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이 날을 기억하기 위해 원문을 저장해 둘 목적으로 작성됐습니다. 추후 이와 관련된 그만의 의견을 제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47개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긴급회의 결의문..
‘언론탄압’이 맞는지 가슴으로 답해주십시오
47개 언론사 편집·보도국장께 드리는 공개질의
언론사 편집·보도국장이라는 자리는 중책입니다. 한 언론사의 취재, 편집, 보도를 책임지는 ‘기자의 꽃’입니다. 사회적으로는 공인 중의 공인입니다.
그런 국장들께서 한 자리에 모이셨습니다. 그것도 48년 만에 47개사에서 말입니다. 결코 보통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평기자들이나 고위 편집간부들이 단체의 명의로 혹은 출입처의 이름으로 정부의 취재지원선진화 방안에 대해 어떤 의견을 내는 것은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기자들의 사령탑이자 최종 책임자인 국장들이 하나의 사안 때문에 모여 집단으로 공개적인 의견을 냈다는 것은, 사안의 심각성이 보통이 아니라는 얘기겠지요.
지난 31일, 저희의 생각을 담은 글이 <청와대브리핑>을 통해 나갔지만, 국장들께서 모인 사안의 무게를 감안해 진지한 마음으로 몇 가지 확인하고 질의하는 것이 서로간의 책임 있는 자세라고 판단돼 공개질의를 띄웁니다.
1. 47개 언론사 참석자 모두가 ‘결의문’에 동의합니까?
저희는 먼저 그 자리에 참석하신(일부는 위임장으로 대신했지만) 47개 언론사 참석자들이 결의문의 주장에 대해 아무 이견 없이 동의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편집·보도국장 결의문’이라는 형식은 전무후무한 일입니다. 그 만큼 내용과 절차와 형식에 있어 설득력을 갖춰야 합니다. 그런데 결의문을 보면 저희가 보기엔 단정적인 상황인식, 사실을 호도한 대목, 지극히 주관적인 표현이 적지 않게 눈에 띕니다.
참여정부의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이 “군사정권 시절보다 질적으로 더 나쁜 언론탄압이다”, “언론의 자유를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반헌법적 처사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진지하게 묻습니다. 한 분, 한 분 모두 동의하신 겁니까?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진실로 이번 조치가 군사정권 때의 언론탄압보다 훨씬 고약하다고 인식하고 계십니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정권의 대언론 정책보다 ‘죄질’이 나쁘다는 데 동의하십니까?
평생의 기자생활을 돌아봤을 때 이보다 더 힘든 시절은 없었다는 절박한 위기감으로 결의문에 동의하신 것입니까?
부디 답해 주십시오. 다양한 사고와 가치관을 지닌 국장들께서 한결 같이 이런 인식을 갖고 있다면 각 사안을 놓고 진지하고 근본적으로 토론을 해야 할 사안입니다. 우리도 한국 언론의 장구한 투쟁사와 수난사를 모르지 않습니다. 정말 참석자들이 모두 언론인으로서 자기 이름의 무게를 실어 그렇게 주장했다면, 정부와 언론의 괴리는 그냥 방치하기에는 너무 심각한 상태이기 때문에 책임 있는 답변을 듣고 싶은 것입니다.
2. 정부쪽 입장도 충분히 파악하고 있습니까?
정부의 구상이 다 옳을 수는 없겠지만, 모든 현상엔 양면이 있습니다. 이번 조치도 언론계가 열린 마음으로 돌아봐야 할 부분은 일체 없다고 보시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살펴볼 필요도 없는 ‘악’ 그 자체라고 모두가 생각하십니까?
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언론계는 총리훈령을 특히 문제 삼고 있습니다. 훈령 가운데 언론계가 깊이 우려를 제기한 문제의 대목은 대화를 통해 조정해볼 여지가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나머지 조항은 어떻습니까. 오히려 이번 조치가 공직자들의 취재회피 수단이 되지 않도록 강제하는 내용, 성실한 취재응대를 의무화 한 내용들이 대부분입니다.
