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표를 보자.
<미디어 2.0>을 쓰면서 몇 가지 내가 놓쳤던 내용, 그리고 상황에 따른 변화를 설명해주고 싶었다. 위의 표를 일부 수정하고 큐레이션에 대한 내용을 덧붙여본다.
그동안 풀지 못했던 숙제 일부가 풀린 느낌이다.
미디어 3.0이라 이름을 붙이긴 힘들겠지만 일단 매스 미디어와 마이크로 미디어의 대결 일변도의 미디어 지형 해석에 좀더 설득력 있는 모델이 될 것으로 본다.
드디어 기존과 다른 스마트한 대중을 팔로워로 두고 있는 새로운 영역의 큐레이터들의 등장과 그로 인한 사회적인 변인이 역동적으로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안철수의 힘은, 그가 새로운 시대의 큐레이터이기 때문이다. 소통하는 전문가, 소셜 인증을 통해 검증받고 대중의 지지를 받고 스스로 사명감을 가진 전문가를 우리는 소셜 큐레이터라고 부른다.
스
스로 특정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 남들에게 사명감을 갖고 도움을 줄만한 정보를 수집하여 배포하고 코멘트 다는 행위가 바로
큐레이션이다. 이는 전통적인 언론이 해왔던 저널리즘 행위였으나 지금은 우리 모두가 의지가 있다면 새로운 차원의 큐레이션을 행할 수
있다.
2011/09/14 [표] 큐레이션 시대를 준비하며
이 내용에서 메시지 수용형태를 주목해주시기 바란다.
메시지 수용형태의 흐름을 떼어내어 설명하면 이렇다.
신문과 방송, 라디오 잡지는 매체적 특성 자체가 대중매체(매스미디어)라는 장점과 피드백에 대한 본질적 한계를 갖고 있다. 이 때문에 사회적인 책임 요구로 인해 옴부즈만 제도가 생긴 것이다.
수용형태는 별로 적극적일 필요가 없다. 내가 적극적이라고 해서 대중매체가 나를 위해 무언가 더 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쇼파에서 뒤로 기댄 채 멍 하니 바라보는 매체(TV), 식탁에서 밥을 먹으면서 뒤적거리는 매체(신문), 음식을 만들면서 틀어놓은 매체(라디오)를 우리는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것을 바로
Lean back 이라 부른다. 뒤로 기댄 자세를 상상하면 쉽다. TV를 두 손으로 퉁퉁 치며 전파가 제대로 잡히길 바라는 것은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답하지 않겠다. ^^
source:
http://www.flickr.com/photos/60021253@N00/2058791651그러는 가운데 우리는 우리의 소통수단과 기억 능력, 그리고 커뮤니케이션 전달 능력을 확대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개별적인 매체를 구성하기 시작한다. 도구로는 컴퓨터를 만들어냈고 전파 도구로는 통신이라는 수단을 만들었다. 컴퓨터를 만지는 행위는 지극히 적극적이어야 한다. 화면상에서 특정한 아이콘을 마우스 포인터를 움직여서 놓고는 눌러야 한다. 그리고 키보드를 열 손가락을 활용해 입력해야 한다. 그래야 화면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보여준다.
우리가 의자에 기대어 있다고 해서 컴퓨터가 뭔가 알아서 전달해주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러는 것을 바라지도 않는다.
그리고 통신, 여기서 유선과 무선 통신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는 전화를 걸어 상대방과 연결이 되는 순간 침묵하면 안 된다. 적극적으로 내가 전화를 건 목적을 이야기 해야 하고 메일을 보내더라도 발송버튼을 누르기 전에 상대방에게 이야기할 내용을 적게 된다. 육성이나 서신으로 했던 것을 좀더 간편하게 만들어준 것이다.
이게 바로
Lean forward 라는 수용 형태다. 사실상 수용형태라기보다 이용형태라는 말이 적합하다. 미디어 소비자에서 간간히 생산자로 돌변하게 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되는데 PC통신과 인터넷의 등장이 그러하다.
source :
http://www.flickr.com/photos/26204872@N08/3887312583이제 우리는 변화를 맞고 있다. 대중을 위한 공리주의에서 출발한 매체인 매스미디어와 개인에게 커뮤니케이션 능력과 개인간 사적 네트워크를 극대화시켜준 인터넷이이 소셜미디어란 지위를 얻게 되면서 혼돈이 시작되고 있다.
정보는 너무 많지만 매스미디어는 내게 지금 딱 필요한 것을 주진 않고 소셜미디어는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여주지만 누구나 보고 있는 것은 놓치게 될까봐 불안하다.
그래서 오프라인과 온라인에서 누적된 평판을 갖고 있는 사람들로 네트워크가 쏠리게 된다. 그리고 그 네트워크 쏠림에 의해 그 노드(각 지점들)는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며 각자의 노드가 갖고 있는 네트워크가 확산성을 발휘하게 된다. 이 네트워크 참여자들은 메시지 전파에 자발적이며 메시지 생산에 참여한다. 이것은 인터넷이란 플랫폼과 소셜미디어, 소셜네트워크가 갖고 있는 특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의미다.
자발성에 기인한 적극적인 수용과 활용, 이것을
Lean on 이라고 나는 설명한다.
Lean on은 매스미디어와 퍼스널미디어의 충돌을 자연스럽게 융화시켜주고 온라인에서 배제되었던 오프라인 세력과 오프라인의 평판이 자연스럽게 이전되는 현상을 보여준다. 온라인에서 회자되는 이야기들이 다시 오프라인에서 회자될 수 있는 계기는 이러한 수용과 이용, 그리고 활용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실시간성을 띄기 때문이다.
Lean on 이란 특성에서 주목할 것은 '적극성', '자발성' 인데 이것은 개인의 자유도를 높이면서 발생되는 혼돈 지수를 높이는 결과를 낳는다. 이 때 등장하는 또 하나의 특성이 이 같은 혼돈을 즐기면서도 다른 해결책으로 수용자들은 '의존성'이란 특성을 보여준다. '내가 믿을만한 소식통에 따르면'이란 출처에 대한 본질적인 신뢰 관계에 의존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신뢰관계가 평편에 기반하고 그런 상황 속에서 특정 노드가 큐레이션한 이슈와 뉴스에 네트워크가 소통하며 반응하는 것이다.
무작위성에 근거했던 지난 매스미디어의 횡포가 사회적인 제재요구로 인해 각종 규제로 정착되었지만 소셜미디어는 사회적인 균질한 규제를 받기 힘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대체로 사람들은 '나는 괜찮은데'라는 전제를 갖고 있는데 매스미디어는 본질적으로 '나'와 유리돼 있지만 소셜미디어는 '나'와 연결돼 있기 때문에 규제에 대한 반발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규제가 갖고 있는 범용성과 균질성, 동시성에 대한 거부인 셈이다.
새해에도 어김없이 매스미디어가 쏟아내는 SNS 규제에 대한 기사들을 보며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 그렇게 블로그와 소셜미디어를 천대하던 매스미디어 종사자들이 소셜미디어에 참여하면서 동질감을 느끼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에게 인터넷은 lean back 매체였지만 이제 스스로 lean on 의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아직도 그들 내부의 '꼴통 종이 권력자'들만 이런 기사를 왜곡시키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