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때 사회과학 관련 학과를 전공했지만 솔직히 그 수많은 이론이 머릿속에 뚜렷이 남아 있지는 않다.
그런데 한참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 이론이 하나 있다. '심리학 개론' 과목에서 교과서에 등장했던 동기-균형이론의 3각형. 그리고 인지부조화 이론. 사람과의 관계, 또는 사회적 대상과의 관계가 어떻게 형성되는가에 대해 이보다 명쾌한 설명은 없었다. 더불어 자기지각이론도 재미있다.
다음의 그림을 보자.
[나]와 [A]가 사이가 안 좋은 경우가 있다. 그런데 [A]와 [B]가 사이가 좋다. 그렇다면 [나]와 [B]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인지부조화이론에 따르면 [나]는 인지조화 상태인 [+] 상태를 유지하고 싶어한다. 따라서 [A]와 [B]가 사이가 좋은 것을 인지하는 순간 [B]에 대한 태도를 [-]로 결정한다.
또는 반대로 [A]와 [B]가 사이가 안 좋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면 [B]와의 관계가 [+]로 돌아서게 된다.
하지만 [A]에 대한 지각을 보류하게 되면 [A]와 [B]의 관계가 어떻게 되든 [B]에 대한 태도 역시 보류하는 상황을 만드는 경우도 있다.
재미 있는 것은 이 세 관계를 곱셉을 해보면 된다. [-][-][+]는 결국 [+]가된다. 셋 모두 [+]일 경우 [+]가 된다. 만일 하나만 [-]인 경우 사람들은 인지부조화에 빠진다는 것이다.
친구관계, 또는 연인관계, 또는 친구의 친구를 소개받았을 때의 태도 등에 이 이론을 접목해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예를 들어 내가 좋아하는 친구가 좋아하는 친구는 나와 친해지기 쉽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친구가 싫어하는 친구와는 손쉽게 친구가 되기 힘들다.
이 이론에는 몇 가지 함정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고 최근에는 자신의 이미 저지른 행동이나 지각에 대한 합리화를 통해 대상에 대한 인지를 판단하게 된다는 '자기지각이론'이 더 설득력 있다고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두가지 이론은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모순된 심리를 설명하는 기재로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
탈레반과 개신교, 탈레반과 우리 국민최근 개신교에 대한 적대감이 오히려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지고 있는 탈레반에 대한 이상한 호감을 만드는 상황을 목격하게 된다.
일단 [나]는 [개신교]에 대한 관계 설정을 이미 [-]로 하고 있으며 [개신교]신자들이 선교봉사활동을 위해 아프가니스탄으로 떠났다가 [탈레반] 무장세력에게 [-] 관계를 형성했다. 이 때 둘 모두가 싫다는 식으로 접근하기 힘들어진다. 인지부조화이론에 따르면 [나]는 이 둘의 관계가 [-]임을 인지하는 순간 [탈레반] 무장세력에 대한 태도를 [+]로 설정하게 되는 심리적 갈등을 겪어나간다.
이런 과정 속에 개신교 선교 활동에 대한 적극적인 비난과 함께 [탈레반] 무장세력의 행동에 대한 합리화를 내심 굳혀가는 행동을 하게 된다.
그런데 사람과 사회가 그리 간단하지는 않다. 다시 [나]는 [우리나라 국민]과의 관계 설정은 [+]로 해놓았다. 따라서 이런 경우에는 [탈레반] 무장세력에 대한 태도는 [-]여야 맞다.
동시에 대상이 여러 의미로 해석되면서 인지부조화는 그 속에서 다시 부조화를 겪게 되고 사람들은 판단력을 상실하게 된다. 복잡한 세상이다. 그만큼 분명한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자기 모순에 빠지고 인지부조화에 허덕이게 된다.
다변화된 민주주의 국가 국민으로 살면서 겪어야 하는 불편함이다.
