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은 저속하고 자극적이고 독한 것을 좋아한다?
누리꾼은 낚시질에 잘 걸리고 걸리고 나서 흥분하지만 다시 몇 번의 클릭질만에 다시 또 다른 낚시에 걸린다?
미디어 사업자라면 몇 가지 고충이 있다.
무엇보다 사람들은 진지하고 거룩한 것을 좋아하는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다.
그 근거는 다큐멘터리나 공익 캠페인, 시사, 국제 정세, 토론 등의 프로그램에 사람들이 반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TV 시청률이 그것을 말해준다. 하지만 TV라는 공공재는 최소한 '공공의 이익'이라는 거창하고 거룩한 목적을 위해 모종의 조치를 취하긴 한다. 그것이 심야 방송으로 밀어넣는 한이 있더라도 일단 만들기는 한다.
하지만 인터넷으로 넘어오면 좀 다르다. 인터넷은 시청률보다 더 민감한 '클릭률'이라는 지표가 있다. 사람이 페이지를 몇 번 봤는데 클릭을 몇 번 했다는 식이다.
모 사이트에서 실제로 있던 일이다.(사실 대부분의 미디어 사이트들이 그렇겠지만) 2000년대 초중반의 일이다.
이 사이트는 '전문성'을 표방했고 나름 전문성에 대한 평가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규모를 만들기에는 턱없이 부족했고 늘 아쉬워했다. 그러던 중 포털에서 연락이 온다. 콘텐츠를 공급할 계획이 없냐고. 내부에서 격론이 벌어졌다.
먼저 포털에 공급되면 일단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알아줄 것이 아니냐는 막연한 기대, 그러다보면 우리 사이트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많지 않겠냐는 기대, 무엇보다 우리 사이트의 내용이 더 많이 읽혀지면 광고를 내는 기업들이 우리를 함부로 하지 않을 것이고 효과보다는 이름순으로 광고를 집행하는 관성에 부합하지 않겠느냐는 전망... 이 있었다.
반면, 포털에 공급되기 시작하면 의존성이 강화돼 나중에 포털에서 어떤 짓을 해도 받아들일수밖에 없는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우려, 또한 포털에서 다른 미디어들과 경쟁하게 되는데 그것이 아주 격렬해지면 우리가 원래 하려던 경쟁의 포인트인 기사의 전문성과 품질이 아닌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주제로 집중되지 않겠느냐는 우려, 무엇보다 전문성 있는 미디어로서의 자존심을 지키기 어려워 광고주들조차 가볍게 대할 것이라는 걱정... 이 있었다.
정답은 없었다.
먼저 당시 편집장은 격렬하게 포털로의 진입을 반대했고 영업부서는 강하게 포털로의 진입을 권유했다.
결국 진입했다.
이후에 놀랍게도 우리가 했던 기대와 우려가 모두 이루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이 기사를 접했으며 더 많은 광고주들이 이 매체를 두려워하는 듯이 보였다.
하지만 점점 기사는 힘을 잃어갔고 더 많이 읽혔던 부류의 기사와 포털이 메인에 띄우는 기사의 패턴에 저도 모르게 집중하면서 여느 매체와 다른 색깔을 잃어갔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후.
이 미디어의 비즈니스는 망한다. 그리고 더 강하고 자극적이고 더 지저분한 영업방식을 택한 채 새로운 사업주체에 넘어가서 포털에 기생하며 연명하고 있다. 광고로 돈을 버는 것보다 행사와 이벤트로 돈을 번다. 기업들에게 후원을 강요하면서.
우리나라 전문 미디어의 현실이다.
대중의 배반 같은 것이다. 욕하면서도 클릭하는 행동이라거나 소비할 건 다 소비하면서 평판을 낮게 주어 미디어 사업자를 괴롭힌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에 독하고 자극적인 소재를 차용한 미디어는 살아남고 승승장구하지만 좀더 거룩하고 전문적인 미디어는 데이터에 의해 뒤로 밀리고 독자와 광고주는 외면한다. 그리고는 그런 '좋은 미디어'를 내놓으라고 닥달한다.
지금, 사실상 기성 미디어나 1인 미디어나 모두 포털에 의존적이다. 심지어 포털 블로거들은 포털을 자신들이 띄워준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는 커녕 포털이 띄워주었다며 감사해 하고 대중은 그 포털에 있어야 만날 수 있는 존재라고 여긴다.
