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미디어의 진화 시기에는 확실히 특별한 '이벤트'를 필요로 한다. 이 '이벤트'는 월드컵과 같은 스포츠 이벤트일 수 있고, '촛불집회'와 같은 정치적·사회적 이벤트일 수도 있다. 일단 많은 사람들이 같은 시간에 같은 사건을 다양한 방법으로 접촉하기 시작하면 뉴스 소비도 폭증하고 뉴스 생산 역시 차별화가 진행된다.
최근 며칠 동안 진행되고 있는 촛불문화제와 관련된 기사들이 여전히 의도적 중립을 지키기 위한 절반씩의 발언내용 중계 위주로 흘러가고 있을 때 네티즌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뉴스를 서로 유통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줬다.
오프라인으로 나선 네티즌들은 직접 사진을 찍고 인터넷 방송을 녹음하고, 인터넷 라디오 방송국에 전화를 걸어 현장을 중계한다. 일부는 동영상을 실시간으로 중계하면서 어수선한 현장을 날것 그대로 보여준다. 이를 바라보는 네티즌들은 댓글로, 또는 인터넷 토론방을 옮겨다니며 댓글과 게시물, 그리고 블로그 글을 통해 뜨거운 토론을 벌인다.
기존 신문이나 방송은 기계적인 중립을 위한 분량 맞추기나 객관성에 매몰된 건조한 해설을 쏟아내지만 그 기사를 평가하는 네티즌은 댓글을 통해 언론과는 다른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언론, 생산자 위주의 사고 방식 여전해
전통적인 매스미디어는 이미 수십년 동안 갖춰온 뉴스 생산과 유통에 대한 방식을 고수해왔다. 하지만 인터넷이 도래하면서 '지면의 온라인화'를 시도하는 신문사와 '방송의 온라인화'를 시도하는 방송사, 그리고 '온라인 신문 생산 체제'를 갖춘 독립 언론사들이 인터넷이란 광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벌써 그 시간이 10년을 훌쩍 넘어서고 있다.
하지만 이들 사이의 경생 속에서 수용자는 소외받고 있다. 아니 수용자들이 이들의 경쟁을 소외시키고 있는 것이 현재의 인터넷 미디어 현실이다. 오히려 수용자들이 스스로 생산해내는 콘텐츠가 거칠지만 좀더 솔직하다고 느낄 정도가 되었다.
언론사들이 인터넷으로 대화하는 방식을 오프라인에서 가져오다보니 어색한 온-오프라인 동거는 수용자로부터 괴리되는 양상이다.
초기 인터넷에서는 이같은 수용자와의 괴리를 좁히기 위해 인터랙티브(상호작용) 콘텐츠를 통해 화려한 화면을 구성하려 애썼다. 차별화를 콘텐츠의 복잡성과 상호작용성에서 찾았지만 수용자의 능동적인 참여나 공감보다는 여전히 일방향 메시지 전달 방식을 고수하다 실패를 맛본다.
이런 좌절은 이후 신문사들이 충실한 오프라인 지면의 온라인화에 매몰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여전히 포털에 유통되는 기사 중간에 <본지 00일자 A6면 참조> 따위의 링크도 없는 사족들이 그대로 달려나온다. 정정문이나 반론문은 다른 기사로 처리되며 오타를 보면서도 수정하지 않는다. 한편에서는 텍스트 위주의 단편적인 실시간 인기검색어 주변의 기사 베끼기도 성행하고 있다.
인터넷 언론사 역시 조직은 물론 기사 생산 방식 조차 오프라인의 그것을 답습하고 있다. 다만 조금 빠르고, 길고, 주장이 더 노골적인 점 정도가 차이라면 차이랄까.
그리고는 신디케이션이 싹트기도 전에 언론사는 언론사대로 포털에 독자들을 빼앗긴다고 아우성이고 포털은 포털대로 언론이 아닌 유통자로서 사소함이 넘쳐나는 제목만 다른 중복 기사 처리에 골머리를 썩고 있다.
뉴스도 다시 디지털 스토리텔링을 고민할 때
뉴스가 디지털을 처음 만났을 때 지나치게 어렵게 생각했던 것이 과오였다면 지금은 너무 가볍게 생각한다는 것이 큰 착각이 아닐까 싶다.
뉴스에 있어서 디지털 스토리텔링이란 것은 '수용자'에게 '무엇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보여줄 것인가'에 대한 고민부터 시작해야 한다. 단지 좀더 표현 방식이 다양하고 전파 범위가 넓고 확산 속도가 빠른 인터넷과 디지털을 이용한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가장 최근의 예로 지난 5월 24일 오후 8시부터 송고된 한겨레신문의 인터넷보도는 25일 오전 9시까지 이어졌다. 이 보도는 일단 양을 무시했으며, 각 보도시점 기사들을 분리하지 않고 한 기사에 추가 송고했다. 또한 동영상과 사진을 포함시켜 현장감을 전달하기 위한 노력을 보여주었다.
