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스미디어는 현대사에서 정치의 선전수단 내지는 반항의 수단으로 이용되어 왔다. 그 미디어가 다양하게 변신중이다. 당연히 정치도 바뀌고 있다. 각종 선거에서 유권자들의 판단을 기다리는 후보자들이 표를 한 장씩 갖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는 곳으로 간다. 어디로 가야 할까. 우리 대통령 후보들이 앞다퉈 ‘시민들이 있는’ 재래시장을 찾는다. 선거 때마다 우리는 매스미디어 기자들에게 포즈를 취해주는 후보들의 이러한 가증스런 연극을 보고 있는 셈이다.
2008년 소셜미디어를 적극 활용해 당선된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2011년 4월에 페이스북을 통해 타운홀 미팅, 우리 말로 하면 국민과의 대화 간담회를 했다. 내용은 별 것 없었지만 표를 갖고 있는 유권자들이 페이스북에 몰려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고 중간에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매스미디어들의 판단에 좌지우지 될 여지도 두지 않은 채 수백만명의 온라인 사용자와 직접 대화할 수 있는 '인터넷 광장에서 연설하는 대통령'을 보여준 셈이다.
광장에서 후보가 연설하는 도중 저쪽에서 웅성거리는 소리를 듣거나 청중 한명한명의 표정을 볼 수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인터넷은 그들의 표정을 볼 수는 없겠지만 그들과 댓글을 달고 '좋아요' 버튼을 몇 개 눌렀는지, 누가 눌렀는지를 알 수 있다. 혼돈스럽지만 인터넷은 우리에게 이런 직접 민주주의의 '맛'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는 어떠냐고? 제 2의 인터넷 대통령이 나오는 것을 기대하던 사람들의 기대를 기반으로 2007년 포털과 인터넷 서비스 기업들은 대선후보 토론회를 앞다퉈 유치했다. 인터넷 종사자들은 인터넷 선진국 다운 면모를 보이고 싶어했다. 대통령 후보 합동 토론회는 법적으로 개최하기 어렵다 해도 후보자들 데려와서 정책 이야기는 들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순진한 생각은 철저히 무시당했다. 주요 후보는 쏙 빠진 채 군소 후보들만 인터넷 대통령 후보 간담회에 참여했다. 당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와 민주당 정동영 후보는 철저하게 인터넷을 외면했다. 선거에 인터넷이 영향을 미치는 것 자체가 이상하게 받아들여져서 인터넷을 통한 후보 지지 선언이라거나 타 후보 비판은 선거법 등이 동원되면서 치밀하게 차단 당했다.
그 이후의 상황은 우리의 기억 그대로다. 2008년 인터넷에서 불거진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한 불신으로 촉발된 소위 '광우병 촛불집회'는 당시 인터넷에 의한 의견 결집이 오프라인 행동으로 귀결되는 의견 제시의 '온오프라인 융합 현상'이기도 했다. 이를 두고 '초는 누가 사줬는가' 하는 '음모론의 진원지'론을 비롯한 인터넷에 대한 저열한 홀대는 국가적인 손실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2007년 3위이던 대한민국 세계 IT 순위가 2011년 19위로 곤두박질쳤다. 우리나라 인터넷 자유 수준은 우간다와 같다. 프리덤하우스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조사대상 47개국 가운데 우간다와 함께 16위를 차지했다. 여성가족부는 국가가 대놓고 게임을 마약에 준하는 중독원인으로 꼽고 셧다운제를 밀어부쳤다. 방송통신위원회의 인터넷 게시물 실명제 강행과 종편 선정을 둘러싼 논란으로 인해 실종된 정보통신 융합 정책은 현 정부의 IT 무식과 무능을 그대로 보여준다. 국가정보원은 북한관련 소식을 리트윗 버튼 한 번 눌렀다고 민간인을 기소하기도 했다.
내년 정부의 정보화 예산은 거의 화룡점정 수준이다.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내년도 정부부처 정보화 예산은 올해보다 86억원 줄어든 3조2967억원이다. 전세계 소셜미디어, 빅데이터, IT 모바일 혁명이 엄청난 속도로 휘몰아치고 있는데 임기말 성과를 보여주기 위해 성급하게 러시아제 로켓 쏘아 올리는 데만 열중이다. '우리는 거꾸로 정부'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셈이다.
남의 나라 보고 부러워 하는 것 처럼 바보짓이 없지만 미국 오바마 행정부는 '클라우드 최우선(Cloud first), 공유 최우선(Share first)' 정책으로 대변되는 인터넷에 대한 분명한 원칙과 철학을 기반으로 국정 운영을 하고 있다. 따라서 인터넷에 대한 일관성 있는 정책들이 펼쳐지고 있다. 오바마의 소셜미디어 활동과 페이스북을 통한 타운홀 미팅 역시 인터넷을 대하는 오바마 행정부의 상징적인 행동인 셈이다.
2012년 가장 최첨단의 선거운동이 펼쳐질 것으로 기대했던 대한민국의 대통령 선거에 여전히 좌파니 우파니, 전쟁이니 평화니, 정당 정치 혁신이니, 과거사 사과니 하는 낡은 의제만 난무하고 있다.
미래를 위한 정보통신과 인터넷에 대한 분명한 철학도, 일자리 창출과 미래 성장동력을 위한 인터넷 창업과 벤처 활성화에 대한 의지도,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보완책으로 제시되는 인터넷 정치 실험 선언도 여전히 우리나라 대통령 후보들에게 기대하기 힘든 것일까.
각 대선캠프마다 ICT 정책의 각론은 나와 있지만 ICT를 대하는 일관된 철학은 보이지 않는다. 지금의 문제가 되는 법을 일괄 철폐하고 인터넷 기본법 제정을 통해 일관되고 투명한 진흥과 규제에 대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또한 정부와 민간 사업자, 이용자들이 함께 자유지대로 선언하는 인터넷 선언, 또한 인터넷 민주정부 선언 등 미래를 위한 첨단 스마트 국가를 위한 철저한 고민과 일관된 정책 준비에 좀더 신경을 써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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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이번호에 실린 기고문입니다. 이 기고문은 "대선후보여, '한국인터넷포럼 부의장, 벤처스퀘어 대표' 이름으로 실었습니다.
지난 번
인터넷포럼에서 간담회를 개최했던 문재인 후보에서 발표했던 내용은 물론이고 ICT 정책에 대한 명확한 비전을 보여주지 않고 있는 다른 후보들도 '인터넷에 대한 명확한 철학과 비전'을 보여줬으면 합니다.
한국인터넷포럼은 대선후보들에게 10대 어젠더를 제시한 바 있습니다.
[2012 대선]한국인터넷포럼, 대선 후보에 10대 인터넷 정책 어젠더 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