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네르바法 위헌, 불안해? 소셜 인증을 믿어봐
2006년 말부터 시작된 웹 2.0 열풍과 검색에 대한 폭발적인 관심은 그야말로 하늘을 찌를 듯했다. 그 기세는 모든 구형 미디어를 전복시키고 낡은 세상을 뒤바꿔놓을 새로운 미디어 세상이 당장이라도 펼쳐질 것만 같은 분위기였다.
2010년 세상은 그로부터 더 진보하고 더 폭발적인 열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바로 소셜 열풍이 그것이었다. 웹 2.0의 연장선으로 소셜 미디어와 소셜 네트워크의 힘을 스마트폰 열풍을 통해 체험하면서 세상은 한 단계 더 앞으로 전진하는 듯이 보인다. 더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의사를 이야기하고 더 다양한 의견을 거리낌 없이 내놓으면서 짐짓 혼란스러워 보이지만 그 안에서 질서를 찾아가는 모습도 발견된다.
다수의 의견이 반드시 진실은 아니라는 것쯤은 이제 세상 누구나 알고 있지만 적어도 상식이 비상식보다 더 많아야 정상이라 할 것이다. 정말 사람들은 온라인에서 정상적인 사고를 표현할까? 진짜 우리나라 국민과 국가를 걱정하는 보수 인사들이 걱정하듯 온라인은 '괴담'과 '거짓 선동'이 판을 치고 있는 것일까?
2009/11/07 사이버 자경단, 어디까지가 정의일까
2010년 여름 SBS는 재미있는 조사를 한다. 이른 바 '대한민국 트위터 대분석'이 그것인데 여기서 지난 여름을 뜨겁게 달구었던 타블로 사건에 대한 사람들의 트위터 사용패턴이 주목할만 하다.
SBS는 타블로 사건을 전후로 트위터에서 타블로를 전수 조사하여 내용을 분류하였다. 조사결과 2010년 8월 26일부터 10월 9일까지 5만 1천 612개의 트윗이 발생했고, 글을 작성한 사람들은 2만 2천 99명으로 집계됐다. 특히 MBC가 MBC 스페셜을 통해 관련 내용을 방영한 이후 트윗양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논조별로 트윗을 분석해본 결과, 타블로의 옹호 세력이 74%로 압도적으로 많았고, 타블로를 비판하는 세력은 9%에 불과했다. 중립세력은 17%로 나타났다.
걱정할만큼 타블로 문제를 두고 '음모론'을 펼치는 사람의 수는 많지 않았다는 의미다. 또한 초기에는 음해론자들이 대세를 이루지만 어느새 사람들은 반대 의견을 더욱 강하게 내기 시작하고 의혹 제기를 일축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국면이 전환되더라는 것이다.
정작 타블로 사건을 삐딱하게 본다고 하더라도 적극적으로 그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보다는 가벼운 이야깃 거리 정도로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인 점을 감안한다면 타블로 학력 의혹 사건(?)은 어찌 보면 헤프닝 정도로 치부해도 될 일이었다. 오히려 이 사건은 언론이 조장한 '논란 장사 거리'였던 셈이다.
무엇이 이들을 치우치지 않게 만들었을까? 또는 이들에게 편향된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강하게 주입하는 경우에도 왜 많은 사람들은 동요하지 않았을까.
2010년 지방 선거에서도 흥미로운 움직임이 있었다. 선거가 가까이 다가오자 당국은 각 언론사에게 댓글 실명제를 요구하기 시작했는데 몇 곳에서 아예 댓글을 막아버렸다. 당시 블로그 기반의 블로터닷넷이나 티엔엠미디어 소속 인터넷 신문들은 속속 아예 실명제를 시행하느니 댓글을 닫아 버리겠다고 선언하고 실제로 선거 기간 동안 댓글 실명제를 전면 거부했다.
그리고 나서 이후 몇몇 언론사들은 '소셜 댓글'이라는 플랫폼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다. 아예 댓글 플랫폼을 자사 플랫폼이 아닌 특정 서비스 업체의 시스템을 사용하고 트위터나 페이스북, 미투데이 등 소셜 서비스와 연동시키자는 아이디어였다. 댓글을 자사 사이트의 기능으로 제공하지 않을 경우에 대한 제약 조건은 아직 마련돼 있지 않았으며 트위터 등 해외 서비스에게는 실명제를 강제하기도 불가능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후 업계에 따르면 댓글에서 욕설이나 일방적인 비난이나 비방이 감소하고 있다고 말한다. 무엇이 악플을 달게 하는 것일까. 트위터와 연동된 댓글이나 언론사 익명댓글이나 모두 실명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똑같은데 말이다.
