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의 소식을 접하다보면 '최초'라는 수식어를 보게 됩니다.
국내 최초 개발, 국제특허 최초 등록, 최초의 000 ....등.
그러나 최초가 늘 최고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심지어 최초가 최고에 의해 가려지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다음은 우리가 상식으로 알고 있던 전화기 최초 발명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요약하자면 안토니오 메우치라는 사람이 구리선으로 음성을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한 뒤 병상에 누워지내는 아내와 통화하기 위해 `텔렉트로폰'이라고 명명한 기구를 발명했다고 합니다. 때는 1871년 그는 최초의 특허를 냈지만 돈이 없어 1년짜리 임시특허를 받고 이어 연장할 돈이 없어 결국 상용화에도 실패했죠.
5년뒤 스코틀랜드 출생의 미국인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은 현재 우리가 전화기로 알고 있는 기구를 특허 출원하는데 성공했다. 우리의 교과서는 그레이엄 벨을 전화기 발명가로 적게 되었습니다.
물론 벨의 이런 남의 특허를 훔친 부당한 행위에 대해 메우치는 소송을 겁니다. 그러나 소송이 종결나기 전 그의 인생이 먼저 끝납니다.
메우치는 최초로 전화기를 발명했으나 가난 속에서 남에게 특허를 빼앗기고 소송에도 이기지 못한 채 생을 다 했다지만 그레이엄 벨은 우리 머리 속에 어떻게 각인이 돼 있을까요?
물론 전화기 사업의 역사는 AT&T의 전신인 1877년 설립된 Bell Telephone Company부터 시작되죠.
다른 예로 우리의 역사에서도 찾을 수 있겠죠?
금속활자를 처음 만들어 활용한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죠. 우리나라는 누가 무엇을 만들었다기보다 중앙집권적인 성격이 강해서 세계최초의 금속활자본인 '직지심경(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은 그냥 '우리나라'에서 만들었죠.
어떤 분들은 구텐베르그가 성공시킨 서구 금속활자본 자체가 우리나라에서 전래된 것을 배낀 것이 아니냐는 주장도 있는 것으로 압니다.
어찌됐든 지금은 조금씩 서구에서 '직지'로 인해 최초 금속활자가 한국에서 최초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조금씩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는 메우치 우표를 발간하면서 홍보를 강화하고 있는 이탈리아의 입장과 비슷하다고 보입니다.
또 하나, 조금은 지엽적인 문제로 들어가 볼까요?
네이버 지식인에 대한 컨셉은 누가 만들었을까요? 묻고 답하기.. 그만의 기억으로는 한겨레신문 온라인 사업팀이 만들었던 디비딕(DBDic), 그것을 인수한 포털 엠파스 지식거래소, 그리고 대중적인 지식인 열풍을 불러 일으킨 네이버를 보면서 우리는 또한 최초가 최고가 아닐 수 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최초가 우리에게 주는 것은 선점의 효과가 아니며, 시장을 선점했다고 해서 사람들의 인지까지 선점하지는 못하죠.
사용자들에게 인지 부조화를 일으키며 큰폭으로 성장하고 있는 동영상 검색과 UCC에 대한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의 포털형 동영상 검색은 야후 야미죠. 그러나 지금은?
누가 누구를 따라했다, 또는 누구는 누구의 아이디어를 훔쳤다는 식으로 몰고갈 수 없는 이유는 그 속에 있습니다.
최초는 늘 뭔가 불편했습니다. 따라오는 자는 최초의 것을 벤치마킹했으며 최고로 만들 수 있는 혁신을 품고 있었던 것이죠.
네이버가 정작 최초로 시작한 것은 거의 아무것도 없습니다. 있다면 알려주세요. 하지만 국내 1위죠. 놀라운 회사입니다. 정말 위기는 NHN이 따라할 곳이 없어지고 벤치마킹해서 뛰어넘을 곳이 없어지는 순간입니다. 뛰어난 인재를 조속히 더 많이 확보하려는 것은 이런 배경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공룡 AT&T의 분할 과정과 현대그룹의 분할 과정 등을 생각해본다면 1등 공룡을 시장이 그리 오랫동안 놔두지는 않을 것이란 점을 지적하고 싶군요.
여러분은 네이버 공채에 지원들 하셨나요?
설마 네이버는 '최고가 되기 위해 최초가 되지 않기'가 전략은 아니겠죠?
오늘 스마트플레이스에 다음과 같은 글이 올라왔습니다.
네이버가 다음의 소스코드를 무단복제한 것으로 의심됩니다[스마트플레이스-네오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