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이었다. 소리바다와 벅스뮤직이 인터넷에 등장했던 시기가 말이다. 그로부터 7년이 넘게 지루한 '불법과 합법 서비스'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의 말대로 "업계와 저작권자, 소비자가 함께 지쳐가고 있다."
가장 최근의 디지털음악계 이슈는 음원 사용료 징수안을 둘러싼 분쟁이다. 지난 6월 20일 디지털음악산업발전협의체(이하 디발협)은 음악 신탁관리 3단체가 문화관광부에 제출한 '음악 사용료 징수 규정 개정안'에 대해 재심 및 반려를 요구하는 의견서를 저작권 저작권심의조정위원회에 제출한 것이다.
벅스의 경우 저작권자와 협의 없이 지난 2월 월 4000원에 DRM 기능이 제거된 파일을 무제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는 서비스를 시작했다가 서울음반, CJ뮤직 등 음반제작사들의 음원 복제 및 전송 금지 가처분 소송이 제기되자 두 달 정도 후에 서비스를 전면 중단한 바 있다. 반면 소리바다의 경우 월 3000원을 내면 P2P 사용자끼리 주고받은 음악파일을 무제한으로 다운받을 수 있는 서비스를 최근 월 4000원으로 요금을 상향 조정한 채 지속하고 있는 와중에 불거진 신탁단체와 음반업계와의 불협화음인 셈이다.
표면적으로는 SKT의 멜론, 엠넷미디어 등 기존 사업자들이 DRM을 이용한 월정액 5000원 서비스를 하고 있는 가운데 음악 신탁단체들이 사실상 소리바다가 P2P를 이용한 무제한 다운로드 서비스를 월 4000원에 이용할 수 있도록 허용함으로 인해 생긴 역차별 논란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 논란의 이면에는 기존 음악계를 형성해 온 기획사, 음반사 등이 이미 큰 몸집으로 성장한 소리바다가 막강한 자금력을 통해 음악계 전체를 종속시키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배경에 깔려 있다.
소리바다는 P2P 서비스와 다운로드 서비스로 벅스(구 벅스뮤직)는 스트리밍 서비스와 다운로드 서비스로 영역을 확대해가며 당당히 상장되었고 대규모의 자본을 보유한 입김 강한 기업으로 발돋움하고 있지만 음악계의 시선은 곱지 않다. 직설적으로 말해 "불법으로 시작해 덩치를 키우더니 이제는 돈으로 시장을 장악한 악덕 기업이 되어 버렸다"라는 비난의 목소리는 여전하다.
문화관광부 역시 업계가 합의를 통해 도출됐다고 가져온 안을 무턱대고 막을 수도 없는 노릇인데다 버젓이 법적인 신탁단체들의 안을 놓고 반대하거나 새로운 가격 정책을 내놓기에도 입장이 불분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벅스는 최근 우회 상장 등을 통해 자금력을 확보해 연예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을 사들이면서 종합 음악 엔터테인먼트 계열화를 꿈꾸고 있어 기존 음반사나 연예 기획사들에게는 더욱 위협적이다. 또한 소리바다 역시 P2P 시장 확대를 꿈꾸면서 상대적으로 불편한 DRM 이슈를 비켜가는 등 대기업 계열 음악 서비스 업체들과의 회원 확보 경쟁에도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고 있다.
이 두 회사는 기존 음반 업계에서 볼 때는 불법과 탈법, 편법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면서 막강한 자본력을 앞세워 시장을 교란시키는 장본인으로 비쳐지고 있는 것이다.
반면 벅스나 소리바다는 새로운 영역의 유통 방식에 대한 대처가 늦었던 기존 음반업계가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며 불만이다. 특히 음반 산업 전체를 키우는데 역량을 집중하기보다 무차별적인 송사를 통해 디지털음악시장의 조기 시장 안착을 방해하고 있다고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게다가 기존 음반사들이 초기 디지털음악시장에서 사용자들의 요구를 무시한 채 곡당 가격을 지나치게 부풀려놓고 음악 감상 방법도 불편하게 만드는 등 시장 초기 진입 전략의 실패 책임을 엉뚱한 곳에 물으려 한다고 소리바다는 주장한다.
이런 상황에 적극적인 개입의지를 보이지 못하고 있는 정부는, 업계가 각자의 이익과 관련된 입장만을 되풀이 하면서도 정부의 적극 개입에 대해서는 불편한 심기를 나타내는 등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생각이다. 시장의 질서가 교란돼 있는 상태에서 어느 입장 하나도 완전히 틀리진 않기 때문에 업계의 합의가 우선되어야 정부가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스텝바이스텝이냐 멀티태스킹이냐
이런 상황에서 앞으로 진행되어야 할 더 많은 논의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어떤 합의가 필요할지에 대한 고민은 늘 뒷전일 수밖에 없다. 음악의 디지털 상품화 이슈나 IPTV 음악 서비스, DRM 호환 여부, 저작권자 및 저작인접권자간의 상호 권리 침해 문제, 시장 담합, 끼워팔기 및 이통사의 서비스 독점 등 불공정 경쟁 논란 등이 음악 산업 업계 앞에 놓여진 숙제다.