훈령의 제정배경 역시 이런 요구를 한 언론단체들 입장을 감안해 만들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 점은 알고 계십니까? 알고 계시다면, 훈령제정을 요구한 언론단체들이 정부와 한 통속으로 언론을 옥죄기 위해 공범이 됐다고 생각하고 있습니까?
훈령과 별개로 정부가 언론계 대표들과 정보공개제도 확대를 위한 TF를 구성해 머리를 짜내고 있는 상황은 알고 있습니까? 또 공직자들이 내부고발을 할 경우, 현재 정해진 정부의 해당 기관이 아니라 언론기관에 고발하는 것도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하는 사상초유의 방안을 정부에서 강구중이란 점도 알고 계십니까?
취재접근권 제한을 우려해 핵심적 개선사항을 전달한 대표적인 부처 출입기자들의 요구사항이 정부와의 대화과정에서 대부분 수용됐다는 점도 알고 있습니까?
이런 모든 점에도 불구하고 일련의 과정이 하나같이 ‘취재봉쇄’요, ‘기자들의 접근을 가로막으려는 일관된 목적을 지닌 것’으로 모두들 보고 결의문에 참여하신 것입니까?
또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아직도 일부 기관의 기자실은 몇몇 언론사의 폐쇄적 전유물입니다. 정부는 그런 구조를 개방형으로 고치고자 합니다. 한정된 언론사들은 오붓한 공간이 없어지니 불편하겠지만, 수혜를 입는 언론사가 더 많습니다.
그런데 그 날 모임엔 그런 부조리 구조를 질타했던 일부 언론사의 국장들까지도 참석하셨습니다. 그 분들께 묻고 싶습니다. 지금처럼 그냥 가자는 말씀인가요? 다시 없던 일로 돌릴까요? 후배 기자들이 기자실 입구에서 문전박대를 당하는 과거로 회귀할까요?
언론사마다 처지가 다르고 입장이 다를 것입니다. 국장들마다 가치가 다르고 판단도 다를 것입니다. 그런데도 획일적 성토의 목소리가 일치되게 나온 것은 당일 현장분위기를 이끈 주최측의 주도에 휩쓸려서 입니까, 아니면 그저 묵시적 동의의 결과입니까?
3. 집단행동이 불가피했다는 데에 모두가 동의합니까?
언론사 편집·보도국장은 누가 모이라 해서 모이고 누가 어느 쪽으로 가자고 해서 가는 분들이 아닌 것으로 저희는 알고 있습니다. 가장 큰 취재원인 대통령이 지난 몇 년 동안 가장 민감한 국정 이슈를 갖고 대화하자고 정중히 초청해도 안 오는 일부 신문이 종종 있었습니다. 저희로선 유감스럽지만, 그런 위치가 국장입니다.
국장 개인은, 개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편집국 혹은 보도국을 대표합니다. 때로는 회사를 대표할 때도 많습니다. 그 만큼 무거운 자리일 겁니다.
집단으로 모이고 집단으로 의견을 낼 만큼 한가한 자리도 아니요, 집단으로 움직일 수 있을 만큼 만만한 자리도 아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일부 신문이 48년 만에 모였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48년…. 그 세월의 무게가 저희를 슬프게 합니다. 왜 그런지는 잘 아실 것입니다.
지난 48년 동안 모임이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은 둘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48년이든 148년이든 세계 어디에서도 언론사 편집·보도국장이라는 자리는 그렇게 집단으로 모여 행동을 하는 자리가 원래 아니거나, 이번 사태가 그 만큼 위중하기 때문일 겁니다. 모인 분들은 어느 쪽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전자라면 이번에 갑자기 왜 모였는지 누군가 명쾌하게 말해 주십시오. 아마 후자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면 누군가 명쾌하게 말해 주십시오. 기자생활 수십 년 하시는 동안 무엇을 했습니까. 우리 언론사의 그 숱한 굴곡의 세월, 역사의 숨 막히는 고비고비에 이만큼 결연하게 항의해본 일이 있습니까? 기자들이 정보기관에 끌려가고 해고될 때, 5공정권이 보도지침이 편집국에 ‘하달’될 때는 뭘 하셨습니까, 정권 핵심인사가 기사를 넣어라 빼라 강압할 때는 할 말을 했습니까?
