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모든 인터넷 사용자들에게 사실상의 실명제를 강제 시행중인 우리나라에는 2가지 무서운 병이 있다.

하나는 남도 나와 같고 나도 남과 같다는 집단 의식이다. 누군가 피해를 입었다면 나도 그 피해의 당사자가 될 수 있고 내가 불편하다면 남들도 불편할 것이라는 착각은 여기서 나온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사람들은 어찌나 이중적인지, 남은 나와 같지 않고 나도 남과 같지 않다고 생각하는 묘한 개인 우월의식도 동시에 갖고 있다. 나는 피해를 입지 않았지만 남들이 피해를 입을 것 같으면 불안해 한다거나 나는 남들의 잘못된 행동을 구분할 수 있지만 남들은 그 잘못된 행동을 구분하지 못할 것이라는 착각이다.

이런 쓰잘데기 없는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보안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실명제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다.

아이핀도 뚫렸다 [서울신문]

요약하자면 해커들에게 또 다른 좋은 먹잇감을 만들어 주었는데 이건 아예 환상적인 만능키 역할을 한다는 의미다. 실명제는 해야겠고 보안 유출은 막아야겠고... 실명제는 당연한 것인데 보안 유지도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에서부터 구멍은 이미 뚫려 있었다.

국정원에서는 복도 문 앞에 방 번호를 기입하지 않는다고 한다. 책상 위에 무엇인가 기록한 것을 놓아두는 것도 금기라고 한다. 이것이 보안이다.

'기록하지 않는 것'

수많은 보안 전문가들이 말한다. '비밀번호를 유추하기 힘든 것으로 만들고 절대 기록하지 말라'고.

그런데 자꾸 우리나라 인터넷은 '기록하라'고 명령한다. 그것도 '의무적으로' 기록해야 한다. 무엇을? 국가가 국민을 일련 번호를 매겨 관리하는 주민등록번호를 적어 넣으라고 한다. 사람들이 불안해 한다. 그러니 생각한다는 것이 고작 '그럼 다른 곳에서 공통 아이디를 생성해서 사용하라'고 한다. 그것이 아이핀이다.

그런데 이 아이핀은 각 사이트마다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사용하지 말고 하나의 본인 식별 번호를 발급받아 사용하는 싱글사인온, 즉 공통인증을 말한다. 이 문제는 이 공통 인증을 하는 것 역시 주민번호로 본인 인증을 한다는 것이다. 물론 기타 주민번호 외에도 휴대폰이나 신용카드, 인증서 등의 보조 수단이 동원되기는 하지만 여전히 '주민번호'가 필수다. 참 좋은 먹잇감을 만들어 둔 것이다. 해커들은 이런 대한민국의 공무원과 정치인을 좋아한다. 무개념 언론인은 또 얼마나 사랑하는지 모른다. 하긴 오픈아이디를 한국화 한답시고 정책을 만든 것이 아이핀이니 더 뭘 기대해야 하겠는가.

몇 번을 말해야 들어먹을지 모르겠지만 끊임없이 나오는 해킹사고에서 왜 자꾸 피해가 눈덩이 처럼 커지고, 광범위해지는가를 생각해보면 답은 간단하다. 민간 사업자들이 필요 이상으로 개인 정보를 너무 많이 갖고 있다. 우리의 행동 패턴을 읽어내는 기법인 행동타게팅(behaviour targeting)기법이 해외에서 주목받는 것은 우리나라 처럼 개인을 특정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의 행동 패턴이나 기타 나이나 직접 정보를 자의에 의해 입력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고생하고 있는 것이다.


SNS에 주목했던 이유 중 하나 역시 개인의 행동 패턴을 특정시켜 연결하고 그것을 이용할 수 있을 것이란 큰 기대가 깔려 있던 것이다. 페이스북의 개인정보에 대한 정책에 항의하며 탈퇴하는 등의 행동은 이렇듯 페이스북의 개인정보에 대한 제공 범위가 지나치게 광범위하다는 것에 대한 반발심리 때문이다.


물론 우리나라의 본인확인제(다시 말하지만 실명제의 다른 이름이다. 명칭 갖고 말장난 걸지 마라 짜증난다)는 '기록'하고 '인증'하고 심지어 '싱글사이온'까지 일사천리이니 얼마나 환상적인 제도인가. 해커는 나란 인물을 수천명을 만들어 어디서는 악플을 달고 어디서는 쇼핑을 하고 어디서는 누군가와 사랑을 속삭이고 있을지 모른다. 나는 '기록되어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미안하다. 또 지겹게 떠들었다. 그래봤자 변할 것 같지도 않다. 이젠. 민간 업자들이 관리를 허술하게 했느니 어쨌느니 하면서 초점을 또 흐리겠지. 떳떳하지 못할 것이 무엇이냐며 정치적인 의사 표시를 익명으로 하는 것에 대한 자유조차 허락치 않는 이상한 세상에서 무엇이 걱정이겠는가.

열심히 국가가 전적으로 관리 책임을 가져야 하는 주민번호를 민간 업자들에게 돌리면서 정보를 남기기 싫어하는 업체까지 본인확인을 강제로 하라고 등떠미는 정부는 보수니 진보니를 떠나서 '골빈 정부'인 것은 분명하다.

자신들의 머리가 비어 있으니 주민번호와 비밀번호를 적어놓고 다니라고 남들에게도 강요하는 것이다. 남들도 자신들만큼 머리가 비어있을 것이라고 배려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자신이 익명이 되는 순간 남들에게 마음에 상처를 주어본 적이 많았나보다. 남들도 자기 처럼 악플러가 될 것이라고 상상하면서 1명의 악플러를 색출하기 위해 오늘도 수천만명이 자기 주민번호로 로그인하도록 강제한다.

제목에서 물었다. 아이핀도 믿을 수 없다는데 실명제에 계속 기대는 이유는? 자신들이 불완전하고 악한 마음으로 가득 찬 만큼 남들 모두가 그럴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참~ 멋지고 스마트한 나라다.

* 충고하는데 절대 아이핀 같은 만능키를 만들지 마시길. 편하다고 느끼는 순간 많은 것을 잃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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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06 23:20 2010/06/06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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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엽우의 생각

    Tracked from leafriend's me2DAY  삭제

    링블로그-그만의 아이디어 :: 아이핀도 믿을 수 없다는데 실명제에 기대는 이유 -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으면 안되는 거 아냐?

    2010/06/07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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