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에서는 스케줄표가 생명입니다. 기사 가치가 기본적으로 검증된 아이템이 날짜에 맞춰 발현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죠. 5년마다 찾아오는 대선, 4년마다 찾아오는 총선, 매년 찾아오는 연말연시, 신년, 설날, 휴가철, 추석, 크리스마스.. 그리고 수능.
관공서와 은행 등 공공기관의 출근시간이 늦춰지는 국가 행사입니다. 언론사에서는 매년 되풀이되는 수능 시험장 풍경(엿붙이기, 후배 응원, 경찰 오토바이를 탄 수험생, 교문 앞 고개 숙인 어머니....)은 단골 메뉴죠.
올해도 그렇겠죠.
수능이 끝난 해방감에 술 먹고 뻗는 학생들도 또 비쳐지겠죠?
그렇다면 온라인은 어떨까요?
수능 관련 응원 메시지가 넘쳐날테구요.. 그리고 지식인마다 어느 대학 어느 과를 골라야 하는지, 합격은 가능한지, 이번에는 평균 점수가 어떨런지, 논술은 어떤 경향을 보이는지 다양한 질문이 쏟아져 나올테지요.
그 가운데 아마 지식 검색 서비스에서 흔히 보이는 대학 훌리건이 다시 기승을 부릴까봐 걱정입니다.
대학 훌리건은 지나친 애교심에 대학 관련 서열이나 우열에 관련된 질문에 꼭 따라붙는 답변들의 전형적인 형태로 가장 큰 특징은 '우리 학교가 00대학보다 좋아요'라고 외치고 있다는 점일 겁니다.
하지만 대학 훌리건을 오래 전부터 보면서도 별로 감흥이 없다가 오늘 문득 대학 훌리건들끼리의 '막장 베틀'이 이어진 글을 보면서 정말 안타까운 생각이 들더군요.
예를 들어 언론사 간부 출신학교, 대기업 임원 출신학교를 계량화해 1, 2, 3, 4... 등으로 순위를 매긴 자료들이 빠짐없이 등장하고 있죠. 또는 여기저기 대학 홍보 기사들이 펌질되어 날라다니고 어느 대학 출신 누구누구 하면서 유명인을 거론하기도 하죠.
또는 대학이나 학과에 대한 이른바 배치표를 근거로 어디가 어디보다 좋다 나쁘다하면서 우열 논쟁을 벌이기도 합니다. 본교와 분교를 비교하기도 하고 서울지역 대학과 수도권, 그리고 지방 대학을 스스럼없이 구분해 비교합니다.
씁쓸한 것은 이러한 글을 올리는 사람들이 대부분 재학생이거나 고등학생인데 이들에게 각인돼 있는 사회의 모습을 볼 때입니다.
"00대학 00과는 언론사 인맥이 많아서 취업에 도움이 됩니다(정정당당하게 실력으로 성공하기 힘들다면 모를까)"
"00대학은 대기업인 00그룹이 지원하면서 대학 순위도 오르고 사회 진출도 수월합니다."
"솔직히 사회 나갈 때 대기업 취업하려면 00대학 정도는 나와줘야 합니다. 인사담당자들이 그 외에는 원서를 쓰레기통에 바로 직행시킨다고 하네요."
"요즘은 인사담당자들이 취업자들의 출신 배경을 통해서 인맥을 확보합니다."
"괜히 00대학 00과 나오면 평생 중소기업만 전전하다 X빠지게 고생만 합니다."
"아무래도 일반인들이 보기에 00대학 00과보다 ㅁㅁ대학 ㅁㅁ과를 더 선호합니다."
이들에게 대학은 공부하는 곳이 아닌 취업 학원입니다. 이들에게 학교의 서열이 곧 사회와 인생의 서열을 결정짓는 중요한 잣대이며 기업 역시 겉으로 드러난 크기에 따라 서열이 정해져 있습니다. 물론 언론사는 두말 하면 잔소리죠.
대학은 일반인들이 평가하는 서열에 따라 자신을 끼워맞추고 기업 역시 주변인들이 생각하는 번듯한 직장만이 그들의 인생 최고의 가치입니다.
