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그만은 SFX(특수효과)가 들어간 영화를 너무 즐겨 보는 마니아입니다.
제가 본 '감동적인 영화'를 꼽으라면,
E.T, 로보캅1, 에일리언2, 터미네이터2, 쥐라기 공원, 백투더퓨처 등을 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온통 환타지로 배경이 어색한 영화인 베트맨, 반지의 제왕 등은 별로 좋아하진 않습니다.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일단 배경 자체에서 현실감이 떨어져서 그런가 봅니다.
어쨌든 SFX로 떡칠한 영화인 스파이더맨 시리즈도 너무 재미있게 봤던 영화들이죠.
특히 특수효과 장면에서는 화면을 응시하게 됩니다. 그리고 놀라운 기술적 진보를 느끼죠.
최근에 본 특수효과 장면이 많이 삽입된 영화 3편은 '판타스틱 4: 실버서퍼의 위협', '트랜스포머', 그리고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디워'였습니다.
세 영화의 짧은 총평을 말하자면
판타스틱 4-실버서퍼의 위협 : 이안 그루퍼드의 늘어지는 어색한 효과만 뺐어도 실망이 덜했을 영화. '차라리 고무 인형을 쓰지 그랬어~'
트랜스포머 : 막판의 어색한 독백 장면만 뺐어도 킬링타임용으로 제격인 영화. '도대체 누구에게 말하고 싶었던 거니?'
디-워 : 친절하지도 않고 설득력도 약하고 긴박감도 없는 이야기 구조만 뺐어도 눈요기용으로 우수한 B급 영화. '어머 배우들 표정이 CG 아냐? 시멘트 바른 거 같애'
솔직히 말씀드리면 셋 다 조금씩 실망했습니다.
다 일장일단이 있겠지만 판타스틱 4-실버서퍼의 위협은 다른 두 영화에 비해서 더 최악의 영화입니다. 실버서퍼와 각기 다른 능력을 갖춘 초능력자들은 만화 속에서 실감나게 튀어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곳곳에서 급조한 듯한 특수효과의 어색함 때문에 재미가 반감되었습니다. 특히 실버서퍼 캐릭터는 좀더 강력한 캐릭터로 탄생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터미네이터2에서 보여준 특수효과가 자꾸 떠올라 영화 감상에 장애를 일으킬 정도였죠.
이야기 구조는 엉성한 반면 각 캐릭터에 대한 각종 갈등 설정은 만화가 원작임을 감안할 때 그나마 점수를 높게 줄 수 있는 부분이기도 했습니다. 판타스틱 4 전편을 재미있게 봤던 저로서는 후속편 격인 이번 영화에 대해 많이 아쉬웠습니다.
트랜스포머의 경우 화려한 볼거리로는 정말 제격이더군요. 만화를 원작으로 했으면서도 특수효과가 들어가 각 캐릭터를 재탄생시킨 점에서 정말 너무 좋았습니다. 특히나 트랜스포머 캐릭터에 집중하면서 주변 인물들에 대한 묘사도 꽤나 신경썼다는 것을 느꼈고 유쾌한 가족영화로는 제격이었죠. 도심 속 트랜스포머의 화려한 액션 장면은 SFX의 기술적 진보를 다시 한 번 보여줬다고 평가해도 아쉬울 것이 없을 정도였으며 솔직히 아무 생각없이 보기에 괜찮았습니다.
하지만 트랜스포머의 어색한 마지막 독백 부분에서 거의 영화 전체의 재미를 절반 이상 깎아 먹었습니다.
디-워, 실망스럽지만 후속편이 기다려진다
마지막으로 디-워. 정말 많이 실망했고 정말 많은 기대를 갖게 합니다. 실망한 이유는 이미 영화를 관람하셨던 분이라면 동감할만한 이야기겠죠. 스토리라인이 짜임새도 없고 배경이 뒤죽박죽인데다 전설에 대한 이야기나 중간중간 배우들의 어색한 연기에 어색한 카메라워크 등은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할 부분 같군요.
