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질의 콘텐츠·디지털 동영상을 만들어 기존 매체와 포털, 공중파, 케이블채널 등에 제 값을 받고 파는 노드(NODE) 프로젝트를 확대할 생각이다."

이 발언은 방송사의 임원이 한 말이 아니다. 그렇다고 신문방송 겸영에 찬성하는 <조선>·<중앙>·<동아>에서 나온 말도 아니다. 한겨레신문 고광헌 대표이사 사장이 <미디어오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지난 3월 18일에는 동아일보는 현행법으로는 불가능한 신문방송 겸영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내비치며 방송PD 모집공고를 냈다. "동아일보가 다시 신문과 방송의 결합을 주도하고자 한다"라는 문구를 공고에 보란 듯이 적어놓기도 했다.

동아일보는 새로 선발되는 방송PD를 편집국 통합뉴스센터에 배속시켜 실시간 방송 프로그램을 제작하는데 투입할 예정이다.

중앙일보도 일찌감치 M프로젝트를 꾸리고 조인스TV에 '중앙 NEWS 6'라는 보도방송을 시작했다. 이는 보도전문 진출을 사실상 염두에 둔 것으로 중앙일보는 이미 뉴미디어 전략을 전방위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일찌감치 방송 사업 확대를 꿈꿔온 조선일보의 행보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인터넷 동영상 뉴스였던 '갈아만든 이슈'를 '실험'이라고 자체 평가할만큼 조선일보의 방송에 대한 의지는 남 못지않게 강하다. 케이블 채널인 비즈니스엔 방송에서 간간히 보도 형식의 경제 뉴스를 선보이고 전문 디지털콘텐츠 신디케이션 법인을 설립하는 등 크로스미디어 전략의 마지막 영역인 방송 진출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지난 3월 10일부터 한국일보는 20%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케이블 채널인 '석세스TV'에 '한국일보 타임'이란 프로그램을 신규 편성하고 한국일보 기자들을 출연시켜 신문 브리핑을 하고 있다.

국민일보 역시 지난 2004년부터 인터넷 전용 뉴스인 '쿠키뉴스'를 브랜드화 한 뒤 2005년부터 '국민방송센터'를 설립해 방송사와 다름없는 영상 콘텐츠 제작 시스템을 완비해 놓은 상태다.

이외에도 신문사에서 영상 뉴스를 인터넷으로 공급하는 것은 이제 평범한 일이 되어버렸다. 인터넷에서는 신문방송 겸영금지 조항이 위력이 없기 때문이다. 인터넷 덕분에 신문사들은 새 정부 들어 신문방송 겸영금지 조항이 풀리면 바로 방송사 운영에 들어갈 정도의 노하우를 축적할 시간을 번 셈이다. 신문방송 겸영금지 조항이 그대로 존속한다고 해도 신문사들의 영상 콘텐츠 제작 열기는 식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행 법체계 아래서도 공중파와 케이블 종합편성 및 보도채널을 제외한 신문사의 영상 서비스에는 큰 제약이 없는 상태여서 IPTV, DMB, 동영상UCC 등 우회적인 영상 콘텐츠를 공급할 수 있는 곳이 늘고 있다. 따라서 신문사 입장에서는 텍스트 위주에서 이미지, 영상 등 다양한 콘텐츠 생산 기반을 마련해 놓아야 할 필요성도 있는 셈이다.

할 거 다하고 있는데... 생뚱맞은 겸영금지 해제 논란
이른바 신문사의 방송에 대한 열망은 인터넷에서부터 재시작되고 있다. 초기 신문사들은 대선이나 총선 등의 이슈가 터질 때마다 자사 인터넷 서비스를 이용해 유사 보도 방송을 해온 적이 있다.

최근 들어 중앙, 국민, 경향 등 신문사닷컴들이 앞다퉈 인터넷에서 실시간 영상 서비스를 시작했으며 동아, 조선, 한겨레 등도 신문사닷컴을 통한 보도 영상 서비스에 나설 계획이다.

한국경제TV는 유튜브에 동영상 채널을 개설했으며 경향닷컴은 다음 TV팟과 제휴해 경향iTV를 4월부터 본격 운영할 계획이다.

이러한 신문사들의 영상 콘텐츠 생산 기지 역할을 하는 곳이 바로 인터넷 자회사들인 신문사닷컴들이다. 뉴스 영상은 인터넷에서 유통되기 쉬운 환경이 도래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법규제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우회적인 방송 제작 준비 전초 기지 역할을 신문사닷컴, 또는 별도의 자회사들이 맡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무엇보다 뉴미디어 인력이 가장 많이 배치된 곳 또한 인터넷 자회사이기 때문이다.

