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울한 소식 두 가지 때문에 마음이 매우 불편하군요.
하나는 김연아 선수에 대한 유인촌 장관의 환영 장면을 편집해 인터넷에 올린 누리꾼을 문화관광부가 고소한 사건이구요.
다른 하나는 김길태 팬클럽 카페를 운영한 누리꾼을 경찰이 형사 입건한 사건입니다.
둘 다 당사자가 잘못이 있었고 이에 대해 행정부 공권력이 사용된 사례입니다. 하지만 또 다른 공통점은 '정말 그 정도로 잘못했느냐'에 대한 경중의 문제가 논란의 핵심이라는 겁니다.
먼저 일명 '회피 연아' 사건을 생각해봅니다. 먼저 김연아 선수를 반갑게 맞이하는 유인촌 장관이 마치 '성추행 하는 것 처럼 비춰지도록 편집'했고 이는 명백히 '명예훼손'이라는 겁니다. 당연히 장관 개인의 명예훼손이겠죠. 그런데 대통령이 임명하는 임명직 장관 개인의 명예훼손 문제를 정부 공무원이 나서서 정부부처 이름으로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것입니다. 더구나 조사하는 과정에서 경찰이 동영상을 접하고 게시판에 옮겨놓은 유포자들 역시 무차별적으로 출석시키는 바람에 당사자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물론 현 이명박 대통령 역시 명예훼손으로 언론사를 상대로 소송을 낸 사례가 있지만 이 역시 명예훼손 당사자였던 개인 자격으로 소송을 내야 했습니다. 이는 피해자라고 주장하지만 여하튼 권력자가 언론사를 상대로 소송을 할 때 국가권력을 마음대로 동원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여론 때문이었습니다. 언론 자유에 대한 억압으로 비쳐질 것이 분명했고, 실제로 비판과 감시의 대상이어야 하는 행정부가 언론을 상대로 게시물이나 기사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할 자격을 갖고 있느냐에 대한 뜨거운 논쟁으로 이어진 바 있기 때문이죠.
사법부는 유사한 소송 때마다 일관되게 가급적 정부 권력이 언론이나 비판하는 자에게 불평등한 권력 수단을 이용하여 억압하는 것은 '언론의 자유'를 훼손한다는 취지의 판례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부가 누리꾼을 소송할 주체인가
따라서 이번 사건에서 분명히 '조작하여 오해되도록 보여지게 한 의도'가 다분한 동영상 편집자에 대한 소송은 장관 개인의 이름으로 진행했어야 맞습니다. 소송이 마무리 되기 전에 임기가 끝날 경우도 있기 때문이지요. 또한 따지고보면 그렇게 큰 명예훼손인지, 그리고 실제로 그 동영상을 본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 그 동영상으로 인해 실제 피해가 있었는지 명확하지 않습니다. 차라리 '쿨하게' 해명을 보여주고 '실제 동영상'을 역으로 유포하여 동영상을 조작한 사람에게 사과를 유도하도록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최소한 현 정부를 욕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보여지는 진실에 반발하거나 억지를 부리기보다 차라리 편집자의 과욕을 나무랄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인터넷이 그렇게 우민들이 휩쓸려 다니는 것 처럼 보여도 시간이 지나면 자성의 목소리가 다시 들불처럼 일어나는 역동적인 심리의 광장이라는 점도 감안해야 했을 것입니다.
지금 이런 식의 대응이 얼마나 더 피곤한 논쟁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지 느낀다면 소송을 취하하고 대신 편집자에게 정중한 사과를 받아내는 것이 훨씬 쿨해 보입니다.
* 덧, ‘회피 연아 동영상’ 왜곡 조작 배포자 수사 의뢰와 관련한 문화체육관광부 입장을 내놓았습니다. "명예훼손을 한 당사자에 대한 처벌에 대하여는 수사 결과가 나오는 대로 숙고하여 결정할 예정입니다."라고 하는군요.
그리고 최근 대중매체 뉴스에서 거의 도배되다시피 하는 '김길태 성폭행 살인 사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김길태를 어이없게도 찬양하고 추종하고 마치 현 상황 뒤에 감춰진 음모가 있는 듯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김길태 팬 카페 운영진에 대한 경찰의 형사 입건 소식입니다.
철없는 누리꾼 행동에 단체로 돌팔매질, 죄의 경중은 없나?
