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실, 그 달콤한 허니팟

Column Ring 2007/05/22 13:59 Posted by 그만

정부의 22일 '‘취재지원 선진화방안’을 발표한 내용에 대해 각 언론사들이 '기자실 통폐합'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이는 정부의 발표를 먼저 보고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우리 취재시스템 국제기준 아니다”[국정홍보처]
알 권리 침해·취재자유 제한 없다[국정홍보처]

이에 대해 언론사들의 논평은 하나같이 우려 일색이다.

일부러 비주류 언론의 목소리만 전한다.

이것은 전형적인 정권 말기 현상일 뿐이다 [프레시안]
[사설] 기자실 폐쇄는 신종 언론탄압 [헤럴드경제]
[기자수첩] 노대통령의 취재지원 [머니투데이]
소통 개선?…‘여론 수렴’ 또 건너뛰었다 [한겨레]

헤럴드경제 참 심하게 들이대신다.

정부와 언론의 이같은 시각차는 일견 서로 맞다. 전직 기자 출신인 정동영 의원도 다음과 같이 말한다.

기자실 패쇄 조치에 명백히 반대합니다.[정동영의 History]

다른 거 다 떠나서 그만의 개인적 체험 한 가지와 또 다른 이야기 한 가지를 하고자 한다. 판단? 다 읽고 나면 쉽다.

기자실 이야기 1.
지금으로부터 약 10여년 전 00지방경찰청 '공보계'에서 일한 적이 있다. 민간으로 따지자면 홍보실 같은 곳이다. 언론 모니터링과 관련 정보 수집 그리고 대 언론 관계를 맡아 일했다.

당시 "조동중한서경세레" 중앙 8대 일간지의 이름을 이렇게 외웠다. 왜냐하면 이 순서대로 모든 중복기사에 대해서 목록화하기 위해서다.

조선, 동아, 중앙, 한국, 서울, 경향, 세계, 한겨레가 서열이었다. 그리고 연합통신은 따로였다. 이들 언론사들은 공보계 맞은 편 사무실에 기자실이란 곳에 사회 캡(사회부 팀장 정도)이 상주하고 있었다.

KBS, MBC, SBS, CBS 등 4개 방송이 있었다. 이들 기자들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기자실은 약 반 정도가 차 있었으며 절반은 비정기적으로 들락날락했다. 공보계가 마련한 취재꺼리가 있으면 카메라 기자들이 호출되어 왔으며 수습(또는 견습) 기자들은 경찰서를 순회하며 당직을 서거나 해당 경찰청 소속 소식이 수시로 보고되는 경찰청에서 숙직을 했다.

당시 YTN이 생겨나서 얼마 안 됐을 때다. YTN 기자를 해당 기자실에 출입시키느냐 마느냐로 한바탕 실랑이가 벌어졌다. 기자실 안에서는 간사(자기들끼리 투표로 뽑지만 대부분 연합 기자가 맡는 경우가 많았다)들끼리 투표하거나 격론을 벌였다. 자격이 있니 없니 하면서..

결국엔 YTN 자리가 마련됐다. 하지만 MBN은 자리가 없었으며 다른 언론사들에게는 자리가 배정되지 않았다. 시사잡지는 당연히 자리가 없었다. 출입 자체가 어려웠다.

매주 토요일이면 00시사 등 타블로이드판 시사 주간지 기자들이 출입을 원한다는 전화가 경비실로부터 왔고 그들의 신분증을 맡기고 출입을 허가했다. 그들은 산더미 처럼 쌓아둔 그동안의 보도자료 철을 뒤져 몇 개를 복사해갔다.

의경들이나 경찰 직원들은 이들을 돕지 않았다. 기자실 안에 있는 '분'들만 관리 대상이었기 때문이었다. 어린 의경들도 이들에게 복사를 허락하니 마니 갖고 싸우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날. 당직을 서는 의경에게 새벽 2시쯤 전화가 걸려온다. 저쪽에서 쌍욕이 들려 온다.

"공보계장 어딨어? 이런 씨발..."
"누구시죠? 무슨 일 때문이신가요?"
"공보계장 전화 대.. 나 00기자야"(**기자실 출입 기자였다)
"무슨 일 때문이신데요"
"이런 미친 새끼를 봤나 나 00일보 기자라고! 새꺄. 어디서 음주운전으로 걸어 개새끼들. 이나라 경찰들 얼마나 깨끗한지 보겠어..."