신문사닷컴들의 영상 서비스 비용 부담이 크게 줄고 있는 것도 신문사 영상 서비스 본격화의 또 다른 이유로 꼽힌다. 태그스토리, 다음 TV팟, 유튜브 등이 인터넷에서 신문사 뉴스 영상의 유통 플랫폼 역할을 해주고 있어 비용 부담없이 콘텐츠 생산에만 주력하면 되는 상황을 맞이한 것이다. 게다가 지난해 인터넷 동영상 UCC열풍은 글로만 승부보려던 기자들의 의식을 자연스럽게 변화시켜 영상 서비스에 적응하는 기간을 단축시켜주었다.

지난해 DMB 서비스 본격화와 올해 본격화될 IPTV 서비스 역시 인터넷과 또 다른 유통 채널로 신문사들이 영상 서비스를 만들어 팔 수 있는 '판로'가 확대되고 있다는 것 역시 신문사들의 영상서비스 강화에 큰 이유 중 하나다.

물론 이러한 신문사들의 크로스미디어 전략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 1월 법원은 신문사 기자가 제작해 인터넷으로 올린 영상이 초상권을 침해했다는 내용의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이 경우 신문사들이 글이나 사진을 통한 저작권 및 초상권 침해 우려에 대해서는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영상 문법에 익숙하지 않아 생긴 문제다. 또한 일부 신문사닷컴의 경우 신문사의 동영상 강화 정책을 통해 동영상 인원을 뽑아 놓고도 제대로 대우하지 못해 지난 몇 년 동안 빈번한 영상담당자 이직으로 곤욕을 치른 바 있다.

신문과 방송의 근본적인 조직문화에서 오는 괴리감도 신문사의 영상 시장 진출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모 신문사닷컴 관계자는 "초기에 동영상 캠코더를 기자들에게 지급했더니 성의없게 몇 시간짜리 영상을 통으로 찍어오거나 닷컴사 직원에게 편집하라고 막무가내로 던져주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며 기자 영상이 상명하달식으로 진행돼 조직 내 불협화음이 끊이질 않았다고 지난 몇 년간의 분위기를 전했다.


이런 초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신문기자들을 전적으로 의존하려는 초기의 계획이 많이 수정되고 영상 전문 기자나 방송 프로듀서 출신을 채용하기 위한 노력이 늘고 있다. 뉴스 영상 플랫폼 서비스인 태그스토리 우병헌 사장은 "신문기자들에게 영상을 찍어오라고 하니 기존 방송 뉴스만 생각해서 부담스러워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전문 영상 PD나 영상에 재능과 열정을 보이고 있는 기자들이 새로운 동영상 스토리텔링을 실험하고 있는 단계다"라고 말한다.

크로스미디어 시대, 여론 독과점은 기우에 불과할까?
신문방송 겸영금지 논란을 정치적 함의로만 볼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런 크로스미디어, 디지털 콘텐츠 신디케이션 환경으로의 변화 때문이다. 총선을 전후한 정부와 국회에서 벌어지는 '신문방송 겸영금지' 논란이 자칫 정치적인 논쟁만으로 그치게 된다면 신문사들의 우회적인 영상 유통 행위는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상황만 봐서는 공중파와 케이블TV의 종합편성 및 보도전문 채널을 제외한 거의 전 영역에서 신문사들은 뉴스를 생산하고 유통시킬 수 있다.


당초 '여론 독과점화'에 대한 우려 때문에 생긴 신문방송 겸영금지 조항이 점차 사문화되고 있다는 것이 현재 문제의 본질이다. 법이 이미 너무 낡은 것이다. 글이나 사진, 영상이 모두 디지털화 되고 뉴스 유통 역시 디지털콘텐츠로 급격하게 전환되고 있는 마당에 정부나 정치권, 언론계, 학계가 '신문이니 방송이니' 따지며 논란만 벌이고 있기에는 시간이 아깝다. 전반적인 미디어 관련법의 전반적인 손질 없이 이 상황을 방치해 둔다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기도 전에 신문사들의 우회적인 여론 선점과 정보 독점은 현실화되고 미디어 산업에는 오히려 발전을 저해하는 규제만 남게 될 것이란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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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미디어 전문지 <미디어+미래> 4월호에 기고한 것이므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합니다. 해당 잡지의 편집교열을 통해 내용이 완전히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글이 쓰여진 시점이 3월 중순이므로 현재의 상황과 다른 점이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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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02 01:13 2008/04/02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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