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하던 일이 눈 앞에 펼쳐졌다. 언론사와 포털이 제휴를 맺고 독점 공급 계약을 맺은 것이다.
한겨레와 NHN이 지난 11일 과거 기사 디지타이징(전산화)을 골자로 하는 포괄적 계약을 맺었다. 이 계약에는 한겨레신문이 보유한 88년 이후의 기사 및 사진 데이터베이스를 활용, 다양한 서비스를 개발하고 뉴스 콘텐츠를 5년간 네이버에 제공토록 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특히 한겨레의 종교, 환경, 사진 분야 전문기자가 생산하는 기사를 별도의 대가를 받고 네이버에 5년 동안 독점 제공키로 한 내용이 주목된다.
일반적으로 시장에서 독점 공급은 시장 규모를 크게 만드는 역할을 하기도 하며 양측의 안정적인 성장을 견인해주는 약으로 쓰이기도 하고, 경쟁자의 시장 진입을 막는 무기로도 쓰인다.
이번 NHN과 한겨레신문간의 독점 기사 계약은 미디어는 곧 언론이라는 공공재로 인식되던 시장의 구도를 인터넷을 비롯한 미디어 전반에 대한 시장 구조로 재편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갖는다.
동아일보도 이미 NHN과 MOU를 맺은 상황이고 NHN이 신문사닷컴들을 배제시킨 채 본지와 지속적인 연락을 취하며 유사한 계약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에서 언론업계 전반적인 관심이 뜨거워진 상황이다.
이 과정에서 언론계 내부의 문제 제기는 일단 수면 아래로 내려가 있는 상황이다. 일부 언론사에서는 NHN이 제안할 달콤한 '유혹'을 기다리는 분위기도 감지되고 있다.
개인 CP에 대한 시도로 민훈기 기자나 이동진 기자, 그리고 박범신의 '촐라체' 소설 연재 등의 사례를 앞서 만든 NHN으로서는 그동안 준비해온 언론사의 전문 콘텐츠 확보에 대한 자신감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
결국 돈인가이번 사례는 언론업계와 포털업계가 고질적으로 갖고 있는 수익성과 고급 콘텐츠 확보라는 이해 관계가 맞아 떨어졌다는 점에서 윈-윈 구조인 것 처럼 보인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언론은 '공공재'로서의 역할과 독립 언론으로서의 가치를 자본의 논리에 의해 일정 부분 상실했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사건이기도 하다. 물론 포털에서도 유독 네이버의 제안이 먹혀 들었다는 것은 인터넷 미디어의 독점 현상을 줄기차게 비판하고 견제해왔던 언론사의 자발적 굴종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네이버 역시 독점 공급이라는 수단을 돈으로 일궈냈으니 당연히 폐쇄적인 정책의 연장선에서 열린 인터넷을 바라는 네티즌의 기대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네이버에서만 그 콘텐츠를 공급할 것이고 타 검색에서조차 이 독점 콘텐츠는 보여지지 않을 것이다. 대선 뉴스 중계에 있어서 객관적이고 중립적이라는 허황한 목표를 위해 무리한 댓글 통합 정책까지 펼쳤던 네이버가 이제는 '전문 기자의 품질높은 기사'라는 끝이 보이지 않는 목표를 정한 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가 든다.
이런 구도 속에서 첫 눈에 보이는 것은 결국 '돈'이다. 언론사는 자력으로 인터넷 매체로의 진화에 실패했다는 것을 자임한 꼴이며 결국 인터넷 뉴스를 독점하고 있는 뉴스 유통 업체가 제공하는 '돈'에 자존심을 판 것이다. 물론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다'며 독립 언론으로서 가장 나쁜 선택을 한 이유를 댄다고 해서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전문기자가 생산하는 기사의 내용에 대한 제약이나 규제 또한 당연히 포함돼 있지 않다는 항변도 믿고 있다. 그렇지만 5년 독점 계약은 5년 후 계약 종료 시점을 상상하게 만든다. 그 시기를 앞두고 어떤 '서비스'가 난무할 것인지는 쉽게 짐작이 간다.
문제는 한겨레신문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네이버는 메이저신문사들과 꾸준히 독점 거래를 성사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언론사의 '전문 기자' 육성을 돕는다는 명목으로 네이버용 기사를 생산하는 '하청 전담 기자' 육성에 돈을 대줄 것이고 이는 네이버 안에서만 유통되어 결국 네이버의 계약 갱신에 목을 매는 기자들을 양산하게 될 것이다. 마이너신문들은 마이너신문대로 네이버의 '간택'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는 서러움을 당할 것이다.