취해서 횡설수설이었다. 하지만 사태는 파악됐다.

"어디 관할인지 알려주시구요. 해당 경찰서장에게 지시를 내려놓고 입건하지 말라고 현장 경찰에게 지시하라고 하겠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유유히 빠져나갔고.. 종종 기자실 내부에서는 '음주운전 무용담'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렇게 10년이 흘렀다. 여전히 경찰서 숙직실은 '담력 테스트'를 위한 수습기자들의 발길질이 계속되고 있는지 궁금하다.


기자실 이야기 2.
'폐쇄적 기자실' 마지막 성역, 경찰청 [오마이뉴스]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헤럴드경제 등 비교적 신생 매체들은 종종 기자실 출입에 곤욕을 치를 때가 많다.

여전히 경제지들은 사회부 출입처에 드나들기 힘든 것도 현실이다.

** 그만이 차마 적지 못한 적나라한 사례가 소개돼 추가합니다.
기자실 없애면 언론탄압인가? [곰돌이 아빠의 블로그]

오마이뉴스는 늘 그런 일을 겪었다. 상주 취재기자를 두고 오프라인 주간지를 발간해야만 기자 취급을 받았고 언론사 취급을 받았다. 그들 역시 현실과의 타협을 위해 어정쩡한 모습으로 변해갈 수밖에 없었다.

언론의 힘은 정보력에서 나온다. 특이한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의 정보는 취재원으로부터 받아야 하며 취재원 접근은 기자실을 통할 때 가장 쉽다.

그래서 신생언론사들이 쭈뼛거리며 기자실 문을 슬그머니 여는 것이다.

브리핑 제도도 완전하지 못하고 취재 지원은 반대로 취재 제한이 될 가능성도 많다. 하지만 이는 고치면 된다. 그러나 기자실 관행은 그리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

기자실에서 기자 생활 십년 이십년 해온 기자들에게 너무나 가혹한 일이다. 생생한 기자들이 이리저리 휘젓고 다녀도 정보원들과의 폭탄주로 이어진 든든한 정보의 줄을 놓고 싶지 않다.

더 많이 공개돼야 하며 더 많은 기자들이 더 많은 정보를 찾아 더 많은 기사를 만들어야 한다. 정보의 효율성의 시대를 마감하고 무자비한 정보 홍수 시대를 떳떳이 맞이해야 한다. 그래야 천편일률적인 관급 기사에서 벗어나 개인 브랜드 저널리스트들이 나올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된다.

기자실 통폐합이 지금 우리 시대에게 던져준 것은 큰 의미가 별로 없다. 그저 그렇게 당연한듯이 받아들여져야 하며 정부는 좀더 화끈한 정보 공개로 취재하고자 하는 국민을 응접해야 한다. 소수의 '기자님'이 아니어도 당신들을 대신해 말해주고 당신들에게 따끔하게 충고해줄 국민은 많다.

당당하면 사이비 언론에 놀아나지 않는다. 물론 사이비 언론이 '나 사이비요'하지는 않는다. 언론이 국민을 위해, 또는 좁게는 시청자와 독자라는 구체적인 소비자들을 위해 맞서야 할 상대는 '권력', 그리고 그 위에 음흉한 미소를 짓고 있는 '자본'이다.

Writer profile
author image
링블로그 주인장 그만입니다. 그만에 대한 설명은 http://ringblog.net/notice/1237 공지글을 참고하세요. 제 글은 CC가 적용된 글로 출처를 표기하시고 원문을 훼손하지 않은 상태로 퍼가셔도 됩니다. 다만 글은 이후에 계속 수정될 수 있습니다.
2007/05/22 13:59 2007/05/22 13:59

TRACKBACK :: 이 글에는 트랙백을 보낼 수 없습니다

  1. 정부, '기자실 통폐합'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Tracked from 디지털 통-세상 사는 이야기  삭제

    정부가 기자실을 통폐합 함에 따라 언론사를 비롯한 시민단체들 비난이 거세질 것으로 보입니다. 일반적으로 기자실 통폐합이라고 함은 실질적으로 폐쇄에 가까운 것으로 국민의 알권리에 ..