예전에는 [빨갱이]와 적성국가인 [북한]을 동일시하며 싫어했으나 지금은 [북한]은 여러 대상으로 쪼개지게 된다. 그리고 [빨갱이]라 불리던 사람들도 '진보'나 '개혁' 등의 이름으로 쪼개진 대상으로 우리 앞에서 평가를 받게 된다.
언론, 기업, 그리고 블로고스피어인지부조화이론은 현대 마케팅 이론의 토대가 된 이론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좋아하는 매체, 또는 자주 접하고 긍정적으로 신뢰하는 매체에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면서 전제척인 관계 설정을 [+]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만일 내가 본 영화가 재미있는지 또는 없는지를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블로고스피어에서 그 영황에 대해 [+]의 신호를 보이게 되면 설령 내가 그 영황에 대해 약간의 [-] 태도를 보이고 있었어도 [+]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다.
요즘 언론에 대해 많은 블로거들이 [-]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그래서 자신과 비슷한 입장에 있는 블로거와 [+]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이는 블로고스피어라는 독특한 사회적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심리적 배경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블로고스피어에 대한 신뢰를 보이고 있는 [나]는 블로고스피어에서 부정적[-]으로 다루는 대상에 대해 [-]의 태도를 보일 가능성이 높으며 블로고스피어에서 긍정적[+]으로 다루는 대상에 대해서는 [+]의 태도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 이는 기업들이 왜 블로고스피어에 관심을 갖는지를 설명해주는 기재로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또는 '자기지각이론' 역시 비슷한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일단 블로거들 사이에서 언론을 [-] 관계로 설정하고 이에 대한 포스트와 댓글, 그리고 갖가지 사례를 집요하게 찾아내는 경우다. 이는 자칫 맹목적인 언론 불신과 블로고스피어에 대한 추종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대상이 기업이어도 비슷하다.
종말론 신자들이 자신들이 예언한 종말이 오지 않아도 종말론 신도로 남아서 더 강한 집착을 보이는 경우 특이한 심리적 관성을 보이는데 이 같은 현상을 인지부조화이론에서나 자기지각이론 역시 다른 방향으로 설명한다. 하지만 결국 [나]의 태도를 결정하는 것은 '인지부조화'에 따른 '조화화 과정'을 거치거나 자기 모순에 대한 부정과 함께 집착에 이르는 자기의 행동을 끊임없이 합리화시키려는 자기지각이론의 패턴을 따르게 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과정은 상식선에서 희한하게도 고집을 피우며 잘못된 행동을 지속하는 사람의 심리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다.
주체를 언론으로 봐도 마찬가지다. 만일 언론이 블로고스피어와 [-] 관계를 형성하게 되는 경우 블로고스피어에서 떠드는 이야기를 무시하거나 애써 다른 표현으로 에둘러 부정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독자들 역시 언론과 블로고스피어의 관계를 보면서 둘의 관계를 [-]로 인지하게 되는 경우 어느 한 쪽에 대한 태도를 [-]로 설정하거나 둘 모두에 대한 태도를 불분명하게 가져가게 될 경우가 생길 것이다.
모든 관계가 [+]가 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정말 복잡한 세상에 내가 태도를 분명히 해야 할 대상들이 너무나 다양해지고 있다.
*** 2007-7-27 추가
댓글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림이 하이거의 균형이론에서 나온 것이라는 지적인데요. 맞습니다. ^^ 설명을 돕기 위해 차용했습니다. 혹시 '학문을 제멋대로 설명한다'고 할까봐.. ^^ 글에 대한 보충 설명을 달겠습니다.
혹시라도 균형이론과 인지부조화이론 등이 설명하는 인지일관성이론에 대해 개략적으로 이해하시려면 다음의 포스트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동기-균형이론, 인지부조화이론
kosy 2007/07/27 11:27
흥미로운 글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그만님께서 사용하신 삼각형은 인지부조화 이론이기 보다는
균형 이론이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둘 다 인지적 일관성에 관한 이론이긴 하지만요...
어쩌면 그만 님께서는 균형이론을 인지부조화 이론의 관점에서 해석하셨는데 제가 잘 이해를 못 한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