음악 산업 전반은 몇 가지 일처리 순서에 대해 합의를 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인터넷 신생 기업들이 '일을 저지르고', 기존 음반업계는 '반발하고', 저작권자는 '소송 걸고', 법원이 '판결을 내리면', 국회는 '논의하고' 정부는 '제도화하는' 식의 스텝바이스텝의 순서를 밟아왔다. 하지만 이 한걸음한걸음 진전해 나가는 문제 해결방식은 디지털 환경에 맞지 않다. 지난 7년여의 지루한 P2P 서비스와 스트리밍 서비스의 '합법이냐' 논쟁으로 인해 너무 많은 기회를 잃었으며 그 동안 너무 많은 숙제가 논의되지도 못한 채 쌓여만 가고 있다.
각 분야마다 숙제들을 동시 다발적으로 진행해야 할 필요가 있다. 업계가 자발적인 테스크포스(TF)팀을 구성하고 전면적인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물론 한번 합의된 사안에 대해 지루하게 논의를 끌고 가지 말아야 한다. 최소한 대화를 통한 '총론의 합의와 타결'만으로도 상징성을 갖게 된다. 그래야 이러한 업계의 전반적인 합의를 바탕으로 법과 제도적인 장치 마련을 위해 정부와 국회가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제시하는 데 일조할 수 있다. 지엽적인 문제로 합의가 늦춰지더라도 또 다른 문제들을 동시에 이슈화시키면서 연결된 사안에 대한 해법을 총체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DRM 이슈는 기술업계와 이통사, 그리고 저작권자들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으나 서로의 입장에 대해 강한 주장만 있을 뿐이다. DRM 호환성에 대한 필요성에 대해서 전체적으로 합의를 이뤘다면 기술적인 부분을 기술업계가 맡고, 제도적 정비는 정부가 맡아야 한다. 또한 저작권자들은 기술적인 호환성 완비를 위한 유예기간을 인내해줄 필요가 있다. 또한 이통사 등 대기업이나 소리바다 등 인터넷 서비스 기업들은 소비자들의 불편을 줄이기 위한 기술적인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 DRM 문제는 IPTV의 음악 서비스나 변형 상품화 등의 문제와도 직결되는 문제이므로 점차 논의를 확대해 가는 그림을 그릴 필요가 있다.
현재 우리나라 전체 인터넷 음악 유료 사용자를 250만명 정도로 업계는 추산하고 있다. 소리바다와 SKT가 각각 70여만 명 정도의 유료회원을 확보하고 있다. 하지만 드러나 있는 음악 유료 시장보다 웹하드나 P2P 등 불법으로 판명난 유통 시장의 경우 이미 500만명 이상이 이용하고 있을 것이라는 업계의 추산이다. 이 시장에 대해 정부는 강력한 법 집행과 계도 등을 통해 편리한 유료 시장으로의 진입을 유도해야 한다.
공정거래위원회 등 시장 관리감독 기구들은 추후에 불거질 권리남용 및 시장 담합, 그리고 불공정 행위에 대한 사전 조사를 통해 시장의 불필요한 경쟁 저해 요인들을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업계는 앞으로 예상되는 모든 문제를 책상 위로 끌어 올려 고수해야 할 사안과 합의할 수 있는 양보안 모두를 제시해야 한다.
이미 잃어버린 7년 동안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잃었다. 음반업계는 매출 축소에 신음하고 있고 연예 기획산업은 단발성 스타 키우기에만 열을 올리고 있으며, 저작권자와 저작인접권자들은 막연한 피해보상에 기대어 자기 권리를 찾는 데만 수년을 허비했다. 불편한 제도권 서비스보다 값싸고(심지어 공짜인) 편리한 탈법 서비스가 옳다는 소비자들의 인식이 만연돼 있다. 업계는 전반적으로 패배주의로 물들어 있으며 서로 남 탓하기에 여념이 없다. 정부는 팔짱끼고 지켜보고만 있었으며 교통정리조차 하지 못하고 폭주하는 디지털화 요구에 제대로 부응하지도 못했다. 이제는 디지털유통권에 대한 명확한 법해석과 함께 음악의 디지털화로 비롯된 문제들에 대한 심도 깊은 연구가 이뤄지도록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애플 아이튠즈가 아이팟과 함께 세계 제일의 디지털음악 서비스가 된 것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저가 서비스임에도 저작권자와 서비스 기업 사이의 대화를 통해 만들어진 편리한 서비스였기 때문이라는 점은 다시 한 번 새겨볼 필요가 있다.
--------------------------------------------------->이 글은 미디어 전문지 <미디어+미래> 8월호 기획의 일부분으로 기고한 것이므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합니다. 글이 쓰여진 시점이 7월 중순이므로 현재의 상황과 다른 점이 있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