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국내 모 포털사에 강연을 다녀왔습니다.
큐레이션과 관련된 강의였는데요. 제가 큐레이션과 관련된 많은 이야기들을 해왔지만 최근의 핀터레스트를 보면서 느꼈던 몇 가지 내용에 대해 첨언했습니다. 그 부분만 발췌해봅니다.
핀터레스트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플랫폼 전문가 그룹(PAG)의 정회원 모임에서 있었던 내용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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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nterest, 한국에서 성공하기 어렵다? « 플랫폼전문가그룹
이제 제가 보는 관점의 핀터레스트를 정리해봅니다.
핀터레스트가 가진 상황과 한계, 그리고 그들이 원했던 원치 않았던 그들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핀터레스트의 성장은 상당히 빠른 곡선을 타고 있습니다. 다른 콘텐츠 유통 플랫폼에 비해서도 더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지요.
이렇게 빠른 속도로, 그리고 전반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미디어 플랫폼들의 공통된 특징은 무엇일까요? 핵심은 '단순한 큐레이션'입니다. 우리나라 기획자들은 지나치게 수평적이고 객관적인 사고를 갖고 있어서 '올려' 버튼이 있으면 '내려' 버튼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쪽에서 '좋아' 버튼이 있으면 '싫어' 버튼이 있어야 한다는 식이죠.
하지만 디지털 세대는 의외로 단순한 반응에 더 많은 함의를 담기를 원합니다. 아니, 이심전심의 마음을 더 원한달까요. 페이스북은 '좋아요' 버튼이 있을 뿐, '싫어요' '더 사랑해요' '관심 없어요' 등의 분류를 더 나아가지 않습니다. 트위터의 리트윗도 그렇구요. 구글플러스 역시 마찬가지이며 핀터레스트도 '핀으로 꽂아두거나 말거나'로 시작됩니다.
사용자들에게 '할거냐 말거냐'만 결정하게 해주는 것이고 이는 수용자로 하여금 더 폭넓은 수용도를 가질 수 있게 합니다. '이 사람이 이걸 고른 이유는 뭔가 있을 거야' 정도만 힌트를 줄 뿐이죠.
무엇보다 핀터레스트를 바라볼 때의 관점은 처음부터 끝까지를 순서대로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점입니다. 10년 전의 우리는 매뉴얼부터 만들어야 했지만 지금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무엇으로 다가갈 것인지만 고민하면 되지요. 수용자들 역시 새로운 서비스에 대한 부담감은 있지만 새로운 수용에 대한 부담은 없습니다. 워낙 많은 서비스를 스쳐 지나가봤으니 말이죠.
직관의 시대가 왔다는 점을 다시 강조하고 싶습니다. 핀터레스트는 '이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 봐주는 것이 우선인 서비스인 것이죠. 우리가 서비스를 기획할 때 '누가 무엇을 어떻게 이용할 것이냐'를 두고 고민하게 되는데 오히려 이런 접근법에 대한 역발상인 겁니다.
일단 '보고'나서 '글을 읽고' 그리고 '내가 반응할지 말지'를 결정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 순서는 인간의 인지로부터 시작되어 행동하게 되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보여줍니다. 이성의 영역이 아니라 감성의 영역이 좀더 필요해졌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서비스는 여성의 사용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은 겁니다. 소셜 네트워크의 성장세는 절대적으로 여성의 지인 네트워크를 통한 추천과 관심의 공유에 달려 있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네트워크의 복잡성이나 기능성, 활용성은 이제 이성의 영역에서 맴돌고 있을 뿐입니다.
여성들이 선택하게 되는 네트워크는 반응은 단순하게 하지만 최소한 몰입과 확산에서만큼은 남성보다 압도적입니다. 소셜 네트워크는 정보의 영역이 아니라 잡담의 영역이고 그 잡담 속에서 의미를 뽑아내는 것에 익숙한 여성들이 더 큰 가치를 만들어 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그래서 서비스는 예뻐야 합니다. 디자인이 중요하고 감성이 중요한 겁니다. 남성들은 정보에 민감하지만 여성들은 공감에 민감합니다.