결의문엔 이런 표현이 있었습니다. “선배 언론인들과 국민의 성원을 가슴 깊이 새겨온 우리는 이번 사태를 맞아 역시 언론자유는 구걸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희생을 무릅쓰고 쟁취하는 것임을 새삼 절감한다….” 동의합니다. 그러기에 답을 구하려 합니다.
번거롭게 생각 마시고 부디 말해 주십시오. 저희에겐 중요한 문제입니다. 국장들 개개인께선 20년 이상의 기자생활을 하신 분들입니다. 언론계에서 정치권력과의 온갖 신산을 다 겪어 오신 분들입니다. 과거의 그 많은 소용돌이보다 지금의 상황이 견디기 힘든 굴욕이라고 생각하는지, 그 만큼 이 정부의 악행이 심각하다고 느끼는지 정말 진지하게 확인해보고 싶습니다.
4. 품격에 맞는 절차가 선행됐습니까?
마지막으로 남는 질문이 있습니다. 시비를 걸려는 건 아닙니다. 지엽적이긴 하지만 ‘48년만의 모임’이라고 하니 절차와 형식이 궁금해서 그렇습니다.
이번 모임은 신문방송편집인협회(편협)가 연락을 한 것으로 압니다. 편협은 회원 개개인이 참여하는 임의단체입니다. 본시 국장단 모임은 정형의 틀을 갖고 있지 않은 것으로 압니다.
그렇다면 편협과 국장단 모임의 상관관계는 무엇입니까? ‘편협=편집·보도국장단’입니까? 아니면 편협 회원간 모임으로 시작했지만, 분위기에 따라 국장단 일동의 성명으로 현장에서 둔갑시켜 위상을 높인 것입니까? 그에 대한 동의는 이뤄진 것입니까?
또 모임의 성격이나 결의문 내용은 사전에 개개인에게 보내 동의를 받은 것입니까, 아니면 현장에서 배포해 채택한 것입니까? 미리 고지한 내용이면 각 언론사의 중론을 모은 것입니까? 현장에서 채택했다면 충분한 토론은 거쳤으며, 직접 참석하지 않은 국장들의 동의는 사후에라도 거친 것입니까?
개개인이 모두 서명을 한 것입니까, 아니면 회의 참석만으로도 동의로 간주한 것입니까?
가장 궁금한 것은 ‘편집·보도국장 일동’으로 돼 있는 결의문의 성격입니다. 회사를 대표한 결의입니까, 국장들 개인의 결의입니까? 그 어느 쪽이라도 언론은 ‘불편부당’ ‘중립’ ‘공평무사’의 가치를 지엄하게 요구받습니다.
그날의 결의가 회사를 대표해 결의한 것이라면, 해당 언론사가 이번 사안에 대해 중립보도-균형보도를 포기하고 특정한 입장을 회사방침으로 정했다고 봐도 되는 것인지요? 개인의 결의라면 취재, 편집, 보도의 최고 책임자가 특정한 사안에 대해 개인적으로 특정한 입장으로 집단행동을 취한 상황에서 보도의 중립성은 무엇으로 보장하겠다는 것인지요?
저희의 공개질의에 대해 참석자 모두가 자사 매체를 통해서든, 서한을 통해서든, 구두로든 시각과 입장을 분명히 밝혀 주시길 요구합니다. 48년만의 모임에 걸맞는 책임과 무게로 답해 주시길 원합니다. 한국언론 발전을 위해 대단히 중요한 계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희 역시 이번 모임에 대해 시간이 얼마가 걸리더라도 성의 있고 진지한 자세로 토론할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메아리가 없더라도, 국장단 한 분, 한 분이 그 동안 견지해 온 언론자유의 가치와 신념을 놓고 공개적인 토론을 해보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긴 이야기는 나중에 쓰기로 하구요.^^ 이런 걸 두고 '점입가경'이라고 하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