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은 연결도구이며 커뮤니케이션 도구다. 처음부터 그랬으며 지금까지 이 역할에 충실하고 있다. 그 도구를 사용하는 주체가 몇 번 바뀌었을 뿐이다. 처음에는 정부 관료와 극소수 과학자로 제한돼 있었지만 점차 사업자들과 일반 이용자들이 늘어 하나의 거대한 가상세계가 구축돼 있다.
초기 인터넷을 바라보는 언론들은 한결같이 '정보의 보고(寶庫)'라는 말로 잔뜩 추켜세웠지만 다른 한 편에서는 ‘정보의 불평등을 낳게 할 것’이며 자본주의의 논리에 따라 ‘거대한 지식 정보들이 가진 자들의 지배 도구가 될 것’이란 우려가 싹트는 시기기도 했다.
초기 인터넷에 공헌한 이들은 지식인들로 스스로 정보를 쌓고 다른 정보들을 찾아다니며 연결시키는 역할을 했다. 이후 언론들은 뉴미디어 전략의 일환으로 인터넷에 발을 담그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저녁에 퇴근하며 가판대를 뒤적일 필요도 없었으며 아침에 배달되는 신문을 들고 버스에 오를 필요도 없었다. 인터넷에서는 실시간으로 세상의 모든 정보를 주는 것만 같았으니까. 접속하기까지의 비용만 지불하면 그 이후에는 모두 무료였다.
이후 수많은 콘텐츠들이 인터넷에 쌓여가면서 산업적 기반이 마련되기도 전에 디지털 콘텐츠들은 무한 복제와 무한 공유를 가능케 했다. 이에 저작권자들은 예전의 안정적인 수익모델이 붕괴되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으며 이는 출판, 잡지, 신문, 방송, 영화, 음악 등 지식 산업과 문화 산업을 송두리째 위기로 몰아넣었다.
불법복제 천국, 위기의 인터넷?
과연 그럴까. 현재 사람들은 더 많은 정보를 취득하고 있으며 더 많은 음악을 찾을 수 있고 더 많은 영화를 볼 수 있게 됐다. 모두 인터넷을 통해서였으며 초고속 인터넷 인프라는 사람들의 생활을 변모시켰다. 인터넷으로 하루를 시작해 ‘종료’ 버튼을 누르면서 잠이 드는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들에게 인터넷은 새로운 세계로 가는 탐험이며 새로운 지식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고 있다.
인류가 도서관을 만들었을 때의 지혜는 무엇이었을까. 지식은 소유의 개념이 아닌 공유와 토론의 대상이었으며 그로부터 새로 생산되는 역사가 가르쳐준 지혜는 후대 인류를 발전시킬 것이란 믿음 때문이었다. 따라서 지식과 콘텐츠는 상품이기 이전에 인류 모두의 자산이다. 이것이 바로 카피레프트 정신이다.
언어적 유희를 즐기는 서양인들이 정보통신 세계에서 만들어낸 유행어가 저작권을 의미하는 카피라이트(Copyright)의 개념을 뒤바꿔 놓은 카피레프트(Copyleft)는 자유소프트웨어연합(FSF) 창설자 리차드 스톨먼이 창안하고 정립한 말이다. 이는 초기 인터넷의 확산에서 ‘정보독점’에 정면으로 반박하는 개념으로 소유권은 저작권자가 갖지만 그것을 수정하고 자유롭게 배포하고 공유하여 공공의 이익에 이바지하자는 일종의 운동이다.
카피라이트(저작권)가 배타적 이익을 추구한면 카피레프트는 정보와 소프트웨어 등 지적재산권에 대한 무한 접근과 새로운 지적재산권으로의 재창출을 도모해 새로운 수익모델에 대한 발상의 전환을 꾀한 전략이었다. 당시 이 주장은 지적저작권자들로부터 ‘이단’으로 내몰렸으며 일반의 상식으로도 ‘도둑질을 방치하자’는 의미로만 받아들여졌다.
카피레프트, 저작권을 포기하라는 말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 이런 분위기는 사뭇 달라지고 있다. 지적재산권을 일부 포기하고 새로운 형태의 수익모델을 창출할 수 있다는 주장은 오픈소스라는 새로운 조류를 탄생시켰으며 지금 우리의 눈앞에서 기존 저작물을 새롭게 가공 편집한 2차 저작물의 폭발을 유도했다.
카피레프트는 텍스트 저작물에게는 재앙이 될 수도 있겠지만 특히나 동영상 UCC 등 멀티미디어 저작물에 있어서는 오히려 대중들이 모르고 지나친 것을 새롭게 각인시켜주는 홍보 역할을 하고 있다.
