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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4/17 망각을 허용하지 않는 세상, ‘잊힐 권리’를 다오 2

몇 년 전, 한 아이돌 그룹의 가수는 자신이 연습생 시절에 적어놓은 푸념 몇 마디 때문에 인생의 굴곡을 겪어야 했다. 잘나가는 지금과 세상을 원망하던 연습생 시절의 자신이 다른 상황임을 그가 역설해봤자 사람들은 인정해주지 않았다. 그 청년에게 어려운 시절의 기억은 망각의 영역에 있었지만, 네트워크는 기억하고 있었고 이를 끄집어내 공유했던 것이다.

요즘 같아서는 연예인이든 정치인이든 대중 앞에 나설 때 단단히 마음을 먹어야 한다. 혹시 자신이 예전에 했던 발언, 잘못 전해진 말이 있다면 그것을 바로잡기도 전에 기정사실이 되어버리고 때로는 신상을 털리는 일도 각오해야 하기 때문이다.

누리꾼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굳이 정부가 나서서 실명을 인증할 필요도 없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는 자신의 영향력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스스로를 인증하고 교차 인증한다. 그러다보니 곳곳에서 설화(舌禍)로 인한 소음이 끊이지 않는다. 대중에게 알려진 사람뿐만 아니라 개인 미디어를 적극 활용하는 사람이라면 크고 작은 다툼에 피곤한 상황을 맞이하는 일이 다반사다.

이런 분쟁의 원인은 우리가 망각한 기억을 네트워크가 ‘데이터’로 보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던 시절 남녀 사이에 있었던 장면이 네트워크로 퍼지고 나면 이 데이터를 단기간에 없애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아예 네트워크에 ‘그것’이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망각하기를 기다리거나 무시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일반적인 상황이 이럴진대 내가 살아가면서 남긴 의견·생각·푸념은 물론 아침에 어디에 들러 무엇을 먹었는지까지 공유하고 나면 그 흔적이 데이터가 되어 내 개인정보와 함께 뭉텅이가 되어버린다. 일상을 공유하기 위해 인생이 위험해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공유의 시대에 ‘잊힐 권리’를 외치는 사람들에게 이런 문제는 상당히 심각하다.


“각국 감독기관과 연대를”

구글이 최근 산재돼 있는 60여 개 서비스의 개인정보를 하나로 통합하는 정책을 발표하자 각국 규제 당국이 발끈하고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프랑스는 지난 2월 말 구글의 새 개인정보 보호정책이 유럽연합(EU) 규정에 어긋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시행 보류를 요청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지나치게 구체적인 개인정보 데이터가 나치 독일군이 학살 대상자를 고를 때 분류 기준으로 쓰였다는 사실은 유명한 일화다. 그만큼 유럽 각국은 개인정보 집중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프랑스 컴퓨터사용자유위원회(CNIL)는 “구글은 새 규정이 시행되면 안드로이드, 광고 서비스 등을 통해 사용자의 동향을 추적하고 이를 통해 얻은 정보를 이용할 수 있다”라고 우려했다. 특히 스마트폰에 내장된 정보 수집 기능으로 인해 개인의 일거수일투족이 시스템에 남겨지는 상황을 심각하게 걱정했다.

한국개인정보보호협의회 주최로 지난 3월26일 열린 ‘최근 구글의 개인정보 통합관리,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주제의 토론회에서도 비슷한 염려가 쏟아졌다. 이 토론회에서 염흥열 순천향대 정보보호학과 교수는 “서비스별 개인정보와 행태 정보를 서로 연결시키지 않는 비연결성은 프라이버시 보호의 근간이 된다. 국내 규제기관은 유럽·일본 등의 관련 감독기관과 연대할 필요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잊힐 권리’는 네트워크에서 나의 사회적 존재감을 나타내려는 현 세태와는 동떨어져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적어도 개인의 사회적 흔적이 몇 년 뒤 당사자에게 큰 흠결이 될 수도 있는 사안이라거나 당장 스토킹을 당하는 따위 명백한 피해가 예상될 때에는 ‘긴급 망각 조치’ 같은 제도가 필요할 수도 있다.

인류는 망각을 극복하기 위해 기록이라는 수단을 활용해 문화를 축적해왔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사물과 인간과 행위와 사건이 ‘실시간 데이터’로 쌓여가는 시대다.

이렇게 형성된 ‘빅 데이터’ 속에 한 뭉텅이로 남아 있던, 나도 모르는 실수와 실언, 맥락이 사라져버린 의견들이 언제 다시 발화될지 모른다. 우리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수동적으로 ‘잊힐 권리’보다는 능동적인 ‘잊게 할 권리’에 대한 자각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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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전 3월 하순 시사인에 실린 기고문입니다.

마치 예언이라도 한 것 처럼 총선을 비롯해 갖가지 설화들이 끊이지 않고 있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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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17 11:34 2012/04/17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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