▶ 관련 기사 : "고시철회·평화시위 보장" 밤샘 시위…성난 민심 폭발[한겨레신문]
이러한 시간의 역순으로 스토리를 쌓아가는 디지털 스토리텔링은 이미 오마이뉴스나 프레시안, 최근 들어서는 연합뉴스 등에서 종종 보여주는 기법이라 크게 생소하지 않은 방법이다. 하지만 네티즌들이 인터넷의 다양한 디지털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블로그, 게시판, 사진, 인터넷 방송을 가리지 않고 현장감을 전달하고 있는 모습과 비교해서는 그리 경쟁력이 있다고 보기 힘들 정도가 되었다.
해외에서는 현장감을 살린 디지털 스토리텔링을 위해 좀더 적극적인 방식의 '라이브 블로깅'이 시도되고 있다.
지난 2008년 1월 미국 오바마 민주당 대통령 후보와 힐러리 클린턴 후보 사이의 LA 설전이 뉴욕타임즈에 의해 라이브 블로깅으로 옮겨졌다. 방송으로 생중계되고 있는 상황에서 글과 사진으로도 현장감을 전달하는 데 충분했으며 흐르고 있는 콘텐츠를 디지털로 잘 담아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대선 때 우리나라 오마이뉴스와 야후!코리아 뉴스에서도 지도를 활용한 지지도 및 뉴스 연계 서비스를 선보인 바 있다.
▶ 관련 기사 : Live Blogging the L.A. Debate[뉴욕타임즈 온라인]
최근 CBS에 인수된 IT전문 매체인 뉴스닷컴의 맥월드2008 컨퍼런스 라이브블로깅도 눈에 띈다. 거의 1분에서 3분 사이의 주기로 글이 올라왔다. 이후 이 사이트에서는 기업의 컨퍼런스콜이나 전시회 기조연설 등의 라이브블로깅이 종종 등장하고 있다. 물론 관련 동영상은 웹으로 생중계했다. 뉴스닷컴에서 특이할만한 점은 이 사이트의 동영상은 다운로드해서 이용자들이 PMP 등의 모바일 기기로 따로 감상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가 하면 뉴욕타임즈는 미국내 경선 지역의 지도와 함께 현장의 민심을 음성으로 담아내는 시도를 보여주었다. 이 지도에는 어느 대통령 후보가 우세한지 여부를 시각적으로 잘 담아내었다.
▶ 관련 기사 : Voices From the Polls[뉴욕타임즈 온라인]
뉴욕타임즈나 통신사인 AP의 경우 무리하게 동영상이나 화려한 멀티미디어 효과를 동원하기보다 내용과 중량감 있는 이슈에 맞도록 슬라이드, 음성, 영상, 플래시 등의 디지털 기술을 적절히 사용하고 있다. 영국의 공영방송사인 BBC에서도 일찍부터 시청자 동영상 제보를 받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인터넷을 통한 메시지 전달을 위한 스토리텔링을 시도하고 있다.
BBC의 사이트는 깔끔하면서도 주제에 맞도록 시시각각 변화하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자연 다큐멘터리 페이지는 동영상을 나열하기보다 좀더 영상과 정보를 잘 모아 훌륭한 콘텐츠 사이트로 만들어 놓았다.
▶ 관련 사이트 : http://www.bbc.co.uk/springwatch/ [BBC 온라인]
네티즌과 속보로 경쟁하기보다 기획력으로 승부 봐야
요즘 벌어지는 사건과 사고는 인터넷을 타고 순식간에 나라안팎으로 퍼져나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인터넷 언론사 종사자라면 이런 때일수록 급하게 속보에 매몰될 것이 아니라 사건 뒤에 감춰진 정보들, 그리고 사건의 배경과 흐름을 좀더 소비자가 이해하기 쉽도록 기획력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독자와 시청자에게 어떻게 읽어줄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말이다.
동영상이나 플래시, 3D 애니메이션, 슬라이드 쇼 등 화려한 것을 주문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모든 기사에 대해 디지털 스토리텔링을 적용해 난삽하게 만들라는 것도 아니다.
최소한 시민들이 좀더 분석적이고 신뢰성 높은 콘텐츠를 얻을 수 있도록, 언론사는 가용할 수 있는 디지털 기술을 똑똑하게 이용하는 방법을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뉴스에서 디지털 스토리텔링이 가능하려면 가급적 취재기자와 편집기자와의 관계처럼 인터넷 스토리텔러의 육성이 필요하다. 초기 기획 단계부터 콘텐츠의 구성과 전달 방식에 대한 충분한 토의가 있어야 한다. 디지털을 이용하면 신문이나 방송에서 이미 사용한 재료로도 충분히 인터넷은 재가공 유통이 가능하다. 인터넷만을 위한 스토리텔링도 반드시 필요하다.
새로운 매체에서 힘을 발휘하고 싶다면 그만한 투자는 할 각오를 갖고 있어야 한다. 언제까지 흑백 그림 컨버팅하고 지면과 방송 내용을 억지로 모니터 속에 끼워 맞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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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내용은
전자신문인터넷 쇼핑저널 이버즈에 칼럼으로 기고된 내용입니다.
최진순 기자의 온라인 저널리즘의 산실에 올라온 글도 추천합니다.
2008/05/26 촛불집회와 뉴스룸2008/05/26 온라인 뉴스 생산 패러다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