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 미디어
토드 기틀린 지음, 남재일 옮김/휴먼&북스

미디어, 무엇이 떠오르는가. 전통적인 기준으로 미디어를 배워온 그만으로서는 일단 4대 매체가 떠오른다. 신문 방송 라디오 잡지... 그렇다. 거짓말이다.

미디어는 도처에 있으며 미디어를 피한다는 당신의 의식조차 미디어는 이용한다. 당신의 모니터 베젤(테두리)도 미디어다. 그 곳 한 켠에 당신이 사랑하는(?) 기업 로고가 방긋 거리고 있다. 컴퓨터를 켜고 [시작] 버튼을 누르는 순간 사각의 펄럭이는 윈도우 이미지는 당신에게 마이크로소프트가 일상에 얼마나 침투돼 있는지를 외면하게 만든다.

그렇게 미디어는 무한대다. 무한 매체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책이 알려줄 것만 같았다. 실제로 두툼한 책 표지에 나온 문구는 이 책을 다 읽고 나 산만해져 버린 독자에게 '어때? 해답을 찾았니?'라며 비아냥 거린다.

미디어의 급류는 우리를 어디로 이끌고 가는가? 우리는 미디어의 급류에 침몰하고 말 것인가? 급류를 거슬러 오를 것인가? 아니면 급류를 타고 아슬아슬한 항해를 즐길 것인가? 도대체 우리 삶에 미디어란 무엇인가? 이 책은 이런 지독한 난제를 풀기 위한 시도다.
<무한 미디어- 미디어 독재와 일상의 종말> 책 표지.


도대체 독자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끊임없이 이어지는 형이상학과 형이하학이 넘나들고 포트스모더니즘의 아찔함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무거운 동굴 속까지 독자들을 데리고 다니는 이 책은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미디어를 전공했으며 미디어 관련 일을 하고 있으며 미디어에 대해 끊임없는 질문과 해답 속에서 해메고 있는 그만의 손을 이끌고 숨가쁘게 미디어라는 숲의 곳곳을 데리고 다니더니 어느새 제자리에 갖다 놓고는 '어때 숲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겠니?'라고 말하고 '결국 네가 숲 속 길을 만들고 찾아야 해'라는 인사로  멀어진 저자 토드 기틀린이 미워지기까지 하다.

더 미운 사람은 번역자인 남재일 박사. 어쩌면 이렇게 지루하고 힘겹게 번역했을까. 좀더 우리말 문장처럼 다루기에는 원문이 너무 난해했던 것일까. 아니면 원문에 대한 재해석에 지쳐버렸던 것일까. 읽는 순간순간 숨이 턱턱 막혔다. 독자에 대한 서비스 마인드가 없었던 것일까. 내용에 대한 아쉬움보다 번역에 대한 아쉬움은 늘 번역서를 읽고 나서의 울분을 만들어낸다.

토드 기틀린은 현대 기술결정론자이자 미디어 이론가로 유명한 마셜 맥루한에 대해 약간의 추켜세움과 약간의 조롱섞인 문장들은 그야말로 감질난다. 도대체 기틀린은 왜 이 책을 '정말 쓰고 싶었다'고 했을까. 그렇게 정말 쓰고 싶었을 정도의 뭔가를 탐구했던 것일까. 아니면 그는 자신이 뭔가 알고 있고, 뭔가 읽었으며, 뭔가 엮고 있는데, 뭔가 말하고 싶은 상황에 그것들을 책 하나로 풀어내고자 하는 욕심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흥분되는 심정으로 책을 붙든 독자들에게 자꾸만 앞 페이지에서 뭔 이야기를 했길래 지금 이 이야기가 나오는 것인지 앞 장을 되돌아가 펼쳐보게끔 만드는 위력을 지녔다. 이 책은 정말 비추다.

하지만 미디어를 알고 싶고 정말 미디어가 뭔지 감을 잡고 싶고 정말 전공자는 아니지만 지금까지 벌어져온 미디어에 대한 역사적 통찰을 얻고 싶은 독자가 있다면 강추다. 지적 충만함은 여느 책과 견주어도 충분하다. 이 책으로 시간 때울 생각하지 마라. 수없이 등장하는 '미디어'란 단어(나무)로 가득한 숲에서 길을 잃을 것이니.


* 가끔 생뚱맞은 스토리에 현혹되지 말라. 기틀린은 독자가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을 즐길지도 모른다. 그럼으로써 미디어가 무한함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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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18 22:58 2007/04/18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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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자그니의 생각

    Tracked from zagni's me2DAY  삭제

    링블로그-그만의 아이디어 :: - 무한미디어, 라는 책에 대한 추천사

    2008/08/18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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