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지난 소식입니다.
강준만 칼럼이 한국일보에서 빠진 까닭은?[미디어 오늘]
한국일보의 편집국 간부는 "한두 차례 기고하는 형식이라면 몰라도, 아예 (한겨레신문에)고정필진으로 참여하는 것은 언론 상도의에 맞지 않는 것 아니냐고 항의했고, 강 교수도 이에 대해 미안하다고 했다"고 전했다.
신디케이션이란 기본적으로 콘텐츠 생산자와 유통자 사이의 유통 구조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최종 미디어들이 콘텐츠를 100% 자체 생산에 의존하지 않고 '시장'에서 수급하는 구조를 가져야 합니다.
예를 들어 연합뉴스의 기사는 기사 전재료를 받고 언론사에서 마음대로 가져다 쓸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구조이지요. 인터넷이냐 지면이냐 방송이냐에 따라 또 전재료는 달라지며 중복 게재에 대한 비용도 요구합니다. 물론 원본은 변하면 안 됩니다. 한 언론사에서 다시 여러 포털로 기사를 송고하는 구조 역시 신디케이션 구조이죠.
그런데 이상하게 '조직'과 '조직' 사이에서는 신디케이션 구조가 그나마 잘 지켜지는 것 같은데 '조직'과 '개인'이 되면 '독점' 구조가 됩니다.
아쉽게도 이런 '독점' 구조가 미디어의 경쟁력을 강화시켜주는 역할을 할 수 있으나 대다수 '콘텐츠 공급자인 개인'은 '독점'에 대한 대가 자체가 너무 작아 전업을 하기 힘들게 됩니다.
우리나라에서 프리랜서 시장이 잘 형성되지 않는 이유는 이겁니다. 각 매체마다 '개인'에게 콘텐츠 공급을 개별적으로 전용 의뢰하고 '개인'은 자신이 만들어 놓은 풀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전용' 콘텐츠를 개별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게 됩니다. 게다가 개인의 콘텐츠가 재전송되더라도 권리를 주장할 수 없습니다. 탤런트들이 '재방송' 출연료를 받는 것과는 천양지차인 것이죠.
'개인'들은 '조직'과의 거래에서 특별한 콘텐츠 독창성 지위를 획득하기도 힘들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낮은 콘텐츠 단가가 형성됩니다. 이러다 보면 개인 콘텐츠 생산자를 위주로 한 신디케이션 시장 확대는 요원해지는 것이죠.
이 사건이 그런 것입니다.
강준만 교수가 왜 미안해 했는지는 알겠습니다. 언론계 관행이 그랬기 때문입니다. 왜 강준만 교수는 '같은 글'도 아닌 다른 글을 서로 다른 매체에 기고할 수 없는 것일까요?
블로그에 있는 콘텐츠를 제대로 재가공하지 못하는 언론사나 자신의 콘텐츠를 제값을 받고 유통시킬 수 없는 블로거들이나 뭔가 아귀가 맞지 않고 있다는 점을 느낄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그 '언론 상도의'가 신디케이션 시장을 초토화시킨 것입니다. 많은 개별 콘텐츠 생산자들이 먹고 살기 위해 변절하거나 '시장'을 떠나는 원인일 수도 있는 것이죠.
우리 사회가 제대로 된 콘텐츠 시장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