    2007/05/22 14:42
  2. 기자실 폐쇄가 위헌?

    Tracked from 링블로그-그만의 아이디어  삭제

    "올커니 너 딱 걸렸어!" 심정으로 들이대본다.네이버에 오후 11시 현재 메인에 떠 있는 기사다.네이버의 뉴스 편집자가 '지능형 안티'인지, 아니면 정말 '꼴통'인지 이 따위 기사를 메인으로 올..

    2007/05/22 23:35
  3. 기자실 통폐합 = 언론자유 위협?

    Tracked from YY  삭제

    다음 블로거 뉴스에 보니 정동영 전장관님의 “기자실 폐쇄 조치 반대한다”라는 성명이 이슈로 제안되어 있어서 읽어보았습니다. 이기준님의 지적처럼, 볼테르와 조선시대 이야기까...

    2007/05/23 00:21
  4. 이번 기자실 통폐합에 대한 그만 님과 서프라이즈의 글입니다.

    Tracked from Ruler of Your Own World  삭제

    기자실, 그 달콤한 허니팟 기자실 폐쇄가 위헌? 기자실 폐쇄가 알권리 침해? 솔직해집시다. TV나 신문에서 보도되고 있는 분위기와는 정 반대의 이야기라 깜짝 놀랐습니다. 요즘 인터넷을 제대..

    2007/05/23 14:43
  5. 기자실 폐쇄논란. 중요한건 다른 것 같은데?

    Tracked from E-politics in 대하빌딩  삭제

    기자실 통폐합 논란이 엄청난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언론탄압이라고 하고. 한쪽에서는 기자들의 특권유지를 위한 반대 아니냐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글들이 쏟아지고 있..

    2007/05/23 17:44
  6. 청와대 브리핑룸에서 취재하는 블로거뉴스 기자?

    Tracked from newsblogger의 공간  삭제

    이번 기자실 통폐합 및 전자브리핑 시스템을 기대하며, 국정홍보처 등 정부부처 홍보부서에 드리는 글 나는 <미디어다음> 블로거뉴스 기자단중 한사람으로서 이번 대언론개편안에 대한..

    2007/05/23 19:48
  7. 권력. 놓치기 싫은 힘 ? 언론들의 기자실 폐지 반대

    Tracked from 인생은 진실게임이다. by 데니  삭제

    방금 전 기자실 폐지를 반대하는 MBC 논평을 보고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이렇게 포스트를 올립니다.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언론들은 이럴 때마다 사용하는 음..

    2007/05/24 01:06
  8. 기자실 통폐합, 누가 알 권리를 막고 있나?

    Tracked from LSWCAP.COM  삭제

    기자실 통폐합을 놓고 말이 많네요. 어제군요. 저녁에 경영진과 식사를 하다가 기사자 통폐합에 대한 얘기가 자연스럽게 나왔습니다. 경영진 모두 기자실에 출입을 하던 분들이죠. 이것저것 ..

    2007/05/24 01:14
  9. 기자실 통폐합을 둘러싼 시선

    Tracked from 우엉과 함께 무병장수를  삭제

    청와대에서 기자실을 없애고 공보실(브리핑룸) 체제로 간다고 발표하자마자 온갖 언론사에서 엄청난 반발을 보이고 있다. 일단 사실관계부터 알아보자. 한겨레신문 정부, 8월부터 정부 기자..

    2007/05/24 13:27
  10. 기자실의 폐해에 대하여

    Tracked from YY  삭제

    기자실 통폐합 = 언론자유 위협?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제가 드는 근거자료는 모두 제 위키 페이지에 링크되어 있습니다. 글을 쓴 뒤에 보니 &#8216;공무원 개별 취재 금지 조치&#8217;와 &#8216;...

    2007/05/25 00:38

카테고리

전체 (1951)
News Ring (644)
Column Ring (295)
Ring Idea (1004)
Ring Blog Net (8)
Scrap BOX(blinded) (0)

달력

«   2024/1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링블로그-그만의 아이디어

그만's Blog is powered by TEXTCUBE / Supported by TNM
Copyright by 그만 [ http://www.ringblog.net ].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