2007/05/20 포털, 댓글 사건 패소가 주는 시사점
여기서 힌트가 나온다. '소셜'한 관계 속에서 자신이 노출돼 있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터무니 없거나 상식적으로 용인되기 힘든 발언을 하기 힘들 것이라는 점이다. 반대로 '소셜' 서비스는 지극히 개인적인 사용성을 보이는데다 누적되어 쌓여가는 개인의 발언을 담아두는 데이터베이스라는 점에서 자신을 숨길래야 숨길 수 없다는 것이다.
더 영향력 있게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질 이야기를 하려면 자신이 그만큼 노출되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는 셈이다. 실명제와 뭐가 다르냐고 묻지 말기 바란다. 내가 나를 증명해 보이기 위해 소셜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행위와 익명의 뒤에 숨어서 나약하고 의심스러운 수준의 비판이나 비난을 할 자유는 보장받아야 한다. 이런 행동들은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사회적으로 용납받고 있는가, 아예 원천 봉쇄돼 있는가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언뜻 보기에 실명을 달고 의견을 말해야 한다는 것은 매우 당당한 방식으로 보인다. 그렇다면왜 실명을 걸고 '나 누구 찍었소'라고 말하는 것은 불법인 것일까.
익명은 현대 자유민주주의가 제시한 '당당하게 말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이며 사회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는 점은 중학교 사회 시간에 졸지만 않았어도 알만한 내용이다.
2007/03/24 익명의 힘, 그리고 천기누설
웹 2.0의 자유로운 미디어가 대세인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던 미네르바 사건이 2008년이었음을 기억한다. 그로부터 2년 여가 지난 12월 28일 헌법재판소는 미네르바를 기소할 때 적용했던 법조항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1월 4일 검찰이 항소를 취하 하면서 무죄가 확정되었다)
여기저기서 '온라인이 대혼란에 빠질 것'이라며 걱정이 태산인가 보다. 별도의 제도를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2010/04/08 실명제, 한국 인터넷 박제로 만들다
그들에게는 무지몽매한 국민들이 득실거리는 인터넷이겠지만 인터넷은 신뢰 있는 정보를 유통하는 자가 더 많은 힘을 가지게 되는 '소셜지성'의 단계가 막 시작되고 있다. 이것은 익명의 다수가 말하는 것이 좀더 진실에 가깝다는 '집단지성'보다 한 걸음 더 진보된 개념이다.
결론은, '보온병을 포탄이라고 말실수할 자유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겠나'라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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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시사인>에 기고된 내용입니다. 무단 전재는 삼가해주세요.(사진은 뉴스뱅크 이미지에서 제공한 공유 방법으로 게재돼 있습니다)
오늘 미네르바 박대성씨의 무죄가 확정됐다는 소식이 전해졌군요.
검찰, 미네르바 항소 취하…무죄 확정 [뉴시스]
지난 해 말 Co-UP에서 'Sharing day' 형식의 행사가 열렸습니다. 이날 발표자 가운데 '번개장터'라는 소셜 중고물품 거래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한 장원귀 번개소프트 대표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거래라는 것이 불안합니다. 하지만 물건을 파는 사람의 위치가 확인되고 파는 사람의 다른 소셜 활동을 보면서 물건을 사는 사람이 물건에 대한 일종의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소셜 인증은 아무도 자신임을 인증해주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자신을 인증하기 위한 노력이 들어갑니다.
예전에 우리나라 소셜과 해외 소셜에 대해 비교한 적이 있었는데 요지는 이랬죠.
"우리나라 소셜은 '실명제'라서 오히려 온라인에서 자신의 모습을 과장되게 보이게 하거나(뽀샵) 자신의 실제 모습을 감추고 가상의 캐릭터 구축을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해외 소셜은 자신이 자신임을 인증해야 할 시점에 자신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생 얼굴 사진이나 친구와 찍은 인증샷을 주로 사용하게 되어 좀더 실제에 가깝게 자신을 표현하게 된다."(그냥 일반적인 경향이 그렇다는 이야기다. 다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시비 걸지 마시라.. --;)
2010/05/24 SNS의 원조 한국이 왜 뒤졌냐고?
2011/01/04 09:36
2011/01/04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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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터앤미디어의 생각
Tracked from tattermedia's me2day 삭제무엇이 악플을 달게 할까. 트위터 연동 댓글이나 언론사 익명댓글이나 실명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똑같은데? 여기서 힌트가 나온다. '소셜'한 관계 속에서 자신이 노출된 사람이라면 적어도 터무니 없거나 상식적으로 용인되기 힘든 발언을 하기 힘들 것이라는 점이다.
2011/01/04 10: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