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매체는 여론을 조작할 수 있을까? 각 개인은 저마다 독자적인 생각을 갖고 있으며 사회적 행동에 있어서도 비교적 남들과 어깨동무하면서 돌아다니지 않는 이상 남들과 똑같은 반응을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대중매체는 여론을 조작할 수 있는 것일까? 대중매체의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왜 대중매체와 여론은 선후 관계가 뒤죽박죽되면서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것일까?
동조현상
괜히 유식한 척하면서 '싱크로니 경향'이라고 말해보자. 좀 쉽게 말하면 '사랑하는 사람을 닮는다', 또는 '같이 자란 형제끼리 목소리와 말투가 비슷하다', '오래 산 부부는 서로 닮아간다' 등의 쉬운 예를 들며 한자어로 풀면 '동조현상'이 그것이다.
사회적으로 이러한 동조현상은 비일비재하다. 맹모삼천지교의 사례로 나오는 맹자의 어린 시절 사회 환경에 따른 따라하기 행동은 우리가 쉽게 알 수 있는 예이다.
또는 예수가 막달라 마리아를 비난하는 주변인들에게 '죄없는 사람들은 그녀에게 돌을 던져라'고 말하자 주변인들 누구도 돌을 던지지 않았다. 방금전까지 돌을 던질 태세였을 그들이었지만 갑자기 동화되어버린 것일까, 아니면 감화된 것일까.
심리학적으로 동조현상은 이러한 주변인들의 행동을 설명해준다. 즉, 그 자리에서 권위를 가진 자가 말하는 데 반하는 생각이 있어도 혼자 돌을 던질 수는 없는 것이다. 누군가는 돌을 던져줘야 내 맘이 편할 텐데 주변인들이 서로를 돌아보며 쭈뼛쭈뼛했을 것이고 아무도 돌을 던질 수가 없었을 것이다.
"다들 죄가 있으니 못 던졌지"라는 해설은 순진한 해석이다.
베르테르 효과
자살과 살인에 대한 보도가 있을 때쯤 한번씩 등장하는 대중매체 속 칼럼 소재다. 사람들은 유명인의 자살 보도를 접했을 때 사회적으로 동조현상을 일으키고 자살에 대한 합리화가 이뤄지면서 자살율이 급격히 증가한다는 것이다.
이른 바 '울고 싶은 데 뺨 때린다'는 속담의 일환이라고 봐야 한다. 이른바 '방아쇠 효과' 같은 것이다. 우울하고 자살하고 싶은 충동이 있을 때 자신이 익숙하게 보아오던 사람이 자살했다는 소식은 자살에 대한 두려움을 잊게 만들어주고 자살을 실행할 수 있도록 격려해준다는 것이다.
대중매체는 사람들의 원초적인 두려움에 대한 관심을 알고 있다. 그 이후는 그다지 생각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부정적 사고에 대한 전염성은 긍정적 사고의 전염성보다 높다.
꼭 자살이 아닌 사회적 우울증을 유발하기 위한 기재를 설명하기에도 베르테르 효과에 대한 설명은 매우 재미있다. 유명인들에게 이런 말을 자주하게 만들어 보자.
"잃어버린 10년"
"경제 파탄"
"좌파 지배로 민생이 피폐해졌다"
사람들은 사회적 우울증에 대한 합리화를 유명인의 발언에서 따온다. 그것이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이든 좋아하는 사람이든 가리지 않는다. 언어는 반복에 의한 습득이며 언어에 의한 사고 지배는 당연하다. 그렇게 사람들은 대중매체에 지배를 받게 된다.
만만치 않은 대중매체
개인 매체, 즉 1인 미디어가 주목받고 있는 시대라고 하지만 대중매체 속 개인은 일종의 사례에 불과하다. 마치 모든 사람들, 또는 다수의 경향을 제시하기 위해 선택한 개인의 사례는 그 자체로 존재하지 않는다.
대중매체는 '우리는'이라는 말로 자신을 객관화시키며 '권력에 대한 항거'로 대중과 같은 약자의 입장에 서 있는 듯한 말로 동조현상을 일으킨다.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우월함을 확신하지 못한다. 늘 자신들이나 자신의 주변인들을 약자로 인식한다. 이는 대중매체가 영향력을 가지고 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회 심리학적 배경이 된다.
그래서 대중매체는 당혹스럽다.
"정치적 성향은 마음에 안 들지만 정보는 정말 볼만하더라"
특정한 신문에 대해 사회적 거부감을 개인 차원에서 해소하기 위한 논리로 개발되고 있는 이 문장은 정말 재미있게도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믿는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들이 평가하는 '품질'에 대한 비교 평가는 신뢰할만큼의 자료를 바탕으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단순한 자기 경험과 주변인의 평가에 대한 묵시적 동의에서 적극적인 동의로 발전해가는 과정을 함축하고 있는 말이다.
"제아무리 욕해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보는 신문이다. 독자가 선택한 1등 신문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문장에 대해 아무도 이의제기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전체 가구 구독률은 43%이다. 구독 가구중에서 80% 정도 내외를 1, 2, 3등 신문이 각각 차지하고 있다. 각 신문마다의 구독 가구는 전체 가구 가운데 10%에 불과하다.
비정상적인 전국종합지 위주의 신문 구조인 우리나라에서도 1등 신문은 전체 가구의 10% 정도의 점유율을 가진 것이다.
물론 회독률, 신문들끼리의 동조현상, 사회적 영향력자에 대한 영향력 등은 논외로 쳐도 이들이 '국민을 위한다'고 말하는 명분은 의외일 수밖에 없다.
선출받은 소수에 의한 다수의 지배 합의는 현대 민주주의의 기본이라고 하지만 '선출되지 않은 소수에 의한 다수의 지배력'은 한국적 이상현상에 불과하다.
그래서 47인의 언론사 편집 보도 수장들의 모임은 '안타깝고 안쓰럽다' 여기에 발끈하며 대응하는 청와대는 더 '안쓰럽다'
참고 포스트 :
2007/09/03 [점입가경] 취재선진화방안과 언론
2007/09/02 시티즌 마케터, [결국 1퍼센터의 잔치?]
2007/08/23 언론계 내부는 성희롱 무법지대?
2007/08/06 기자 2.0, 기자들은 준비 됐는가.
2007/07/27 탈레반, 인터넷, 그리고 인지부조화이론
2007/07/24 신문사가 먹고 사는 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