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년 동안 '미디어 시장'은 빠르게 변화해왔고 급속한 디지털 물결과 다양한 사회적 구성원들의 요구에 따라 복잡하지만 일정한 변화의 흐름을 갖고 있었다.

일부 정치적인 사안의 중심에 있기도 했고 권력자들과 날카로운 비판자의 도구로, 혹은 일부는 국민을 설득시키기 위한 도구로도 사용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세상은 변했고 미디어 환경도 변하고 있으니 지금 급한 것은 당장 몇 년 후의 시장 안에서의 생존이 문제였던 것이다.

물론 '구학'(흔히 옛날 방식을 고수하는 고참이나 윗분들을 일컫는 말)들은 움직이지 않고 변화는 일시적이든 장기적이든 자신들에게는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내부 조직은 지난 몇 십 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관행을 한 순간에 바꾸기도 힘들고 바꾸려 해도 일정 부분 저항을 감수해야만 했다. 그럼에도 미디어는 앞을 향해, 디지털을 향해, 네트워크를 향해 달려간다.

그러나... 그러나... 그 변화 속에 우리는 '설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미디어 시장과 권력은 일정 부분 '불가근 불가원'의 관계가 유지될 것만 같았다. 적어도 권력자든 정치인이든 겉으로는 그렇게 보이길 원했다. 미디어는 속성상 권력자들과 원천 주권자들 사이에서 견제와 균형의 역할을 해주며 사회적 통합의 역할을 해야 하는 숙명 때문이었다. 일정 부분 긴장 관계가 불가피하다고 생각했지만 어느 누구도 양 측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런 안일한 생각이 뒤집혔다. 일부 언론매체 간부는 자랑스럽게 '권력은 우리가 바꾼다"고 이야기하던 것을 "봐라, 우리가 바꿨다"고 말하고 있다. 실제로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얼마나 소름이 돋았는지 모른다.

그러더니 권력이 바뀌니 다시 협력하지 않았던 미디어를 바꾼다. 일사천리다. 미디어가 이렇게 넋놓고 당당하게 바뀐 적이 있었던가. 예전에는 '사이비 기자, 촌지 등 불법행위'를 빌미로 삼아 언론 통폐합을 감행했지만 이토록 당당하게 '나랑 뜻이 맞지 않아서'라고 말하며 제 입맛대로 언론을 바꿔놓은 민주권력은 세상 어디도 없었다. (있다면 알려주시길, 언론 역사상 최초이지 않을까 싶은데...)

사회과학의 범주에서 언론(여기서 언론은 매스미디어, 맥퀘일 <매스커뮤니케이션 이론>)은 크게 네 가지로 나뉜다. ◆권위주의 이론, ◆자유주의 이론, ◆사회책임주의 이론, ◆공산주의 이론이 그것이다. 이후 맥퀘일은 이 전통적 분류에서 ◆발전이론과 ◆민주적참여이론을 덧붙이기도 해서 흔히 이것을 '언론의 6이론'이라 부른다.

참고 : 언론의 6이론

권위주의 이론은 결국 공산주의 이론의 바탕을 마련해주면서 이 두 이론은 지독한 국가주의, 권력 종속형 미디어의 존재만을 인정한다.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이 두 가지는 기본적으로 헌법에서 금지하고 있다. 국가가 언론을 '장악'하거나 '사전 승인'하거나 '검열'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기본이다. 그래서 나온 것이 자유주의 이론이다. 물론 지나친 자유주의에 함몰된 언론은 선정성, 폭력성, 무책임성 때문에 비판을 받게 된다. 결국 사회책임주의 이론으로 발전하기까진 했으나 언론의 근본적 정신은 사회적 '균형'과 권력의 '견제'가 핵심인 것은 불변이다.

하지만 맥퀘일이 주장하듯 우리나라는 개발독재를 거치면서 '발전이론'에 함몰되는 불행한 역사적 궤적을 안고 있다. 발전이론이란 저개발 국가가 국가적 자원을 총동원해 고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인위적으로라도 사회적 통합을 위한 기능을 언론이 해주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부여받게 된다. 이 때 언론은 개발과 발전이 곧 사회 구성원의 이익이라는 대승적 차원의 사회적 명분을 받아들이거나 강요받게 된다. 이런 모습은 비단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개발 도상국가라면 종종 부딪히는 문제다.

우린 선진국 문턱에 가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발전 이론을 폐기해도 좋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니, 당연히 그 잔재가 남아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발전에서 자유주의로 다시 사회책임주의에서 민주적참여 유형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갖고 있었다.

이 때쯤이면 언론을 이제 기관이 아닌 산업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라 생각했다. 차라리 미디어 스스로가 솔직하게 정파성을 띠고 산업화 되어 치열한 경쟁 구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발전적 선순환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최소한 인문학과 사회학의 위기 속에서도 사명감을 갖고 일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미디어 산업에서 적어도 권력의 개입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란 모종의 자만심 같은 것이 있었다.

다 틀어졌다. 역사는 10년이 아닌 20년 뒤로 회귀해도 미디어들은 무기력하기만 하다. 권력분산과 정보분산, 공유의 시대라고 외쳤던 사람들이 조롱을 받고 있다.

희한한 세상이다. 타임머신에 앉아 '편안했던 그 때 그 시절'로 돌아가면 청춘을 얻을 것이라 착각하는 사람들이 나라를 이끌고 있다.

“이병순 자진사퇴하라” KBS 기자들 나서[미디어오늘]
경력 10년차 아래 100여명 3일 시국 기자회견… 젊은 PD도 동참

이들을 응원한다. KBS 노조의 치졸한 노동쟁의에 적잖이 실망했지만 지성과 이성은 살아 있다는 것을 웅변해야 한다. 10년 뒤 오늘을 되돌아 보며 부끄러워 할 짓을 하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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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02 23:07 2008/09/02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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