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국 사회에서 지적되는 양극화 현상은 50대 50으로 사회계층이 양분되는 구조가 아니다. 한국 사회는 주주자본주의 종주국에서 나타나는 20대 80의 양극화를 넘어선 10대 90 나아가 5대 95로 양극화된 사회다. 국민 구성원의 90퍼센트 이상이 신자유주의 양극화로 현실 생활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고, 미래의 삶이 불투명한 것이 명백한데도 사회 구성원의 3분의 1 정도만이 진보적이라고 가정하는 것은 어떠한 현실적인 근거도 없다.
이렇게 볼 때,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공통으로 사용하고 있는 '진보-중도-보수'라는 3분할 구도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현실을 정확히 반영한 구분법도 아니고 진보에게 유리한 분할구조도 아닌 것이 명백하다.
-<새로운 사회를 여는 희망의 조건>, 새로운사회를 여는 연구원, 399p
보혁 갈등, 진보 내 분열, 보수의 분파 현상. 여전히 우리 사회를 휘감아 도는 구시대 망령들이다. 정작 정치인들은 이런 망령을 떨쳐낼 생각은 애초에 없다. 오히려 자신들의 극단성을 희석시키기 위해 주체성도 없이 '중도 좌파', '중도 우파' 식으로 중도로 위장하고 상대를 극단주의자로 매도한다. 기가 막힌 것이 이런 모든 구분법은 인간을 나누고 인간의 사회적 관계와 사고의 변이성에 의해 단 1초도 가지 못해서 깨질 것이 분명하다는 점이다.
대학생들은 정치적으로 중도이거나 보수적이어야 자신들의 취업에 유리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나이 먹은 사람들의 권위에는 끊임없이 도전해 자신들의 자리를 확보하려는 생활투쟁을 벌이기도 한다. 이들을 '보수화' 따위로 매도해서는 안 된다.
택시 기사들이 종부세 논란 당시 '세금폭탄 때문에 우리만 고생이다'라고 욕하고 있을 때 '어찌 소수 부자들의 입장만을 대변하나'라고 물어서도 안 된다. 택시 기사들에게 당장의 길거리를 다니는 사람들과 주머니가 두둑한 사람들이 그들의 고객이다. 회사에서 택시비를 대줄 정도로 경기가 활성화되어 있어야 이들도 외곽지역으로 가는 손님을 마음 놓고 모실 수 있다.
보혁갈등과는 별개로 경제적 이익에 따른 이합집산이 더욱 첨예화되었던 지난 10년이었다. 아무래도 '민주화'가 완결되었거나 거의 자리를 잡았을 것으로 사람들은 생각했기 때문에 새로운 이슈로 관심을 돌렸던 것이다. 더구나 신자유주의의 물결과 주주자본주의에 따른 사회경제적 위기는 중산층의 안락함에서 '부자'가 되기 위한 경쟁을 시키고 누락되면 중산층으로 남겨놓지 않고 '빈곤층'으로 전락시키는 '하향 해체'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영화 <마더>의 엄마 처럼 정작 우리가 지키려던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로 결과적인 승리만이 모든 부정과 불합리를 덮어주는 만능 도구가 되었다. 허벅지에 '그래도 우린 살아야 하니까'란 침자리가 존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타인의 대오 이탈과 사회적 약자들의 외침을 무시할 수 밖에 없는 이유로 우리는 이 침자리에 침을 연신 놓고 있지 않은가.
이 책은 지난 번에 소개한 되도 않는 헛소리 경제 모음집 <
경제학 프레임>보다 훨씬 현실적이고 거시적이면서도 구체적이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냉혹한 현실 진단이라는 허울을 뒤집어 씌운 신자유주의 찬양론으로 덧칠돼 있는 <경제학 프레임>보다 훨씬 더 냉철한 시각으로 우리 사회 구석구석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역사적이고 정치-사회-경제적인 복잡한 우리나라의 현재를 마치 엑스레이 비추듯 잘 조망하고 있는 느낌이다.
진보 진영을 향한 지속적인 비난에 대한 의식이었는지 대안 마련이나 대안 모색에도 적극적이라는 점에서 이 책의 가치는 더 돋보인다. '그래서 어쩌라는 거냐'는 독자의 질문에 대해서 이 책은 이런 이야기를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노동자는 반신자유주의 국민적 의제의 선도자이자 주도자로서, 농민은 국민농업 부흥을 위한 농촌의 핵심 역량으로서, 학생은 학교내부에서부터 신자유주의를 극복할 주요 역량으로서, 그리고 자영업인은 도시 지역에서의 새로운 주체 형성의 주요 담당자로서 자신의 역할을 재정립해야 한다고 볼 수 있다.
-같은 책, 404p
낡은 진보의 틀을 과감히 벗어던지는 척하면서 여전히 거대 세력에 대한 '반대 진영'임을 자처하는 수준에서 멈췄다. 한국의 진보의 현실일 수밖에 없겠지만 또 어쩔 수 없는 위치이기도 하다.
내용도 좋고 분석도 좋고 대안도 나름 의미가 있는데도 이 책이 그리 강추할만한 책은 아니다. 이유는 재미가 없다는 것 때문이다. 도대체가 400페이지 넘게 일관되게 진지하고 서사적이면 어쩌라는 건가. 우리의 모습을 직시할 수 있는 작은 사례나 현실에 대한 통쾌한 비유도 없이 건조한 문체의 연속이다. 현실이 박제돼 있는 것만 같다. 이래가지고서는 <경제학 프레임>의 유려한 문체와 잡학다식한 듯 보이는 박스 구조의 생동감 있는 글쓰기에 당해낼 수가 없었을 것이다. 도대체가 감동도 없고 재미도 없는데 정보와 숫자만 가득하니 읽는 사람으로서는 여간 고역이 아닐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