지난 주 금요일 소개한 글 내용 가운데 등장하는 글로벌보이스를 보면서 그들의 잠재적인 가능성에 주목할만한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또한 그들이 정말 중요한 이슈라고 말하는 것과 그 이슈를 수용해줄 수용자들이 과연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게 될까를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오마이뉴스의 좋은 기사 원고료 주기 모듈의 대외 개방에 대한 소식을 보면서 과연 누가 돈을 벌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 같은 것도 생겼다. 이대로라면 자극적으로 누군가 대상을 과감하게 비난하고 비판하는 사람이 그 원고료 시스템의 수혜를 받을 것만 같다.
대중은 스스로의 기준에 '저속한 것'을 좋아하진 않는다. 다만 반응을 할 뿐이다. 그 반응은 그 '저속한 것'의 존재 때문이며 그 '저속한 것'이 반드시 필요해서라거나 그 '저속한 것'에 대한 호기심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물론 '저속한 것'에 대한 상대적 반응 우위에 대해 창피할 것은 없다.
다만 대중의 이런 '자연스러운 호기심에 의한 반응'은 미디어 산업 구조 자체를 바꿔놓고 있다. 수많은 미디어 전문가들이 '저속한 것'을 필수로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온 레이아웃이 이런 것이다. 현재 많은 미디어 사이트의 하단에 붙어 있는 자극적인 소재의 광고문구들...
상대적으로 거룩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 한겨레신문 사이트의 하단 모습이다.
최소한 이 문구에 대한 클릭 유혹을 접어두는 것이 미디어를 건강하게 하는 것도 아니다. 안타깝게도 이런 클릭을 많이 해줘야 미디어들이 먹고 살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기사로 쓸 수 있게 해줄 수 있다. 상업 논리다.
이런 질문을 던져본다. 대중은 정말 '미디어'와 '뉴스'를 원했던 것일까? 그게 꼭 필요했던 소식이었을까? 아니면 그냥 있으니까 봤던 것이고 봤으니까 영향을 받았던 것일까.
나중에 다시 이 문제를 논의해보자. 지금 내가 하는 사업의 철학적 기저에는 이런 질문이 깔려 있으니까 말이다.
누리꾼은 낚시질에 잘 걸리고 걸리고 나서 흥분하지만 다시 몇 번의 클릭질만에 다시 또 다른 낚시에 걸린다?
미디어 사업자라면 몇 가지 고충이 있다.
무엇보다 사람들은 진지하고 거룩한 것을 좋아하는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다.
그 근거는 다큐멘터리나 공익 캠페인, 시사, 국제 정세, 토론 등의 프로그램에 사람들이 반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TV 시청률이 그것을 말해준다. 하지만 TV라는 공공재는 최소한 '공공의 이익'이라는 거창하고 거룩한 목적을 위해 모종의 조치를 취하긴 한다. 그것이 심야 방송으로 밀어넣는 한이 있더라도 일단 만들기는 한다.
하지만 인터넷으로 넘어오면 좀 다르다. 인터넷은 시청률보다 더 민감한 '클릭률'이라는 지표가 있다. 사람이 페이지를 몇 번 봤는데 클릭을 몇 번 했다는 식이다.
모 사이트에서 실제로 있던 일이다.(사실 대부분의 미디어 사이트들이 그렇겠지만) 2000년대 초중반의 일이다.
이 사이트는 '전문성'을 표방했고 나름 전문성에 대한 평가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규모를 만들기에는 턱없이 부족했고 늘 아쉬워했다. 그러던 중 포털에서 연락이 온다. 콘텐츠를 공급할 계획이 없냐고. 내부에서 격론이 벌어졌다.
먼저 포털에 공급되면 일단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알아줄 것이 아니냐는 막연한 기대, 그러다보면 우리 사이트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많지 않겠냐는 기대, 무엇보다 우리 사이트의 내용이 더 많이 읽혀지면 광고를 내는 기업들이 우리를 함부로 하지 않을 것이고 효과보다는 이름순으로 광고를 집행하는 관성에 부합하지 않겠느냐는 전망... 이 있었다.