구글 플러스의 사례를 보십시오. 얼마나 빠르게 성장했는지, 그리고 얼마나 순식간에 잊혀졌는지.
남탕효과였던 셈이죠.
결과적으로 여성과 남성에 대한 매우 모순되고 단편적인 구분법입니다만 곰곰히 생각해봅시다.
남성들이 서비스를 이용해서 만족을 느끼는 순간과 여성들이 서비스를 접하고 나서 느끼는 만족감의 지점. 그래서 어느 지점을 공략해야 하는지, 어떤 흐름을 노려야 하는지 생각할 기회를 줍니다. 핀터레스트의 가능성과 한계성이 바로 이 지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기본적으로 정보를 공유하고자 하는 욕망, 본능은 인간의 생존 욕구와 맞닿아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질문을 해봅시다.
왼쪽으로 가세요. 라며 방향을 지시해주고 주어진 질문에 답변을 정확하게 해주기 위한 서비스는 '검색' 서비스입니다. 이성의 영역이며 남성들의 반응과 일치합니다.
따라오세요. 라며 함께 방향을 찾아가며 왜 찾는지, 광화문 주위에는 무엇이 있는지를 이야기하며 함께 가는 서비스가 바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즉 SNS입니다. 감성의 영역이며 여성들의 반응과 일치 합니다.
방향을 지시하는 것은 효율성의 영역이며 기본적으로 산업사회가 지향해왔던 영역입니다만 이로 인한 폐해가 만만치 않습니다. 효율성은 경쟁을 심화시키고 결국은 생활의 잉여 부분을 제거하면서 행복지수를 감소시키기 때문입니다.
기본적으로 감성의 영역, 여성의 영역은 쇼핑을 하는 패턴에서 이해를 해야 합니다. 여성은 쇼핑이 목적이 아니라 스트레스 해소와 시각적인 만족감을 원한다고 하지요. 그것도 몇 시간씩 돌아다니면서 말이죠.
전반적으로 이런 미디어 서비스의 진화 방향이 미디어 산업 전반에 주는 영향은 아주 큽니다. 이미 생산의 영역에 있어서 수없이 많은 블로거와 트위터, 페이스북에서 '누군가를 위한' 콘텐츠가 쌓이고 있습니다. 이 콘텐츠는 단순하게 '펌질'의 영역을 벗어나서 잡담에서 논문 형식의 심도 깊은 논의까지 포괄하는 광범위한 주제와 수준을 갖고 있습니다. 매스미디어는 이제 생산의 영역에서 몇 가지 고수해야 할 '속보', '현장'을 제외한 해설, 분석의 영역은 상당부분 그 권력이 분산되고 있습니다.
유통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죠. 포털을 중심으로 뉴스는 생산처로부터 소비자에게 가는 과정에 수많은 참여자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배치'와 '배열', 그리고 '선택'에 이르는 과정, 미디어 용어로는 게이트 키핑, 아젠다 세팅의 영역까지 인터넷 서비스로 그 권력 이양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미디어 플랫폼으로서의 핀터레스트는 그래서 '큐레이션'에 대한 독립적인 플랫폼의 가능성에 대해 많은 시사점을 주는 서비스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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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사담을 하면요. 이 강연은 나름 소심한 복수였는데요. 2005년 당시 기자를 그만두고 인터넷 비즈니스를 배우고 싶은 마음에 포털에 가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야후를 제외한 모든 포털에 원서를 넣었고 모두 다 떨어졌었죠. ㅎㅎ. 제 인생에서 면접까지 가서 떨어진 적은 없지만 서류에서는 이렇게 수없이 많이 떨어져봤습니다. 어쨌든 이 당시 이 포털사 역시 저를 거부한 회사였지요.
몇년이 지나서 이 회사에서 절 자발적으로 찾아서 불러주길(직원으로서가 아니라) 바랬죠.
제 '소심한 복수'의 목표는 반드시 나를 거부했던 그 곳에 가서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되어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에게 도움이 되어 날 뽑지 않았던 것에 대한 묘한 감정(후회 같은 것이 아니라...)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지요. ㅎㅎ. 이미 몇 곳은 이런 소심한 복수를 당했답니다. 자신들은 못 느끼겠지만 말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