92분의 러닝타임은 아무래도 디-워의 세계관을 투영시키기에는 너무 짧았는지 아니면 편집이 어색했던지, 그것도 아니면 시나리오 자체가 6년 동안 지나치게 특수효과를 먼저 염두에 두고 집필이 되었던지 모르겠지만 어색한 연출과 엉뚱하게 튀는 이야기 전개는 중간중간 실소를 머금게 하더군요. 특히 '나쁜 브라퀴'의 총대장격의 연기자는 정말 '서프라이즈용'이더군요! 바닷가의 생뚱맞은 키스신은 어이 없다 못해 황당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럼에도 디-워에 대한 큰 기대는 꺾이지 않았습니다. 한국에서 이 정도 기술력을 갖출 수 있었다는 점에서는 정말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고 싶습니다.
예전에 3D 그래픽 디자이너와 함께 일해본 적이 있었는데 그 사람의 꿈이 '영구 아트무비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국내에서 마음놓고 실사형 3D 애니메이션을 구현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라는 그의 설명이 7년여가 지난 지금에서야 이해가 갑니다.
저도 인테리어 디자인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에 오토캐드와 3D맥스를 배운 적이 있었지만 단순한 오브젝트 생성조차 창의력에서 딸려서 일찌감치 포기했습니다. 특히나 가공할만한 3D 랜더링 시간은 인내력의 한계를 실험했었으니까요. 디-워의 모든 3D 오브젝트의 탄생과 실사와의 합성, 그리고 3D 랜더링에 이르는 과정은 정말 6년의 시간을 설명하는 데 충분합니다. 특히나 무모한 낯신 합성과 3D 오브젝트에 동물의 가죽 표면을 선택했다거나 생명체의 출렁임까지 표현하려는 했다는 점에서 정말 디-워 프로젝트가 얼마나 무모한 도전이었는지를 설명해줍니다.
무모한 도전에 대한 깊은 애정
미끈한 유니폼을 입은 슈퍼 히어로를 등장시킨 베트맨, 슈퍼맨, 스파이더맨 시리즈나 트랜스포머 등에서 표현되는 미끈한 금속 표면과는 달리 파충류의 살아 숨쉬는 피부는 CG 기술에 있어서 표현하기 더 어려운 작업이죠. 게다가 낯씬이라니, 이건 색보정이나 배경과의 합성에 있어서 얼마나 지루한 후반 작업 과정을 거쳤는지를 짐작케 합니다.
건물 파괴씬 등은 미니어쳐를 많이 쓴 것으로 보입니다만, 기존 한국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질적인 차이를 보여줬습니다. 특히 미니어쳐 폭파나 파괴씬에서 파괴되는 부분 이외의 건물 떨림 등이 적어 현실감이 높아졌습니다. 물론 조선시대의 폭파씬이라거나 영화 제작 초반에 제작된 것으로 짐작되는 건물 폭파씬 몇 장면은 눈에 거슬리긴 했지만 한국 SFX에 있어서 장족의 발전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솔직히 미니어쳐 제작에 수개월이 걸리지만 한번 폭파씬을 찍는 시간은 불과 몇 초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심 감독이 어색한 것이라도 은근슬쩍 끼워넣고 싶을 것이라는 심정을 이해합니다.
또 하나, 기존의 한국영화의 사운드와는 확실히 질적인 진보를 이뤘습니다. 할리우드의 사운드 기술팀이 도움을 줬는지는 모르겠으나 각 괴물들의 괴성이라거나 표호하는 사운드, 그리고 배우들의 음성들이 기존 한국영화에서 고질적으로 지적되던 '붕뜬 사운드'의 제약을 많이 뛰어넘은 듯 보였습니다.
그래서 디-워2가 많이 기다려집니다. 스토리라인과 배경, 그리고 등장인물의 캐릭터 묘사에 좀더 신경 쓰고 3D 캐릭터들의 움직임을 좀더 꼼꼼하게 잡아내는 카메라 워크에 신경을 쓴다면 장수 시리즈가 될 가능성도 높습니다.
심형래 감독님 고생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