새로운 매체들이 속속 등장함에 따라 최근 시청률이 눈에 띄게 떨어지고 있는 공중파 방송은 저작권을 주장하기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다. 오히려 인터넷 동영상 UCC라며 돌아다니고 있는 특정한 부분만 잘라 편집한 영상이 해당 프로그램에 대한 참여와 시청으로 이어지는 현상을 몸소 체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KBS의 ‘개그콘서트’ 프로그램의 ‘마빡이’ 코너나 ‘웃음충전소’ 프로그램의 ‘타짱’ 코너 동영상이 오히려 해당 프로그램의 주목도를 높이고 있는 사례로 나타나고 있다.
저작권 보호를 위해서는 이들 동영상은 해당 방송국 전파를 통해서 시청하거나 해당 방송사닷컴 홈페이지에서 다시보기 서비스를 이용해야 하지만 정해진 시간에 방송을 보지 못했던 시청자들은 인터넷을 통해 해당 프로그램을 반복적으로 인지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방송가에서는 동영상이 얼마나 인터넷에 퍼지고 있느냐를 해당 프로그램의 인기도 선행 지수로 삼아야 할 정도다.
UCC 규제가 능사인가, 함께 윈-윈할 것인가
최근에는 아예 이러한 UCC 소재를 직접 제공하는 이벤트도 인기다. LG전자 샤인 휴대폰 마케팅에는 동영상을 보여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들이 다운로드 받아갈 수 있도록 했다. 분명히 광고임에도 사용자들은 이 영상을 공유한다. 최근 유명 연예인을 동원한 인터넷 CF 시리즈로 주목받고 있는 삼성전자 휴대폰 광고인 ‘애니스타’ 시리즈도 주목할만하다. 이 CF는 15초짜리 광고에서 9분이 넘는 뮤직비디오까지 다양한 콘텐츠를 인터넷을 통해 유통시키고 있다. 이러한 유통과정은 사업자의 전략적인 움직임도 있겠지만 사용자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자발적인 배포 과정을 통해 입소문 마케팅을 극대화 하고 있는 것이다.
정보통신과 좀 멀어보이는 유통업계도 동영상 UCC 재료 제공하기에 분주하다. 농심은 오징어 짬뽕 UCC 이벤트 ‘오짬즐짬 UCC대잔치’를 오는 3월 5일까지 진행할 예정이다. 사용자들에게 제품과 관련된 동영상을 제출하도록 유도하고 있으며 제품 CF를 직접 다운로드 받아 사용할 수 있게 만들었다. CJ가 운영하는 CJ패밀리클럽(www.cjfamily.co.kr)이라는 사이트도 UCC마케팅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네티즌은 이 사이트에서 행복한 콩 두부, 햄스빌, 뉴트라 등 대표적인 브랜드 12가지에 대한 재미있는 사진, 동영상을 올리고 있다.
기업들은 사용자의 손수제작물 화면 속도 주목하고 있다. 숙명여대 무용과 학생은 ‘보면서 따라하는 요가’라는 동영상을 찍어 인터넷에 올리고 있다. 젊은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은 이 동영상 속 이 씨는 LG전자가 후원한 DMB 휴대폰을 걸고 있다. 바로 UCC를 활용한 PPL이다. 저작권에 민감하고 규제 이슈로 골치 아픈 방송사 프로그램보다 훨씬 효과적이며 부정적인 반응도 적다.
보도자료를 언론에만 배포하던 관행이 점차 바뀌어가고 있는 것도 추세다. 삼성그룹은 지난 11월 5일 포털과 비슷한 형태와 콘텐츠로 그룹 홈페이지(www.samsung.co.kr)를 대폭 개편했다. 개편된 홈페이지는 단순한 기업 이미지 전달에 집중했던 옛 홈페이지와는 달리 삼성의 경영활동과 관련한 소식 등 뉴스를 전면에 배치한 것이 특징이다. 예전 같았으면 기업 소개 홈페이지 구석에 ‘보도자료’ 쯤의 제목으로 게시판 하나 덜렁 있었을 콘텐츠였다. KT, SK, KTF 등 기업들은 자사가 보유한 다양한 자료와 이미지, 동영상을 과감하게 인터넷으로 배포하고 있다. 기업들은 이들 콘텐츠를 좀더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직접 동영상 사이트나 기업 블로그에 올려놓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구호에서 그치는 ‘소비자 주권’ 논의보다 기업들과 공공이 보유한 지적 자산과 홍보물은 소비자들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공개되고 공유됨으로써 더 큰 가치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카피라이트의 가치를 뛰어넘는 카피레프트의 재발견은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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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 역시 지난번에 올렸던 '세상으로 나와라 P2P~'와 마찬가지로 미디어 전문지 2월호에 기고하려다 아예 글 순서를 뒤바꿔 싣게되는 바람에 기억하는 차원에서 남기는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