그들에게 무슨 말을 해줘야 할까요. 대학보다 과를 선택해라. 꼭 대학을 들어가야만 제대로 된 인생을 사는 것은 아니다. 기업은 지금 당장보다 미래 가치가 중요하다.... 등등?
이런 말을 늘어놔 봤자 그들의 부모는 1위 대학 나와서 1등 기업에 무슨 수를 쓰든 들어가야 '무시받지 않는다'라고 가르칠 것입니다.
요즘 대학과 보수 언론이 3불 정책을 정면 비판하고 해체해야 한다고 하고 일부 정당은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고도 하는군요. 그만은 3불정책은 3가지를 하지 말아야 하는 정책이 아니라고 보는데요. 대학 교육에 대한 정당한 재평가와 전통적으로 중요하게 생각되는 교육 평등권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으로 봐야 할텐데 세상은 그렇게 보지 않나 봅니다.
고등학생들이 함께 했던 4.19 혁명이 지나고 대학생들이 함께 했던 80년대 민주항쟁의 시대를 지나고 나니 2000년대에는 시대 의식을 반영하는 세대가 나타나주질 않는군요.
사회 변혁의 주체 세력이 보이지 않으니 보수의 반동이 더 크게 보입니다. 하지만 절차상의 민주주의가 회복된 지금 시점에 우리에게 학생들은 친구를 눌러야 내가 살아갈 수 있다는 정글 게임을 가르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것이 수능이라는 제도로 집결된 것은 아닌지 곰곰히 생각하게 됩니다. 이른 바 수능원죄론이랄까요.^^
대학 서열화에 따른 취업 불평등이 가져다준 우리 사회의 고통은 얼마나 거대한 것일까요. 좋은 대학이 나머지 삶을 보장해준다는 믿음과 신화가 초등학교때부터의 정글, 부모간의 정글, 구직자끼리의 정글 환경을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것이 우리네 인생을 고달프게 만들고 우리 자녀들의 인생을 조급하게 만들고 있죠. 그러는 사이, 이들의 인성 교육은 뒷전으로 밀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거만한 지식인, 배려 없는 훌리건이 양산되고 있어요. 또한 이러한 잔인한 상대평가의 게임이 남에게 양보하지 말 것을 강요하고 빈틈을 보이지 말라며 정글 속 포식자를 양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잔인한 게임 전후로 중요한 역할을 해온 것이 바로 수능입니다.
수능을 마친 학생들에게 십 수년 전 학력고사 끝물 세대로서 적어도 이런 이야기는 해주고 싶네요. 대학에 들어가든 못들어가든, 또는 원하는 과에 합격을 하든 원치 않는 과에 합격을 하든 그것과 상관없이 앞으로 남은 삶은 남을 죽여야 내가 사는 그런 세상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떠밀려서 정글 속을 배회 했다면, 이제는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고민하고, 더 치열하게 사색하고, 남들에게 더 배풀고, 남을 더욱 존중해주기 바랍니다. 또한 그것이 결국 나와 우리 모두를 위하는 것이라는 믿음으로 가득 찬 세상을 만들 수 있는 인재가 되어주길 바랍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진저리가 날 정도의 저질 (소위)일류대생 출신들을 많이 겪어봤습니다. 저는 내세울만한 대학을 나오지 못해서 그런가 적어도 그런 저질 일류대생(메이저 직장인, 언론인 포함)이나 거만한 해외파, 잔꾀 많은 가방끈들을 보면서 '사람 됨됨이'가 중요하다는 것을 참 많이 느끼게 됩니다. 또는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의지'가 없는 청년을 보면 절로 한숨이 나옵니다. 게다가 요즘 취업에 중요한 요소인 '열정' '패기' '끈기' '인간성' '가능성' '전문성'은 절대 출신 대학이 설명해주지 못하는 영역입니다. 가장 진보적이어야 할 세대들이 보수화되고 있다는 것을 좋아해서는 안 될 거 같은데 말이죠.
모쪼록 수능을 위해서 달려온 모든 학생들에게 응원 한마디를 던지고 싶었는데 어쩌다 보니 다른 길로 빠져버렸네요..^^;;;
- ■ "서울대생 보수화 경향 `뚜렷'" [연합뉴스] 2007.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