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6년 말 미국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 표지에 느닷없이 3D 여성 아바타 캐릭터가 등장했다. 원래 이 잡지의 표지는 성공한 사업가나 영향력 있는 대기업 임원의 자리였다.
비즈니스위크지가 실수한 것이 아니었다. 이 3D 아바타가 바로 ‘세컨드라이프(Second life.com)’라는 가상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비즈니스 우먼이었기 때문이었다. “안시 청(Anshe Chung)”이라는 ID를 쓰는 중국계 기업가 아일린 그라프는 세컨드라이프에서 최초의 백만장자가 된 인물이었다.
가상 세계에서 백만장자가 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우리도 인터넷 고스톱을 하면서 ‘몇 억원짜리’ 판돈을 쥐고 있으니 당연히 억만장자 소리를 들을 만 하지 않은가.
하지만 세컨드라이프라는 가상세계는 달랐다. 소위 린든머니라는 사이버 화폐를 실물 처럼 거래할 수 있고 이를 다시 현실 세계의 현금으로 환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게임에서는 월정액을 내거나 게임내 아이템을 사기 위해 현금을 내고 사이버 화폐를 얻는다. 그러나 이 사이버 화폐는 다시 실물 화폐로 바꿀 수 없다.
세컨드라이프는 독특하게도 가상 세계를 구축해 놓고 그 안에서 땅을 판다. 그리고 그 땅은 사용자가 다른 사용자에게 되팔 수 있게 했다. 당연히 더 비싸게 팔거나 싸게 팔 수 있다. 시장 가격이 형성될 수 있다는 말이다. 사용자들이 많이 몰리는 지역의 땅이 당연히 더 비싸다. 현실에서와 같이 심지어 땅 투기도 가능하다. 초기에 안시 청 역시 땅을 사고 파는 식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재미있는 것은 이 땅위에 무엇을 만드느냐도 중요하다. 기존 게임은 게임 개발사나 운영자가 만들어 놓은 규칙에 따라 게임을 할 수 있지만 세컨드라이프에서는 땅과 아바타 정도만 제공되고 나머지는 사용자들이 알아서 이용할 수 있도록 각종 소프트웨어를 제공한다.
이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사용자들은 아바타들이 즐길 수 있는 아이템을 새로 만들어 가상 세계에서 새로운 사업을 할 수 있다. 모든 요소에는 가격이 붙어 있다. 심지어 아바타들이 신을 수 있는 신발을 만들어 팔거나 아바타들이 즐길 수 있는 놀이를 개발해 팔 수도 있다. 아바타들이 멋지게 춤추는 동작까지 잘 만들어 놓으면 사려는 사람이 생긴다.
세컨드라이프는 기본 요소 외에 모든 것을 사용자들에게 만들 수 있도록 맡겨둠으로써 자연스럽게 가상 사회에서도 실물 경제와 비슷하게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세컨드라이프는 이들의 경제생활 속에서 세금을 떼는 역할만 하고 있다.
필립 로즈데일이 세운 린든 랩에서 만든 세컨드라이프는 2003년 서비스를 시작했지만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시기는 불과 2년 정도 밖에 안 됐다. 처음에는 사용자들에게 무한한 자유를 주었다는 이유로 ‘재미없는 게임’ 정도로만 인식됐지만 그 안에서 현실 세계와 마찬가지로 물건을 생산해 팔거나 건물을 지어 분양하는 등의 경제 생활이 가능하다는 점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세컨드라이프가 주목받은 것은 그 안에서 실생활과 다름없는 ‘사회생활’이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인간사와 마찬가지로 사기를 치는 사람도 있고 싸우거나 시위를 하는 사람도 있으며 정치인들이 연설을 하고 기자들이 그 현장을 취재하기도 했다. 새로운 세계가 창조되고 있었으며 세컨드라이프 안에서 새로운 사회가 탄생되는 것을 목격하면서 사용자들이 급격하게 늘어나게 된 것이다.
더구나 IBM, GM, 도요타, 텔, 시스코, 로이터, 아디아스 등의 기업들이 속속 세컨드라이프 안에 지점을 열어 마케팅으로 활용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일찌감치 LG CNS가 상암IT센터와 홍보관을 개설했는가 하면 매일경제신문사는 사옥을 그대로 세컨드라이프에 옮겨놓았다.
세컨드라이프에서 사람들은 파티를 즐기고 대학 강연을 들으며 영화를 보거나 게임을 할 수도 있다. 건축가로 활동할 수도 있고 컨설팅을 하거나 서로 모여 사업 구상을 하기도 한다. 또는 기자들은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취재를 하기도 하며 방송사들은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현실과 세컨드라이프 안을 동시에 생중계하는 등 현실세계와 마찬가지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사회가 구현 가능하다. 그래서 두 번째 삶, 즉 세컨드라이프다. 이렇게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사용자가 전세계 100여개 나라 1천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세컨드라이프는 지난 해 우리나라에도 진출해 한국어로 서비스하고 있다.
세컨드라이프와 세컨드라이프 속 사업자들은 경복궁 경회루를 실물과 유사하게 복원해놓았는가 하면 강남 일대를 그대로 옮겨놓기도 했다.
이외에도 얼마 전 전국민을 가슴 아프게 만든 숭례문 화재를 사이버상으로 복원하는 작업에 열중하는 등 한국인들에게 가깝게 다가가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아쉽게도(?) 세컨드라이프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인 실물 화폐 교환이 이뤄지지 않고 있어 국내 사용자 확대는 더딘 편이다.
전세계적으로 새로운 가상 사회와 경제를 창조했다고 일컬어지는 세컨드라이프라고 해서 긍정적으로만 보기 힘든 구석은 있게 마련이다.
볕이 있으면 그늘도 있는 법. 전세계적으로 화제를 불러온 세컨드라이프는 그 놀라운 ‘자유도’로 인해 인간들의 어두운 본능을 그대로 투영하기도 한다. 누드 비치나 스트립쇼가 펼쳐지는 술집, 실제 돈이 오가는 도박장이 수백 군데가 넘는다.
프리섹스 랜드라는 특별한 성인들의 공간에서는 아바타끼리 사이버 성행위를 할 수 있으며 총기를 구매해 다른 아바타를 위협하는 일도 가능하다. 초보자들을 노린 땅 사기나 터무니 없이 비싼 가격의 물품을 강매하는 등의 부작용도 일어나고 있다. 세상 사는 것이 현실이나 사이버상이나 복잡하기는 매한가지인가 보다.
처음 이 책을 받았을때 뭐 이런 책을 돈을 주고 사야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최초 한국 런칭을 위하여 한국 게임사들이 가진 생각이었을 것이다. 린든랩(Linden Lab)에서 제공하는 세컨드라이프(Second Life)는 게임이라기 보다는 플랫폼이다. 이 가상 공간에 형성된 모든 권리는 개인에게 있다. 아마도 이것이 다른 게임들과의 차이점이라고 보인다. 다른 차이점이라기 보다는 사상의 차이라고 보인다. 개인 사유를 허용하다보니 세켄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