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맙소사. 오늘은 세상에 이별하기 좋은 날이라니. 자살을 방조하거나 염세주의적인 사람이 쓴 책인가보다 했다. 아내가 읽고서 쇼파 위에 올려 놓은 책을 옆으로 치우면서 괜한 '죽음' 따위를 생각하기 싫은 사람 처럼 이 책을 인상을 쓰며 바라봤다.
아, 좀 다른 느낌이다. 235명의 지혜로운 인생 선배들이 전하는 '행복한 인생'의 다섯 가지 '비밀'이란다. 이런, 한 번 더 맙소사다. '시크릿'류가 아닌가 말이다. 원하면 이뤄지는 삼라만상 다 마음먹기 달렸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잇는 현대판 경전 말이다.
근데 이 책의 서문을 읽어가면서 이 책을 일단 끝까지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존경받는 어른'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들은 이야기들을 다시 전해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겠다 싶었다. 우리는 이제 주변에서 어른을 찾기 힘들어졌으니 더욱 현명한 어른들의 수염을 쓰다듬으며 해주는 덤덤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것이다. 좀더 솔직히 말하면 도대체 어른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였다. 마치 어린 아이였을 때 정말 아저씨 소리를 들어야 하는 30대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궁금했던 것 처럼 말이다.
'죽음' 이 등장하는 불편한 이야기가 끊임없이 서술되어 아직 젊은 나를 괴롭힌다. 나 조차 이 단어를 이렇게 싫어했나 싶을 정도였다. 사람은 본능적을 이 단어에 대한 거부감 같은 것이 있을 것이란 확신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이 책의 뒷부분으로 가면 갈수록 '죽음'은 피하거나 할 대상이 아니라 내가, 우리가, 전 인류는 물론 생물이라면 모두가 천천히 걸어가는 길 끝에 있는 문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단지 그 문 앞에 섰을 때 우리가 지나온 길을 바라보며 미소짓기를 인생 선배들은 조언해주는 것이다.
앞서 말한 것 처럼 시크릿류다. 또는 죽음에 대한 감상을 되새길 수 있는 책이다. 이런 류의 비슷한 책 가운데 링블로그에 소개했던 책은 다음과 같다.
2009/04/22 [책] 공병호식 블로깅, 인생의 기술
2009/03/27 [책] 마지막 강의의 핵심 '진실(Truth)'
2009/03/12 [책] 고향 사진관, 울고 싶을 때 쳐다보자
현대는 누구나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비법서에 환호하고 더 구체적으로는 어떻게 해야 부자로, 고고하게, 즐기며 살 수 있을 것인지를 알려주는 책들이 넘쳐나는데 이상하게 이 책은 정 반대다. 죽음을 앞에 둔 이들에게 감정 이입을 하면서 과연 나의 지금에 나는 충실하고 진실된 마음으로 대하고 있는지를 묻는다.
현재, 지금, 당장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당연하지 않은가. '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는 진리다. 늙어지면 놀 수 있는 환경을 갖췄다 해도 결국 젊은 시절의 즐거움을 얻을 수 없으니 말이다. 물론 놀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 간절히 원하는 것에 솔직하라는 것이다.
이 책이 이야기하는 '더 늦기 전에 알아야 할 인생의 비밀'은 이렇다고 한다.(목차 일부를 그대로 인용한다)
3장. 첫 번째 비밀 : 가슴이 시키는 대로 살아라 57그리고 말한다. 비밀을 실천하기에 이미 늦은 때란 없다고.
깨어 있는 삶을 선택하라 | 정말로 중요한 세 가지 질문 | 삶이 과녁을 벗어나지 않았는가? | 자신의 데스티나를 찾아라 | 가슴이 이끄는 대로 사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 우주가 기회를 만들어주기도 한다
4장. 두 번째 비밀 : 후회를 남기지 말라 101
위험을 감수할수록 후회는 줄어든다 | 엘사의 캐나다행 티켓 | 용기 있는 선택으로 최고의 이야기를 만들어라 | 오늘을 생의 마지막 날처럼 | 후회를 놓아버리는 기술
5장. 세 번째 비밀 : 스스로 사랑이 되라 133
사랑은 선택이다 | 선한 늑대에게 먹이를 줘라 | 시골 이발사의 교훈 | 매순간 사랑하는 마음을 선택하라 | 리아의 아침 기도
6장. 네 번째 비밀 :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173
순간 속에 존재하라 | 강아지 몰리와의 산행 | 모든 ‘쇼’가 ‘마지막 쇼’다 | 걱정은 내일의 슬픔을 씻어주지 않는다 | 행복을 위한 마음 훈련
7장. 다섯 번째 비밀 : 받기보다 주는 데 힘써라 195
십 분짜리 장례식과 열 시간짜리 장례식 | 노배우 앤터니의 특별한 저녁식사 | 삶의 큰 과업, 자신을 내려놓기 | 세상을 위해 울어라
전체적으로 시크릿류의 믿어라, 행하라, 생각하라, 되뇌어라 등의 동어반복 주문이 난무하는 책이긴 하지만 앞서 살았던 존경받을만한 인생 선배들의 삶에 대한 자세와 에피소드가 이런 남루하고 빤한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바꿔 놓는다.
진실과 사실, 그리고 우리네 실제 인생 이야기는 늘 그렇게 감동적이다. 사실 전혀 모르던 것을 알려주는 비법서는 없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지만 한켠에 밀어놓았던 파랑새를 다시 안아주라고 일러주는 것 뿐이다.
2, 30대가 주름잡는 대중매체와 연령대를 알 수 없는 '지적질쟁이'들이 폭주하는 인터넷, 그리고 임산부마저 야박하게 자리에서 일어서라고 호통치는 노인들이 있는 지하철, 무기력하게 앉아서 하릴없이 장기를 두는 공원 벤치의 어른들을 보면서 이시대는 정말 '어른'들을 홀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가을 해본다. 아니면 모두가 어른들이 어른다와 보이지 않는 병에 걸려버린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핵가족화에서 원자화로 뿔뿔이 흩어지는 우리의 공동체 속에서 이미 '어른'의 자리는 남대문마냥 소실되고 없어져버린 것은 아닐까.
어른들의 진솔하고 따뜻한 충고를 책으로나마 들으면서도 존경할만하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을 기회가 없는 우리네 각박한 현실을 다시 되돌아보게 됐다. 참으로 생뚱맞지만 말이다.
아, 이 책. 솔직히 별로다. 별 세 개도 그냥 이러저러한 복잡한 개인적인 감상이 덧붙여져서 준 점수일 뿐이다.
2009/10/15 02:04
2009/10/15 0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