반면, 포털에 공급되기 시작하면 의존성이 강화돼 나중에 포털에서 어떤 짓을 해도 받아들일수밖에 없는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우려, 또한 포털에서 다른 미디어들과 경쟁하게 되는데 그것이 아주 격렬해지면 우리가 원래 하려던 경쟁의 포인트인 기사의 전문성과 품질이 아닌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주제로 집중되지 않겠느냐는 우려, 무엇보다 전문성 있는 미디어로서의 자존심을 지키기 어려워 광고주들조차 가볍게 대할 것이라는 걱정... 이 있었다.
정답은 없었다.
먼저 당시 편집장은 격렬하게 포털로의 진입을 반대했고 영업부서는 강하게 포털로의 진입을 권유했다.
결국 진입했다.
이후에 놀랍게도 우리가 했던 기대와 우려가 모두 이루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이 기사를 접했으며 더 많은 광고주들이 이 매체를 두려워하는 듯이 보였다.
하지만 점점 기사는 힘을 잃어갔고 더 많이 읽혔던 부류의 기사와 포털이 메인에 띄우는 기사의 패턴에 저도 모르게 집중하면서 여느 매체와 다른 색깔을 잃어갔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후.
이 미디어의 비즈니스는 망한다. 그리고 더 강하고 자극적이고 더 지저분한 영업방식을 택한 채 새로운 사업주체에 넘어가서 포털에 기생하며 연명하고 있다. 광고로 돈을 버는 것보다 행사와 이벤트로 돈을 번다. 기업들에게 후원을 강요하면서.
우리나라 전문 미디어의 현실이다.
대중의 배반 같은 것이다. 욕하면서도 클릭하는 행동이라거나 소비할 건 다 소비하면서 평판을 낮게 주어 미디어 사업자를 괴롭힌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에 독하고 자극적인 소재를 차용한 미디어는 살아남고 승승장구하지만 좀더 거룩하고 전문적인 미디어는 데이터에 의해 뒤로 밀리고 독자와 광고주는 외면한다. 그리고는 그런 '좋은 미디어'를 내놓으라고 닥달한다.
지금, 사실상 기성 미디어나 1인 미디어나 모두 포털에 의존적이다. 심지어 포털 블로거들은 포털을 자신들이 띄워준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는 커녕 포털이 띄워주었다며 감사해 하고 대중은 그 포털에 있어야 만날 수 있는 존재라고 여긴다.
지난 주 금요일 소개한 글 내용 가운데 등장하는 글로벌보이스를 보면서 그들의 잠재적인 가능성에 주목할만한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또한 그들이 정말 중요한 이슈라고 말하는 것과 그 이슈를 수용해줄 수용자들이 과연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게 될까를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오마이뉴스의 좋은 기사 원고료 주기 모듈의 대외 개방에 대한 소식을 보면서 과연 누가 돈을 벌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 같은 것도 생겼다. 이대로라면 자극적으로 누군가 대상을 과감하게 비난하고 비판하는 사람이 그 원고료 시스템의 수혜를 받을 것만 같다.
대중은 스스로의 기준에 '저속한 것'을 좋아하진 않는다. 다만 반응을 할 뿐이다. 그 반응은 그 '저속한 것'의 존재 때문이며 그 '저속한 것'이 반드시 필요해서라거나 그 '저속한 것'에 대한 호기심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물론 '저속한 것'에 대한 상대적 반응 우위에 대해 창피할 것은 없다.
다만 대중의 이런 '자연스러운 호기심에 의한 반응'은 미디어 산업 구조 자체를 바꿔놓고 있다. 수많은 미디어 전문가들이 '저속한 것'을 필수로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온 레이아웃이 이런 것이다. 현재 많은 미디어 사이트의 하단에 붙어 있는 자극적인 소재의 광고문구들...
상대적으로 거룩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 한겨레신문 사이트의 하단 모습이다.
최소한 이 문구에 대한 클릭 유혹을 접어두는 것이 미디어를 건강하게 하는 것도 아니다. 안타깝게도 이런 클릭을 많이 해줘야 미디어들이 먹고 살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기사로 쓸 수 있게 해줄 수 있다. 상업 논리다.
이런 질문을 던져본다. 대중은 정말 '미디어'와 '뉴스'를 원했던 것일까? 그게 꼭 필요했던 소식이었을까? 아니면 그냥 있으니까 봤던 것이고 봤으니까 영향을 받았던 것일까.
나중에 다시 이 문제를 논의해보자. 지금 내가 하는 사업의 철학적 기저에는 이런 질문이 깔려 있으니까 말이다.
2010/10/10 23:26
2010/10/10 23:26