는다.


기자, 미네랄 캐러 생산되는 전투력 없는 SCV 운명

전직 기자인 그만에게 이런 냉철한 요인 분석은 매우 가슴에 와 닿는 말이다. 이는 여느 직장인들의 심정과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중앙일보를 욕하기 힘든 점이 이런 것이다. 중앙일보라는 태생 자체가 삼성과 떼어낼 수 없는 구조인데다 그 구조를 인지하고 있고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편집행위가 빈번한 곳에서 기자들의 독자성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또한 자신의 행동에 대해 의심하기도 전에 기자들은 다시 뉴스를 수집하러 나가야 한다. 끊임없이 미네랄을 캐내는 SCV 처럼 말이다.

기자라는 직업인의 비극은 이러한 편집 정책에 순응해가는 과정에서 자율성과 독립성 사회성이 점차 결여되어 간다는 점이다.

이른바 메이저 언론사에 다닌다는 것이 '비금전적인 특권을 부여한다'는 믿음은 체험적으로 봤을 때도 사실이다. 이는 매우 강력한 기자들의 직업적 만족도를 높여주는 요인이다.(심지어 마이너 언론 종사자들에게도) 하지만 이는 반대로 그 직업에 종속되어버리고 사회에 기여하는 공적인 업무를 행해야 하는 자신의 직업적 소명을 잊게 만드는 독이 되는 경우가 많다.

중앙일보의 추후 보도태도는 지속적으로 감시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어찌보면 중앙일보 데스크들은 스스로 올바르게 가고 있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런 확신은 중앙일보라는 직장과 직업이 그들에게 그 이상의 만족도를 주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삼성 비자금’ 보도, 기자들 시각은 [기자협회보] 2007.11.07

참고 포스트
2007/07/24 신문사가 먹고 사는 방법
2007/07/01 시사저널, 새 언론의 방향성
2006/10/25 [간단 정보] 언론 영향력과 신뢰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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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블로그 주인장 그만입니다. 그만에 대한 설명은 http://ringblog.net/notice/1237 공지글을 참고하세요. 제 글은 CC가 적용된 글로 출처를 표기하시고 원문을 훼손하지 않은 상태로 퍼가셔도 됩니다. 다만 글은 이후에 계속 수정될 수 있습니다.
2007/11/10 15:30 2007/11/10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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