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는 세상이 그 기술적 활용도나 사회적 복잡도에 따라 많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요즘엔 어쩌구' 하면서 옛날의 사고방식과 지금의 사고방식이 달라지게 된 이유에 대해 늘어놓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사람 사는 세상이 제아무리 바뀌어도 사람의 DNA 구조가 변하지 않는 이상 사람들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 나오는 인성은 크게 바뀌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람의 사고하는 바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고전이나 역사를 보면서 현재를 반추하게 되지요.
그래서 옛 것에서 배울 것은 그들의 사고 방식과 행동 패턴이 아니라 '사람이란 이렇구나'를 배워야 합니다. 요즘 자기계발서나 경영경제 서적을 이리저리 탐독하고 있는데 보통은 세상을 '시스템'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시스템이 바뀌면 사람이 바뀐다고 하는 위험한 물신론적인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있는 분도 많이 보게 되지요.
오늘 두 가지 고사성어를 소개합니다. 이 두 가지 고사성어는 제가 늘 인터넷에 글을 남기면서도 주의해야 할 교훈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입니다. 한 주를 시작하고 8월을 마무리하는 시간 여러분에게도 뭔가 의미있는 이야기이길 바래봅니다.
아니 땐 굴뚝에도 연기가 나는 이유는 '연기가 난다'고 들었기 때문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는 아니 땐 굴뚝에도 연기가 났던 이유는 '연기가 난다'고 믿었기 때문일 수도 있구요. 듣고 믿는 것이 아니라 믿는 것만 들을 수도 있죠. 인터넷은 이러한 현상을 증폭시키기 좋은 플랫폼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끊임없이 의심하고 조심하고 확인해야 합니다.
삼인성호(三人成虎)
춘추전국시대 위(魏: BC 770~221)나라 혜왕 때 일어난 일이다. 위나라의 태자(太子)가 조(趙: BC 475~221)나라에 인질로 가게 되자 혜왕은 태자의 수행원으로 충신(忠臣)인 방총(龐蔥)을 따라 가게 하였다. 방총은 조나라의 수도인 한단[邯鄲: 중국 허베이 성(河北省) 남부에 있는 도시]으로 떠나기 전에 왕을 알현하고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금 어떤 사람이 시장(市場)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말하면 왕께서는 이것을 믿겠습니까?”
“물론 믿지 않소.”
“조금 후에 또 한 사람이 뛰어와서 그렇게 말하면 어떠하시겠습니까?”
“의심을 할 수 있겠지.”
“그러면 뒤이어 세 번째 사람이 들어와서 그렇게 말하면 어떠하십니까?”
“과인은 그 말을 믿게 될 것이오.”
그러자 방총은 다음과 같이 간곡하게 말하였다.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나지 않은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세 사람이 연이어 나타났다고 말하니 호랑이가 있는 것이 되었습니다.[夫市之無虎明矣 然而三人言而成虎]. 이제 신(臣)이 태자를 모시고 조나라로 떠나게 되면 신에 관해 논의하는 자가 많을 것인데, 그 숫자가 어찌 세 사람뿐이겠습니까? 왕께서는 이 점을 살펴주시기 바랍니다.”
방총이 조나라로 떠나자마자 그를 중상모략(中傷謀略)하는 자들이 나타나서 온갖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그 후 볼모로 잡혀있던 태자는 돌아왔으나 왕의 의심을 받은 방총은 끝내 위나라의 땅을 밟지 못했다.
삼인성호(三人成虎)는 『한비자(韓非子)』의 「내저설(內儲說)」에 나오는 내용으로 근거 없는 조언비어(造言蜚語)도 여러 사람이 하면 믿게 된다는 것을 나타내는 고사이다.
증삼살인(曾參殺人)
매일 세번씩 자신이 한 일을 반성한다는 삼성오신(三省吾身)은 논어(論語) 학이 편(學而篇)에서 나온 말로 증자(曾子)가 한 말이다.
'나는 하루에 세번씩 나 자신을 반성한다(吾日三省吾身·오일삼성오신). 남을 위해 일을 도모하면서 과연 충실했던가. 친구와 사귀면서 신의가 없지는 않았던가. 제대로 익히지 못한 것을 남에게 가르치지는 않았던가.'
증삼은 증자의 이름이다. 어느날 증삼과 동명이인(同 名異人)인 사람이 살인을 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공자(孔子)의 제자이자 효행으로 이름높은 증삼이 살인한 걸로 오해를 하게 되었다.
한 사람이 증삼의 어머니에게 뛰어와서 "증삼이 사람을 죽였습니다"고 말했다. 그러자 증삼의 어머니는 "내 아들은 살인을 할 사람이 아니야"하고는 태연히 베틀에서 계속 베를 짜고 있었다.
조금 있다가 또 한 사람이 달려와서 "증삼이 사람을 죽였습니다"고 해도 아들을 믿는 증삼의 어머니는 여전히 그럴 리가 없다면서 안색하나 변하지 않고 베를 짜는 것이었다.
또 얼마 있다가 어떤 사람이 와서 같은 소식을 전했다. 증삼의 어머니는 그제서야 그 말을 믿지 않을 수 없었다. 너무나 놀란 증삼의 어머니는 베틀에서 황급히 내려와 담을 넘어 도망갔다.
증삼과 같은 도학군자(道 學君子)라 해도 또 그것을 굳게 믿는 어머니라 해도 세 사람이 같은 말을 되풀이 할 때는 어쩔 수 없이 당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사실이 아닌 거짓말을 퍼뜨려 남을 모해(謀害)하는 것을 증삼살인(曾參殺人)이라고 하게 되었다.
물론 이 이야기를 보면 미디어의 막무가내식 몰아치기 보도 행태에 대해서도 심각하게 생각하게 됩니다. 언론의 루머 인용과 바람몰이식 보도, '의혹 제기' 등의 보도 행태가 이러한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하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