먼저, 언론의 무식한 '들이대기'에 좀 화가 납니다. 인터넷에서 종종 횡행하는 '가지치기 보도'의 흔한 사례인데요. 보통 큰 사건이 일어나면 관련된 키워드를 중심으로 주변 아이템을 샅샅이 훑는 보도를 말합니다. 김길태 팬카페에 대한 첫 보도가 나왔을 때 사실 이 카페에 가입해서 보니 회원이 고작 700명, 그것도 욕하러 들어온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루 이틀이 지난 뒤 보니 수천명씩 늘어나더군요. 대부분 보도를 접하고 항의하러 들어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제대로 낚시였죠.
여기서 문제는 가만히 놔두면 자연스럽게 폐쇄되거나 살아남더라도 평균인의 가치관과 워낙 동떨어진 정서여서 관심을 잠깐 받다가 사라졌을 것입니다. 보도되지 않아서 그렇지 이런 종류의 희한한 가치를 품고 있는 카페는 부지기 수이며 기자들이 심심하면 카페에서 특정 키워드로 검색하다보면 심심치 않게 걸리게 됩니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은 '관심 받지 못했기 때문에' 사라지는 경우가 거의입니다. 오히려 관심이 먹이였던 셈이죠.
형사입건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형사법에 의한 처벌을 염두에 둔 사건 조사의 시작이며 입건은 곧 검찰을 통해 기소 후 형사재판이 열리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암시하는 말입니다. 물론 중간에 검찰에 의해 기소유예나 불기소, 법원에 의해 기각되는 등의 중간에 방면되는 사건도 있겠지만 최소한 공권력이 인신 구속을 전제로 조사하겠다는 말입니다. 입건하는 주체가 공권력이어서 민사 사건 처럼 상대방이 고소를 취하하거나 하진 않습니다.
경찰의 형사입건의 사유를 보아하니 정신나간 소리 몇 마디 한 것을 두고 전기통신망법에 의한 허위사실 유포에 해당된다고 하는군요. 게다가 사자에 의한 명예훼손을 걸고 넘어지는군요. 전기통신망법에 있는 허위사실 유포는 알다시피 미네르바를 형사입건해서 처벌하려고 들이댄 죄목이었습니다. 또한 사자에 대한 명예훼손은 '허위에 의할 것'이 명문화되어 있습니다. 보아하니 누가 봐도 헛소리인 게시물이고 해당 카페에 가입되어야 볼 수 있는 글들에 대해 과한 처벌이 아닐까 싶습니다.
헛소리할 자유까지 보장한 표현의 자유는 어디 갔나?
법감정에 준하는 처벌이라고 보기도 힘든 것이 김길태 팬카페를 개설해서 주목받고 싶어서 헛소리 몇 마디 한 것을 '범죄'라고 하기보다 '꾸짖어야 할 그릇된 행동' 정도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실제로 언론에서 몇 천 명이라고 이야기하는 회원들 대부분이 꾸짖으려고 카페에 가입한 것이고 그들이 사과를 하든 안 하든 이 카페가 지속적으로 제대로 운영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이는 없다고 봐야 합니다.
인터넷에서 능동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수많은 커뮤니케이션이 모두 깨끗하고 아름다울 수는 없을 것입니다. 차라리 몇 겹의 가식적인 가면 한 두 가지를 벗어던지고 솔직하게 이야기하다 보니 정상적이고 사회 규범과는 동떨어진 꾸짖음을 받을만한 커뮤니케이션이 일어나는 일도 종종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웃자고 농담하는데 정색하고 죽자고 달려드는 분위기'도 어색할 뿐더러 철없는 이들의 잘못된 행동을 사회적인 규범의 잣대로 꾸짖는 정도로 그치지 않고 공권력부터 들이대려는 것은 자칫 인터넷에서 자기 표현을 하려는 이들에게 자꾸 자기 검열을 강제하게 될 것입니다.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꾸짖어야 하지만 경중없이 우루르 몰려다니며 '강력한 처벌' 운운하는 것도 위험하고 함부로 공포심을 불러일으킬만큼 공권력이 앞서나가는 것도 경계해야 할 일입니다. 사회적으로 각박해지다보니 자꾸만 '독한 처벌'만이 능사인 것처럼 여겨지는 분위기가 아쉽네요. 우리 사회가 그만큼 인심과 여유를 잃어가고 있다는 방증일테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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