뉴스 신디케이션, 자존심으로 망하고 독점으로 망쳤다미디어업계의 향후 3년은 그야말로 폭풍의 시간일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뉴스 생산자들의 영향력과 지위는 쉽게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 인터넷이 신문과 방송의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하락시켜왔지만 여전히 신문과 방송에서 생산되는 콘텐츠의 힘이 줄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수십년 동안 갈고 닦아 온 직업인들이 만들어내는 콘텐츠의 수준은 제아무리 뛰어난 UCC라도 범접하기 힘든 평균 이상의 수준을 유지해왔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언론계는 자신들의 콘텐츠 품질에 대해 자신감을 갖고 있으며 이는 인터넷 뉴스 유통망인 포털 업계 역시 인정하고 있는 바다. 따라서 우리나라 포털 업계에서는 여전히 메인페이지의 가장 좋은 자리에 뉴스 영역을 배치하고 있으며 이 뉴스 영역의 주요한 자리 역시 오프라인의 주요 매체 자리가 되어 있다.
역으로 보면 포털은 뉴스에 종속되어 네티즌의 자유로운 의사소통이나 의견 제시를 한 단계 아래로 보는 풍토를 만들게 된 계기가 된 것이 바로 포털의 뉴스 공급이었다. 근엄했던 언론사마저 사담으로 '오늘의 낚시 풍경'에 대해 자랑하고 있으니 언론계의 포털 종속 현상은 더 말해서 무엇하랴.
둘의 의존 관계가 심화되면서 네티즌의 다양한 정보 취합과 자유로운 의견 교환은 소외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악플에 대해 호들갑을 떠는 언론이 만들어내고 있는 수많은 '포털전용 낚시 기사'들은 왜 근절되지 않고 있는가. 저마다 인터넷 자회사 하나씩을 두고도 인터넷 전략 하나 제대로 펴지 못하고 근근히 살아가고 있는 언론사들의 인터넷 전략은 왜 성공하지 못하는가.
파란의 스포츠 뉴스 독점 공급 실패가 남긴 교훈은 인터넷은 결국 다양성으로 수렴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들 언론과 포털은 더 장기적이고 거대한 자본력으로 언론 콘텐츠의 하청 생산화로 해답으로 내놓은 것이다.
뉴스 신디케이션, 즉 뉴스 유통이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은, 산업적인 공감대와 연구가 부실하다기보다 '단독'과 '특종'만을 좇으면서 독자와의 소통을 도외시한 언론사의 책임이 컸으며 포털의 폐쇄적인 트래픽 소유욕이 과다했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풀려면 콘텐츠의 품질을 높이고 이에 대한 접근 가능성을 열어놓는 데에서 출발해야 했다. 하지만 포털 뉴스 시장은 다른 길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재화가 유통되는 과정은 지극히 시장의 정서적 흐름에 달려 있다. 시장의 정서적 흐름은 생산자로부터 유통, 그리고 소비자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벌어질 수 있는 각종 이해관계들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마치 생명체 처럼 변화되고 진화된다.
네이버를 비롯한 포털은 인터넷에서 다양한 뉴스원을 만나게 해주었고 다양한 시각을 경험하게 해주었다. 즐겁고 재미있는 뉴스 보기 방식의 혁명이었다. 하지만 포털들은 이제 서로 높은 담을 쌓고 언론사들을 서열화시켜 자본으로 유혹하는 거대 공룡이 돼 있다.
시장 독점 기업들의 늘 주된 변명은 '시장의 자발적 선택'이었다. 하지만 시쳇말로 항상 선택받을 것이란 '자뻑'(자만과 오만, 그리고 독선)의 시간이 너무 오래 지속되면 시장의 선택은 달라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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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내용은
전자신문인터넷 쇼핑저널 버즈에 칼럼으로 기고된 내용입니다.
이 내용은 전적으로 개인적인 생각이며 이런 상황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을 피력할 수도 있었지만 미리 우려해주는 것이 나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나중에라도 포털과 언론간의 관계가 변질되는 것을 조금이나마 경계하자는 뜻으로 작성되었습니다. 특별히 네이버나 한겨레에 악의적인 마음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전 여전히 네이버나 한겨레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을 유지하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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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댓글 반론이 왔습니다. 좋은 지적이라고 생각되며 독자들께도 양측의 의견을 들을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 본문으로 끌어 옵니다. 익명제보이지만 대략 뉘신지 감은 오는군요.^^ 어쨌든 건설적인 의견 교환은 필요합니다. 이런 상황조차 인식 못하고 돈에 눈이 먼 언론인들이 있다는 것이 사실 더 문제겠죠. 돈보다 명분이 중요했던 시대에서 명분이 돈을 만들어줄 것이란 순진한 생각을 갖고 있는 그만에게도 이번 소식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답니다.~
그리고 민훈기 기자나 이동진 기자의 사례는 한겨레의 경우와 좀 다르게 보고 있습니다. 계약 주체가 다르고 선택 기준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는 나중에 좀더 의견을 쓸 기회가 있을 것으로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