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에게만 허락되는 블로그 이전의 자유
포털, 골치 아픈 디지털 유산에만 관심, 이용자 데이터 백업 이전 요구 외면
지난 달 포털업계가 흥미로운 의제를 제시한 바 있다.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가 주축이 되어 이른 바 ‘사자(死者)의 디지털 유품 관리현황과 개선방안’ 세미나를 연 것이다. 쉽게 말하면 블로그나 카페 등을 운영하던 사람이 죽으면 그 서비스에 남아 있는 콘텐츠는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에 대한 논의다.
이 자리에서 김기중 변호사(법무법인 동서파트너스)는 “디지털 정보의 경제적 가치가 증가하고 있는 최근 현황에 비춰볼때, 민법상 ‘디지털 정보’에 재산권적 성격을 부여하고 일정한 권리의 대상으로 설정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 외에도 "사자가 유언으로 자신의 정보를 어떤 식으로 상속할 것인지 자율적으로 정하도록 하자", "공인이 남긴 자료라면 사료적인 가치가 있을 수도 있다" 등 여러가지 이야기가 나왔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디지털로 기록되어진 콘텐츠를 일종의 '자산'이나 '재화'로 인식해준다는 점에서 반갑다. 일상 저작자인 수많은 사람들의 기록물이 그 표현의 수위나 수준과 별도로 사람들의 지적 노동을 통해 만들어 놓은 결과물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것이니 더욱 그렇다.
물론 이전에도 유명인이 사망했을 경우 그의 디지털 공간을 추모 공간으로 만드는 등의 단편적인 시도도 있었고 일부 칼럼니스트들도 디지털 유산과 상속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기도 했다. 그런데 간간히 이런 이야기들이 나올 때마다 나는 뭔가 허전한 기운을 느낀다.
네이버는 사용자가 사망했을 경우 사망증명을 하는 유족들에게 고인의 디지털 유산을 백업해서 넘겨준다고 한다. 그런데 왜 살아 있는 사람에게는 그런 서비스가 없을까? 정작 내가 네이버 블로그를 사용해 수백 개의 글과 사진을 올려놓고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서 블로그를 닫아야 할 때도 네이버 사용자는 네이버가 제공하는 안전하고 안정적인 백업 서비스를 받을 수 없다. 그런 서비스가 아예 없다.
일부 네이버 사용자 가운데 다른 블로그 서비스로 '이사'가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해 개인 개발자들이 블로그 이전 도구나 프로그램을 공개하기도 하지만 어느 틈엔가 이 서비스와 도구는 네이버에 의해 막혀버린다. 자체적으로 블로그 백업과 이전 도구를 제공하지도 않고 이용자들이 자신의 데이터를 백업받기 위해 사용하는 외부 서비스를 아예 막아버리는 것이다.
한때 블로그 사이의 이전을 손쉽게 해주는 사이트를 개인 개발자가 만들어 공개한 적이 있었다. 이름이 자유를 뜻하는 '프리덤'이었다. 수많은 사용자들이 암암리에 이글루스에서 티스토리로, 네이버에서 설치형 블로그로 옮기기 위한 대규모 이사철이 시작되는 진풍경을 연출했었다. 그러나 이후 이 프리덤 서비스는 데이터를 무작위로 긁어간다며 포털이 일방적으로 서비스 구조를 바꾸거나 IP를 막는 등의 방해로 인해 서비스가 파행을 거듭하다가 현재는 잠정 폐쇄 상태다.
텍스트큐브(구 태터툴즈) 계열의 서비스인 다음 티스토리나 설치형 텍스트큐브, 구글로 인수되어 블로거닷컴과 병합될 운명인 텍스트큐브닷컴 정도가 서로 데이터를 백업하고 이전 받을 수 있다. 최근에는 설치형 게시판 툴인 제로보드 XE나 외국산 블로그인 워드프레스 등과도 호환이 일정 부분 가능하다.
설치형 블로그가 대세인 해외의 경우 블로거들이 자신의 데이터를 백업하고 이전하여 복구할 수 있는 서비스가 보편적이어서 구글이 운영하는 블로거닷컴의 경우나 마이크로소프트 라이브 스페이스 같은 가입 서비스형 블로그에서도 데이터를 XML로 내보내거나 가져오기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블로그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네이버 블로그는 물론 다음 블로그, 야후 블로그, 이글루스 블로그, 싸이월드 미니홈피/블로그 등 포털 서비스형 블로그에게는 거주 이전의 자유가 없다. 이글루스의 경우 쌓아둔 글을 100건 단위로 PDF로 백업받을 수 있는 정도의 서비스를 제공할 뿐이고 싸이월드 미니홈피의 경우 싸이월드 블로그가 새로 생겼을 때 아예 상호 호환성도 마련돼 있지 않아 미니홈피를 벗어나 블로그로 정착하려는 유저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포털들은 이제 자신들에게 기여할 일이 없어진 죽은 자에겐 디지털 유산이라며 짐을 싸주지만 산 자의 물건은 짐을 싸서 가져가지 못하게 막고 있다. 포털은 디지털 유산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기 이전에 사용자들의 재산인 블로그와 미니홈피 글과 사진을 손쉽게 백업받을 수 있는 도구를 의무적으로 제공하고, 블로그 서비스 상호간의 이전을 위한 표준 데이터 포맷 논의부터 시작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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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시사IN> 166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이 외에도 포털들은 들여오는 API는 제공하지만 내보내는 API를 제공하지 않는 등 지극히 이기적인 행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백업 복원 서비스가 없다고 해도 최소한 XML 등 표준화 포맷으로 내보내기가 가능한 API 정도는 제공해줘야 정상 아니겠습니까?
포털 블로그 사용자들은 내가 쓴 내 재산인데도 남들에게 보여줄 때 차단 당하는 것도 감수해야 하고 몇 년 동안 쌓아온 자신의 기억을 인질로 잡힌 채 살아가고 있군요. 나가는 것 자체가 불편하게 되어 있으니 앉아 있는 것을 '편하면 그만이지'라는 말로 위안하고 있네요.
네띠앙 처럼 서비스가 죽거나 내가 죽어야만 데이터를 백업 받을 수 있다니...
2010/11/16 10:01
2010/11/16 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